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59
159. 인류의 배신자 데온 하르트(7)
“……세상의 모든 인큐버스를 내 눈앞에서 없애버리고 싶군.”
“저런.”
벤이 짐짓 안타깝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그러나 명백히 올라가 있는 입꼬리에 발끈한 에드가 그와 기싸움을 벌이기 시작하고, 눈앞에서 벌어진 희극을 웃음기 없이 보던 데온은 고개를 돌려 제게 다가온 히엔을 보았다.
마왕성의 정원사는 처음으로 정상적인 형태의 꽃을 한 송이 든 채 그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인간계의 꽃입니다!”
“……지금껏 마계의 꽃만 보여주고 선물하지 않았니? 왜 굳이?”
“최근… 유례없을 정도로 긴 시간을 마계에서만 머물고 계셔서요. 인간계가 그리우실 것 같아…….”
분명 꽃에는 관심이 없건만, 묘하게 시선을 끄는 꽃이다.
시선이 끌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쾌하지는 않은, 오히려 온화한 느낌이 드는 그런 꽃.
이게 인간계의 꽃이라고?
“어디서 구했니?”
“인간계 측 경계선 근처에 잘 다듬어진 작은 둔덕이 있더라고요. 그 위에 이 꽃 한 송이가 예쁘게 피어있는데, 그게 시선을 끌어서….”
“둔덕?”
“네! 그 앞엔 잘 깎인 돌이 세워져 있었고요.”
무덤이구나. 세워진 돌은 비석이고.
경계선 근처에 무덤을 만든 인간도 황당하지만, 무덤 위에 핀 꽃을 꺾어온 히엔도 황당하다. 그나마 무덤에 ‘놓인’ 꽃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핀’ 꽃은 자연적인 것이지만, ‘놓인’ 꽃은 누군가 망자에게 보내는 선물이니.
‘……마족들은 무덤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모를만도 하다.
슬쩍 눈을 굴려 이를 지켜보는 다른 마족들을 살폈다. 역시나 모르는 듯 다들 이 상황을 멀뚱멀뚱 지켜보고 있다.
아, 딱 한 명. 그나마 인간계에 자주 오갔던 에드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네놈 지금 감히 어디서 구한 꽃을….”
“히엔.”
이번에도 에드의 말은 끊겼다.
손도 뻗지 않고 시선만 내려 말없이 꽃을 찬찬히 살피던 데온이 눈동자를 올려 히엔을 본다. 그의 입꼬리가 그린 듯 천천히 올라갔다.
“내가 요즘 성격이 많이 날카로워지긴 한 모양이구나. 이렇게 인간계의 꽃까지 구해와 살살 눈치를 보는 것을 보면.”
“그, 그런 의미가 아니라.”
“고맙다.”
“……!”
무덤 근처라 해도 기분이 찝찝해야 할 판에, 무덤 위에 피어있던 꽃이라는데도 이상하게 불쾌한 기분은 전혀 들지 않는다.
긍정의 의미에 히엔이 눈을 크게 뜬 채 굳어버리고, 단이 꽃을 받기 위해 다가온다. 그러나 단이 히엔의 손에 꽃을 빼가기 직전, 에드가 이를 재빠르게 낚아챘다.
‘……어지간히도 단을 견제하네.’
그러고 보니 처음 단을 들였을 때 에드의 반응이 상당했었지.
충격받은 얼굴로 ‘저로는 부족하신 겁니까!’ 라고 외쳤던가.
[제가… 제가 못 미덥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쉬이 믿고 맡기지 않으신다는 것도요. 그래도… 인정받기 위해 더 노력할 테니 저 인간보다는 저를 더 의지해주시면…!] [……진정하렴.]적지 않은 시간 동안 그를 봐 왔음에도 그런 표정은 처음 보았다.
데온은 꽃을 조심히 들고 있는 에드와, 빈 손을 내려다보다가 어깨를 한 차례 으쓱하고 마는 단을 번갈아 살피다 등을 돌려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벤은 본인의 방으로 돌아간 듯, 등 뒤로 두 명분의 발소리가 따라붙었다.
얼마 안 가, 방 앞에 도착한 데온이 뒤를 돌아보았다. 명을 기다리듯 저를 보는 두 장정을 번갈아보던 그가 이내 에드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말했다.
“데려다줘서 고맙구나. 피곤할 텐데 꽃은 단에게 맡기고 이제 가서 쉬렴.”
“……!”
명백한 축객령에 에드의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덩달아 떨리는 꽃이 상할까, 단이 어서 내놓으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불에 기름을 끼얹는 행동에도 용케 이성을 유지한 그가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이다 끝내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꽃을 넘기고 돌아섰다.
‘…….’
그의 뒷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단이 데온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오고, 딸깍- 문단속까지 확실히 한 그가 괜찮은 화병을 찾아 꽃을 꽂아놓으며 흘리듯 한 마디 꺼냈다.
