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49
149. Cruel Truth, Cruel Fate(2)
0군단장이 잠시 멈췄던 걸음을 다시 뗀다.
고열에 시달리고 계신다는 소문이 사실인 듯 문지기들은 저를 스쳐 지나가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흠칫 몸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도서관보다는 방에 들어가서 쉬셔야 할 것 같은데…….’
닿지 못한 문지기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데온 하르트는 도서관에 발을 들였다.
한쪽에 있던 사서가 그를 발견하고 벌떡 일어섰으나, 데온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그를 지나쳐 익숙한 책장 앞에 섰다.
목표로 한 책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현 제국의 영웅들에 관한 정보] [저자: 이델리아, 드벨라니아]이델리아와 드벨라니아에게 크루엘에 관한 정보를 내놓으라 닦달했다. 없으면 긁어모아서라도 내놓으라고 답지 않게 억지를 부렸지. 범위가 방대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으나 그마저도 억지를 부려 시간을 단축했다.
둘이 정보를 모으기 위해 움직이는 동안 빈 시간을 가만히 앉아서 보낼 생각은 없다.
데온은 손을 뻗어 책을 꺼내 들었다. 앞의 내용은 마구잡이로 넘기고 크루엘의 초상화가 나오는 부분에서 멈춘다. 익숙한 녹안과 눈이 마주쳤다.
[(전)네 번째 영웅. 크루엘 하르트.(현재 사망. 정보 소멸 예정.)] [세 번째 영웅 데온 하르트와 혈연관계로 알려짐. 황제의 사람이 아닌 그와 대립하는 공작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그래, 여기서 책을 덮었었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데온은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다음 내용을 읽었다.
[…공작의 명령을 왜곡하거나 상쇄시키는 등, 그를 충실히 따른다기보다는 억제하는 듯한 행동을 보임.]공작이 크루엘에게 주요 정보 처리를 맡겼을 리 없으니 내리는 명령이라고 해 봤자 누군가를 죽이거나 매장하는 부류의 명령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작이 주로 죽이고자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열로 인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으나, 데온은 그 상황에서도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하.”
그저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아하하하하!!”
미칠 것 같다.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어릴 적, 크루엘이 영특하다 칭찬했던 머리가 이리도 원망스러울 줄이야.
차라리 크루엘이 살아 있을 때 이를 읽었다면 설마 그 상대가 나겠느냐며 웃어넘길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찝찝함을 못내 이겨 조사를 시작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해하고자 명령을 내리는 공작과, 그 사이에서 거름망 역할을 하는 크루엘.
그리고 크루엘은 나를 감싸고 죽었으니, 첫 단서로 인해 등장한 의혹에 도장을 쾅 찍어 버린 셈이다.
이보다 명확한 증거는 없을 터.
울컥울컥 치솟는 피를 가감 없이 토해 내며 데온은 미친 듯이 웃었다.
나였어.
너는 나를 지키고 있었던 거야.
귀족파 수장의 입장에서 가장 거슬리는 인간이 누구겠는가.
황제의 애검 중 하나이자 그의 충실한 개라고 알려져 있으며, 드러내 놓고 활동하는 다른 영웅들과 달리 물밑에서 움직이는 탓에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려운 인간.
바로 데온 하르트가 아니던가.
“그럼 왜 그랬지?”
십여 년간 쌓아 온 습관이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을 외면하려 든다. 이를 의식적으로 멈추자 사고의 방향은 역으로 크루엘을 원망하길 택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었으니까.
“왜 날 전쟁터에 내보냈어?”
그딴 식으로 죽을 거면 차라리 날 버리지 말든가. 날 전쟁터에 내보낼 땐 언제고 왜 이제 와 지키려 드는가.
뒤늦게 죄책감이라도 들었나? 그렇다면 난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가증스러운 위선자의 스스로 죄책감을 덜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일 테니.
“데몬.”
“……마왕님.”
조금 멍한 기분으로 고개를 들었다.
분노와 좌절감, 죄책감에 더해 온갖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뒤섞인 데온의 얼굴을 본 마왕이 몸 상태를 파악하듯 시선을 천천히 아래로 내린다. 식은땀에 젖은 옷도 가관이지만 아무것도 신지 않은 하얀 발이 시야에 들어와 그는 그만 낮게 혀를 찼다.
그것도 잠시, 아무것도 못 보았다는 듯 말을 꺼냈지만.
“크루엘 하르트에 관한 정보를 요구했다는 것은 들었어.”
“…….”
“애들이 범위가 방대하다며 아연실색을 하던데….”
