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22
122. 불편한 일상(3)
폭풍처럼 등장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선사한 드벨라니아는 도망치는 것도 바람 같았다.
별건 아니고, 리리넬과 데몬교 건에 관해 조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어 조심스럽게 운을 뗐더니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눈치챈 듯 눈만 이리저리 굴리다 중얼거리듯 변명하더라.
[순진한게 놀려 먹는 재미가 있어서 그만…….] […….] [죄송해요오!]그리고 창밖으로 몸을 날리는데, 어찌나 날렵하던지.
급히 창틀을 짚고 아래를 확인했을 때, 그녀는 이미 저 멀리 달려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찾으니 임무로 자리를 비웠다고…….
‘뭐…… 그래, 당분간 옷을 싸 들고 오는 일은 없겠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 후로 의미 없는 시간이 흘렀다.
언제나 그래 왔듯 마왕성에서 내가 할 일은 딱히 없다. 가끔 뜬금없이 임무를 받아 무기를 차고 불려 나가긴 하지만 그것도 아주 드문 일이고.
그러니 이건 내 일상이라 할 수 있다. 이제와서 불안해할 것도 없어.
“……젠장.”
불안해!
어느새 다 맞춘 큐브를 한쪽에 던지고 일어났다. 푹신한 침대가 더 누워 있으라는 듯 유혹했으나, 마음이 불편한 내겐 먹히진 않았다.
어쩐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당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방 한쪽에 서서 불안한 듯 눈을 굴리던 에드를 불렀다.
“에드.”
“네, 데몬 님.”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뭡니까.”
“저녁에 군단장 회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뭘 해야 할지 모르니 별수 있나.
“시발.”
불안감이 짜증으로 변모해 내 감정을 들쑤신다.
지나친 감정은 이성을 흐리고 머리를 둔하게 만든다. 거지 같은 인생, 짜증 나네, 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등등 온갖 험한 말을 중얼거리던 내가 그의 존재를 자각한 것은 ‘다 꺼져 줬으면’을 중얼거린 뒤였다.
창백하게 질린 에드가 눈동자를 덜덜 떨며 나를 보고 있었다.
“아…….”
“…….”
맞다, 입조심. 나도 마계가 익숙해지긴 한 모양이다. 이렇게 긴장 놓고 욕까지 읊는 걸 보면.
‘……사과해야겠지?’
다른 누구도 아닌 마족한테 괜한 미움을 사는 건 사양이다. 수명의 연장을 위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에드.”
“네… 데몬 님. 죄송합니다.”
“왜 네가 사과를… 아니…….”
실수했다! 묻지 말아야 하는데!
뜬금 없는 사과에 이유를 물어봤자 상황만 악화된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배웠는데…… 역시 반사적으로 나오는 말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에드가 더 희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파르르 떨더니 간신히 답을 내놓았다.
“꺼져 드리지 못해서… 데몬 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듣고 보니 그렇네. 너 왜 여기에 있냐?
“사과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아니, 따지는 게 아니라… 정말 이유가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열심히 손까지 저어 가며 에드를 안심시키기 위해 애썼다.
평소엔 네 방에 있었잖아. 왜 여기에 있는 건데? 네 방 없어졌어? 마왕이 방 빼래?
“마왕님께서… 데몬 님 곁에 붙어 있으라 하셨습니다.”
아. 감시.
본인도 말하면서 찔리는지 내 눈치를 살핀다. 물론 조금 짜증이 나긴 하지만 애꿎은 부관에게 화낼 생각은 없다. 그 전에 마족에게 화낼 만큼 간이 크지도 않고.
그에게 뭐라 말하는 대신 입을 다물고 던져 두었던 큐브를 다시 가져왔다. 여전히 요동치는 불안한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마구잡이로 섞으며 생각을 비우려 애쓰는데, 에드가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외성을 돌아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외성……?”
그래, 내가 너무 내성에만 머물긴 했지.
마왕성에 온 지도 꽤 됐고, 적응도 어느 정도 되었으니 한 번쯤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 물론 혼자서 가는 건 말고, 에드가 호위로 따라붙는다는 조건 하에. 난 아직 혼자 외성을 돌아다닐 정도로 성장하진 않았다. 아마 평생 그러겠지만.
그러나 나는 답을 내놓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했어야 했다.
“좋습….”
외성에는 그 미친 광신도들이 있다는 것을 떠올린 건 긍정의 답을 내놓은 것과 거의 동시였다.
“니다…….”
말을 주워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경솔한 언행이 위험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는구나.