“매정하시네요, 마스터.”
“마족이니까.”
밖에서와는 다른, 편한 말투가 암묵적인 긍정을 담고 돌아왔다.
느슨한 쪽이라지만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가 당혹스러울만도 한데, 단은 태연히 화병에 물을 채워넣으며 말했다.
“그래도 열심이던데, 좀 안쓰럽네요.”
“글쎄. 괜한 정은 들이지 않는게 좋을 거야. 아무리 내게 열심이라 해도 결국 마족이거든.”
데온은 죽어가던 저를 마왕이 살리고자 했던 당시의 상황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때 에드는 분명, 마왕을 말리려 했었다.
[그래, 이참에 네 운명을 확인해 보는 것도 재밌겠네. 너는 이 자리에서 죽을까, 죽지 않을까?] [……마왕님.]내키지 않는다는 듯, 제지의 뜻을 담은 부름.
당시에는 들어오는 정보를 머리 한구석에 저장해두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분석하지 못했다지만, 이성을 되찾고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 되새기자 알 수 있었다.
에드는 0군단장의 목숨보다 마왕이 그를 살리며 바칠 대가를 더 아깝게 여긴 것이다.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거짓은 아니지만.’
그는 ‘데온 하르트’를 모시는 것이 아닌 ‘0군단장’을 모시는 것이다.
모든 마족들의 인정을 받는, 절대적인….
“권위를.”
“……예?”
“그 녀석은 나를 모시는게 아니라 내 권위를 모시는 거야. 곁에 두면 언젠간 위장막을 들추고 내부를 확인하게 될 텐데, 제가 벌벌 떨며 모시던 괴물 형상을 한 그림자의 주인이 사실은 한낱 토끼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반응이 어떻겠어.”
그런 불상사가 터지기 전에 미리 거리를 두는 편이 낫지.
“마스터는 토끼보다는 새끼 고양이….”
“……?”
“음, 아니다 그건 과거고, 지금은… 눈여우? 눈여우를 닮았나?”
“……뭐라는 거야.”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에도 꿋꿋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하얗고 복슬복슬한 눈여우를 떠올리던 단이 이어진 목소리에 다시 데온에게 집중했다.
“너는 내 ‘권위’에 기대어 마계에 발 붙이고 있는 ‘인간’이야. 내 권위가 허상이 되면….”
“압니다, 마스터. 죽겠죠.”
“반드시 죽겠지.”
섬뜩한 사실 직시에도 단은 히죽 웃었다.
“우리는 운명공동체이니 성심성의껏 도우라는 말을 참 어렵게 하십니다.”
“…….”
“그래서 지금 이렇게 돕고 있잖습니까.”
손에 든 화병을 창가에 내려놓았다.
그의 입장에서 저를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일전의 대화에서 대놓고 그를 겨눠 ‘내 인생을 망친 사람’이라 말했는데, 어찌 믿을 수 있을까.
뒤이어 ‘내 목표를 이루어 줄 사람이자 목표 그 자체’라고 말했다지만, 그것이 데온 하르트에게 있어 ‘단’이라는 사람 자체를 믿을 수 있는 이유가 되진 않는다.
결국 데온 하르트는 ‘단’이라는 사람을 믿는 대신 ‘상황’을 믿기로 했다.
단이 ‘목표’에 집착하는 상황. 단이 데온 하르트가 마계에서 가지고 있는 지위와 권위 아래에서 안전을 얻고 있는 상황. 데온 하르트가 무너지면 단 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상황.
“꽃은 여기에 두겠습니다. 어차피 마계라 창가에 둔다고 해도 의미 없겠지만.”
“……괜히 마족들에게 정을 붙이지 마.”
“예에. 조금 안쓰럽다고 말했기로서니, 너무 예민하십니다.”
“안쓰러움 또한 일종의 호의에 가까운 감정이지.”
호와 불호로 나누었을 때, 적어도 ‘불호’는 아니다.
“그게 곧 정이 되고, 정은 친분을 쌓는 초석이 되지. 친분은 경계를 풀게 만들고, 풀어진 경계는 굳게 닫힌 입조차 느슨하게 만들 테니까.”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주의하죠. 그보다 침대에 눕더라도 겉옷은 벗고 누우십시오. 안 불편하십니까?”
“응.”
“……벗으세요.”
***
“마스터, 날이 아직 쌀쌀하니 이것을.”
단이 겉옷을 입히고 단단히 여며준다. 그에 질세라 에드가 손이 시릴지도 모른다며 데온의 손을 잡고 검은 장갑을 끼워주었다.
그들 가운데에 멀뚱히 서서 이 모든 걸 묵묵히 받아주던 데온은 그들이 기어코 목도리까지 둘러주려 할 때 단호히 거절하고 등을 돌려 0군단장의 상징과도 같은 검은 로브를 집어들었다.