역안이 짙은 채도를 띠는 붉은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정말 원하는 범위를 특정할 수 없어서 그렇게 말한 거야, 아니면 그들에게는 원하는 범위를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야?”
“…….”
“후자구나.”
하긴, 크루엘 하르트는 제국의 세 번째 영웅인 ‘데온 하르트’와도 연관이 있으니 말을 골라서 해야 했겠지. 자칫하면 0군단장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들킬 테니까.
열이 올라 제대로 된 사고를 하기도 어려울 텐데, 그 와중에 해도 될 말과 안 될 말을 구분했다는 것이 용하다.
새삼스러운 눈으로 데온을 본 것도 잠시, 기껏 살린 환자를 이렇게 방치해 둘 수는 없어 마왕은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한 미소를 부드럽게 그렸다.
“그럼 내게 말해. 나라면 괜찮잖아?”
“…….”
“도와줄게.”
마왕은 그의 정체를 알고 감춰 주는 역할이니 걸릴 것도 없을 터.
조금 안심이 된 탓인지 기어이 열에 이성이 먹힌 데온이 비틀비틀 마왕에게 다가간다.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매달리듯 마왕의 멱살을 잡고 더듬더듬 입을 연다.
어린아이처럼 완성되지 못한 문장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왔다.
“그러니까, 크루엘이 나 대신 죽었는데… 분명, 사이가 나빴는데…….”
“……아하.”
기어이 횡설수설 내뱉어진 말을 주워 조합한 마왕이 무슨 상황인지 깨닫고 낮은 탄성을 뱉었다.
“알겠어. 조사해 볼게.”
“감사….”
“그러니까 일단은 좀 자자.”
직접 닿은 것도 아니고 고작 멱살 잡힌 것뿐인데 피부에 닿는 공기가 뜨겁다. 이 상태로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온 거지? 그것도 맨발로.
손끝으로 데온의 이마를 툭 건드렸다. 스르륵 눈을 감고 쓰러지는 그를 마법으로 들어 올리고 나서야 마왕은 본인의 마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상기했다.
‘예전에는 이 정도 마법은 써도 느낌이 전혀 없었는데.’
이제는 조금이나마 마력이 줄어드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도 이미 쓴 마법, 데온 하르트를 방에 돌려놓는 것까지만 쓰고 자제하도록 하자고 생각하며 다시 눈을 굴려 불쌍한 인간을 보았다.
잠이 들었음에도 열에 시달리는 듯 희미하게 미간을 좁히고 달뜬 숨을 몰아쉬는 모습.
“데온 하르트.”
잠든 것을 확인하듯 그의 이름을 나직이 속삭였다.
“인간이 언제 타락하는지 아니?”
그는 마왕으로서 오랜 시간을 살며 수많은 인간들의 타락을 보았다.
아, 그래. ‘타락’이라기보다는 ‘망가진다’라고 말해야 옳겠지.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란다.”
정확하게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궁지에 몰리고 몰려서 숨조차 쉬기 힘들 때, 인간은 철저히 망가지고 타락한다. 그만큼 섬뜩하고 무서운 인간은 또 없을 테지.
책을 읽어 주듯 잔인한 사실을 조곤조곤 속삭였다.
“너는 널 진심으로 위하는 유일한 인간을 잃었지.”
아마 그와 같은 인간은 두 번 다시 구하기 힘들 것이다.
어느 누가 타인을 위해 제 모든 것을 바치려 들까.
“불쌍한 데온.”
마왕은 소리 없이 웃었다.
“이젠 정말 혼자구나.”
***
[데몬에게 정보를 가져다주기 전에, 내게 먼저 가져와.]이델리아와 드벨라니아에게서 조사한 정보를 중간에서 받아 들고 적당히 정리한 마왕은 모든 것을 요약한 단 한 장의 서류만 든 채 데온 하르트를 찾았다.
데온 하르트가 정확하게 무엇에 관한 정보를 원하는지 알고 있기에 방 안의 모두를 물린 그는 망설임 없이 손에 든 서류를 데온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드벨라니아와 이델리아가 구해 온 정보는 양이 너무 방대해서 네가 찾기 힘들 것 같아 내가 요약해 봤어. 이게 네가 원하던 정보지?”
“…….”
침대에 앉아 마왕을 잠시 쳐다본 데온이 무릎 위의 종이를 집어 든다. 벌겋게 충혈된 눈이 글자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첫 글자를 읽었을 때까지만 해도 조금 충혈되었을 뿐, 그럭저럭 괜찮았던 눈 흰자가 뒤로 갈수록 실핏줄이 서고, 눈가가 붉어진다. 슬퍼서일까.
