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36
136. 금이 간 둑(1)
땅이 흔들리고 흙먼지가 일었다.
이 작은 몸뚱이 하나 먹는다고 배가 차지도 않을 것 같은데 뭐가 그리도 탐나는지, 수는 많지 않지만 덩치가 큰 마물들이 신이 나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저들도 ‘나’를 나눠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듯 경쟁하듯 달리는 탓에 가장 앞장서서 달리고 있는 놈과 그 뒤 녀석들 간의 거리가 조금 벌어져 있다는 것일까.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히죽 웃었다.
‘그 정도면 충분해.’
지금 선두에 서서 달리고 있는 놈은 모르겠지. 본인이 먹잇감에 되레 사냥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이런 유의 연극엔 나름 재능이 있다. 특히 상대가 저렇게 단순한 것들이라면 시나리오대로 극을 이끄는 것은 식은 죽 먹기고.
한 놈을 희생양 삼아 반전을 드러내면 뒤쫓아오던 다른 멍청한 것들이 당황하여 멈칫할 테지. 그 정도의 틈은 ‘나’에게 있어 공포를 조성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마족이 되지 못한 실패작들이라더니, 단순하고 멍청해서는… 정말 마음에 든단 말이야.’
손에 들린 단검이 빙글 돌아간다. 엄지가 손잡이를 쓸 듯 연신 접혔다 펴지고, ‘나’는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가─
──선두의 몬스터가 코앞까지 도달했을 때,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아마 저놈들 눈에는 한순간 내가 사라진 것으로 보였으리라.
육체가 견딜 수 없는 속도를 내려 한 탓에 다리에서 뚜둑, 하고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시하고 공중에 뛰어오른 상태에서 팔을 휘둘러 놈의 목덜미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질긴 가죽에 단검을 꽂아 넣기 위해 조금 무리했지만, 괜찮다.
팔 전체에 가해지는 부담을 무시하고 그대로 매달리듯 체중을 실어 주욱 그어 내렸다.
“크아아아아!”
“덩치가 커서 그런가. 급소를 찔렸는데도 기운이 넘치네.”
그러게, 누가 ‘나’를 우습게 보랬나.
떨어지기 전에 다른 손에 든 단검을 상처 부위에 다시 꽂아 고정하고 달라붙었다.
상처의 위치와 크기를 보아하니 그냥 둬도 죽을 것 같다만, ‘나’의 목적은 이 녀석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그 뒤에 따라오고 있는 놈들도 계산에 넣어야지.
“역시 눈을 공격하는 게 시각적인 효과에도 좋겠지?”
푹.
인간을 상대로도 저질렀는데, 마물을 상대로 망설일 리 없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팔을 들어 녀석의 눈에 단검을 쑤셔 넣고 비틀었다.
“크아아아아아!!”
“아파?”
남은 눈 한짝 앞에 친절히 얼굴을 들이대고 천진하게 웃었다.
주먹만 한 눈동자가 흔들린다. 먹잇감에게 공격을 당해 ‘분노’를 터트리던 비명이 ‘공포’의 성질을 띠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벌어진 예상 밖의 상황에 헐레벌떡 달려오던 다른 마물들이 멈칫하고, 힐긋 그들을 본 ‘나’는 보란 듯이 단검을 들어 남은 눈도 거칠게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멈칫.
“……오, 손톱에 독이 있었구나.”
발버둥치던 녀석의 앞발에 옆구리를 긁혔다.
보라색으로 물들어 가는 상처를 보다가 놈을 보았다. 눈을 잃었음에도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알고 있는지 꼴 좋다는 듯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띠고 있는 모습.
……곧 죽을 놈이 발악하기는.
뒤쪽에서 다시 다가오기 시작하는 마물들을 힐긋 확인하고는 손에 든 단검을 아예 눈 깊은 곳까지 꽂아 버리고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지체할 시간도 없이 ‘나’는 곧장 깨끗한 새 단검을 꺼내 옆구리를 도려내 바닥에 던지고 짓밟았다.
철퍽.
발밑에 뭉개진 살점이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네 녀석들에게 던져 줄까 생각도 해 봤지만, 괜한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혹여나 먹었다가 맛있다고 눈이 뒤집히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않은가.
그제야 끈질긴 생명이 다한 듯 엉망이 된 마물이 쿵 하고 쓰러진다. 뒤에서 따라오던 마물들은 이미 멈춘 지 오래였다.
‘나’는 녀석들을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왜들 그래? 어서 오지 않고.”
동족 하나를 난도질해 놓고, 간신히 독을 주입했나 싶었더니 몸에 퍼지기도 전에 스스로 살점을 도려내는데다… 피가 철철 흐르는 옆구리는 의식도 하지 않는 듯 아무렇지 않게 활짝 웃기까지.
