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1
11. 영웅, 회의, 그리고…(2)
그냥 제국에서 버린 패 암살자로서 훈련받은 녀석들 중 하나인 줄 알았는데, 무려 영웅 후보라니.
솔직히 충격이었다.
‘그래, 충격이었는데….’
이 정도까지 정신이 팔렸을 줄이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어느새 방에 도착해 있었다.
넋을 놓은 상태여서 그런지 기억에 안개가 낀 듯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이 얼마 없다. 그나마 가장 선명한 기억이 뭐였더라.
그 녀석이 죽으리라는 확신?
‘…….’
그냥 그쪽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게 좋겠다. 그 녀석이 죽든 말든, 내가 녀석을 동정하든 말든,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에드가 가져다준 큐브를 들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큐브를 마구 섞으며 하나둘 잡생각을 지워나가던 도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야.”
“……마왕님?!”
벌떡 몸을 일으켰다. 황급히 복장을 점검하고, 흐트러진 머리를 대충 매만진 뒤 문을 열었다.
“마왕님께서 여긴 또 왜…?”
“말했잖아. 데리러 오겠다고.”
“네?”
언제?
의문 가득한 내 표정을 읽은 건지 마왕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다. 그는 팔짱을 끼고 문에 기대서더니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살폈다.
“군단장 회의. 이래도 기억 안 나?”
기억은 안 나지만 어쩐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기억납니다.”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였다.
일말의 의심도 없이 넘어간 마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바로 세웠다.
“그럼 가자.”
“예.”
더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될 것 같아 황급히 그 뒤를 쫓았다.
그 탓에 나는 큐브를 내려놓을 타이밍은커녕, 손에 쥐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방을 나와버렸다.
***
용사와의 전투 당시, 7군단장은 오우거였다.
굳이 마왕군의 핵심 전력 중 하나라는 이유를 제치더라도 확실히 기억한다. 그는 데온 하르트의 훌륭한 들러리가 되어주었으니까.
다시 말해, 데온 하르트가 처음 등장할 때, 7군단장을 죽이며 등장했다는 뜻이다.
마왕은 그날을 회상하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용사와의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그냥 둬도 곧 끊어질 용사의 목숨을 직접 거두기 위해 검을 들었을 때,
──용사는 자폭을 택했다.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용사의 몸을 보며 어찌나 당황했던지.
“……이번 용사는 꽤 호전적인 모양이야.”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용사는 죽을 때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하나는 힘의 파편을 대륙에 뿌려 조금이나마 마왕에게 대항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로 마왕이 근처에 있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일명 자폭이다.
용사의 힘을 모아 터트리는 것.
보통 용사들은 후일을 위해 힘의 파편을 뿌리는 것을 택하는데.
‘어차피 난 죽지 않겠지만.’
괜히 역사상 최강의 마왕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조금 아깝긴 하지만 마력을 아낌없이 사용한다면 저 폭발의 여파에서 큰 피해 없이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주위에 포진된 다른 마족들이다.
종족의 명운을 건 전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역사적인 전투를 보기 위해 나온 마왕성의 모든 마족들.
용사의 힘은 마왕을 제거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고, 마족은 마왕으로부터 탄생한 종족이다.
결국 용사의 힘은 간접적으로나마 마족에게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분명 여기서 용사의 힘이 터져나간다면….
‘어림잡아 절반.’
이 많은 군단의 절반 정도가 순식간에 증발하리라.
마왕성의 규모가 제국의 소도시급이라는 것과, 그곳의 모든 마족들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피해 수준이다.
“모두 물러…!”
때문에 서둘러 명령을 내리는 순간.
콰아앙!!
……하늘에서 한 인간이 떨어졌다.
그것도 7군단장과 함께.
7군단장을 깔아뭉개며 등장한 그는 마왕에겐 시선 하나 던지지 않았다.
그저 제 밑에 깔려 있는 7군단장이 죽었는지 재차 확인하려는 듯 단검으로 그의 목을 찌르고는, 그걸 지지대 삼아 천천히 일어났다. 어이없을 정도로 느긋한 태도였다.
하얀 머리칼에 붉은 눈동자.
핏빛 눈동자가 마왕과 용사를 오가더니, 이내 용사에게 고정된다. 그리고는 이쪽을 향해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수많은 마족들이 둥그렇게 에워싼 그 전장 가운데를,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너무도 무방비한 태도였다.
그러나 당당한 태도 탓일까, 흔들림 없는 표정에서 무시할 수 없는 기백이 느껴져 병사들은 그를 제지하기는커녕 바짝 얼어붙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심한 놈들.’
그럼에도 차마 대놓고 한심하다 욕할 수 없어 마왕은 가만히 미간을 좁혔다.
