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46
146. plaudite!(5)
“제가 왜 이 위험한 이야기를 터놓고 했겠습니까. 곧 죽으니 아쉬워서? 그럴 리가요.”
내가 왜 굳이 이 시국에 움직이겠다 외쳤을까.
어지러운 정세, 덩달아 복잡할 공작의 머리. 공작의 판단력이 짧아질 몇 안 되는 순간.
그 순간에 움직인 것이 과연 우연일까.
“전 줄곧 공작님께 힌트를 보내고 있었던 겁니다.”
– …….
“후계를 두었습니다.”
쾅! 통신기 너머에서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니엘은 장난에 성공한 어린아이처럼 키득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앞서 늘어놓았던 발언을 포함한 모든 지식을 건네주었죠. 시간이 촉박했음에도 지나치게 사랑스럽고 영특한 아이는 순식간에 흡수하더군요.”
– …….
“이걸로 황제를 향한 개인적인 분노는 이어지지 않을 테지만, ‘부당함’에서 오는 분노는 이어지겠죠.”
이겼다.
혁명군의 핵심 이념은 ‘모든 이들이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다수를 위한다는 점에서 이미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일 터. 어느 누가 본인을 위한 이념을 거부하겠는가. 그 단내에 끌려 모인다면 모를까.
폴, 그 아이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니 아이가 수장이 되어서도 이 이념은 끊기지 않고 이어지겠지. 결국엔 ‘신분제’라는 부당함이 사라지지 않는 한 ‘분노’는 계속되는 것이다.
– ……혁명군 내부의 암 덩어리를 도려내는데, 제 병력을 이용하셨군요.
“이전엔 제 병력을 이용하여 황제에게 압박을 가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니, 혁명군을 견제하기 위해 황제를 사용한 건가요?”
언젠가 사에린이 혁명군 수뇌부 중 한 명을 부추겨 전력의 1/9을 잃게 만든 사건을 언급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황제에게 분노해 모인 자들은 멀리 보면 혁명군의 암 덩어리나 다름없다. 초대 혁명군 수장으로서 후대 수장을 위해 이 정도는 정리하고 가야지.
결국, 다니엘이 이렇게 데리고 나선 절반의 병력은 전부 혁명군 내부에서 자체 제작하는 폭탄을 빼돌려 파는 등의 횡령 및 부정을 저지르거나 황제를 죽인다는 목적에 매몰되어 수장의 말조차 무시하고 되레 압박하려 드는 일종의 암 덩어리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공작 각하께서도 혁명군의 앞길을 막는 걸림돌이셨죠.”
– 이걸로 제게 매인 목줄을 끊겠다는 것은 이해합니다만… 제가 당신 목숨 하나 거둔다고 나머지를 순순히 놓아줄 것 같습니까? 그것도 위험한 사상을 가진 자들을? 어리석군요.
“제가 왜 굳이 후계까지 둬 가며 죽을 자리에 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전제가 틀렸다.
다니엘은 고작 암 덩어리를 제거하기 위해 후계를 만들고 목숨까지 바쳐 가며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 그게 무슨….
– 공작님, 급보입니다!
“오, 드디어 소식이 갔나 보군요.”
죽기 전에 공작의 반응은 한번 보고 죽고 싶었는데, 덕분에 작은 소망을 이루었다.
바스락거리며 종이를 펼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분을 이기지 못한 외침이 통신석을 통해 터져 나왔다.
– 다니엘!!!!!
“반응을 보니 제대로 해 준 모양입니다.”
다니엘이 이곳에 온 이유.
공작의 이목을 이쪽에 집중시키기 위해서였다.
공작 근처에 있던 대다수의 병력이 이쪽에 집중되도록. 그래서 혁명군이 본거지를 옮기고, 공작의 각 영지를 급습해 그의 병력에 타격을 주기 용이하도록.
결국 공작을 확실히 떨쳐 내는 것이 주목적, 내부의 암 덩어리를 청소하는 것이 부목적인 셈이다. 무려 공작을 떨쳐 내는 것인데, 이쪽의 수장 목숨 정도는 미끼로 걸어야지.
“아무리 못해도 최소 절반은 줄도록 계산해 두었는데, 결과가 어떨지 궁금하군요. 정말 그렇게 됐습니까?”
이쪽도 절반의 병력을 잃는 셈이니, 저쪽도 최소 절반은 내놓아야 수지가 맞는다.
물론 이쪽이 잃는 것은 쓸모없는 병력이라는 것이 함정이지만.
“참고로 공작님이 계신 곳은 습격 계획의 가장 마지막 장소입니다.”
– 콰아앙!!
