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47
147. plaudite!(6)
[다니엘을 예의주시하도록. 장소는 상관없으니 그가 어디론가 희게 질려 들어가거나 나오면 즉시 내게 알리도록 해.]그때가 바로 그녀의 각혈을 알게 된 순간이 되겠지.
제정신일 리가 없다. 크루엘이 조사한 다니엘은 평소 그가 뒤집어쓴 감투에 걸맞게 이성적이었으니, 정신이 흔들리는 순간은 그때가 유일하다 봐도 될 것이다.
둘도 없는 기회임은 바보라도 알 터.
‘다만, 알게 되는 시기가 문제인데.’
다니엘의 행동을 유도하면 시기 정도는 이쪽에서 조정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공작이라는 눈이 있는 상황에서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크루엘은 위험을 감수하며 혁명군에 손을 뻗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로 마음먹었다.
[데온이 제국에 있을 때 연락이 오느냐, 자리를 비웠을 때 연락이 오느냐.]데온이 있을 때 연락 오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주목적은 혁명군과 공작을 맞붙이는 것이고, 부수적인 목적이 혁명군의 수장이 데온을 죽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저 두 전제는 후자를 좌우하는 조건에 속했다.
초연한 마음가짐과 달리, 하늘이 돕기라도 하는지 연락은 데온이 제국, 그것도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연회장에 있을 때 도착했다.
한바탕 사고 치고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각혈까지 한 동생을 복잡한 눈으로 보던 크루엘이 이내 희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데온에겐 미안하지만, 그래도 기회는 있을 때 잡아야 하니까.’
네 몸 상태가 엉망이기에 더 마음을 단단히 먹게 된다.
혁명군 수장이 네 목숨에 직접 손대지 못하게 할 생각이니 부디 이해해 주길.
쉬이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가서 데온에게 전해. 오늘만큼은 괜히 거리를 돌아다니지 말고 바로 집에 가라고.”
그 아이는 ‘그날’ 이후 내 말은 절대 듣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거리에 나가겠지.
데온보다 한발 빨리 움직여야 한다. 크루엘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서둘러 자리를 이동했다.
“저 아이… 저 사내 근처에서 축제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동쪽의 데이 거리를 언급하면 된다.”
“정말 그것만 하면 돈을 주시는 겁니까…?”
“그래.”
소식이 들어온 직후부터 혁명군 수장의 움직임은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있었다. 현재 그는 넋을 놓은 상태로 데이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지.
그와 데온이 마주치게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크루엘의 계획은 간단했다.
‘핵심은 넋이 나간 혁명군 수장에게 ‘곧 죽을 것 같은’ 누군가의 각혈을 보여 어머니와 겹쳐 보이게 하는 것.’
그래서 조급해지게 하는 것.
‘그가 혁명군을 만든 이유도 쇠약해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녀가 꿈꾸던 이상을 실제로 보여 주기 위해서…라고 했던가.’
이를 생각하면 조급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하지만 거사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가장 큰 조력자인 공작을 만나야 한다. 공작은 반대하겠지. 공작이 혁명군과 손을 잡은 이유는 지지를 위해서가 아닌 견제하기 위해서니까.
어쩌면 정신이 반쯤 나간 다니엘의 모습에 방심하고 오만한 성격을 드러내며 그를 누르려 들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공작은 오만하니까.’
크루엘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다.
그렇기에 장담한다. 공작의 약점은 오만이다.
오만은 방심을 이끌어 내니, 필시 그가 뒤집어쓰고 있던 가면에 금을 내고 틈을 보이겠지. 이를 눈치 빠른 혁명군 수장이 모를 리가 없다.
‘공작에게서 확실하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겠지.’
똑똑한 자이니 아무 피해 없이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금방 알 것이다.
이 뒤는 혁명군 수장의 몫이다. 하나 철저하게 그를 조사하여 성향을 파악한 크루엘은 그가 무슨 선택을 내릴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과감하게 일을 벌인 것이지만.
‘……그리고 ‘곧 죽을 것 같은 누군가의 각혈을 보여 주는 것’에서 ‘누군가’를 정하는 것이 부수적인 목적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겠지.’
