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6
16. 수하들이 너무 유능해서 미칠 것 같다(4)
‘0군단 연무장 침입 사건’ 이후 처음 보는 데몬 님이다.
군단원들은 생에 다시없을 정도로 바짝 긴장한 채 데몬 님께서 나오시기만을 기다렸다.
‘그날’ 이후 데몬 님은 다시 연무장을 찾지 않으셨다.
물론 평소 방문 빈도가 극도로 적으신 분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작지 않은 사건이 있었으니 한 번 정도는 더 방문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런 군단원들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늘 이날까지 그분은 0군단을 찾지 않으셨다.
당연히 군단원들은 불안함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화가 안 풀리신 걸까?”
“하지만 분명 그때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셨는데.”
“멍청아, 그걸 보이는 대로 믿냐?”
“설마 그깟 침입자 하나 알아채지 못한 우리의 무능함에 질리신 건….”
“…….”
싸하다기보다는 암담함에 가까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가 없다. 그분은 군단을 지휘할 때보다 직접 전투에 뛰어들어 단검을 휘두를 때 전황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이시니까.
그런 이에게 군단원이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일 게 뻔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수련했건만. 도움은 못 되더라도 방해는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건만.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였다.
우리 군단장님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고, 자신들은 여전히 그의 발끝조차도 따라가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실력이 좀 늘었다고 자만했으니….
조금은 풀어졌던 그날, 데몬 님께서 방문하셨고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연무장에 숨어들어 온 침입자를 잡으셨다. 성장했다 믿었던 우리의 실력이 하등 쓸모없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했다.
그러니 질리실 만도 하다.
무능하니까. 혼자가 더 편하고 유리할 테니까.
“……수련이나 하자.”
“그래, 며칠 뒤에 나간다는데, 방해되지 않으려면 조금이라도 더 실력을 키워놓아야지.”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데몬 님의 얼굴을 봐야 뭐라도 알 수 있지, 얼굴을 마주할 수 없는 군단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출정하는 날을 기다리며 온갖 추측을 늘어놓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모든 준비가 끝나고 기다리는 지금.
‘……왜, 안 나오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데몬 님께서 나오시지 않는다. 부관인 에드 님이 모시러 간 지가 언젠데.
차가운 새벽바람을 타고 불안함이 군단 전체에 스멀스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언제 데몬 님께서 나오실지 모르니 차마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만 이리저리 굴리는데, 드디어 굳건히 닫혀 있던 문이 벌컥 열렸다.
평소보다 더 굳은 표정의 데몬 님께서 차분히 걸어 나오는가 싶더니, 우리를 보고는 그 자리에 멈춰 선다.
그리고 점점 더 차갑게 굳어지는 그분의 얼굴을 보며, 군단원들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직도 우리가 보기 싫으신 모양이다.’
침묵이 흐른다.
새벽바람은 싸늘하건만,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입안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다. 그건 다들 마찬가지인지 누군가 마른침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밖에 나가자마자 버려지는 건 아니겠지.’
어떻게 해야 데몬 님의 분노를 풀 수 있을지, 빨리 생각해 내라며 나름 필사적으로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군단원들이었다.
***
나는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다. 남들과는 다른 외모로 태어나 차별받으며 살아온 이가 말주변이 좋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남의 말에 적절한 대답을 해주는 것 자체가 내게는 상당한 심력과 두뇌를 소모하는 일이고, 그만큼 피곤한 일이다.
이를 조금 비틀어 말하면, 적절한 대답을 하는 것도 힘겨운데, 이렇게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상태에서는 절대 먼저 말을 못 꺼낸다는 말이 되겠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
빨리 저들 중 누군가 먼저 입을 열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침묵은 지금까지 경험해온 것들에 비하면 그리 길지 않았다.
“다들 뭐해! 데몬 님 화나셨잖아!”
“?!”
군단원도, 그렇다고 벤이나 에드도 아닌 전혀 다른 이의 개입.
그것만으로도 놀랄 만한데, 목소리가 담고 있는 내용은 날 소스라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나, 나 화 안 났는데?’
애초에 내가 화를 낼 상황이 아니잖아. 이건 명백히 늦은 내 잘못이고….
아니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리리넬?”
네가 왜 여기에 있니.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살짝 고개를 트니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작은 인영이 시야에 담겼다.