한순간이지만 그 역시 압도당했으니까.
애초에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에 그는 금세 용사의 앞까지 도착했다.
마왕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용사의 어깨에 손을 얹은 그가 녀석의 어깨 위,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댄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용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무리가 저 인간을 향해 쏟아져 내린 것이다.
“……미쳤군.”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용사와 마왕, 그리고 용사를 보내는 제국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 상황에 대한 추측은 빠르게 이어졌다.
저 흰 머리칼의 인간은 아마 이 싸움의 결말을 직접 보고 제국에 알리기 위해 따라왔을 것이다. 아마 그것이 주 임무.
그리고 부수적인 임무로는 용사가 죽더라도 마왕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본인이 죽일 수 있으리라 판단되면 죽이고 오는 것이 되겠지.
그래서 용사가 자폭을 택했을 때, 확률을 계산했을 것이다.
[용사의 자폭으로 마왕에게 피해를 입힐 확률과, 이것으로 마왕이 입을 피해의 규모.] [자폭으로 줄일 수 있는 주위 마족들의 수.] [그 줄어든 마족들을 뚫고 부상당한 마왕을 죽일 확률.] [최종적으로 이를 수행하며 주 임무인 ‘생환’을 달성할 가능성.]자폭은 비합리적이라는 판단이 나왔으리라.
그래서 용사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렸을 것이다. 적진 한복판에 뛰어내렸다는 것은 조금 의외이긴 하지만, 살아 도망치는 것에 자신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똑똑하고 임무에 대한 충성심도 높고, 전투 능력도….’
유쾌함을 가득 담고 눈꼬리가 휘어졌다.
이런 녀석을 이 위험한 곳까지 내돌린 제국에 유감을 표한다. 나였다면 쓸 땐 쓰더라도 이렇게 존중 없이 죽을 자리에까지 보내진 않았을 텐데.
어쨌건 용사는 그의 뜻을 읽었고, 급히 방향을 틀어 양도의 목적으로 그에게 쏟아부었다. 물론 힘이 용사의 의도대로 상대의 몸 안에 머문다든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하지.’
용사의 힘은 세계가 목적을 가지고 직접 부여한 것. 본래 용사가 죽으면 산산이 흩어져 다시 세계에 귀속되어야 할 힘이다.
그것을 파편으로나마 이 땅에 남기는 것만으로도 용사 본인의 목숨을 대가로 해야 하는데 의도적인 양도가 가능할 리가.
용사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 금방의 행동으로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어야 했겠지.
그럼에도 의미 없는 몸부림을 치다가 죽어 축 늘어진 용사를 본 마왕은 시선을 조금 올려 그의 시신을 받쳐 안고 있는 사내를 쳐다봤다.
세계의 뜻을 어긴 말도 안 되는 시도의 직접적인 관계자다. 그 역시 멀쩡할 리 없을 터.
아니나 다를까,
“쿨럭.”
약점 하나 내비치지 않는 의연한 표정으로, 그가 피 섞인 기침을 토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피가 입 밖으로 흘러내리는데도 표정은 여전하다. 그 기이한 위화감에 마왕의 눈에 희열이 스쳤다.
들뜨는 기분을 꾸역꾸역 억누른 마왕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이름이?”
“……데온 하르트.”
데온 하르트. 그 이름을 입안에서 연거푸 굴렸다.
사실 곱씹을 필요도 없었다. 마왕은 그를 이미 알고 있었으니.
겉으로 드러난 상황만 보면 그는 용사의 자폭을 제지했고, 그 대가로 각혈을 했다.
이 정도면 다른 마족들도 인정할 터.
상황까지 그의 편인데 더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다. 마왕은 거칠 것 없이 그의 욕망을 드러냈다.
“마왕군이 될 생각은 없나?”
상대가 인간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마왕은 이 똑똑하고 충성스러운 존재가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눈앞의 인간은 권태에 찌들어 있던 자신에게서 흥미를 끌어냈다.
마왕성에 끌어들일 이유는 충분했다.
***
“야, 비켜봐. 안 보이잖아!”
“그래서 저 인간은 적이야, 아군이야?”
“용사의 자폭을 제지했잖아! 적어도 적은 아니겠지.”
“하지만 7군단장님을 죽였는데?”
“어어? 마왕님께서 이름을 물으신다!”
“시끄러워! 하나도 안 들리잖아!!”
“네놈이 더 시끄럽다!”
“그래서, 이름이 뭐라고?”
거리도 거리이거니와, 주위가 시끄러운 데다 저 인간의 목소리도 작았기에, 마족 병사는 귀를 기울이는 대신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입 모양에 집중했다.
“데…몬, 아…루, 트?”
“데몬 아루트?”
“그런 것 같은데?”