그 ‘누군가’가 데온이 되면 가장 좋고, 그렇지 않다면 미리 봐 둔 후보를 보내면 된다.
굳이 데온을 선택한 이유라 하면… 크루엘은 다니엘이 생각보다 물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어머니의 각혈을 본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마주친다면, 제아무리 상대가 데온 하르트라 해도 그날만큼은 목숨을 거두지 못할 테지.’
혁명군이라는 단체가 아예 데온 하르트를 노리지 못하게 할 수는 없으니 그곳의 수장 개인을 공략한다.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지만, 그때까지만이라도 아이를 노리지 못하게 해 두는 편이 나을 테니까.
원래 이런 작은 것이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법이다.
[아예 아이가 각혈하는 모습이 뇌리에 깊게 남아 그 뒤로 다니엘 개인이 직접 데온의 목숨을 앗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가장 좋고.] [최소한 그날 이후로 마주쳤을 때, 죽이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딱 패닉이 온 당일만 무사히 보내 주고 그 뒤로 마주쳤을 때 어떤 미련도 없이 죽이려 드는 것이 가장 안 좋은 가정인데…….]마지막의 경우는 헛수고한 셈이 되지만, 총체적으로 봤을 때 시도해서 나쁠 것은 없다.
무엇보다 실패를 가정한 마지막의 경우도 결국 데온 그 아이는 무사히 귀환하게 될 테니까.
그래서 시도했다.
“쿨럭.”
“……?!”
몇 차례 행인들에게 돈을 줘 가며 아이의 걸음을 유도한 끝에, 드디어 혁명군 수장과 경로가 겹쳤다. 크루엘은 간신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둘이 스쳐 지나갈 때를 노려 데온의 등에 적당한 충격을 주며 그에게 밀쳤다.
데온의 입에서 울컥 피가 나오고, 당황한 다니엘이 허둥거리다 이내 데온을 들쳐 멘다.
크루엘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등을 돌렸다.
‘이걸로 씨앗은 다 뿌렸다.’
피를 토한 동생이 조금 걱정되지만, 혁명군 수장의 태도를 봐선 오히려 살리기 위해 날뛸 테니 괜찮겠지. 치료도 비밀리에 할 테고, 혹여 들켜 동료들이 그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이 벌어진다 해도 아이는 끝내 살아 돌아올 것이다.
재차 말했다시피 이성이 흐려진 수장은 오늘만큼은 데온을 죽일 수 없고, 어머니의 각혈을 숨겼다는 죄가 있는 동료들은 결국 그에게 져 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돌아가자.’
씨앗의 성장 여부는 뿌린 자의 생사와 연관되지 않으니, 만일 크루엘 하르트가 죽고 없다 해도 알아서 발아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돌아가자.
‘일상을 이어 가야지.’
공작이 아직 아이의 목숨을 노리고 있으니.
이제 다시 현실을 보고 살아갈 때다.
***
“마지막 방파제가 무너졌다!”
재앙의 눈가리개가 사라졌다! 곧 재앙이 눈을 뜰 거야!
산속 작은 마을의 깊은 밤, 하늘의 별을 보고 있던 노망난 주술사 할머니가 갑작스레 소리쳤다. 조금만 진정하라는 손녀의 말도 무시하고 쩌렁쩌렁하게 터져 나온 외침이 결국 마을 사람들의 잠을 다 깨운 듯, 집집마다 불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눈을 비비며 나온다. 미미한 짜증이 담긴 시선이 설명을 요하듯 할머니를 모시던 손녀, 란을 향했다.
“마을을 옮겨야 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번만큼은 할머니가 옳아요. 서둘러 이사를 가야겠습니다.”
오밤중에 너무 갑작스러운 발언이었다.
그러나 이미 8년 전쟁 때 한 차례 주술사 할머니의 의견에 따라 마을을 옮기며 목숨을 보전한 적이 있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그게 무슨 개소리냐 따지는 대신 란의 표정을 살폈다.
할머니를 다독이며 밤하늘의 별을 살피는 그녀의 얼굴은 다소 창백하게 물들어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에스페라네스!”