후회해 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 이미 에드의 얼굴이 화악 밝아져 있었으니까. 저 얼굴에 대고 어떻게 말을 바꿔. 말을 번복했다가 얼굴이 어두워지기만 하면 다행이지, 저 감정이 모조리 짜증이나 분노로 치환되기라도 하면…….
부르르 떨리는 몸을 억눌렀다. 몰라, 난 감당할 자신 없어. 그냥 가야지. 제기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에드와 붙어 있는 수밖에.
“옷을 갈아입으시겠습니까.”
“음…….”
이번엔 섣불리 답하지 않았다.
우선 내 옷차림을 돌아봤다. 딱히 나쁘진 않은데…… 좀 더 존재감이 없었으면 좋겠네. 가능한 광신도들의 눈에 띄지 않게.
‘그리고 마계는 밤이지.’
그래, 그냥 아예 완전히 검은 옷을 입어 버리자. 달빛이 닿지 않는 그늘 위주로 돌아다니는거야.
마음을 정하고 옷장을 열어 검은 옷을 꺼내며 한발 늦은 답을 했다.
“갈아입을 겁니다. 나가 있으세요.”
“…….”
뭐야, 왜 대답이 없어?
슬쩍 돌아보자 에드가 떨리는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아니, 잘 보니 흔들리는 그의 시선은 내 손에 들린 옷에 고정되어 있었다.
……왜?
“……확실한 경고가 되겠군요. 알겠습니다.”
“?”
무, 무슨 경고?
야야, 그러고 나가면 어떡해. 괜히 불안해지잖아!
문까지 소리 없이 닫히고, 졸지에 덜렁 남은 나는 조용히 옷을 들어 지그시 노려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상은 없는데…….’
괜히 찝찝해졌다. 다른 거 입어야지.
물론 검은 옷을 입는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 옷장에서 또 다른 검은 옷을 꺼냈다. 마왕이 검은색 옷과 남색 옷을 적지 않게 준 덕분에 대체할 다른 옷이 없다든가 하는 문제는 없었다.
검은 옷의 효과는 놀라웠다!
조금 전의 그 어마어마했던 광신도들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정말 아무도 내게 오지 않더라. 오히려 다들 알아서 피해 가는데, 심지어 그중에 붉은 심장 브로치를 단 마족도 있었다면 과연 믿겠는가!
‘검은 옷 만세!’
마족 퇴치 효과가 있을 줄이야.
로브는 통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옷만 통하는 건가? 너무 자주 입으면 효과가 떨어질 수도 있으니 가끔 써먹어야겠어.
나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
데몬 님께서 기분이 나쁘시다.
오래전 식당에서 그가 검은 옷을 입고 접시를 엎는 일이 있었던 이후 마왕성에서 그가 입는 ‘검은 옷’은 기분이 나쁘다는 상태를 보여주는 하나의 경고로 인식되었다.
어떠한 수나 장식도 없는 순수한 검은색. 그 옷을 입은 0군단장을 마주한 마족들의 심정이 어땠겠는가.
‘걸리면 죽는다.’
‘눈에 거슬리지 않게 굴자.’
‘필요하다면 내 모든 마력을 동원해서라도 도망을… 아, 마법은 사용 금지였지.’
‘마왕님께 죽나, 데몬 님께 죽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
‘몰라, 난 죽더라도 마왕님이나 다른 군단장님 손에 죽을래. 아무리 생각해도 데몬 님은 아닌 것 같아.’
평소 내성, 그것도 본인의 방에서만 머무시는 분이다. 외성까지 나왔다는 것은 필시 희생양 하나 잡아서 족치겠다는 뜻이겠지.
데몬 님을 존경하지만 목숨은 소중하다. 마족들은 슬금슬금 그를 피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는 붉은 심장 브로치를 단 데몬교 신도들도 마찬가지였다. 데몬 님의 심기를 더 나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이유인 점에서 조금 달랐지만.
‘도움이 되지는 못할 망정 데몬 님의 심기를 더 거스를 수는 없지!’
‘알아서 잘 숨어다니자. 우리 중에 데몬 님을 거슬리게 하는 놈이 나오면 그 새낀 바로 퇴출이야.’
‘데-세.’
그렇게 알게 모르게 수많은 마족들의 모든 신경이 한쪽에 집중된 지 한참, 목적지 없이 떠돌던 그의 걸음이 길 한복판에서 멈췄다.
덩달아 지켜보던 마족들의 호흡도 멈추고.
긴장감 가득한 침묵 속에서, 그의 입꼬리가 소리 없이 올라갔다.
‘헉.’
좀처럼 희생양이 걸려들지 않아서일까. 어쩌면 트집을 잡을 만한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썩 좋은 의미는 아닐 웃음이, 그의 얼굴에 걸려 있었다.
