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65
165. 지친 사람들이 많은 시기(1)
인간들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함정을 파지 않고서야, 무려 군단장이 한낱 인간 무리의 손에 잡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전방에서 한창 전투를 치르며 몸이 풀린 실루아라면 잡히긴 커녕 오히려 역으로 말살해버릴 터.
실제로 그녀는 살인귀 기사단과 조우하고 벌어진 전투에서 그들을 압도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아마 가지고 놀 생각으로 여유를 부리지 않았더라면 기사단원들의 목숨은 거기서 끝이었으리라.
운 좋게도, 군단장의 여유는 단원들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어?] […….] [뭐야, 이거.]마왕군의 0군단장, 데온 하르트와 쏙 빼닮은 전투 스타일.
압도적인 적 하나를 상대로 싸우는 중이라 그렇지, 소수가 아닌 다수였다면 큰 위력을 발휘했을 스타일이다. 아마 전장에 있었다면 적군과 아군의 사기를 좌우했겠지.
공교롭게도 실루아는 데온 하르트의 전투 스타일에 광적으로 열광하는 자다. 그녀는 눈을 반짝 빛내며 발 아래에서 이를 바득바득 가는 인간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 전투 스타일이 내가 존경하는 분과 닮았는데….] […….] [혹시 데온 하르트라고 알아?] [……우리 대장의 이름이 왜 거기서 나와?] [대장이라고? 데온 님이?] [데온 님? 너 우리 대장이랑 무슨 사이야?]이후 친분을 쌓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세상에, 인간계에서 그 정도로 유명하셨다고? 역시 데온 님!] [마계에서도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니…! 역시 대장!]서로가 각 진영에서의 데온 하르트의 위상과 일화에 대해 떠들어댄지 얼마나 되었을까, 문득 떠오른 생각에 실루아가 입을 열었다.
[그보다 데온 님을 만나고 싶다고 했지? 뭐… 너희는 그분의 부하니까 괜찮으려나. 아직 완전히 믿기는 어렵지만….]문제되면 그때 죽이면 될 테니 상관은 없겠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한 그녀가 무언가 떠오른 듯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마왕님께 혼나긴 싫으니까 너희가 나쁜 역할을 맡도록 해.] [……?] [데온 님의 부하로서 실력이 아주 좋은 너희가 날 붙잡은 거지. 난 어쩔 수 없었던 거고.]……그것이 소란의 시작이었고, 밖으로 나온 데온 하르트가 본 광경이었다.
‘저 미친놈들.’
7군단장은 어떻게 잡은 거야? 아니, 분위기를 보니 7군단장이 잡혀준 모양새다.
기괴한 광경에 저도 모르게 허리춤의 단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방 밖을 나설 때마다 완전무장하듯 단검집을 착용했다지만, 이러려고 착용한게 아닌데.
주먹을 쥐는 것으로 충동을 억제하고 저 괴랄한 무리를 향해 발을 뗐다. 데온 하르트를 알아본 마족들이 옆으로 비키며 길을 트기 시작했다.
데온은 잠시 멈춰섰다.
‘……말 걸기 싫다.’
말 걸면 앞으로 굉장히 귀찮아질 것 같은데. 그냥 모른 척하면 안 되나.
길이 트여 저들이 훤히 보인다지만, 저들은 아직 이쪽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냥 이대로 발걸음을 돌릴까 고민하는데, 반가움이 듬뿍 담긴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앗, 대장!”
“대장? 어디!”
“……하.”
“와 진짜 대장이다!”
이젠 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군.
허리를 곧게 편 데온이 적절한 보폭을 유지하며 파렴치한 인질범들에게 다가갔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주목된 가운데, 절제된 목소리가 우아하게 흘러나왔다.
“여기서 뭐하니?”
“뭐하긴요. 대장 보러 왔죠!”
“우릴 버리고 가시다니, 너무하십니다!”
“그보다 대장! 너무 수척해지셨는데요? 설마 여기서 굶긴 겁니까?!”
“사악한 마족 놈들! 감히 우리 대장을 굶기다니!”
여기가 바로 그 사악한 마족 놈들 소굴이란다….
할 말을 잃은 채 제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호들갑을 떠는 이들을 보던 데온이 손을 들어 입가를 만지작거렸다. 희미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주 옅은 한숨이었으나, 줄곧 데온의 표정을 살피던 이들이 그걸 놓칠 리 없다.
한숨은 보통 부정적인 것! 기회를 잡은 마족 병사가 눈을 빛내며 말을 붙였다.
“데온 님, 이 ‘사악한 마족 놈’이 저 입 가벼운 인간들을 죽여도 되겠습니까?”