달을 등지고 있는 모습이 제법 몽환적이지만, 안타깝게도 작달막하고 아담한 체구는 귀여움 그 이상을 담아내진 못했다.
뭔가 멋있어 보이고 싶어 한 것 같은데… 나중에 우유라도 좀 사다 주든가 해야지. 안타까워서 못 봐주겠다.
“죄송합니다!”
아, 제발 좀…!
잠시 하늘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군단원들이 단체로 허리를 숙였다.
우렁찬 목소리가 하늘에 메아리치듯 흩어졌다.
‘너희까지 왜 그래 진짜… 너희가 사과해야 할 일은 딱히 없… 아, 설마 리리넬 때문인가?’
11군단장이자 마왕 다음가는 마력량의 소유자.
귀여운 외모 탓에 자주 깜빡하긴 한다만, 그 위명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한낱 군단원들한테는 하늘 같은 존재일 터.
그런 하늘 같은 존재가 빨리 사과하라는 뉘앙스로 외친다? 이건 잘못한 게 없어도 사과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원망은 내가 받겠지….’
검게 타들어 가는 내 속을 알 리가 없는 리리넬이 내 사선 방향에 내려섰다.
짐짓 수줍게 가벼운 예를 갖추고는 ‘나 잘했죠?’ 하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데… 젠장, 저런 외양이면 화낼 수도 없잖아.
화를 냈다간 어린애한테 화를 내는 파렴치한 어른이 될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그럴 용기도 없지만.
일단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 뭐부터 해야 하지? 군단원? 리리넬?
그래, 우선 허리 아파 보이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군단원들부터.
“일단 다들 고개 들고….”
설득은 꽤나 힘들었다.
군단원들이 어찌나 끈질기던지. 나는 몇 번이고 괜찮다고 말하고 나서야 간신히 허리를 편 저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째서 내가 저쪽을 설득해야 하는지 잠시 진지한 고찰에 빠지기도 했지만, 일단 이 불편한 분위기를 타파했으니 만족스럽다면 만족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겠지.
사과한 이유도 상당히 황당했다.
내가 침입자를 운 좋게 잡았던 그때 그 사건.
자신들의 실력이 모자라 날 귀찮게 했다나 뭐라나.
그게 언제 적 일인데.
“……그건 그렇고, 리리넬?”
“네, 데몬 님!”
“여긴 왜…?”
“아, 아아, 맞다! 그러니까… 아, 이걸 드리고 싶어서요.”
어쩐지 얼빠진 표정으로 이쪽을 보던 리리넬이 허둥지둥 주머니를 뒤진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벤의 목에 걸린 것과 흡사한 목걸이.
순간 벤의 것을 훔치기라도 했나 하는 몹쓸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줄에 꿰인 것이 마력석이라는 것을 상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족들은 마력석을 주로 목걸이에 꿰서 사용하니까.
그런데 이걸 내게 왜?
“이게 한 번 정도는 즉사를 면하게 해줄 거예요.”
“감사합니다.”
이유는 묻지 말자. 준다는데 받아야지. 어디서 감히 주는 선물에 이유를 따져? 예의 없게.
곧바로 목에 착용하자 리리넬이 해사하게 웃는다.
역시 귀엽다. 이게 어딜 봐서 군단장이라는 건지. 그냥 어린애구만.
나도 모르게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그러자 리리넬의 목에 둘려 있던 머플러가 기운차게 움직인다.
‘아… 저거 촉수였지.’
인간인 내게서 최대한 거부감을 줄이겠다고 머플러처럼 목에 둘러 위장한 두 개의 촉수.
신나게 꿈틀거리는 그것을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보다가 슬그머니 손을 뗐다.
최대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섰으나 돌아선 자리에서 보인 광경은 이러한 내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너희들 뭐하니…?’
어느새 양옆으로 갈라져 길을 만들고 있는 군단원들.
그리고 그 끝에서 검은 기류를 풀풀 흩날리며 투레질을 하는 말 한 마리와, 그 고삐를 쥔 채 대기하고 있는 유능한 부관 에드.
충격적이기 짝이 없는 장면에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듯, 입안에서 욕이 맴돈다.
‘맞다, 저게 있었지… 제기랄.’
내가 마왕성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저거다.
멋있어 보이지만 타라고 하면 절대 타고 싶지 않은 외형의 말.
