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2
12. 영웅, 회의, 그리고…(3)
혼란은 잠시였다. 빠르게 가슴을 다독인 군단장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이내 문이 열리고, 마왕과 0군단장 데몬이 들어섰다.
이델리아는 슬쩍 벨리탄의 표정을 살폈다.
역시나 썩어 있는 표정. 솔직히 고소했다. 그러게 누가 감히 데몬을 건들랬나. 그는 마왕성에서 마왕 다음으로 존경받는 존재인데.
가장 상석, 호화로운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다리를 꼰 마왕이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다들 앉아.”
또다시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일었다.
마왕은 자리에 착석한 이들을 쭉 둘러보고는 가장 가까이에 앉은 데온을 보며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알고 있겠지만 침입자가 있었다. 여기에 있는 0군단장이 훌륭하게 잡아냈지.”
모든 이들의 시선이 데온을 향했다.
여기 있는 이들 전부가 한 가닥 하는 만큼 시선이 부담스러울 만도 했으나, 그는 그저 눈을 내리깐 채 큐브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큐브?
군단장들 사이에 눈빛이 바쁘게 오가기 시작했다.
‘야, 저거….’
‘그래, 아무래도 이번 일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야.’
‘대신 그만큼 확실한 결과가 나올 테지만….’
‘자칫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겠어.’
전쟁 중에 회의가 있을 때 그는 언제나 큐브를 돌리며 자리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의견을 들었다.
의견이 마음에 들 경우 큐브는 부드럽게 돌아가 맞춰졌으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는 짤깍거리는 소리가 막사를 가득 채울 정도로 거칠게 돌아갔다.
거칠게 돌아가든 부드럽게 돌아가든, 최선의 결론은 언제나 큐브의 완성과 함께 나왔다. 문제는 거칠게 돌아갈 경우 꼭 무슨 일이 터져도 단단히 터졌다는 것이지만.
미묘한 긴장감이 맴도는 가운데, 마왕의 말이 이어졌다.
“조사 결과, 단순한 침입자가 아니었다. 물론 마왕성, 그것도 내성까지 들어왔을 정도이니 단순할 리가 없겠지만, 이번 같은 경우에는 그중에서도 유독 특별하다.”
약간의 적의가 서린 눈빛이 자리에 앉은 이들을 훑는다.
그의 눈은 군단장들을 보고 있음에도 그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들 너머로 누군가를 보고 있는 듯, 마왕은 희미한 살기까지 담아 말했다.
“용사의 찌꺼기였으니까.”
“……영웅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리 많지도 않아 제국이 눈에 불을 켜고 모으던 이들 중 하나를, 이곳에 희생양으로 보냈다.”
쿵!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군단장들은 굳이 소음의 원인을 찾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누구의 짓일지는 안 봐도 뻔했으니까.
꽉 쥔 주먹을 그대로 손잡이 위에 얹어둔 채, 마왕이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묵직한 압박이 회의장 전체에 쏟아졌다.
“뭐가 목적일까?”
“…….”
“제국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아. 심지어 최근, 전방에 나가 있던 9군단장과도 연락이 끊겼다. 필시 무슨 문제가 있을 테지.”
마왕은 강하다.
굳이 머리를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했기에, 그의 선택은 언제나 단순하면서도 하나하나가 묵직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1군단장.”
“예.”
“네가 가라.”
그는 전면전을 치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이카르는 마왕의 대행자다. 그가 직접 나선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를 멍청이는 이 자리에 없었다.
잠시 멈칫한 제이카르가 고개를 숙인 채 눈동자만 살짝 올려 마왕을 쳐다본다.
그것도 잠시, 그는 이렇다 할 반문도 없이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담담히 답했다.
“예.”
회의실 전체에 미미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당장 전쟁이 터지는 것도 아니건만,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긴장감에 마왕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손뼉을 마주쳤다.
침묵이 깨지고, 한결 가벼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자, 그럼 이건 대충 이야기가 끝난 것 같고, 다음 문제를 논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어.”
“……?”
“용사의 찌꺼기를 무려 혼자서 잡아낸 0군단장에게 어떤 포상을 주어야 할까?”
쉴 새 없이 큐브를 돌리던 손이 멈췄다.
회의 내내 단 한 순간도 책상 위로 올라가지 않던 붉은 눈동자가 천천히 올라가 그를 마주한다.
저를 향한 붉은 눈을 마주 보며, 마왕은 싱긋 웃었다.
