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54
154. 인류의 배신자 데온 하르트(2)
이전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 마왕군이 본격적으로 제국의 수도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총지휘관은 0군단장 데몬 아루트.
이 소식을 들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국의 도시 하나가 마왕군에게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던가.
[결국 영웅이 되었구나. 정말 독해. 형제가 나란히 영웅이 되다니, 감탄만 나오는군.] [황송합니다.] [지금껏 공식 영웅이 된 자들은 짐에게서 원하는 것을 하나씩 받아갔다. 그대라고 예외로 둘 수는 없겠지. 바라는 것이 있는가?]우습게도.
[없다면 적당한 작위와 돈을….] [청이 있습니다.]황제는 데온 하르트가 아닌 크루엘 하르트를 떠올리고 말았다.
가문의 사람들을 눈앞에서 몰살한 상대를 끝내 미워하지 못하고 품길 택한 어리석은 인간의 발언이 머릿속에서 생생히 재생된다. 황제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폐하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감히 짐작하고 있습니다. 공작의 사람이니 경계하고 계실 테지요. 경계하셔도 좋습니다. 믿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아니, 저는 명백한 공작의 사람이니 믿지 않으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어울리지 않게 잡설이 길군. 청이 무엇이지?]제국의 네 번째 영웅이 탄생한 날, 황제를 독대하는 자리에서.
[이전 세 번째 영웅의 청을 들어주셨던 그때처럼, 제가 데온 그 아이의 눈을 가리는 것을 방관하여주시길… 감히 청합니다.] […….] [폐하께도 이득인 청일 겁니다.]피해자는 가해자를 위해 방관자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졸지에 웃을 수 없는 희극 속 한 등장인물 역을 맡은 황제는 크루엘 하르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채고 말았다.
데온 하르트가 진실을 알 수 없도록 눈을 가리려는 것이다. 죄 없는 가족을 죽인 죄책감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을 정도로 지독할 테니.
‘그렇게 되면 본인의 목숨이 노려진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텐데.’
스스로를 미끼로 내세우려는 것인가.
가족을 증오하는 데온 하르트가 크루엘 하르트의 목을 노리는 것에 매몰되어 진실에 의혹을 품을 틈도 없도록.
사랑하는 가족의 손에 목이 노려지는 기분은 그야말로 끔찍할 것이 분명함에도, 크루엘 하르트는 제 모든 것을 바쳐 동생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
묘했다. 이렇게까지 희생적인 사람의 이야기는 책 속에서나 나오는 먼 곳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일까, 황제는 스스로가 ‘하르트’에 약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데온 하르트에게 그랬던 것처럼 답지 않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그대의 말대로 짐에겐 이득인 요청이군. 차라리 그것을 ‘제안’으로 내세우고, ‘바라는 것’은 따로 요구하지 그랬나.] [그것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지독하군.]기껏 자비를 베풀었는데, 돌아온 답은 지독하다.
[좋다. 그대의 청을 받아들이지. 다만 그것만으로는 영웅의 이름값에 턱없이 부족하니 재물을 추가로 주겠다. 이전까지의 다른 영웅들이 받았던 재물의 두 배면 되겠군.] [재물은 필요치 않.] [또한 짐에겐 이득인 요청. 짐 역시 이득이 손해로 바뀌지 않는 한, 데온 하르트의 눈을 가리는 것을 돕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 없다.]담담히 인사를 내쳤다.
[인사하지 말고 당당하게 받아가라. 짐이 그대에게 주기로 한 것 중, 그대가 허리를 굽혀 받아갈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짐은 그대가 청하지 않아도 데온 하르트의 눈을 가릴 생각이었고, 재물은 그대에게 작위를 수여하지 않은 것에 대한 대가다. 그대가 본인 입으로 스스로를 공작의 사람이라 칭하고 경계하라 했으니 쉬이 작위를 내릴 수는 없지 않나.]그러고 보니 크루엘 하르트는 ‘방관하는 것’을 청하는 대신 ‘눈을 가려주는 것’으로 청할 수도 있었다. 멍청한 자가 아니니 그 선택지를 모르진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굳이 손해를 감수하며 ‘방관’을 택한 이유라면….
‘……짐을 질책하는 것이군.’
황제의 방관으로 하르트가의 참사가 벌어진 것이니.
이렇게라도 은근히 돌려 먹이는 것이다. 둔한 사람이라면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갔을 정도로 정중하고 은근하긴 했지만.
굳이 짚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모른 척 넘어갔다.
