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01
101. 사냥대회(2)
데온 하르트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의아할 정도로 데온 하르트를 경계하는 공작은 그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데온 하르트의 행보를 일일이 보고받고 있었다.
사냥대회가 열리기 약 3시간 30분 전에 먼저 출발했으며, 중간에 덴 상단에 들러 한 사내를 데리고 다시 목적지로 향했다는 소식까지 전부.
‘그런데 왜…… 명령이 없는 거지?’
크루엘의 신경이 곤두섰다.
이쯤 되면 보통 명령이 내려졌어야 했다. 혁명군이든 암살자든 사람을 보내라는 명령이.
그럼에도 지나칠 정도로 조용해 되레 신경을 곤두세우고 공작의 표정 하나하나를 살피던 그가 결국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천천히 입을 뗐다.
“사람을…… 보내지 않으시는 겁니까.”
들고 있던 서신에서 눈을 뗀 공작이 물끄러미 크루엘을 쳐다봤다. 짧은 틈을 두고, 무표정하던 얼굴에 그린 듯한 미소가 퍼져 나갔다.
“네, 굳이 지금 사람을 보내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몇 시간만 더 있으면 훨씬 죽이기 쉽고, 죽음을 조작하기도 쉬운 상황이 오는데, 굳이 고생을 사서 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냥대회.
크루엘의 눈이 가라앉았다.
“차라리 그때까지 좀 더 준비를 시켜 보내는 편이 낫겠지요.”
“…….”
“그런 의미에서 다녀와 줬으면 하는 곳이 있습니다.”
드디어 공작이 움직였음에도 곤두선 신경은 쉽게 누그러들지 않는다. 크루엘은 늘 그랬듯 눈을 내리깔고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
결국 같이 가기로 했다.
나는 마차 맞은편, 레멤베르의 옆에 앉은 단을 떨떠름한 눈으로 쳐다봤다. 예의 그 검은 눈이 빛을 내며 나를 마주 본다.
‘……부담스러워…….’
역시 거절했어야 했나. 하지만 레멤베르마저 단을 데려가길 종용하고 있었단 말이지. 그렇지 않아도 도착하자마자 보조에 관해 말씀드리려 했댔나 뭐래나.
물론 나 역시 순순히 넘어가지 않고 슬쩍 거절 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단은 검술이….] [한 손 보탤 수 있는 수준까지는 배웠습니다!] [그렇답니다, 백작님. 이참에 어느 수준까지 올랐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어떠신지요.] […….]젠장.
반사적으로 가방을 안은 손에 힘을 줬다. 그게 답답했는지 안에서 ‘긔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보던 단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응…?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까?”
“나, 난 모르겠는데.”
“긔에에….”
쾅!
잽싸게 창문을 열었다. 깜짝 놀란 시선이 나를 향했다.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모양이야.”
“아……. 그런 겁니까.”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단이 수긍했다.
다, 다행이다…… 아니, 아직은 안심하기엔 이른가? 소리의 근원을 찾아 밖을 기웃거리고 있잖아!
이러다 한 번이라도 더 이 괴식물이 소리를 내는 일이 생기면 빼도박도 못하고 곧장 발각될 것이다. 서둘러 그를 불렀다.
“그으… 그보다 상단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커질 수 있었던 거지? 도대체 뭘 했길래.”
“아, 약초나 전쟁 물자를 중심으로 각종 물품을 유통했습니다.”
“전쟁 물자는 제국에서 허락하지 않는 한 유통할 수 없을 텐데…….”
“하르트 명예 백작님을 모시고 있다 했더니 행정 측에서 알아서 처리해 주더군요.”
내 이름을 팔았던 거냐.
얘도 얘지만 일을 처리한 행정 측도 문제다.
“거짓말을 하는 거였으면 어쩌려고 그렇게 덥석….”
“아! 당연히 바로 처리해 준 것은 아닙니다. 진위 여부를 조사할 시간이 필요했는지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마차가 멈췄다. 흐뭇한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던 레멤베르가 창밖을 확인하더니 문을 열고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레멤베르가 먼저 내리고 단이 그 뒤를 따라 내렸다. 가장 마지막으로 일어나 단이 내민 손을 잡고 내린 나는 기이하리만치 조용한 주변에 고개를 들었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
뭐야, 왜 그래.
의아한 것도 잠시, 눈으로 그들의 시선을 좇은 나는 속으로 짧은 탄식을 뱉었다.