원래 미친놈은 종족을 불문하고 알아보는 법이다.
마물들이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했다.
***
또 꿈을 꾸었다. 요즘 들어 이상한 꿈을 자주 꾸는 것 같은데…….
단검으로 토끼 정도 되는 작은 마물의 목을 푹 찌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내용이….’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꿈에서 내가….’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히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깨고 나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것을 보면 결코 좋은 내용은 아니었겠지.
‘아, 약 땡긴다….’
예쁜 달이 뜬 밤을 배경으로 모처럼 시원하게 얼굴을 까고 활동하기 편한 일상복을 입은 나는… 바글바글한 작은 마물들을 해치우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몸 상태가 엉망이었던 것을 고려한 듯, 일주일 뒤 황제는 자잘한 몬스터 사냥을 명했다.
그래, 큼직하고 사납고 무서운 몬스터가 아니어서 다행이긴 한데…….
‘작은 몬스터들은 너무 많고, 또 잘 도망간다고요…!’
도망치는 녀석을 향해 짜증스럽게 단검을 날렸다. 정확하게 몸통을 꿰뚫린 녀석이 그대로 나자빠졌다.
위협적이진 않다. 인간계의 야생 동물에 비유하자면 정말 말 그대로 토끼 내지는 쥐새끼 정도의 몬스터니까. 다만 얘네도 생명체의 살점을 뜯어 먹으려 든다는 점에서 수가 많아지면 곤란할 뿐이지.
‘음… 그냥 위험하다고 치자.’
아직은 위협적일 정도로 수가 불어나진 않았지만, 전시 상황인만큼 이런 변수는 미리 제거해 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황제의 명이었다.
황제든 마왕이든, 내 몸 생각하는 척하면서도 결국은 여기저기 다 이용해 먹는단 말이지. 원래 군주가 되면 다 그런가?
“어쨌든 이 정도면 얼추 다 정리된 것 같고…….”
부스럭.
“……무슨 말을 못 하겠네.”
말하자마자 잔당이 나타나냐?
손에 단검을 꾹 쥐고 소리가 들린 풀숲을 보았다. 들켰다는 것을 눈치챈 듯 풀숲이 움찔 흔들리더니 이내 무언가가 튀어나와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들었다.
“데몬 니이임!”
“!?”
반사적으로 휘두르려던 단검을 간신히 멈췄다.
머리에 나뭇잎을 붙인 익숙한 외형의 마족이 익숙한 목소리로 익숙한 호칭을 부르며 달려든다. 잠시 머리에 과부하가 왔다.
내가 지금… ‘데몬’으로서 임무를 수행 중이었나?
“……벤?”
“네, 데몬 님! 이 벤, 데몬 님의 치료를 위해 간신히 마왕성을 탈출하여 찾아왔습니다!”
그게 지금 무슨…!
당황한 탓에 발이 꼬였다. 중심을 잡기 위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으나 이는 벤의 어깨 부근을 짚을 뿐, 그 이상의 효과를 주진 못했다.
‘아니, 평소엔 잘만 부축해 주고 잡아 주고 번쩍번쩍 들더니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거야.’
그렇다. 난 지금 벤의 위로 넘어졌다.
한 손은 벤의 어깨를 꾹 누르고, 단검을 쥔 다른 손은 벤의 머리 옆 땅을 짚… 땅에 검을 꽂아 넣으면서.
이거 누가 봐도 살인 미수, 최소 살해 협박인데…?
이러다 벤이 오해하겠다 싶어 급히 단검을 거두고 변명하려는데, 눈을 굴려 머리 옆의 날붙이를 확인한 벤이 먼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데몬 님께서 부상을 입으셨다는 신호가 와서 급한 마음에… 혹 제가 방해되었습니까?”
“네…?”
“역시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 분명 말꼬리 올리지 않았어? 왜 그러는데…….
해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이번에도 말은 벤이 더 빨랐다.
“그래도…!”
“……?”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하.”
이 미친 직업정신을 가진 주치의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듯 기쁘게 웃는다. 거기에 대고 차마 화를 낼 수 없어 천천히 단검을 거뒀다.
‘애초에 화를 낼 생각도 없었지만.’
그의 얼굴 일부를 덮고 있는 뱀 비늘이 그가 마족임을 잊지 않게 해 주고 있는데 어떻게 감히 거기에 대고 화를 내겠어. 익숙한 것과 화를 낼 정도로 간이 부은 것은 별개다.