***
마왕성의 규모는 제국의 소도시급이라 말한 적이 있었던가.
단순한 규모만이 다가 아니다. 마왕성은 하나의 소도시라 봐도 무방했다.
마왕성은 크게 내성과 외성으로 나뉜다. 이를 제국의 수도에 빗대면 내성은 황궁, 외성은 황궁 밖, 성벽 안의 도시가 되겠지.
내성에는 마왕과 군단장, 각 군단원들 같은 주요인물들과 이 모든 이들의 생활을 책임질 사용인들이 존재하며, 외성에는 일반 마족 병사들과…….
‘아 몰라.’
그 많은 직책을 어떻게 다 읊어.
아무튼 외성에는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직책을 맡은 다양한 마족들이 존재한다. 그 분위기는 인간계 도시의 길거리와 같고.
다만 차이점이라 하면 길거리의 간단한 음식을 파는… 아, ‘판다’라고 할 수는 없나. 마왕성 내부에서 돈이 돌지는 않으니.
아무튼 그러한 노점상조차 철저히 계산된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식당, 노점상, 술집, 공개된 연무장 등등… 외성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마왕이 수뇌부들과 머리를 맞대고 최대한 효율적인 위치에 하나하나 배치해 둔 것이다.
‘적이 성문을 뚫고 들어온다면 이 모든 건 길목을 막는 방패이자 기습을 위한 은폐물이 되겠지.’
혹은 공격용 무기로 변할 수도 있고.
그 의도가 어떻건 지금 내가 보기엔 평범한 도시의 길거리다. 심지어 돈도 주고 받지 않으니 오히려 인간계보다 더 좋은 곳이라 봐도 될 정도.
주위에 마족도 없으니 쾌적하겠다, 모처럼 내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옆에서 조용히 나를 살피던 에드가 주의를 돌리려는 듯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데몬 님, 모처럼 나온 것이니 무언가 드셔 보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배는 안 고픈데…….”
“그렇군요. 실례했습….”
“하지만 먹겠습니다.”
“…….”
뭐. 왜. 뭐.
저거 맛있어 보였단 말이야.
‘냠.’
무슨 고기로 만들었는지 모를 꼬치는 맛있었다. 고기의 출처는 굳이 생각하지 않도록 하자. 맛있으면 됐지.
시야 한쪽에 쌓인 검은 껍데기를 모른 척하며 에드를 보았다. 그는 꼬치를 건넨 마족에게 무언가 속삭이고 있었다.
언뜻 떨지 말라느니, 죽고 싶냐느니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하니 꼬치를 건넬 때 너무 떨어서 짜증이 났었나 보네.
‘하긴, 내가 보기에도 너무 심하게 떨고 있었지.’
하도 떨어서 소스가 다 떨어질 지경이었다.
에드가 무서워서 그런 것 같아 서둘러 직접 받으려 했는데, 이 무정한 부관이 먼저 나서서 받아 버리더라.
아무튼 이렇게 두었다간 저 불쌍한 마족의 심장이 멈추는 불상사가 생길 것 같아 입에 든 고기를 꿀꺽 삼키고 서둘러 에드를 불렀다.
“에드.”
“네, 데몬 님.”
“다른 곳을 둘러보고 싶은데, 안내 좀 해 주겠습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너, 조심해라.”
마지막까지 마족에게 경고를 날린 그가 걸음을 서둘러 내게 다가왔다.
“무엇을 위주로 둘러보고 싶으십니까?”
“글쎄요…… 기왕이면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쪽이면 좋겠군요.”
“기분 전환이라면…….”
잠시 고민하던 그가 멈춰 있던 발을 뗀다.
순순히 뒤를 따라간 지 얼마나 되었을까, 에드가 도착한 곳은 공개된 연무장 입구였다.
‘설마, 싸우자고?’
어쩐지 정상적으로 안내한다 싶었더니만, 결국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속으로 한껏 탄식하며 무기를 들게 될 상황을 피하기 위한 방안을 머릿속에서 뒤적이는데, 곧장 안으로 안내할 줄 알았던 에드가 입구의 무기를 제공하는 마족에게 다가가 무언가 말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 마족의 얼굴이 곤란함으로 물들었다.
“가져와.”
“하지만…….”
“허락은 내가 받도록 하지. 그러니 죽기 싫으면…….”
아니, 저기요. 기분 전환이라면서. 왜 남의 목숨 가지고 협박까지 하고 그래.
저러다 정말 일 치르겠다. 다 먹은 꼬치를 버릴 곳을 찾다가 시간을 더 지체하면 안될 것 같아 그냥 손에 든 채 저들을 향해 걸음을 뗐다.
“에드, 지금 뭐……!”
턱.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