말이 끝나기 무섭게 통신기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당황하는 주변의 적들을 두고, 다니엘은 느긋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마 혁명군은 공작을 죽이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의 병력은 확실히 줄겠지. 그거면 된 거다.
혁명군이 힘을 갖출 동안, 공작 역시 스스로를 추스르기에 바빠 혁명군을 노리지 못할 테니.
“목줄은 확실히 끊어야죠.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쯤이면 혁명군의 본거지는 이미 다 옮긴 뒤겠지.
공작과 연락하고 접촉하며 꼬리를 붙일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인 혁명군의 수장이 여기서 죽는 이상 혁명군과 공작 사이에는 더 이상 연결 고리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새로운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해.’
초대 수장이 ‘공작의 배신’으로 죽었는데 2대 혁명군들이 그와 손을 잡을 리도 없을 터.
그야말로 깔끔한 단절인 것이다.
– 당장 죽여!
한 명만 나서서 죽여도 될 것을, 사방에서 짓쳐들어오는 무기를 보며 다니엘은 희미하게 웃었다. 두터운 목도리 탓인지 목 대신 심장을 노리는 모습.
부러 제 생각을 풀어놓아 반드시 죽여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하게 만들고, 도발했다. 공작의 이성을 흐트러트려 그가 저를 인질로 잡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초대 수장의 가치는 다니엘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자아, 폴.’
이 형이 혁명군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감히 살생부를 썼어.
같은 혁명군 내부에서 남의 생사를 멋대로 결정지을 권한이 어느 누구에게 있겠니. 혁명군의 이념을 더럽힌 나는 사적인 감정에 매몰된 이들과 함께 죽을 테니, 너는 ‘부당함’을 향한 순수한 분노를 가지고 앞으로 잘 나아가길 바라마.
후회는 없다.
아,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데.
‘어머니께 드렸던 선물을 돌려받지 못한 것.’
그것 하나는 마음에 걸려서.
***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의 실이 되어 이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다니엘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달되기 전부터, 자식 잃은 어미는 이미 울부짖고 있었다.
누가 내 이상을 실현시켜 달랬던가. 내가 언제 네 희생을 바란다고 했던가.
이 어미가 직접 뜬 목도리를 둘러 주며 했던 말의 뜻을, 영특한 네가 정녕 알아차리지 못했단 말이냐.
“어리석은 것, 이 어리석은 것아…!”
사랑하는 배우자를 잃은 사람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겠느냐.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보고 살아왔다고 생각한 것이냐.
크게 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살아가길 바랐다. 아들이, 내 아이가 성장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내 삶의 낙이었는데.
내가 널 죽였다.
“내가 죄인이구나….”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이다. 사지육신이 산 채로 뜯겨 나가도 이 정도로 고통스럽진 않을 정도로 괴로워서, 끝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주저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넌 언제나 나를 이긴 적이 없다고 생각했겠지. 하나 틀렸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내가 너를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에 그 위험한 혁명군을 때려치우게 했을 것이다.
생기 넘치는 얼굴로 의욕을 가득 품고 움직이는 모습에 결국 지고 말아 그냥 두었으니.
“내가 죄인이야…….”
애초에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신분제에 의문을 품을 만한 발언은 삼가고, 입 밖으로 내었더라도 최소한 행동으로 옮기진 못하게 했어야 했다.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네게 요구했던 독약은 이 어미의 마지막 고집이었다. 어미의 목숨을 인질로 내걸고 얻으려 한 아들 다니엘의 안전. 단지 그뿐이었고, 그마저도 이젠 실패했는데 내 목숨이 다 무어냐.
“……이 어미가 곧 따라가겠습니다.”
적이 많은 내 아이, 죽어서도 원혼들에게 괴롭힘 받고 있으면 어떡하나.
언젠가 다니엘에게 요구하여 받았던 독약을 꺼냈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 지체 없이 입에 털어 넣고 삼킨다.
액체가 목구멍 너머로 넘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졸음이 몰려왔다. 고통 없이 잠이 쏟아지는 것에서 차마 어미에게 거짓된 약을 줄 수 없었던 다니엘 나름의 노력이 느껴져 흐리게 웃으며 눈을 감았다.
‘어미가 자식의 생각 하나 모를 줄 알았나요.’
열 달 품어 낳아 사랑으로 키운 자식이다.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 불안하게 지켜봐 온 어미로서, 아들의 머릿속이야 뻔했다.
필시 자신이 죽은 이후 이 어미를 다음 대의 수장에게 맡기려 했겠지. 아마 진즉에 말을 해 놓았을 것이다. 저렇게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는 것이 바로 그 증거.
“……하지만 형이 제게 직접 어머니를 부탁하셨어요. 정리는 조금 미루더라도 제가 직접 찾아뵈어 사과드리고, 모셔야죠.”