마계의 말은 인간계의 말과 달라서 생긴 것부터가 무시무시하게 생겼다. 저걸 타고 전쟁에 참전하면 누구든 일단 피하고 볼 것 같은 생김새랄까.
심지어 성질도 더 더럽다!
내가 저 위에 타면 분명 죽으리라.
떨어져 죽거나, 밟혀 죽거나, 물어뜯겨 죽거나.
‘쌰, 쌰앙….’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아니지.
마왕성에서 온갖 위험을 헤치고 살아온 지 약 1년 하고도 반.
유례없는 최대의 난제가 눈앞에 닥쳤다.
***
“저건 뭐야?”
창밖으로 데온을 지켜보던 마왕이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말이라니. 인간계의 말도 아닌 무려 마계의 말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를 토한 녀석이 그런 걸 탄다고?
“마왕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의아한 듯 물어오는 벨리탄의 물음에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재차 창밖을 내다봤다.
마음 같아서는 처음부터 마왕성을 나가는 그때까지 배웅해 주고 싶다만, 출정하는 군단이 0군단만 있는 것도 아니고, 명색이 마왕이란 작자가 출정이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까지 대놓고 편애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기에 출정을 준비하는 다른 군단도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만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몸으로 저런 무식한 것을 타고 가려 하다니.
역시 잠시라도 눈을 떼면 저런다니까.
“벨리탄.”
“예.”
“통신석 갖고 있지?”
“예, 그렇습니다.”
“에드의 통신석도 각인되어 있고?”
“예.”
“좋아, 잠시 빌리지.”
벨리탄의 통신석을 받아들고 에드의 통신석과 연결했다.
데온에게 연락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연락해 봤자 받지 않을 테니까.
일부러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통신석을 들고 다닐 경우, 꼭 얼마 못 가 박살 났기에 방 안에만 두도록 직접 명령을 내렸다. 그러니 연락을 해봤자 받지 않겠지.
딱히 불편함은 없다.
평소 방 안에만 처박혀 있는 녀석인 데다, 지금처럼 밖에 나갈 경우엔 부관인 에드가 꼭 함께했으니까.
유능한 부관답게 에드는 항상 통신석을 지니고 다녔다.
그건 지금도 그렇고.
-예, 제0군단장님의 부관 에드입니다.
“카베르다.”
-아, 네, 마왕님. 무슨 일이십니까?
“제정신이냐?”
-……예?
갑작스러운 질책에 당황했는지 한 박자 느린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마왕은 질책을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는 듯 거침없이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언제 피를 토할지 모르는 인간을 말에 태우려 들어? 그것도 마계의 말을?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인간에게 그 먼 거리를 말을 타고 이동하게 하려 하다니, 미쳤지?”
-……죄송합니다.
저렇게 나오니 더 할 말도 없다. 머리에 찬물이 끼얹어지기라도 한 듯 팍 식는 기분에 마왕은 잠시 침묵했다.
사실 에드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이다.
데온은 마계의 말을 좋아하니까. 인간계에는 저런 말이 없어서인지 종종 말을 타는 이가 있으면 빤히 쳐다보곤 했다.
아직까진 따로 말을 타고 싶다거나 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지만, 매사에 무심한 녀석이 빤히 쳐다볼 정도라면 어지간히도 말을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걸 부관인 에드가 모를 리가 없으니….
아마 지레짐작으로 데온의 고집을 꺾기 힘드리라 생각하고는 곧바로 말을 준비했을 것이다.
성, 그것도 외성에조차 잘 나가지 않고 내성에만 박혀 있던 인간이 모처럼의 외출을 하는 것이다. 말을 타고 가고 싶어 할 것은 당연할 터.
“……이해는 한다.”
-아닙니다. 설득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데온을 설득하는 것이 그리 쉬울 리가 없다.
고집을 꺾는 행위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설득하려 든다는 것부터가 큰 각오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
평소에 온순한 만큼 한 번 터지면 상당히 위험하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인간이라 그런가, 분노를 터트리는 시점도 마족들과 달라서 더 까다롭다.
당연히 설득하는 것보다는 묵묵히 준비하는 쪽이 편했으리라.
“아무튼 그래도 안 돼. 당장 마차를 준비하도록 해.”
-예.
“설득은 알아서 하고.”
-……예.
어쩐지 대답이 늦은 것 같았으나 마왕은 모른 척 외면했다.
결국 그도 데온의 분노나 미움을 사는 것은 사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