‘……아.’
망했다.
여긴 마계가 아니었지.
슬그머니 단의 손을 놓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자세를 바로 했다.
“…….”
“…….”
침묵이 흐른다. 덩달아 내 등 뒤에도 식은땀이 흘렀다.
이건…… 날 위한 함정이었나. 일종의 유도 심문?
마계에서는 내밀어진 손을 잡기만 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척척 다 해 주다 보니 습관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맞잡지 않을 경우 더 귀찮은 일이 벌어져서 거부할 수도 없었고.
단 얘는 왜 손을 내민 거야. 이게 모욕이라는 걸 모르나? 레멤베르는 이 상황을 수습하지 않고 뭐 하는….
‘……아니, 레멤베르. 그 낭패한 표정은 뭡니까. 설마 다 가르쳐 놓고 그걸 빼먹은 거야?’
당장이라도 그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으나 상황이 상황이라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다잡았다.
“단.”
“네, 백작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간 얼굴.
그래, 일부러 그랬을 리가 없지. 고의도 아닌 일로 뭐라 할 수도 없어 최대한 부드러운 말을 찾았다.
방금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돌려서 설명할 그런 말을.
“……내가 그렇게 몸이 안 좋아 보였나?”
마차에서 내릴 때 잡아 주는 대상은 보통 어린아이와 거추장스러운 치마를 입은 여인들이다.
치마를 입지도 않았고 신체 어디가 불편하지도 않은 다 큰 성인을 잡아 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모욕.
‘넌 네 몸 하나 가누지 못할 정도로 허약해 보이는구나.’ 정도의 뜻이다.
‘허약한 것은 맞긴 한데…….’
보통은 내게 대놓고 이러진 못하지. 어쨌거나 나는 제국의 ‘영웅’이니까.
“……네?”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단이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운다.
좀 더 직설적으로 설명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잠시, 주변의 시선이 아직도 쏠려 있음을 느낀 나는 그를 감싸는 쪽을 택했다.
“눈치가 빠르네. 그렇지 않아도 피곤해서 그런지 오늘 몸 상태가 조금 안 좋았는데.”
잘못을 짚어 주는 것은 나중에 레멤베르가 해도 된다.
지금 우선으로 해야 할 것은 그의 손을 잡고 내린 내가 우스워지지 않도록 그를 감싸는 것.
상황이 정리되었음을 느낀 듯 저택에 돌아갈 채비를 하는 레멤베르를 향해 나중에 잘 가르치라는 눈짓을 보내고 고개를 들었다.
아닌 척 힐끔힐끔 와 닿던 시선들이 와르르 흩어졌다.
***
황태자의 명에 따라 이곳 사냥터에서 대기하고 있던 살인귀 기사단의 단장, 리엔 라이너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단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 아마 고의는 아니었겠지.
그가 남부인의 외모를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산골짜기 동떨어진 마을 출신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쪽에 관해 몰라서 실수했다는 추측에 힘이 실린다.
교육을 받을 때도 평민이 누군가를 에스코트할 일은 없을 테니 이쪽에 관해선 겉핥기식으로 가르치고 배웠으리라.
어린아이, 치마를 입은 사람, 몸이 안 좋은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뭐, 딱 그 정도?
‘아마 주군이 저주 탓에 몸이 약해졌다는 것을 알고 손을 내민 것 같은데…….’
배려는 좋았지만 상대는 ‘영웅’이다.
일반 남성이었어도 사람에 따라 모욕으로 여기고 불쾌하게 받아들일 판에, 영웅에게 손을 내밀다니.
이는 데온 하르트 당사자에 대한 모욕에 더해 그가 가진 ‘영웅’이라는 명예에 흠집을 내는 행위다.
‘보통 무지는 죄가 아니라 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지.’
그녀가 판단했을 때, 이건 죄다.
주군의 얼굴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남도 아닌 직접 데리고 온 아랫사람에게 모욕을 받은 것 아닌가.
그러나 데온이 순순히 단의 손을 잡고 내린 순간, 리엔은 감탄했다. 정확하게는 그 후 이어진 그의 말에.
“눈치가 빠르네. 그렇지 않아도 피곤해서 그런지 오늘 몸 상태가 조금 안 좋았는데.”
단이 무안하지 않게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잡고 내리며 몸이 좋지 않다고 직접 언급함으로써 상황을 무마했다.
알게 모르게 굳어 있던 분위기가 풀어진다.