[……결국 짐은 그대에게 무언가 준 게 없는 셈이군. 정녕 그것 외에 바라는 것이 없는가.]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줄곧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던 무표정 위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미소만큼이나 희미한 온기를 담은 녹안과 마주한 황제는 더 말하려던 것을 멈추고 한숨을 삼키며 손을 내저었다.
[짐은 분명 기회를 주었다. 그것을 걷어찬 것은 그대이니,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 없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지. 물러가라.]그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고 시간 또한 상당히 지났으나 기억만큼은 선명하다.
아마 머리로만 알고 있던, 제아무리 황제라 해도 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몸소 겪게 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결국 그대의 노력은 실패하고 말았군.’
데온 하르트가 진실을 알아버렸다.
그나마 당장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대신 복수의 대상을 정하고 돌진한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적어도 복수를 이루기 전까진 죽지 않을 테니.
그는 인류의 배신자라는 오명을 기꺼이 뒤집어쓰고 마계의 편에 서서 제국을 향해 검을 겨눴다. 복수 대상은 필시 공작과 황제.
‘귀찮게 되었다만… 적어도 데온 하르트가 당장 죽지 않게 되었으니 마지막까지 타인을 위하다 간 그대에게 예우는 다한 셈이겠지.’
데온 하르트가 저를 찾아와 알고 있었느냐 따진 순간, 황제는 알 수밖에 없었다.
크루엘 하르트가 죽었다. 그것도 데온 하르트를 위하다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반쯤 미쳐서 온 것이리라.
그래서였다. 같잖은 변덕을 부린 것은.
‘황제로서는 어리석은 행동이었지.’
그도 안다. 하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로지 타인을 위하다 간 사람에게 그에 걸맞은 경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을 어찌할까.
어쩌면 살아있을 때 주지 못한 패배감을 이렇게라도 해소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고, 크루엘을 죽인 원흉을 눈치챘기에 이후 있을 일을 예견하여 미리 사과를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봤자 결국은 변덕이지만.’
혹자는 변덕이라는 단어가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놀랄지도 모르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새삼스러울 것 없다.
황제는 그 자체만으로도 모순적인 사람이니까.
어울리지 않는 황제의 자리에 맞춰 스스로를 깎아내고 구긴 사람이다. 그 탓에 ‘황제’로서의 그와 ‘에도아르도 데세르트’로서의 그의 간극은 상당했다.
황관을 쓰고 군주의 망토를 두른다 한들 그것이 ‘진정한 황제’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황제의 자리에 맞춰 말투를 바꾸고 행동을 바로 한다 해도 결국 그는 ‘에도아르도 데세르트’이기에 결정적인 순간에는 불쑥불쑥 본성이 이성을 누르곤 했다.
그것이 모순을 낳고, 변덕을 부르니.
‘변덕에 비하면 대가가 지나치게 크지만.’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어쩌랴. 후회할 생각 따윈 없으니 수습을 위해 움직여야지.
도시 하나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검을 챙겼다. 아마 귀빈의 방문 소식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명령 하달이 수월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 근처로 이동하고 있었겠지.
……‘귀빈의 방문 소식’만 아니었다면.
“……그래서.”
원형의 화려한 탁상 앞에 앉아 왼손등을 만지작거리던 황제가 황금빛 눈을 굴려 저를 찾아온 두 귀빈들을 보았다.
원형의 탁상은 동등한 위치를 뜻한다. 황제가 앉는 자리에 이 탁자가 놓이는 순간은 손에 꼽힐 정도이니.
“산국의 왕과 르웨체의 왕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신지.”
원탁에 앉는 대상은 한 나라의 군주임이 당연했다.
황제는 말을 고르는 듯 서로 눈을 마주치는 두 왕들을 살피며 느긋하게 머릿속에서 몇 가지 정보를 떠올렸다. 산국과 르웨체는 동맹국. 두 동맹국이 저를 찾아왔으니 그 목적이야 뻔하다.
‘동맹 제의인가. 영리하군.’
산국의 왕이 영민한 두뇌 하나로 왕위에 올랐다고 듣긴 했는데, 확실히 상황 파악이 빠른 모양이다.
제국과 르웨체는 마계를 상대하기 위해 동맹을 맺는 것이 좋다. 아니, 맺을 수밖에 없다. 제국은 군사력이 뛰어나고 르웨체는 물자가 넘쳐나는 부유한 왕국이니까.
하지만 산국은?
‘지도자의 머리. 그것밖에 없지.’
가만히 있어도 언젠가 맺어질 르웨체와 제국의 동맹이다. 산국의 입장에서는 그 전에 먼저 나서서 맺어주고 생색을 내는 편이 나을 테지. 마침 르웨체와는 동맹국이기도 하니.