“당사자가 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나는 군단장 회의가 싫다. 끔찍하게도 싫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다.
무서우니까!
군단장 전용 식당은 그나마 식사를 하지 않는 이들도 있어 견딜 만한데, 회의장은 어지간해서는 전부 참여하는 자리다. 그러니 얼마나 무섭겠는가.
‘가기 싫다….’
매번 회의에 늦은 것도 가기 싫다며 미적대다 늦은 것이다. 아마 데리러 온 마왕이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늦었겠지.
아, 이미 늦었나?
나는 잔뜩 땀이 난 손을 옷자락에 문지…르려다가 멈칫했다. 이건 뭐야?
‘큐브?’
큐브라니. 물론 내가 회의를 할 때 큐브를 챙기고 다니긴 하지만, 그건 ‘내가 중심인 회의’일 때 한해서였다.
어차피 날 빼도 잘만 돌아가는 회의, 괜히 눈 마주쳤다가 누가 의견을 묻기라도 하면 곤란하니 시선도 피하고 시간도 때울 겸, 큐브나 만지작거리는 건데….
지금 내가 참석하러 가는 회의는 마왕이 중심인 회의란 말이다!
마왕은 왜 이걸 지적 안 한 거야?
지금이라도 다시 가서 제자리에 두고 오고 싶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마왕님과 0군단장님께서 드십니다.”
제법 크고 근엄한 목소리와 함께 회의장 문이 열렸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쭈뼛쭈뼛 회의장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회의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큐브에 대한 내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들고 와서 다행이다.’
안 들고 왔으면 뻘쭘할 뻔했어.
분위기도 무섭고, 누구도 날 쳐다보지 않으니 그야말로 큐브 돌리기에 최적인 환경이다.
그렇게 새 큐브를 섞었다가 반쯤 맞추고, 다시 섞길 반복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왕이 뜬금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자, 그럼 이건 대충 이야기가 끝난 것 같고, 다음 문제를 논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어.”
그때까지만 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용사의 찌꺼기를 무려 혼자서 잡아낸 0군단장에게 어떤 포상을 주어야 할까?”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잘못 들은 것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도 명백히 마왕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못을 박듯 덧붙였다.
“당사자가 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내가 쉬이 입을 열지 않자 덩달아 입을 다문 군단장들이 나와 마왕의 눈치를 살핀다. 마왕은 빨리 말하라는 듯 턱까지 괴며 날 쳐다봤다.
침묵 속에서 나는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니까… 원하는 것을 말하라 이거지?’
원하는 것이라면 얼마 되지 않는다. 마왕의 입장에서 봐도 손쉽게 들어 줄 수 있을 만한 것들 밖에 없….
“사직….”
“안 돼.”
“그럼 술….”
“진심이야?”
“…….”
“…….”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단호하게 끊어내면서 표정 하나는 한결같다.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걸친 채 마왕이 다음 말을 기다린다.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날 쫓아다니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빨리 아무거나 말하고 끝내려 했지만….
그거 외에는 딱히 바라는 게 없는데요…?
“……지금은 없으니 다음으로 미뤄도 되겠습니까?”
“무슨 요구를 하려고. 벌써부터 무서운데?”
픽 웃은 그가 턱을 괴고 있던 손을 치우며 상체를 바로 세웠다.
군단장들을 쭉 훑은 눈이 스륵 굴러가 벨리탄을 담는다.
본능적으로 그가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리라는 것을 눈치챈 군단장들이 몸을 뻣뻣이 세우고, 다시 팽팽해지는 공기에 난 차마 시선을 내리지도 올리지도 못한 채 책상 아래에서 감각에 의존해 열심히 큐브만 돌렸다.
무슨 안건이든 나와는 상관없을 테니까.
“6군단장, 마물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
“예, 지원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흐음….”
보고서를 뒤적인 마왕이 서류 한 장을 빼 들었다. 초반에는 무덤덤하던 표정이 서류를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일그러진다.
마침내, 마지막 줄까지 읽은 그가 나직한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확실히 사안이 심각하군. 너와 12군단장만으로는 부족한가?”
“12군단은 현재 마물 사냥을 나설 여력이 없습니다.”
순간 마왕의 행동이 멈췄다. 서류를 향해 있던 눈동자가 수직으로 올라가 벨리탄을 향한다.
흔들림 없는, 아니 얼어 있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릴 정도로 미동도 없는 역안을 보며 난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놀랐겠지. 놀라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나도 놀랐거든.