“저래 보여도 내 부하들이란다. 그러지 마렴.”
“부하들… 설마했는데 정말 부하들이라니….”
충격을 받은 듯 마족 병사가 물러난다. 데온은 다시 눈을 돌려 마계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은 미친개들을 보았다.
여긴 어떻게 온 것일까. 리엔이 그냥 두고 보진 않았을 텐데.
……아, 그래. 리엔.
“리엔 경은?”
“그게….”
“…….”
“그러니까…….”
버리고 튀었군. 지금쯤 뒷목 잡고 있지 않을까.
나도 지금 그렇거든. 뒷목으로 올라가려는 손의 방향을 바꿔 미간을 짚었다.
사고의 흐름은 금세 바뀌었다.
‘……지금은 이놈들만 붙잡고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지.’
시선을 들었다. 자기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홀로 싱글벙글 웃고 있는 7군단장을 눈에 담았다.
“실루아. 경계선에 있어야 할 7군단장이… 왜 여기에 있는 거니?”
“아, 저는 잠시 전달을 위해 이렇게 왔지 말입니다!”
“전달?”
“예, 2군단장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정보를 모으느라 바쁘다더군요. 직접 찾아뵙지 못한 무례를 용서해달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미친개들은 오다가 마주쳤겠군.
눈앞에 들이밀어진 상자를 받아들었다. 제법 묵직한 무게감이 손 안에 들어찬다. 얼핏, 비릿한 피 냄새가 느껴졌다.
─혈향은 다른 곳에서 묻어온 것인가, 이곳에서 나는 것인가.
어느 쪽일지, 이게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짐짓 미간을 찌푸리며 그것을 보던 데온이 이내 망설임 없이 뚜껑을 열었다.
“……허.”
짙은 피 냄새가 사방에 퍼졌다.
마족들이 동요하고 뒤에 서 있던 단의 헛웃음인지 모를 감탄사를 뱉는다. 일순간 표정을 굳힌 살인귀 기사단이 뭐냐며 호기심으로 가장한 호들갑을 떨었으나, 데온은 어떠한 내색도 없이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상자에는 웬 남자의 머리가 담겨 있었다.
‘르웨체 국왕의 동생.’
본 적 있는 얼굴이다. 드벨라니아가 초상화를 보여준 적이 있었으니까.
[꼭 보셔야겠어요? 어차피 죽을 얼굴인데.] [내가 누구를 죽이는지 정도는 봐두어야지.]정말 인상부터가 바르게 생겼네.
한참 동안 그것을 들여다보다가 뚜껑을 덮었다. 단에게 그것을 넘기…려다가 질겁하는 모습에 에드에게 넘기고 단을 불렀다.
“내가 시킨 일로 바쁠 텐데, 여기서 자리 지키고 있지 않아도 돼. 어서 가서 할 일 하렴.”
“네.”
묘하게 의기양양한 에드를 힐긋 본 단이 가볍게 고개 숙여 대답하고 물러간다. 뒤늦게 그를 발견한 살인귀 기사단원들이 ‘어어?’하며 목소리를 키웠다.
“와, 우릴 버리고 혼자 대장 따라간 거냐? 이 배신자 녀석!”
“알고 있었으면 혼자 따라갈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알려줬어야지!”
“우리가 얼마나 정성껏 너를 가르쳤는데!”
“나쁜 자식!”
“……그만하고 일단 들어가자. 따라오렴.”
“아, 대장. 도대체 그 말투는 뭡니까? 적응이 안 되는… 히익!”
종알종알 떠들던 녀석의 발 앞에 단검이 박혔다.
기겁하며 고개를 든 단원들의 시선이 데온과 공중에서 마주쳤다. 그는 단검을 던진 자세 그대로 온화한 미소를 얼굴에 걸치고 있었다.
“우리, 자세한 대화가 필요할 것 같지 않니?”
“괘…괜찮을 것 같은데….”
“닥치고 따라오렴.”
“넵.”
큰일났다. 우리 대장한테서 프리미로 후작의 냄새가 난다.
뇌리에 새겨진 공포가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순간 몸이 굳은 것도 잠시, 단원들은 오들오들 떨며 순순히 데온의 뒤를 따랐다.
***
“아아악! 안 돼… 안 돼…!!”
동생이 죽었다. 르웨체의 국왕은 흰 천이 덮인 시신 위에 엎드려 오열인지 모를 비명을 내질렀다. 머리 없는 시신이니만큼 진실을 부정하려 들만도 했으나 그는 이미 현실을 받아들인 뒤였다.
이미 몇 번이고 부정하려 했다.