“언제 이동해야 하나요?”
“일주일 이내!”
당장 내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다.
“마을 단위로 이동하기엔 시간이 부족한데요…. 8년 전쟁 때처럼 흔적도 지워야 하지 않습니까? 준비할 시간을 조금 더 주시면….”
“안 돼! 재앙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가장 먼저 이곳에 올 거야!”
“하지만…….”
“예끼! 안 돼!”
“잠시, 모두 진정하세요.”
다소 과열되는 듯한 분위기를 진정시킨 이는 역시나 란이었다.
그녀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곤란하고 떨떠름한 기색을 보이는 마을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확실히 갑작스럽긴 하지요. 3일을 덧붙여 열흘의 시간이라면 괜찮으시겠습니까?”
“란아!”
“열흘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을 확인하고 불퉁한 기색의 할머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란아, 하지만….”
“만약 마주친다 해도 활동하기 전에 오는 것이니 누군가 죽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래, 너도 무슨 생각이 있겠지…….”
납득한 듯 할머니의 기세도 줄어들었다. 한밤중에 소리치느라 진이 다 빠진 듯한 할머니를 부축하며 란은 마을 사람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늦은 밤에 실례 많았습니다. 저희도 이만 들어갈 테니 여러분들도 어서 들어가 쉬세요.”
***
무슨 수를 쓴 건지 산국의 왕이 타 소왕국의 군주를 설득해 속국으로 두었다고 한다. 르웨체 왕국 역시 질세라 물자 지원과 보호를 약속하며 태혼국을 제 휘하에 두었다고…….
‘이로써 인간계의 왕국은 4개로 줄어들었군.’
제국, 산국, 르웨체, 에스페라네스.
인간들끼리 싸우는 것을 환영하는 마족들 입장에서는 피를 보지 않고 세력이 합쳐진 것이니 썩 달갑지 않으리라. 아마 저 두 왕국의 군주들은 그걸 노렸을 것이다.
“집사님, 모든 층의 청소가 끝났습니다.”
“수고했네. 내가 한번 돌아볼 테니 자네는 들어가서 쉬게.”
레멤베르는 복도를 걸으며 생각을 이어갔다.
현재 제국은 다른 의미로 시끄러운 상황이다. 명예 후작이자 제국의 세 번째 영웅인 데온 하르트가 실종된 것이다.
배신인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신변에 위험이 생긴 것인지, 어느 것 하나 쉽게 확신할 수 없어 제국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
그 탓에 지금처럼,
“집사님.”
“아, 리엔 경. 무슨 일이십니까?”
“집사님도… 정말 주군의 행방을 모르시는 겁니까?”
“리엔 경도 모르는 것을 이 늙은이가 어찌 알겠습니까.”
이렇게 제게 데온 하르트의 행방을 물어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낱 저택을 관리하는 집사가 주종 관계를 맺은 기사도 모르는 행방을 어찌 알겠나.
그럼에도 특유의 의뭉스러운 분위기 탓인지 계속해서 물어 오는 사람들을 두고, 레멤베르는 그저 침묵했다.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던 단이 조심스럽게 발언했다.
“기사단마저 두고 사라지셨으니… 역시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닐까요?”
“……그놈들이라면 나라도 버렸을 것 같으니 신빙성이 없는데.”
리엔의 말을 들은 레멤베르가 귀여운 손주의 앙탈을 보듯 인자한 미소를 머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
허를 찔린 듯 리엔이 입을 다물었다.
겉으로는 데온 하르트가 질색하며 밀어내는 것 같아도 이해할 수 없는 신뢰와 애정이 깔려 있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물론 애정보다는 신뢰가 더 큰 듯하지만.’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주군이 실종된 탓인지 최근 들어 분위기가 축 처진 살인귀 기사단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평소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것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당장 저렇게 비 맞은 개처럼 축 처져 있는 것을 보니 그건 그것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 역시 정이 든 모양이야.’
……그보다 주군은 정말 어디에 계신 걸까.
저들을 보고 있자면 저 역시 기분이 축 가라앉는 것 같아 리엔은 부러 다른 생각을 하며 기사단원들에게서 눈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