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00
100. 사냥대회(1)
“무언가 있기는 한데, 순순히 말하지 않고 기준을 묻는 것을 보면 마왕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 테고.”
-…….
“그 보고가 마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는 한가?”
-‘직접적인 연관’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되었다. 계속 ‘직접적인 연관’의 기준을 묻는 것을 보면 애매하다는 뜻이겠지.”
마왕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마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기에도 애매하며, 그럼에도 황제가 알아야 할 정도로 중요한 보고라….
데온 하르트가 머릿속에 담아 왔다는 점에서 그 정보가 중요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손등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이 거칠어진다. 기어이 붕대 위로 붉은 피가 비쳤다.
황제는 쉴 새 없이 머리를 굴리며 중얼거리듯 말을 던졌다.
“몬스터 문제인가?”
마계, 마왕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데도 황제가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인간계와 마계 양측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마계와 인간계의 공통적인 문제. 몬스터(마물).
-아닙니다.
“그럼 경계선 문제겠군.”
-태혼국에 마계와 연결된 경계선이 발견되었습니다.
정답.
황제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경계선이 마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나?”
-현 시국에서 제가 판단한 ‘직접적인 연관’은 ‘전쟁과 관련된 정보’ 혹은 ‘마족들과 관련된 정보’였습니다. 죄송합니다.
“됐다. 대충 파악은 하고 있었으니.”
그렇기에 어렵지 않게 정답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태혼국이라면 남부의 왕국일 텐데, 남부에 경계선이라… 그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알았든 몰랐든 상관없지.’
알았다면 왜 제국에 알리지 않았는지 곧장 답이 나오고, 몰랐다면 그걸로 끝이다.
중요한 것은 ‘경계선의 존재’. 이전에도 중요했지만, 마계와의 전쟁이 다가온 현 상황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는 아주 귀중한 정보다.
왼손등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옮겨 검 손잡이에 올리며 황제는 웃었다.
“수고했다.”
***
언제나 그랬듯 중요한 보고는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짐이 그대와 직접 만나게 되는 것은 아마 사냥대회 때일 듯하군.
뭐야, 언제 보고가 끝났지? 눈 한번 깜빡했는데 이렇게 시간이 훅 지나가다니.
보고가 끝난 것은 확실하다. 황제의 말은 벌써 대화를 끝내기 전, 가볍게 나누는 대화로 접어들어 있었다.
아직 얼떨떨한 내가 미처 대답하지 못하자 통신기 너머로 의심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사냥대회에 참가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겠지.
일단 황제의 말에 대답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참가하겠습니다. 그 대회는 언제 열립니까?”
-일주일 뒤. 이미 저택에 초대장이 도착해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일주일 뒤에 뵙겠습니다.”
-기대하지. 아, 저번처럼 흰옷을 붉게 물들여서 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짐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만, 심약한 귀족들의 눈에는 상당히 무섭게 비쳤던 모양이야.
아, 그때… 저도 무서웠습니다.
제국에 막 돌아와서 보고를 위해 황궁에 가는데 도중에 혁명군에게 습격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정신을 잃었다가 차려보니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황제의 앞에 있었단 말이지.
그때의 나보다 더 무서웠을까.
-정 피 칠갑을 하고 싶다면 피가 눈에 잘 띄지 않는 색상의 옷을 입고 오도록.
“네… 네?”
-그런 의미에서 짐이 옷을 하나 보냈다. 대회 날 입고 오면 좋겠군.
“네?”
-붉은색이니 마음껏 피를 묻혀도 된다.
아니,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싫은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권력이 깡패였다.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감히 나를 황제―와 연결된 통신기―앞에 던져 두고 간 레멤베르를 응징하려는 시도는 산더미 같은 서류 앞에 무너져 내렸다.
레멤베르를 부르며 기세 좋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지천에 깔린 서류를 보고 그대로 기세 좋게 돌아섰으나….
“이거… 안 놓습니까?”
“이러다 정말 늙은이도 패겠습니다. 책무를 다하셔야지요.”
“매번 늙은이 늙은이 하는데, 레멤베르 솔직히 건강하잖습니까. 혁명군도 엎어 쳐 제압한 사람이….”
“말의 요지가 빗나가셨습니다. 백작님, 책무를 다하셔야지요.”
“……살려 주세요.”
“제가 어찌 감히 백작님을 해하려 들겠습니까. 누가 들을까 무섭습니다. 자자, 이리로 오시지요.”
그렇게 장장 일주일을 붙잡혔다.
그리고 지금, 눈 밑을 가득 채운 시커먼 그림자를 매만지던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가기 싫다….”
“큰일 날 소리를 하십니다. 이번 사냥대회의 주최자는 황태자 전하십니다. 명이 아깝다면 부디 말씀을 아끼시지요.”