문득 새삼스럽게 로브의 색상이 눈에 들어와 피식 웃었다.
‘겉옷도, 장갑도, 둘러주려던 목도리까지도 검은색이더니.’
데온 하르트가 마계의 편이라는 것을 그리도 널리 알리고 싶은 것일까.
그가 옷 입히는 인형도 아니건만, 로브는 누가 입혀줄 것인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두 사람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흘긴 데온이 주섬주섬 로브를 입기 시작했다.
“마스터, 혼자… 입으시려고요?”
“왜?”
“아니, 마스터는 그… 옷을 좀….”
“엉망으로 입으시지. ……이런 걸 두고 인간미라고 하던가.”
그간 거리를 둔 것에 대한 서운함을 여기서 풀고 싶기라도 한 건지, 말끝을 흐리는 단의 말을 냉큼 받아간 에드가 데온과 눈이 마주치고 뒤늦게 말을 덧붙였다.
그래봤자 늦었다. 인간미라니, 무마하겠다고 덧붙인 게 고작 그건가.
‘내가 옷을 엉망으로 입는다고?’
데온은 고개를 내려 그 새 다 입은 로브를 살폈다. 완벽하다. 하긴, 그냥 걸치고 대충 매듭지으면 되는 로브인데, 문제랄 것이 있나.
“마스터, 다시 입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거기서 더 이상한 주름 만들지 마시고….”
정정한다. 완벽하지 않은 모양이다. 고작 로브도 입는데 문제가 있을 수 있구나.
‘오늘 중요한 날이라 깔끔하게 입혀드리고 싶었는데’하고 한탄한 단이 서둘러 다가와 로브를 다시 입혀주기 시작한다. 그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데온이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툭 질문을 내뱉었다.
“내가 그렇게 옷을 못 입니?”
“내 살다살다 이렇게 주름 잡힌 옷은 처음 봅니다. 입는 모습을 처음부터 보지 못했다면 누가 마스터 옷을 일부러 공 뭉치듯 구겨두었는 줄 알고 난리쳤을 거예요.”
“언사가 무례하군. 도대체 네깟 놈이 어떻게 데몬 님을 모시는 거지?”
“그래서 그쪽은 그렇게 생각 안하시나 봅니다?”
“……인간들은 그런 걸 두고 인간미라고 하더군.”
……그렇게 심각한가?
에드가 스스로 말하고도 찔리는 듯 시선을 피한다. 단이 대놓고 비웃음을 비쳤다.
“인간미라니, 변호를 해도 참….”
“……뭐가 문제지?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은데. 너무 완벽하면 오히려 거리감이나 거부감이 들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면 또한 필요하다고 들었다.”
이쯤 되니 스스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할 것 같아 데온은 으르렁거리는 둘을 두고 옷에 관한 기억을 되살렸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옷을 직접 입은 적이 별로 없네.’
직접 입어도 꼭 누군가 뒤늦게 옷매무새를 다듬어주곤 했다.
심지어 8년 전쟁 때도 옷매무새는 미친개들이 다듬어주곤 했지. 이따금 이건 어떻게 손을 댈 수가 없다며 아예 다 풀어헤치고 처음부터 직접 입히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제발 속옷을 입으시라는 잔소리는 덤.
‘그 녀석들은 지금 뭐하고 있으려나….’
살인귀 기사단을 떠올린 것도 잠시, 데온은 다 됐다며 손을 떼는 단에게 다시 시선을 두었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느긋하게 저를 기다리는 마왕을 발견하고 걸음을 뗐다.
“준비는 끝났어?”
“네.”
“옷이 좀 구겨진 것 같은데 괜찮아? 오늘 중요한 날이잖아. 원한다면 갈아입어도 되는데.”
“……괜찮습니다.”
“뭐, 좋아.”
씩 웃은 마왕이 따라오라는 듯 빙글 돌아서서 앞장선다. 눈치껏 그의 뒤를 따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왕성의 어느 방 앞에서 걸음이 멈췄다.
달칵, 그가 문을 연다. 기다렸다는 듯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할퀴었으나 데온은 이를 의식조차 못하고 그저 눈 앞에 펼쳐진 장면에 눈을 살짝 키웠다.
“……오.”
“어때? 괜찮지?”
괜찮은 정도가 아니다.
활짝 열린 창과 그 너머로 보이는 선명한 세 개의 달. 화려한 방 내부 풍경에 더해 이 모든 것을 배경으로 떡하니 놓여있는 고급스러운 집무용 책상과 의자까지.
“대충 아무데서나 서서 해도 될 것을…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리 오래 말할 것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니, 당연히 중요하지. 오늘 네가 처음으로 만인의 앞에 서는 날이잖아?”
정확하겐 인류의 배신자로서 만인의 앞에 서는 날이 되겠지.
동맹을 맺은 인간계를 분열시키기 위해 데온 하르트가 마계의 대표로서 혀를 놀리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