가만히 있어도 동맹국인 르웨체를 통해 연결이 되었을 테지만, 그것보다는 직접 나서서 맺어주고 얻는 발언권이 더 강할 것은 당연하다.
르웨체의 물자, 제국의 군사력. 거기에 얹혀가는 산국.
현 상황에 대한 파악과 모든 계산을 마친 황제가 내심 산국의 왕의 빠른 판단력에 감탄하고 있을 때, 르웨체의 왕과 눈빛 교환을 마친 그녀가 보일 듯 말 듯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황제를 보았다.
“산국의 왕이자 르웨체의 동맹국으로서, 한 가지 제의를 하려 합니다.”
“예상은 된다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들어보지. 무엇인가.”
“……동맹을 맺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역시나.
황제는 곧장 대답하는 대신 일단 들어보겠다는 듯 자세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녀도 바로 답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던 듯,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설득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 전쟁은 마계와 인간계의 전쟁이지, 마계와 제국의 전쟁이 아닙니다. 마계를 상대함에 있어 제국이 가장 앞에 서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제국 홀로 마계를 상대하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이는 한 나라를 책임지는 왕이자 한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이니. 산국의 왕은 제국의 상황을 돌려 말하며 빙긋 웃었다.
마계와 전쟁이 있기 전, 황제는 정복 전쟁을 벌이며 모든 왕국의 경계와 분노를 샀다.
그 괘씸한 행태에 각 나라의 왕들이 쉽사리 나서 돕지 않고 있는 상황. 그 와중에 도시 하나까지 마왕군의 손에 넘어갔으니 현 제국에는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굽힐 필요가 없지.’
보통 동맹은 먼저 제의한 쪽이 굽히고 들어가는 편이지만, 상황은 이쪽이 유리하다.
“최대한 많은 나라들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인간계의 모든 왕국이 힘을 합치는 것만큼 이상적인 것은 없지만 그것으로는 힘드니 가능한 많은 나라를 모으는 수밖에요.”
“최근에 움직임을 보인 이유가 그거였나보군.”
산국의 왕, 연화는 대답 대신 빙긋 웃었다.
얼마 전 산국과 르웨체가 각각 다른 작은 왕국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집어삼켰다는 것을 황제 또한 들었을 것이다. 특히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몰라도 산국은 그 짧은 시간에 속국으로 둔 왕국만 셋이 되었다는 것 또한 알고 있겠지.
덕분에 현재 인간계의 주된 왕국은 싸그리 정리되어 네 개만 남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괜히 제국의 군사력과 르웨체의 물자의 시너지를 말하는 대신 ‘마계와 인간계의 전쟁’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 아니란 말이지.’
동맹 제의는 가볍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맹을 맺는 과정에서, 혹은 맺더라도 그 안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교묘한 기싸움이 벌어지는데 국운을 책임지는 왕으로서 미리 철저한 준비를 하고 제의하는 것은 당연했다.
제국은 군사력, 르웨체는 물자라는 패를 내세울 수 있다. 그렇다면 산국은?
‘내세울 것이 없다면 만드는 수밖에.’
군사력도 평균, 각종 물자의 생산량도 평균. 그럼에도 산국은 언제부턴가 칭제하지 않은 남부의 제국이라 불렸다. 이유라고는 단 하나.
군주의 역량이 뛰어났으니까.
현재 산국은 왕 하나에게 비정상적일 정도로 의지하는 기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다행히 한 왕국은 왕위 다툼에서 즉위에 도움을 준 적이 있어서 설득이 쉬웠고…….’
다른 왕국은 적당히 겁을 주고 살살 구슬렸더니 금방 넘어왔으며, 또 다른 왕국은 약간의 협박을 곁들여 무릎을 꿇렸다.
그렇게 그녀는 산국이 내세울 수 있는 패를 만들었다.
태혼국 또한 속국으로 두려 했으나, 불안함을 느낀 건지 르웨체가 냉큼 채갔지.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적어도 맥아리 없이 눌리진 않겠어.’
앞서 인간계 내의 단합의 중요성도 말했으니 혹여 황제가 산국과 르웨체를 비교하며 산국을 눌러 우위를 점하려 들 가능성 또한 차단되었다.
어느 정도 동등해진 출발선에서, 그녀는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말했다.
“네. 산국과 르웨체, 제국이 동맹을 맺으면 인간계 왕국 중 3/4이 뭉치는 셈이 되니까요. 에스페라네스는 아주 작은 왕국인데다 본디 폐쇄적인 왕국이니 없는 셈 치면 사실상 모든 왕국이 뭉치는 셈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