이번 사냥대회는 늘어난 몬스터도 처리할 겸, 제국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이런 것을 할 만큼 여유가 넘친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전쟁터를 바삐 오가는 황제를 대신하여 이를 진행한 사람은 다름 아닌 황태자.
황제는 아마 대회 중후반쯤에 온다고 들었다.
‘황제가 오면 당연히 나와도 대화를 나누겠지.’
인정하기 싫지만 난 황제의 애검 중 하나니까.
그럼 대화 주제는 뭐가 될까? 당연히 마계와 관련된 것 아닐까. 이번 보고는 얼굴을 마주 보고 한 것이 아닌 통신기로 했으니 뭔가 더 덧붙여 말하거나 들으려 할지도 모른다.
“더 가기 싫… 읍.”
“함부로 손을 대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러다 정말 백작님의 목이 떨어질 것 같아서요.”
나는 뒤늦게 내 옷을 만져 주는 시녀들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차 싶어 입을 다물고 눈치를 살피자, 손짓으로 시녀들을 물린 레멤베르가 내게 다가왔다. 황제가 준 옷의 매무새를 다듬으며 한탄에 가까운 말을 늘어놓는다.
“요즘 들어 늙은이의 심장을 자주 철렁하게 만드십니다.”
“…….”
대꾸하지 않고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딴청을 피웠다.
제복에 가까운 디자인의 붉은 옷.
이러다 정말 가는 길에 피를 보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스쳤으나, 이내 의식의 흐름은 다른 곳으로 흘렀다.
붉은색, 피, 그리고… 전쟁.
그래, 전쟁.
“역시 사직을 해야겠습니다.”
인간계와 마계의 전쟁. 그사이에 껴있는 내가 고생스러워질 것은 안 봐도 뻔했다.
지금까지는 서로 깔짝거리며 간만 보는 수준이었으니 버틸 수 있었다지만, 앞으로는….
“그러십니까. 자, 여기 마지막입니다. 이 망토를 걸치시지요.”
“아, 네. 그보다 내 사직서는….”
“백작님의 사직서라면 아마 미리 써 둔 것은 없을 겁니다. 이 늙은이가 다 버렸으니까요. 복면도 붉은색으로 맞춰 드릴까요?”
“이상할 것 같은데요. 그냥 하던 대로 흰 복면으로 하죠. 그보다 사직서를 다 버렸다고요? 왜… 아니, 됐습니다. 새로 작성할 테니 당장 종이와 펜을….”
“셔츠가 흰색이라 흰 복면도 이상하진 않군요. 자, 준비 끝났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네… 가 아니라, 레멤베르!”
왜 자꾸 방해를!
“죄송합니다. 하지만 백작님의 목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
나도 안다. 사직하면 오히려 죽는다는 것을.
내가 괜히 틈날 때마다 그만두겠다 하면서도 거절당하면 바로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 진심으로 사직하겠다고 우기면 상대가 나를 죽일 것을 알기에 그런 것이었다.
황제와 마왕은 나를 아끼는 것과 별개로 군주이며, 나는 내 위험성을 잘 안다.
요컨대 사직 이야기는 그저 희망 사항을 내비치는 말이라는 것이다. 투정에 가까운… 뭐, 그런 거.
‘오히려 받아 주면 경계해야지.’
한숨이 나왔다. 어쨌든 출발은 해야 하니 가방을 들고 문을 향해 걸음을 떼는데, 처진 분위기를 완화하려는 듯 레멤베르가 문을 열어 주며 말을 붙였다.
“시간이 넉넉한데 가는 길에 단의 상단에 들러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단이… 상단을 차렸습니까?”
조금 전 데우사 찻잎을 들고 방문했다가 도로 나간 사내가 떠올랐다.
데우사 찻잎을 어디서 구했나 싶었는데, 설마 상단에서 다루는 물품 중 하나가 그거였나? 능력도 좋네.
“네, 이름은 덴 상단입니다.”
“아니, 분명… 시작은 검술을 가르치는 것이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 끝이….”
“원래 재능은 이것저것 해 보며 발굴하는 것이지요. 덕분에 백작저 재정이 아주 풍족합니다.”
원래도 부족함은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데려온 사람이 성공해서 내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게 기분이 이상하다. 그와 나 사이에는 이렇다 할 유대감도 없는데.
그는 날 따라왔고, 나는 그를 백작저에 머물게 했다. 그게 전부였다.
‘아, 어쩌다 보니 투자를 좀 하기도 했지.’
마차에 올라탔다. 안내를 위해 따라온 레멤베르가 마부에게 목적지를 말한 뒤 맞은편에 앉고, 출발하는 듯 진동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 가방은 계속 직접 들고 다니실 겁니까?”
