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56
156. 인류의 배신자 데온 하르트(4)
성심성의껏 따르겠노라 했지만 불만이 없을 수가 없다.
분명 마왕은 인간계 점령에 욕심이 없었으니. 마왕의 인간계를 점령하겠다는 목적의 이유가 다름 아닌 데온 하르트 본인을 시험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하지만 장난감이 생겼으니 사용해봐야 하지 않겠어?’
마왕은 기껏 생긴 장난감을 보관함에 고이 넣어두고 구경하는 성격이 아니다. 장난감은 가지고 놀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
데온 하르트라는 장난감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
고민할 것도 없이 마왕은 ‘전쟁’을 떠올렸다.
‘최대 규모의 전쟁을 벌이자. 그 정도면 충분한 무대가 되겠지.’
의미도 없고 불필요한, 말 그대로 낭비뿐인 전쟁이기에 데온 하르트의 불만 또한 이해한다.
그렇기에 건방지다 할 수 있는 데온의 행동과 발언을 사직서 때와 같이 가벼운 투정으로 받아넘기는 것이고.
붉은 눈을 피하지 않은 채, 마왕이 씩 웃었다.
“그래, 다 쓸어버려야지.”
“…….”
데온의 미간이 한순간 일그러졌다.
그것도 잠시,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담담한 얼굴로 마왕에게서 눈을 떼고 다시 회의에 시선을 돌렸다. 전과 다른 차분하고 고압적인 시선이 군단장들을 찍어누르듯 훑었다.
“……제국은 군사력이 뛰어나고 르웨체는 물자가 풍부합니다. 확실히… 그냥 두면 귀찮아지겠죠. 적어도 제국이나 르웨체 둘 중 하나는 동맹에서 떨어트려 놓아야 뒤가 편할 겁니다. 이쪽은 제가 맡겠습니다.”
“무슨 방법이라도?”
“지난번 선전포고 때 사용되었던 마법,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까?”
……아하.
요즘 들어 자주 웃게 되는 것 같다.
무슨 의도인지 얼추 눈치챈 마왕이 끝내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웃었다.
“가능은 하지. 네가 경고하려고?”
“네.”
“확실히 정신적 타격은 제대로 먹히겠네. 잔인하기도 하지.”
아직 인류는 0군단장의 정체를 모른다.
마계에서도 ‘데몬 아루트’와 ‘데온 하르트’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아는 자들은 군단장들을 비롯한 데온과 친분이 있는 에드, 벤, 히엔 뿐.
이는 데온이 유도한 상황이었다.
[‘데온 하르트’가 ‘0군단장’이라는 사실은 아직 공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왜? 이미 네가 인류의 배신자라고 널리 알려진 상황이야. 황제가 네 정체를 비밀로 할 이유가 없어졌을 텐데?] [굳이 밝혀야 할 이유도 없죠. 인간들은 틈만 나면 서로 물고 뜯고 싸워서, 그렇게 비호하던 제가 배신한 것만으로도 이미 내부에서는 황제의 안목에 대한 의심의 말이 나오고 있을 겁니다.]그런 상황에서 제국의 세 번째 영웅이었던 데온 하르트가 0군단장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데온 하르트를 두고 마왕과 위태로운 게임을 벌였다는 사실을 밝힐 수 없는 황제로서는 그 중요한 사실을 긴 기간동안 모르고 있었던 아둔한 인간이 되어버린다.
안목에 대한 의심은 물론이요, 이를 빌미로 귀족들의 발언권이 상당히 강해질 터. 언제나 황권에 틈이 생기길 노리고 있던 이들이니 시국 같은 것을 따지긴커녕 오히려 현 시국마저 본인들의 권력을 위해 이용하려 들 것이다.
즉, 황제는 안팎으로 상당히 피곤해지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에게 칼자루를 쥐어주는 셈이 된다는 것을 모르진 않겠지만, 어쩌겠습니까.]선택의 여부가 없는 것을.
황제의 입장에서는 칼자루를 넘기는 한이 있어도 ‘동일인물’ 건이 밝혀지는 것을 미루는 편이 나았다.
[다만, 전쟁이 계속되면 마족들도 인간계의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될 테고, 알게 되는 이들도 늘겠죠.]적어도 의문을 가지는 자들이 생길 것이다.