문 앞에서 소리가 멎었다.
똑똑.
“다니엘 씨와 친분이 있는 동생 폴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왜 대답이… 어머님? 계십니까?”
“…….”
“어머님?”
“…….”
“……실례하겠습니다!”
벌컥. 문이 열리고 눈을 감은 저를 발견한 듯 금방이라도 뛰쳐 들어올 듯한 기세가 주춤했다.
“……이람 씨, 의원을 불러오세요.”
“으, 응?”
“어서요!”
물속에 잠긴 듯 다급한 기색의 목소리가 잔뜩 뭉개진 채 웅웅 울리며 들린다.
아들도 없는 단체에 몸을 맡겨서야 쓰나. 시간이 흐를수록 제 취급이 차마 버릴 수 없는 곤란한 짐 덩이가 될 것은 뻔하다.
‘우리 아들, 마지막까지 이렇게 물러서야…….’
새 출발을 계획한 것 같던데 여기 이렇게 과거의 잔재를 남겨 두고서는.
──그것이 그녀가 떠올린 마지막 생각이었다.
***
[Side: 나는 죽어서도 너를 지킬 테니]혁명군의 혁명은 성공해서는 안 된다. 데온은 현 황제의 비호 아래에 있으니까.
그렇다고 공작을 승리로 이끌 수도 없다. 공작은 데온을 죽이려 하니까.
혁명군도, 공작도 데온 하르트에게 해를 끼치려 드는 상황.
그래서 계산했다.
따각. 딱.
체스 말이 오간다. 시원스럽게 뻗은 뼈마디 굵은 손가락이 양측의 말을 잡고 번갈아 옮겼다.
속을 알 수 없는 녹안이 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말들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검은 말이 흰 말을 공격한다. 흰 말도 지지 않고 검은 말을 먹어 치운다. 검은 말이 흰 말을 쳐 내고 앉지만 이내 다른 흰 말이 밀어내고 다시 자리한다.
따악.
“체크메이트.”
수장이 죽었다.
크루엘은 죽을 자리에 놓인 흑색 킹을 집어 손 안에서 굴렸다. 생각에 잠긴 듯한 녹안이 전쟁이 끝난 체스판을 담았다.
이긴 쪽은 백이지만 체스판에 남은 말만 따져서는 흑이 더 유리하다. 운용 가능한 병력을 대다수 잃은 백과 달리 흑은 폰만 일부 잃었을 뿐이니까.
머리를 잃었지만 주요 전력이 살아 있는 혁명군.
병력을 잃었지만 머리가 살아 있는 공작.
둘을 맞붙여야 한다. 아예 자멸해 버리는 편이 가장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테니 되도록 타격이 아주 크도록 계산하는 쪽이 낫겠지. 제 몸 추스르기에도 바빠 데온에겐 시선도 주지 않는 상황이 되면 성공이다.
크루엘은 공작과의 심리전이라는 외줄 위에 올라탄 순간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언제 끊어져도 이상할 것 없는 목숨 줄인데, 뭘 믿고 데온 하르트가 자연사할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리겠는가.
그는 오늘만 살 것처럼 움직였고, 그렇기에 도리어 먼 미래를 염두에 두었다.
‘내가 죽은 이후에도 데온 그 아이가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크루엘 본인이 죽고 없는 미래를.
돌아가는 시대상을 보면 완전한 안전은 힘들 테니 최소한 아이의 앞길에 놓인 무수한 위험 중 일부라도 치워야 한다. 하여, 머리를 굴렸다.
마계 쪽은 손을 쓸 수 없으니 깔끔하게 시선을 뗀다. 제국에 눈을 두고, 아이의 가장 큰 위협을 찾았다.
‘공작과… 혁명군.’
공작 하나여도 골치 아플 판에, 혁명군까지.
암담함은 잠시였다. 다니엘은 혁명군이라는 하나의 단체를 이끄는 수장이고, 공작은 황제와 맞먹을 정도로 노련한 정치인이다. 정이나 믿음을 기반으로 한 약속 따위에 묶인 것이 아닌 각자의 이익을 위해 손을 잡은 사이라는 것.
계산은 금방 섰다.
‘혁명군 수장의 어머니가 몸이 안 좋다고 했었나.’
조사해 보니 각혈도 한다고…….
몸이 약한 동생이 떠올라 멈칫한 것도 잠시, 크루엘은 생각했다.
‘수장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른다 했고.’
본인의 부탁으로 그녀를 모시는 모든 혁명군이 입을 다물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것에도 한계가 있겠지. 언젠간 들킬 것이 분명하다.
그때 혁명군 수장이 받을 정신적 충격은 굳이 보지 않아도 뻔하니.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