[제발… 제발 이 아이가 내 동생이 아니라고 해 다오.] [전하…….] [머리가… 없지 않느냐. 그러니 헷갈릴 수도 있지. 응?]강직한 아이다. 그 흔한 일탈 한번 없이 평생을 바르게 살아왔는데 그 최후가 이래서는 안 되지 않나. 최소한 시신이라도 온전해야지.
“아가… 미안하다… 내가 다 미안해….”
온몸의 수분을 뽑아낼 듯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르웨체는 분명 마족이 성문 앞에 서기 무섭게 동맹에 지원 요청을 넣었다. 그러나 산국은 충분하지 않은 병력을 보냈고, 가장 기대했던 제국은 답이 늦어지는가 싶더니 지원이 와서 안심한 것도 잠시, 병력의 질이 바닥을 기어 절망을 주었다. 누가 봐도 평민이나 빈민을 징집해 보낸 것이 훤히 보이는 꼴이었다.
결국, 보다 못한 동생이 나섰다.
[제가 가겠습니다.] [안 된다. 위험해.] [저는 이 왕국의 장군입니다. 제 의무를 다해야지요.] [왕국에는 아직 너 말고도 다른 장수들이 있다. 그들을 보내면….] [그들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전하께서도 알고 계시잖습니까.] [하지만.] [죄송합니다 전하.] […….]말렸어야 했다. 아니, 애초에 동맹 자체를 맺지 말았어야 했다. 르웨체는 제국을 위해 많은 것을 해주었거늘, 고작 이게 그 보답이란 말인가.
슬픔과 좌절은 곧 분노가 되었다.
국왕이 고개를 들었다. 잔뜩 충혈된 채 눈물이 줄줄 흐르는 두 눈에 시퍼런 귀기가 서렸다.
그가 무언가 말하려 입을 열었을 때,
똑똑.
“전하. 제국 측 지원의 통솔자가 알현을 요청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들라 하라.”
이 상황에서 뻔뻔스럽게도 알현 요청이라니,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다.
여차하면 분풀이를 할 생각으로 요청을 받아들인 국왕은 들어와 예를 갖추기 무섭게 무릎을 꿇는 상대의 행동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면목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
사실, 병력의 질과 별개로 눈앞의 기사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제국을 향해 분노할지언정 그녀에게는 화를 내선 안 되는데.
동생을 잃은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서.
“이름이 뭐지?”
“리엔 라이너입니다.”
“그래, 라이너 경. 경이 왜 살아있는 거지?”
금방이라도 베일 듯 서슬 퍼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동생이 죽었네. 이 나라의 장군이, 왕의 동생이 죽었는데, 왜 경은 살아서 내 앞에 있는 거지?”
“……면목 없습니다.”
“그딴 말을 듣고 싶은게 아니네! 왜 살아있느냐고 물었잖는가!”
“죄송합니다.”
리엔은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사실 그녀는 조금 지친 상태였다. 모시던 주군이 마왕의 편에 서고 휘하의 기사단조차 도망쳐버린 상황이다. 당연하게도 모든 이들의 적의는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달라붙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가 어찌나 노골적이던지.
황제도, 가족조차도 이를 상쇄시키지 못하니. 르웨체의 모든 원망이 내리꽂히고,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이곳으로 올 버림패의 통솔은 그녀의 몫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통솔자로서 데려온 병력을 가능한 무사히 제국에 귀환시켜야 할 의무가 있으니.’
지친 것과 별개로 자신의 의무를 집어던지지 못한 그녀로서는 남은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국왕을 만나야 했다.
고개를 숙인 채 공손히 왼손을 바치듯 내밀었다.
“제 손목을 드리겠습니다.”
“…….”
“고작 그 정도로 전하의 노기를 가라앉힐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목숨이라도 바치고 싶으나 이후의 여파가 전하께 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사실 황제는 그러지 말라 했다.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으나 리엔이 통솔자로서 지원을 가기 전 있었던 짧은 대화에서, 그는 스스로를 아끼라는 뜻을 담은 발언을 했다.
리엔 라이너의 지친 심리 상태를 눈치챈 황제 나름의 방비였다.
[짐을 원망해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어찌 감히.] [경은 너무 올곧아. 필시 그 병사라는 이름이 부끄러운 병사들도 휘하의 병사들이라고 책임지려 하겠지.]어디까지나 한시적인 통솔자에 불과함에도.
아니, 오히려 민간인에 가까우니 어떻게든 살려 보내려 할 것이다. 끝내 죽으면 죄책감을 가질 테고.
[그런 의미에서 짐이 친히 말해두도록 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