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45
145. plaudite!(4)
결국 어머니에게서 독약을 회수하지 못했다.
애초에 주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어머니를 이긴 적이 없으니 다시 돌아간다 해도 주게 되겠지만.
다니엘은 자꾸만 어두워지려는 낯을 목도리를 끌어 올려 가리며 부지런히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의 걸음이 지나가는 곳에 비장함이 흔적처럼 늘어졌다.
“오셨군요. 데려오신 인원은 뒤의 분들이 전부입니까?”
“네.”
“생각보다 적은데…….”
“공작 각하께서 병력까지 지원해 주신다 하셨으니 이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아서요. 그래도 총 인원의 절반이나 되는데, 적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다니엘이 빙긋 웃었다.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사내가 몸을 틀었다. 따라오라는 한 마디 던지고 앞서 걷는 사내의 뒤를 따르며 다니엘은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돕겠다는 말을 지키기라도 하듯 공작이 각종 정보를 구해 왔다. 황제가 궁에 있는 시간대, 궁의 경비들의 교대 시간, 황제가 있는 방으로 향하는 최단 루트 등등.
심지어 병력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계획을 짜는 것까지 함께했다.
“3조는 여기서 저 사람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예. 나중에 뵙죠.”
“드디어 정말 시작되는 거군요. 감회가 새롭네요.”
그간 미뤄 왔던 것이 허무하게도 일은 착착 진행되었다.
계획은 그럴싸했으나 공작의 병력을 온전히 믿을 수 없는 데다 그에게 어떤 임무든 완전히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인 탓에 혁명군은 병력을 쪼개어 공작의 병력과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2조는 저 사람을.”
“일이 끝나고 다시 봅시다.”
애초에 다니엘은 계획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최소한의 알 것만 알고 계획 이행에 동의한 그는 어느덧 소수의 무리와 함께 남아 표정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이 멈춘 것은 공작의 병력에 둘러싸였을 때였다.
차앙!
혁명군의 걸음을 막아선 이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 든다. 불길함을 느낀 혁명군이 지지 않고 저마다 무기를 손에 들었다. 재빠른 행동과 달리 그들의 눈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 이게 무슨…!”
“이보게들!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이럴 때가 아니잖나!”
다니엘을 따라온 일부 수뇌부들이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언성을 높인다. 동요 없이 공작의 병력을 훑던 다니엘이 그 한심한 꼴을 힐긋 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배신입니까?”
– 처음부터 함정이었지요.
대답은 가장 앞에 선 자의 통신기에서 흘러나왔다.
익숙한 목소리에 다니엘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읊조리듯 상대의 이름을 뱉었다.
“……공작.”
“그게 무슨!”
“진짜 공작이란 말입니까?”
– ……다니엘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방해가 많군요. 일단 주위를 정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통신기에서 흘리듯 나온 말에 공작의 병력이 움직였다.
“자, 잠…!”
서걱.
잘 훈련된 정예들이 혁명군을 베어 넘긴다. 당황도 잠시, 혁명군도 순순히 당하지 않고 맞서 싸웠으나 앞서 인원을 쪼갠 탓에 수가 모자란 데다 합도 잘 맞지 않아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 가며 철저히 훈련된 자들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점차 줄어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만히 서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다니엘이 눈을 돌려 통신기에 시선을 던졌다.
“분명, 공작님도 혁명을 바라신다고…….”
– 아아 그거, 당연히 거짓말입니다.
“거짓….”
– 공작인 제가 무엇이 아쉬워서 권력을 내려놓으려 하겠습니까. 제가 당신들에게 바란 것은 황제의 지지도를 떨어뜨리는 것. 그뿐이었습니다.”
병장기 소리가 멎었다.
통신기 건너편, 책상 앞에 앉은 공작이 의자를 빙글 돌리며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황제는 혁명군의 손에 죽어서는 안 된다. 공작이 원하는 것은 황제를 끌어내리는 것이지, 그의 죽음이나 황좌의 소멸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공작은 혁명군을 이용하되 언젠가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혁명이라니, 우습지도 않았지요. 혁명이 그리 쉬운 줄 압니까. 당장 정권 하나만 바뀌어도 크게 흔들리는 것이 국가입니다.”