‘데온 하르트’라는 제국의 세 번째 영웅이 인간계를 배신하고 마계의 편에 섰다는데, 도대체 누구지? 마왕성에 인간이라고는 ‘데몬 아루트’ 밖에 없는데.
설마.
데몬 아루트가 데온 하르트인 것은 아닐까.
[마족들에게까지 굳이 감출 필요는 없지만, 이 사실이 인간계에 넘어가지 않도록 철저한 통제가 필요합니다. 아는 자가 적을수록 비밀이 더 단단히 지켜진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니 되도록 때가 올 때까지 알리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비밀에 부칠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말끝이 늘어진다.
고민하듯 느려진 목소리가 여유를 가장하고 이어졌다.
[그냥 두면 알게 될만한 이들을 추려봐야겠군요. 정신없이 전투를 치르고 철저하게 통제될 일반 마족 병사들은 우선순위에서 미뤄두고…,] […….] [행동반경이 넓고 비교적 자유로운 군단장, 그것도 정보를 다루는 2군단장과 4군단장이라면 분명 알게 되겠군요. 아니, 이미 짐작하고 있으려나.] [……군단장들에겐 밝히자는 뜻이지?] [정확하게는 군단장들을 비롯한 저와 가까운 자들에겐 미리 알려두고 입단속을 시켜두는 겁니다.]이를테면 에드와 벤, 좀 더 양보해서 히엔 같은.
저를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자들이라면 인간계의 소식 몇 개만 흘러들어와도 눈치채는 것은 시간문제일 테니까. 어차피 밝혀질 사실, 데온은 일일이 숨기느라 신경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머리가 어느정도 돌아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완전히 딴판이군.
분리해둔 기억을 합친 여파로 성격이 불안정하게 오락가락하는 것과 별개로, 기억의 공백이 없어진 데온 하르트는 한층 더 예리하게 벼려져 있었다.
날카로운 분석에 입꼬리를 움찔한 것도 잠시, 마왕은 자연스럽게 웃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다만, 인간들이라고 그럴싸한 추측을 못하는 것은 아닌데 괜찮겠어?]데온 하르트가 인간계를 배신하고 마계로 갔다.
영웅씩이나 되던 인간이니 분명 한 자리 차지하고 있을 텐데, 그 어디에서도 그의 이름이 들리지 않는다?
당연히 의문을 품으리라.
[다양한 추측이 나오겠지. 그중에 진실이 없지는 않을 거야.]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니까요.] [……좋아!]그리하여 마왕과 데온은 그날 바로 군단장들과 에드, 벤, 히엔을 모아놓고 ‘데몬 아루트’가 ‘데온 하르트’라는 사실을 밝혔고….
생각 외로 다양한 반응을 볼 수 있었다.
2군단장과 4군단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몇몇은 살짝 놀라면서도 아예 예상을 못한 것은 아니라며 납득했다. 9군단장과 7군단장을 비롯한 일부는 아예 몰랐던 듯 크게 놀랐으나 이내 과연 데몬 님이시라며 시원하게 웃어넘겼다.
‘리리넬이 제일 독특한 반응이었지.’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며 ‘데몬교의 교주된 자가 이름 하나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니!’라고 외쳤던가.
아무튼, 이번 ‘마계가 보내는 경고’에서 데몬 아루트의 정체가 밝혀질 것이다. 데온 하르트가 배신했다는 충격조차 다 수습하지 못한 인류로서는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되겠지.
데온은 잔인하다며 너스레를 떠는 마왕을 감정 없는 얼굴로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 동맹 건은 넘기고 현재의 전투에 집중하죠. 아니,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계산보다 더 오래 걸렸던 성 함락을 떠올린 그가 끝내 짜증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씹어뱉듯 말을 뱉었다.
“인간계에서는 마족들이 본연의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도대체 그게 어느 정도인 겁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제약이 심한 것 같던데요.”
마력 사용의 제약이나 마족 고유 능력의 제약까지는 예상했으나, 설마하니 신체 능력까지 떨어질 줄은 몰랐다. 떨어진다 해도 이 정도로 차이가 심하게 날 줄은 몰랐지.
어쩐지 마계와 인간계를 오가며 전투를 치를 때, 각오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마족들을 상대하기 수월하더라니. 일반 마족 병사들이라 그런 건가 싶었는데 신체 능력에 제약이 걸려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아무리 졸개라 해도 마족인데 ‘영웅’도 아닌 일개 인간이 상대하기 수월하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음… 경계선이라는 비정상적인 통로로 나와서 그래.”