그냥 내밀어진 손을 쳐 내고 화를 내도 모두가 납득할 상황에서 이리 유하게 대처하시다니.
나직이 감탄하는 황실 기사단을 향해 리엔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저분이 바로 우리 주군이시다.’
그럼 이제 주인이 왔으니 맞이해야지.
고개를 돌려 천방지축 들개들을 확인했다. 얌전히 있으라는 말은 어디로 들은 건지, 놈들은 짓궂은 얼굴로 근처에 서 있는 황실 기사단원들에 슬금슬금 다가가고 있었다.
리엔의 목에 핏대가 섰다.
“당장 이리 안 와?!”
그리고, 리엔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조용히 데온을 바라보는 단이 있었다.
***
‘니들이 왜 여기에 있냐……?’
처음 살인귀 기사단을 마주하자마자 목구멍까지 치민 말이었다.
어쩐지, 황궁에 갈 때면 항상 최소한의 준비를 시켜 보내던 레멤베르의 성향과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출발이다 싶었다.
마부나 중간에 단이 합류한 것은 그렇다 치고 호위도 몇 없는 조촐한 출발이라니. 그럴 리가 없지.
‘죄다 여기 와 있어서 그랬던 거였어.’
살인귀 기사단이 보인다. 또 무슨 사고를 쳤는지 그들을 혼내고 있는 리엔도.
목에 핏대를 세우고 화내던 리엔이 뒤늦게 상황을 자각한 듯 고개를 든다. 어렵지 않게 나를 발견한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주군, 오셨습니까.”
“네. 오랜만입니다, 리엔 경.”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셨을 텐데 몸은 괜찮으신지요. 아, 짐은 이리 주십시오.”
“이 가방이라면 괜찮습니다. 제가 들겠습니다. 몸도 괜… 조금 피곤하지만 크게 나쁘진 않고요.”
몸 상태는 여느 때와 같지만, 오늘만큼은 피곤한 것으로 하자.
“그런데…….”
말끝을 흐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역시, 뭔가 이상하다.
왜 우리밖에 없는 것 같지? 오늘 사냥대회 아닌가? 황실 기사단이 있는 걸 보면 착각은 아닌 것 같고…… 설마 이미 끝난 건가?
“다른 사람들은 없는 겁니까?”
“예? 모르셨습니까?”
“네?”
뭐지. 나 이 상황 겪어 본 적 있는 것 같아.
언제였더라… 아 그래, 지난번 마계에서 갓 돌아왔을 때, 아무것도 모른 채 연회가 열리는 황궁으로 향했던 때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나만 모르는…….’
내 표정이 미묘해지던 찰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부러 일찍 불렀네. 초대장에 적혀 있었을 텐데 몰랐던 건가?”
“화, 황태자 전하.”
“오랜만이군 백작.”
황태자가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나는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제국에 영광을. 신 데온 하르트가 미래의 제국을 뵙습니다.”
그보다 초대장에 적혀 있었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읽어는 볼 걸 그랬다.
황제가 말한 걸로 충분할 줄 알았는데. 초대장이나 시간 같은 것은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레멤베르가 알아서 챙길 테니 굳이 귀찮게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 며칠 서류 작업으로 활자에 신물이 난 탓에 또 활자를 읽고 싶지 않았단 말이지.
“그래. 물어볼 것이 있어 일찍 불렀다만, 불쾌했다면 사과하지. 미안하네.”
“아, 아닙니다. 조금 당황했을 뿐이니 사과하실 것 없습니다. 그보다 물어볼 것이라니, 어떤……?”
황태자가 기다렸다는 듯 표정을 정돈했다.
금안이 힐긋 살인귀 기사단을 향하더니 다시 나를 담는다. 무언가 가늠하듯 눈초리가 가늘어지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조금 있으면 열릴 사냥대회에서 무엇을 주로 사냥하는지 아나?”
“마, 몬스터라고 들었습니다.”
마물이라고 말할 뻔했네.
“맞아. 하지만 그냥 사냥대회를 벌였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않나. 그래서 안전을 위해 일차적으로 몬스터를 쓸어 버리고 남은 잔당으로 사냥대회를 진행하려 하는데…….”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칭찬은 고맙게 받지. 아무튼 내가 물어볼 것은 이거네. 여기에 황실 기사단과 살인귀 기사단을 투입하려 하는데, 괜찮겠나?”
“……살인귀 기사단… 말씀이십니까?”
감당이 안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