“네.”
누가 봐도 인간계의 것이 아닌 생명체가 들어 있거든요.
나는 필사적으로 레멤베르의 시선을 외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상단은 아주 가관이었다.
좋게 말하면 격식이 없고, 나쁘게 말하면….
“손님, 우리 상단은 언제나 최상품 약초만을 취급합니다. 이렇게 우기시면 곤란합니다.”
“이거 왜 이래? 나 아카데미 나온 여자야. 내가 약초 보는 눈 하나 없는 줄 알아?”
“손님, 이 약초가 정말 우리 상단의 것이라고 장담하실 수 있습니까? 손모가지 걸고?”
여기 도박판이냐…?
이 혼란의 중심에 단이 있었다.
“상단주님! 주쿤트 대교가 무너졌다고 합니다! 어떡하죠? 르웨체의 물품은 그 경로를 통해 들어오는데….”
“버겐느 대교는 무너졌습니까? 그곳으로 경로를 틀어요.”
“상단주님, 이 진상… 아니, 손님 좀 어떻게 해 주십시오!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감봉입니다. 일단 안으로 들여요.”
옆에서 레멤베르가 허허 웃는 것이 느껴진다.
잠시 말을 잃고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단을 쫓아 슬금슬금 이동했다. 레멤베르 덕분인지 다들 나를 알아본 덕분에 이동은 수월했다.
‘여긴가?’
슬쩍 문에 귀를 대고 집중했다.
“이것 보세요. 이 상단에서 산 것인데 전부 상태가 엉망입니다. 바꿔 주시든가, 돈 돌려주시죠.”
“강황, 구기자, 민들레, 까망초… 전부 남부의 약초들이군요. 이것들을 한 번에 판매한 기록이 없습니다만.”
“따로 구매했으니까요!”
일단 듣는 것엔 문제가 없다.
“글쎄요… 그렇다 해도 조금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
“하, 증거 있어? 내가 여기서 구매하지 않았다는 증거 있냐고.”
“전 병신 머저리가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급성장을 하고 있는 우리 상단을 경계하는 자들이 꽤 많았지요. 더 크기 전에 초장에 묻어 버리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 하하하하. 소설 쓰고 있네.”
“좋습니다. 당신이 여기서 약초를 구매하지 않았다는 것에 제 손목을 걸겠습니다. 쫄리면 돌아가시든지.”
목소리는 여유로웠다. 단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돌아간다면 아무것도 묻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계속해서 버텼다가 당신의 말이 거짓임이 확정된다면, 그때 당신이 돌아갈 곳은 집이 아니라 하늘이 될 겁니다.”
쟤가 원래 저렇게 말을 잘했던가? 아니 그보다….
나는 다른 것에 집중했다. 더 이상 상대를 손님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것.
단은 이미 확신을 내린 것이다.
“이 자식이 지금 어디서 약을 팔아?”
“기세등등하시던 분은 어디 가고 긴 혓바닥만 남으셨답니까. 후달리시는지요.”
“후달려? 하하하하하핫! 좋아 난….”
“자, 잠깐, 잠깐!”
이러다 정말 누구 하나 큰일 나겠다. 서둘러 문을 열고 안에 난입했다.
나를 본 단이 화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뭔가 싶어 나를 돌아본 손님 역시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벌떡 일어섰다.
“백작님!”
“데, 데온 하르트 명예 백작….”
“미안하지만 밖에서 듣고 있었는데, 말로 해결할 수는 없었던 건가?”
“지금 말로 해결하는 중이었습니다.”
“그게?”
그게 말로 해결하는 것이면, 행동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는데, 문 쪽에서 레멤베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단, 손님이 나가시려는 것 같은데 보내 드려도 괜찮은가?”
언제 거기까지 갔는지 손님이 문을 막은 레멤베르의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성격을 봐선 노인 하나쯤은 힘으로 밀치고 나갈 줄 알았는데, 의외네.
라고 생각한 순간 손님의 어깨가 보였다. 정확하게는 어깨를 짚어 누르고 있는 레멤베르의 손이.
“…….”
“집사님도 계셨군요. 그냥 보내 주십시오. 요즘 저런 사람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그보다 백작님, 옷차림을 보니 이곳이 목적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사냥대회에 참여하려고.”
“사냥대회라면….”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단의 얼굴이 답을 내린 듯 밝아졌다.
“사냥대회에 보조도 데려갈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건 그렇지만….”
아무도 데려가지 않을 생각이다. 내겐 마계의 식물이 들어 있는 가방이 있거든.
내가 눈을 뗀 사이 사고가 터지지 않도록 대회 내내 몸에 달고 다닐 생각인데, 근처에 사람이 있어서야 되겠어?
“저를 보조로 데려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내게 부탁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