제대로 된 계승 절차를 밟아 군주가 바뀌어도 한동안은 혼란이 생긴다.
“그런데 아예 정치 체제를 바꾼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 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릴 생각입니까?”
위험한 사상이다. 공작은 저들의 주장을 듣자마자 깨달았다.
혁명군의 사상은 전염병과도 같다. 중독성이 강하고 신념을 부여하며, 그를 위해 하는 모든 행동에 정당성을 갖게 한다.
저들의 사상은 빠른 속도로 세상에 퍼질 것이다.
계급의 아래층에 있는 이들은 그 위험한 신념을 굳게 밀어붙일 테지. 귀족들은 쉬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으려 하지 않을 테고. 이대로라면 무력 충돌은 예견된 상황이다.
다른 국가와도 아니고, 한 국가 내에서의 무력 충돌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당신들의 생각대로라면 이 나라는 자멸하게 됩니다. 물론 당신들은 기어이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졸지에 나라를 잃게 된 자들의 삶은 누가 보장할 겁니까?”
– …….
“망국의 백성들이 어떤 대우를 받게 되는지 모르진 않을 겁니다. 그들이 과연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답니까? 그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런 세상을 바라지도 않았는데 그네들을 위한다며 큰 불만 없이 잘 먹고 잘 살던 이들의 나라를 없애버리면, 정말 그들이 기뻐할 것 같습니까? 소수가 다수의 의견을 대신한다며 나서서 날뛰는데, 어찌나 우습던지요.”
– …….
“진심으로 혁명군이 구원하는 무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을 혼란에 빠트리려는 악의 무리이지요.”
– …….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철학을 주워섬겨서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가시는 길 평안하길 빌죠.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을 끊으려던 공작은 그 너머에서 들리는 나직한 웃음소리에 멈칫했다.
– 저희는.
통신기 너머, 공작과 연결된 통신기를 든 상대의 양 어깨를 꾹 쥔 다니엘이 형형히 빛나는 눈을 감추지 않고 웃고 있었다.
“혁명가입니다.”
철학가가 아닌 혁명가.
“철학 따위, 저는 모릅니다. 제가 아는 철학은 배부른 자들이 탁상머리에 앉아 떠드는 것이니까요. 혁명은 배곯은 자들이 부당함에 분노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 ……세상의 모든 철학가들을 비하하는 발언이군요.
“어쩔 수 없습니다. 못 먹고 못 배운 자들이 철학의 숭고함을 어찌 알겠습니까.”
가볍게 어깨를 으쓱한 다니엘이 빙글 몸을 돌렸다.
바닥에 깔린 아군의 시신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조금 시선을 올리자 혁명군을 모조리 처리한 이들이 검을 거두지 않고 저를 노려보는 것이 보였다.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
다니엘은 태연히 웃었다.
“공작님은 정치 체제를 바꾼 뒤의 혼란을 걱정하셨지요.”
– ……말이 길군요. 시간을 끌기 위한 겁니까? 그래 봤자 당신이 죽는다는 것은 변함없을 텐데요.
“그저 죽기 전에 대화나 한번 나눠 보려는 겁니다. 그동안은 서로 패를 감추느라 편히 대화를 나누지 못했잖습니까. 설마 곧 죽을 자의 마지막 대화조차 받아 주지 않으려는 건 아니시겠지요?”
– ……계속 말해 보시지요. 듣겠습니다.
애초에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다니엘은 느긋하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입니다. 뭐든 처음에는 시행하면 세상이 뒤집힐 것처럼 굴다가도, 결국엔 적응하고, 시간이 지나면 당연시 여기게 되지요. 혼란이 두려워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여기까지 발전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 ……그게 굳이 지금일 필요는 없지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시국이 시국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순순한 긍정에 공작이 침묵했다.
이래서는 그의 행동이 말과 전혀 맞지 않는다.
시간을 끄는 듯한 행동과, 발언에서의 모순. 공작이 괜히 다니엘과의 대화를 허락한 것이 아니다. 이를 기회로 삼아 위화감의 근원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데, 다니엘이 말을 이었다.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조금 전 공작님의 발언 중 나라가 망하는 것을 걱정하는 부분도 있었지요. 저는 황좌를 없애는 것이 목적이지, 나라를 없애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민했죠.”