그래도 예상 밖의 걱정에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여 굳어 있던 표정이 풀렸다.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던 만큼 이를 기민하게 눈치챈 벤이 틈을 놓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신호도 그렇고, 직접 봐도 성한 곳이 별로 없어 보이시는데요.”
“……괜찮습니다.”
“거짓말일 테니 믿지 않겠습니다.”
리엔도 그러더니 얘까지… 그럴 거면 왜 물어보냐고.
“움직임을 봤을 때 팔다리의 근육도 문제인 것 같고… 아, 옆구리! 옆구리는 괜찮으십니까?! 신호가 장난 아니게 오던데!”
“괜찮….”
“안 믿습니다!”
그럼 묻지 마!
“실례지만 옷 좀 들쳐 보겠습니다.”
“실례하지 마, 그냥.”
“붕대를 풀어도 되겠습니까?”
“안 돼.”
“네, 풀겠습니다.”
이 새끼가…?
옷 속에 들어온 손이 더듬더듬 붕대의 매듭을 찾는다. 차가워! 마족이라 그런가, 손도 차갑네. 소름이 다 돋았다.
백날 말로 거부해 봤자 영 들어먹지 않을 것 같아 급히 손을 뿌리치고 몸을 일으켜 한 걸음 떨어졌다.
“난 정말 괜찮습니다. 치료도 끝냈고, 몸도 어느 정도….”
“후작님?”
“!”
낯선 목소리.
황급히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린 곳을 확인했다. 제국군 복장을 한 사내가 무기를 쥔 채 나와 벤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아…….
‘망했다.’
실수했다. 마왕의 명을 수행할 때처럼 이번 임무도 비밀리에 진행했어야 했어.
솔직히 제국 진영에서 황제가 내린 가벼운 명을 수행하는데 굳이 비밀에 부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황제가 비밀 임무라 말한 것도 아니고, 임무 내용 자체도 별거 없는 정말 가벼운 것인데.
그래서 당당히 움직였다. 그 결과 후작님을 혼자 보낼 수 없다며 군막의 기사 셋 정도가 길 안내를 겸해 따라왔고.
‘단이 따라오려는 걸 간신히 떼어 놓았지…….’
기사들도 원래 더 많은 수가 따라오려 했으나 애초에 황제가 나를 움직인 이유가 병력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그 뜻을 읽어 셋 정도로 타협을 봤다.
‘폐하,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실 더 많이 데려가고 싶었지만… 이게 최선이었지.
수가 적어서 구역을 나눠 마물을 처리해야 했지만. 그래도 혼자 가지 않은게 어디야, 낄낄……이 아니라!
설마 이런 문제가 발생할 줄이야.
‘저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나.’
죽여? 상황을 설명한다면 황제도 이해해 줄 것이다. 하지만…….
곤란한 눈으로 제국의 기사를 보다가 조용히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아파 오고, 스트레스 수치가 급격히 치솟는 것이 느껴진다.
“쿨럭.”
오, 나이스 타이밍. 머리가 아픈데 입에서 피가 나온 것은 조금 어이가 없지만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데…!”
“가.”
일단 ‘데몬’을 부르려는 벤의 얼굴 옆으로 단검을 던져 입부터 막았다.
혼잣말에 가까운 작은 목소리였지만 마족이니까 잘 알아들었겠지. 못 들었더라도 영 눈치가 없는 인물은 아니니 방금의 행동으로 대충 뜻을 알아차렸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슬그머니 몸을 일으킨 벤이 이내 등을 돌려 후다닥 자리를 뜬다. 그걸 본 기사가 뒤쫓으려 했으나….
“쿨럭, 쿨럭! 쿨러헉컥! 케헥, 켁!!”
“후, 후작님!”
내가 사레 한두 번 걸려 보나.
입 안에 있던 피를 부러 기도로 넘겨 아주 화려하게 피 섞인 기침을 뱉어 주었더니 벤을 포기하고 급히 내게 다가왔다.
그래… 나 아프니까 저놈 따윈 내팽개치고 어서 돌아가자. 벤 너는 다신 오지 말고.
***
‘마족이… 하르트 후작님을…….’
거의 죽을 듯 피 섞인 기침을 토해 내는 데온 하르트를 안절부절못하며 살피던 기사가 이를 바득 갈며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누운 상태에서 간신히 상체만 일으킨 마족, 그 앞에 단검을 든 채 당당히 서 계시는 후작님.
상황 파악은 어렵지 않았다. 혼자 계신 후작님이 마물 사냥으로 정신 없는 틈을 타 마족이 습격을 감행한 것이다.
‘그럼에도 후작님은 이기셨을 테고.’
그 결과물이 제가 보게 된 그 장면이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