마왕이 진정하라는 듯 곤란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본래 경계선은 오로지 용사만을 위한 것이거든. 마족들에겐 그것을 사용할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어. 허가받지 않은 자가 멋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제약이 가해질 수밖에.”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디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까…. 마족들이 세계의 미움을 받는 종족이라는 건 알아?”
“……이유는 알 것 같네요.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아서 그런 겁니까?”
“뭐… 그렇지.”
자리에 앉아 묵묵히 대화를 지켜보는 군단장들을 힐긋 본 그가 재차 데온을 눈에 담았다.
마왕은 세계가 낳은 실수이자 오류고, 마족은 그로부터 탄생한 종족이다. 세계에게 있어 눈엣가시일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말할 필요는 없겠지. 마왕은 천천히 말을 골랐다.
“경계선은 그런 눈엣가시 같은 종족을 몰살시킬 존재의 이동을 위한 것이지. 그런데 역으로 마족들이 인간계에 들어와 가장 아끼는 종족들을 몰살하면 어떻겠어. 아니 그 전에, 마왕이 인간계에 나오게 된다면?”
“…….”
“경계선은 결국 통로야. 들어오는 것이 가능하다면 나가는 것 역시 당연히 가능하지. 모든 마족들의 이동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으니 제약을 가하는 거야. 인간계에서 쉽게 날뛰지 못하도록.”
“……그렇다면 마왕님도 인간계에서는….”
“난 경계선을 통해서는 아예 인간계에 나가지 못해. 세계가 남은 모든 힘을 나를 막는데 사용했거든.”
마왕을 포함한 모든 마족들이 경계선을 이용하지 못하게 할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한 세계는 빠른 판단을 내렸다. 마족들의 이동을 막는 대신 ‘제약’을 가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꿔 힘의 소비를 줄이고, 남은 모든 간섭력을 마왕에게 건 것이다.
마왕이야말로 인간계에 나가서는 안 되는 최고 위험인자니까.
‘덕분에 심연의 다른 종족들만 이득을 얻었지.’
본의 아니게 마족들이 최전선에서 세계의 이목을 끈 덕분에 다른 종족들은 제약에서 벗어났다.
세계에게 우호적인 요정족은 물론, 별다른 감정 없는 다른 종족들 모두 경계선을 통해 인간계에 나가도 별다른 제약이 가해지지 않는다. 오로지 마왕을 비롯한 마족만. 아, 마물도 조금 강하다 싶은 놈들은 제약에 걸리던가.
아무튼 비웃음만 나오는 조치였다.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나중에 따로 설명해주세요.”
이 자리에서 깊게 나눌 대화거리는 아니다.
주위의 군단장들을 뒤늦게 의식한 데온이 손을 내저어 대화의 중단을 표하고 마왕의 발언에서 주목해야 할 점을 짚었다.
“경계선이 비정상적인 통로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정상적인 통로는 뭡니까?”
“계약. 본래는 인간과의 계약을 통해 인간계로 나와야 하거든. 그것도 아예 제약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직후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다.
계약한 인간의 그릇에 따라 인간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힘의 총량이 정해진다고.
이대로 계약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가려는 것이 보여 데온이 급히 손을 들었다.
“잠시… 그 전에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경계선을 통해 인간계로 넘어갔을 때 걸린다는 제약의 범위가 정확히 어떻게 됩니까? 신체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알았고… 마력, 마법의 사용은요?”
“가능은 하지. 마계에 있을 때보다 두 배 더 많은 마력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다들 알아서 자제하는 편이고, 지금은 마법 금지령이 내려져서 아예 안 쓰지만.”
“하지만… 목숨이 위험해진다면 사용할만도 한데, 그런 경우도 보지 못해서….”
“……그래?”
시종일관 여유롭던 마왕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지식과 지혜는 기록을 통해 후손들에게 전해진다고 했던가… 제아무리 그렇다 한들 시간이 그쯤 흘렀으면 소실될만도 한데… 지독하네.”
맥이 끊길 듯하면서도 기어이 이어지는게 마치 바퀴벌레 같아.
이전에 있었던 선전포고에서 황제가 했던 말을 곱씹은 마왕이 가볍게 조소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데온, 이것도 네 계산에 넣어야겠어.”
“그게 무슨…?”
“진(陣)이야. 마족들의 마법을 억제하는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