저 말의 뜻이 무엇이겠는가. 마물 사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군단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뜻이 아닌가. 그 원인은 분명 마물일 테고.
“그럼 12군단장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듣기로는 부상 때문에 요양 중이라 하더군.”
“고작 마물 따위에?”
“말조심해라. 한낱 미물도 뭉치면 위협적인 적이 되기 마련이다.”
군단장들 사이에서 작은 목소리가 바삐 오간다.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12군단이 고작 마물 따위에 당했다니.
‘고작’ 마물이다. 제국에서는 이른바 ‘몬스터’라 불리는 실패작들.
마왕의 힘은 마왕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수많은 마족들을 탄생시킨다. 마왕이 위협적인 것은 이 때문이며, 그것은 제국이─ 더 나아가 모든 인간들이 기를 쓰고 그를 제거하려 하는 것의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이 그리 녹록지는 않은 법.
태어난 마족들 중 이성을 가진, 진정한 ‘마족’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는 고작 40%에 불과했다. 나머지 60%는 자신의 욕구에만 충실한, ‘마족’이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미물뿐.
제어는커녕 마족마저 먹으려 드는 완연한 실패작이기에, 마왕은 그것들을 ‘마물(魔物)’이라 칭하며 마족들의 안전을 위해 정기적으로 청소를 하곤 했다.
‘아주 그냥 술술 떠오르네.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나?’
햇빛을 보지 않은 지 얼마나 되었더라.
새삼 밀려오는 서러움에 괜히 애꿎은 책상을 노려봤다.
그 사이, 잠시 멈췄던 마왕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조금은 동요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괜히 마왕이 아닌지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평소보다 더 침착하고 차분했다.
“서류로는 한계가 있다. 직접 설명해 봐.”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마물들의 수가 크게 불어났습니다. 뒤늦게 알고 대처하려 했을 때는 이미 작은 마을들의 반이 짓밟힌 뒤였습니다.”
“‘반’이라… 그렇다면 남은 반은 어쨌지?”
“성벽이 있는 큰 도시로 피난을 시켰습니다.”
벨리탄 무식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판단력이 좋네…?
미안하다, 내가 널 너무 무시한 모양이야. 속으로 영영 닿지 않을 사과를 하며 조용히 그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문제는 마물들의 수가 너무 많아 성벽을 넘으려고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매일이 흡사 전쟁을 치르는 것 같은 모양새입니다.”
“……앞으로는 큰 도시에도 군단장을 배치해야겠군.”
“어째서 갑자기 그렇게 수가 는 건지….”
마왕의 혼잣말에 이은 뒷말은 한탄에 가까웠다.
그에 마왕이 반쯤 손깍지를 끼고 그 위에 턱을 얹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용사가 죽어서 그래. 균형이 깨졌으니까.”
그리 말하며 마왕은 나를 한 번 쳐다봤다.
아니, 왜 날 쳐다봐? 내 잘못 아닌데? 애초에 용사를 죽음까지 몰고 간 사람은 댁이잖아?
그럼에도 그의 역안을 똑바로 마주할 자신이 없어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자, 언제 눈을 돌린 건지 마왕이 정체 모를 서류를 뒤적이며 흘리듯 말했다.
“큰 도시는 네 개이니… 게다가 12군단이 전투 불능이라면 확실히 방비하기 힘들겠군.”
“예, 지원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어디… 남는 인력이….”
불길한 느낌이 등골을 훑고 내려간다. 떨리는 동공을 감추기 위해 서둘러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책상 아래에서는 큐브가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었다.
나도 내 손이 이렇게까지 신들린 듯 움직일 수 있을 줄은 처음 알았다.
짤깍짤깍짤깍-.
왜 이렇게 불안해하냐고?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잉여 인력 하면 누가 떠오르지? 바로 나다. 모든 군단장들이 도맡아 하고 있는 서류 작업조차 하지 않는 잉여 중의 잉여! 하는 짓이라고는 정원을 불태우고 식판을 엎어버리는 것밖에 없는….
“데몬, 네가 가는 게 좋겠다.”
……짤깍.
손이 멈췄다. 내 숨도 멈췄다.
‘허억, 안 되지! 숨은 쉬어야지!’
얼핏 누군가 강 너머에서 손짓하는 것을 본 것 같다.
급히 폐에 산소를 공급하자 다시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빠릿한 머리가 원망스러워졌다.
나는 어느새 완성된 큐브를 두 손으로 꾹 쥐고, 속으로 절규했다.
이럴 줄 알았어, 제기라아아아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