“데몬 아루트라…….”
마족보다 더 마족 같은 이름이네.
그렇게 데온 하르트의 이름은, 데몬 아루트라는 이름으로 변형되어 마족 군영에 퍼져나갔다.
***
용사의 자폭을 제지하여 큰 피해를 막은 인간의 업적은 다른 군단장들조차 인정할 정도로 큰 공로다.
심지어 용사와의 전투 이후 승리연을 겸한 새 인재의 환영회에서 ‘데몬 아루트’가 술을 거하게 마시고 마왕성을 한바탕 뒤집어놓은 이후로는 실력에 대한 뒷말 역시 나오지 않았다. 그 사건의 희생자가 또 다른 군단장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갑자기 들어와 대뜸 0군단장의 자리를 차지한 인간에 대하여 마왕성의 모든 마족들은 어지간해서는 나쁜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어지간해서는’이다.
“늦는군.”
6군단장 벨리탄이 회의실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그의 미간은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드러내듯 잔뜩 좁아져 있었다.
그때 당시 그가 세운 공훈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그의 강한 무위도 인정한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0군단장 데몬 아루트.
그는 회의가 있을 때마다 매번 늦었다.
지금도 그렇다. 일 때문에 나가 있는 군단장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회의실에 모여 있는데, 또 그 인간만 불참하다니.
결국 벨리탄은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이건 정말 한마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시끄럽다.”
“제이카르! 언제까지 그 오만방자한 행동을 봐줄 생각이냐! 그는….”
“벨리탄.”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 있던 제이카르가 느릿하게 눈을 뜨고 벨리탄을 쳐다본다.
저를 직시하는 차가운 시선에 그가 움찔 말을 멈추자, 기다렸다는 듯 4군단장 이델리아가 툭 끼어들었다.
“오만방자한 건 너 같은데, 벨리탄. 지금 감히 누구를 향해 그따위 무례한 언사를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는 해?”
“……뭐?”
“한낱 사용인을 향해서도 말을 높이시는 분한테 오만하다니, 정말 재미없는 농담이었어.”
“존댓말을 쓴다고 해서 오만하지 않은 건 아니잖은가! 그렇다면 회의에 늦는 것은 뭐라 설명할 생각이지?”
“뭔가 사정이 있으시겠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발언이었다.
심지어 그녀와 사이가 안 좋은 아실드까지 고개를 끄덕이니 순간이지만 ‘정말 그런가?’ 싶을 정도였다.
재빨리 고개를 흔들어 제정신을 찾은 벨리탄이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렸다.
“그걸…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 거냐?”
그에 막 이델리아가 대답하려 할 때, 테이블 한쪽에서 쾅! 하고 충돌음이 들렸다.
심상치 않은 소리에 모든 군단장들의 고개가 일제히 한 곳으로 돌아갔다.
상대를 파악하기가 무섭게 몇몇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고, 몇몇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부는 얼굴에 당혹스러운 빛을 띠기도 했다.
벨리탄은 그중 세 번째 부류에 속했다.
테이블 끄트머리 자리. 그곳엔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은 채 벌떡 일어서 있었다.
“모독은 그쯤 하시죠, 벨리탄! 불경이에요!”
“……리리넬?”
“불경이에요!”
“리….”
“불경!”
11군단장 리리넬.
평소 얌전하고 순둥하기만 한 그녀는 단 한 가지 일만 엮이면 미친 듯이 폭주하는데, 벨리탄에게는 불행하게도 그게 바로 데몬 아루트에 관한 일이었다.
그래, 그녀는 데몬 아루트의 광팬이다.
마왕성에 머무는 이들이라면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마물 사냥 때문에 마왕성을 비우는 경우가 잦았던 벨리탄이 그 사실을 알 리가 만무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을 향해 마구 삿대질을 해대는 꼬마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사과하세요! 못생긴 게!”
“헉.”
“리, 리리넬…?”
보기엔 연약하고 앙증맞아 보이지만, 이래 보여도 군단장이다.
벨리탄은 큼직한 도끼를 휘둘러대는 전형적인 무장이고, 리리넬은 군단장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마력량을 지닌 마족으로 뛰어난 마녀다.
둘이 싸움이라도 벌이는 날엔 이 회의장이 날아가 버릴 것은 안 봐도 뻔한 수순.
그렇지 않아도 곧 있으면 마왕님이나 0군단장이 들어올 텐데, 회의장을 날려버린다?
그날로 마왕성이 뒤집히리라.
어쩌면 대규모 군단장 교체가 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다른 군단장들이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못하는 순간, 회의장 문밖에서 시종이 마왕의 등장을 고했다.
“마왕님과 0군단장님께서 드십니다.”
……0군단장의 소식까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