모두가 평등하면서도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답은 간단했습니다. 권력을 나누면 되는 것이었죠.”
– ……그래 놓고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권력을 나누었다가, 그 권력을 가진 자들 사이에서 의견 충돌이 발생하면?
“왜 못 합니까? 권력을 사람에게 쥐여 주지 않고 기관에게 쥐여 주면 되는 겁니다. 권력을 쥔 하나의 기관에서 여러 사람들이 일을 하는 것이죠. 물론 그 기관을 총괄하는 사람도 필요할 테지만….”
“제가 권력을 나눈다고 말했지요. 권력을 가진 기관을 여러 개로 만들면 되는 겁니다. 너무 많으면 제대로 뭉치지 못해 나라가 돌아가지 않을 테고, 둘이면 양립하다가 나라가 찢길 수도 있으니 적당하게 셋 정도로.”
가위바위보. 공작님도 한 번쯤 해 보셨겠지요?
“사람의 욕심은 믿을 게 못 됩니다. 그러니 세 기관에게 각기 다른 권력을 쥐여 줌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엇나가지 못하게 견제하도록 하는 거예요. 각 기관의 총괄은… 그래, 자유가 된 이 나라의 국민들이 뽑는 것이 좋겠군요.”
위험하다. 공작은 가만히 통신기를 노려보며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다니엘이 여기서 죽을 예정이라 정말 다행이다. 그에게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과연 어디까지 계획을 세웠을지, 상상도 되지 않아서.
그때, 통신기에서 다니엘의 목소리가 중얼거리듯 이어졌다.
– 물론 결국 그 기관도 사람의 손에 굴러가는 것이니 허점이 완전히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테고, 그 부분은 후세대에 맡겨도 될 테니…….
후세대?
의문도 잠시, 공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철학가가 아니라 몽상가였군.”
– 몽상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직접 부딪히기에 혁명가인 것이죠.
“……어째서 신분제에 의문을 갖게 된 겁니까?”
– 시작은 어머니였죠. 하지만 그 이후는……,
“…….”
– 한번 의문이 던져지니 멈추지 않더군요. 어째서 인간은 날 때부터 계급과 지위가 정해지는지. 단지 태어났을 뿐인데, 운에 따라 신분이 나뉘다니 억울하기도 하고. 옛날 어느 귀족이 전생의 죄를 탓했지만, 그걸 어떻게 증명하고 믿겠습니까. 하다못해 이 나라가 종교를 독실히 믿는 신성국가였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화가 났습니다.
어느 귀족의 ‘전생의 죄’ 발언은 먹히지 않았다.
그 여파로 반발심이 일었다.
– 어째서, 운 좋게 좋은 신분으로 태어난 주제에 우리의 전생에 죄를 뒤집어씌우려 하는지.
“…….”
– 왜 우리의 영혼마저 더럽히려 드는지…!
“…….”
– 사실 본인들도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죠.
이자가 제국민들 앞에서 연설을 하지 않아 다행이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 공작 본인조차도 순간 공감할 정도였는데 제국민들이 이 발언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이었겠는가.
다시 한번 다니엘을 이 자리에서 죽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하는 사이, 목소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현 황제는 노예제를 폐지했죠. 그 역시 신분을 나누어 같은 인간을 부린다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결론이 나왔다.
“……역시 당신은 위험인물이군요.”
– 하하.
다니엘은 가볍게 웃었다. 모든 짐을 벗어 던진 듯 날아갈 듯한 웃음이 공기 중에 퍼졌다.
저마다 무기를 쥐고 저를 겨눈 자들을 죽 훑다가 아예 손을 뻗어 우두머리에게서 통신기를 빼앗다시피 받아 들었다. 공작이 대화를 허락했기 때문인지, 녀석은 순순히 통신기를 넘겼다.
건너편의 상대가 보일 리도 없는데, 다니엘은 통신기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멍청한 발언을 한 적이 있었지요.”
공작에게 거사를 치러야겠다고 우겼던 날.
“분노는 후대에게 이어지지 않으니 시간을 오래 끌면 맥이 끊긴다 했었나.”
– …….
“정정하겠습니다. 혁명군의 맥은 끊기지 않아요.”
그제야 공작은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 그래서는 달라지는 것이 없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