……아니, 이건 분노였다.
“하, 하하….”
스스로를 향한, 지독한 살의.
8년 전쟁 당시 본래 크루엘이 참전하기로 되어 있었단다. 그것이 중간에 서류가 바뀌어 내가 가게 되었고.
“내가…….”
원인은 공작. 그가 서류에 손을 대 나를 보냈다.
내 손으로 직접 죽인 가족들은 나를 데려오기 위해 전쟁 초반에 황궁에 몇 번이고 정정 요청 서류를 보내고, 기다리다 못해 사람까지 보냈으나 전부 묵묵부답이라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고.
물론 가문의 연락을 중간에 끊어 버린 사람 역시 공작이었댄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죽여 버리고 싶다.
죽어 버리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이 쓸모없는 몸뚱이를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내몰고 싶었으나, 크루엘이 스스로를 희생해 가며 구해 준 목숨을 쉽사리 끊을 수도 없어서.
감정을 삭이기 위해 눈을 감은 데온 하르트는 끝내 버티지 못하고 마왕 앞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손에 잡히는 물건을 마구잡이로 바닥에 내던졌다.
와장창!
개중 던진 화분이 산산이 조각나며 파편이 튀어 오른다. 데온은 제 이불 위까지 올라온 큼직한 파편 한 조각을 물끄러미 보다가 손을 뻗었다.
그것을 잡으려던 시도는 손목을 잡아 제지한 마왕의 행동에 불발되었다.
덕분에 조금 정신을 차린 듯 제 손목을 잡은 손을 따라 시선을 올린 데온이 마왕과 눈을 마주친다. 붉은 눈동자에는 억눌린 살의와 분노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황제는, 이를 알고 있었습니까?”
흐음. 마왕은 손을 놓고 팔짱을 끼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일부러 ‘공작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빼고 주긴 했다만, 정말 묻지 않는군. 하긴, 지금은 그걸 생각할 여유가 없겠지.
뭐, 이쪽 입장에서는 편하고 좋으니 상관없지만.
“논공행상까지 했는데 모를 리가.”
“하하.”
데온은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렸다.
크루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다.
미리 ‘벽’을 무너뜨려 놓지 않았다면 필시 지금의 정보를 얻었을 때 한계에 다다른 벽이 무너져 내리며 지금보다 더 막대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테니까.
“쿨럭.”
당장 미리 벽을 무너뜨리고 간신히 수습한 지금의 저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진실이고 스트레스인데, 벽이 무너지며 밀려온 것과 합쳐졌다면 과연 어땠을까.
‘벽이 무너진 것만으로도 생사를 넘나들었지.’
두말할 것도 없이 분명 죽었으리라.
‘너는 죽어서도 나를 지키는구나.’
알면 알수록 나를 향한 살의가 커지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네가 살린 목숨, 쉽게 버릴 수도 없는데.
분노가 극에 달하니 오히려 차분해진다. 데온은 다시 물건을 던지거나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대신 조용히 고개를 들어 허공을 보았다.
‘형.’
미안해.
제겐 사과할 자격이 없고, 고작 미안하단 말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도 알지만, 그 말 외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젠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데.’
정말이지.
‘죽고 싶다.’
억눌린 감정이 피로 치환된 듯 기어이 비릿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울컥울컥 솟구친다. 생각 외로 많은 양에 마왕이 ‘이런…’ 하고 혀를 차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데온은 의식을 잠식하는 어둠에 순순히 몸을 맡겼다.
***
오해와 착각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깨졌다.
***
데온 하르트는 의식을 되찾기 무섭게 마왕부터 찾았다.
언젠가 사직서를 냈을 때처럼 비장하게 집무실 책상 앞에 선 데온을 조용히 올려다본 마왕이 근처의 통신석을 집어 든다. 몇 번의 신호가 가고, 누군가 통신을 받았다.
“벤, 당장 집무실 문 앞으로 와.”
– 네? 어디 다치셨습니까?!
“아니. 그리고 집무실이 아니라 ‘집무실 문 앞’이니 헷갈리지 말도록. 거기서 부를 때까지 대기하고 있어.”
영문 모를 명령에 의아한 기색이 통신기 너머까지 선명히 전해졌으나, 신경 써야 할 상대는 그가 아니었기에 마왕은 무시하고 끊었다.
통신석을 내려놓은 그가 다시 고개를 들어 데온에게 시선을 둔다. 눈이 마주치고, 역안이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꺼풀 아래로 숨어들었다.
“그럼 이제 물을게.”
“…….”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뭐야?”
몸도 좋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