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67
167. 지친 사람들이 많은 시기(3)
연무장에는 조금 전 봤던 그대로 미친개 기사단과 데온 하르트, 에드가 있었다.
실컷 기사단원들을 혼내던 데온이 멀리서 다가오는 단을 발견하고 손짓으로 에드를 물린다.
에드가 불퉁한 기색으로 단을 노려보다가 물러가고, 어느새 데온의 앞에 도착한 단이 말문을 열었다.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은 진즉에 확인했다.
품에서 부적 뭉치를 꺼낸 그가 데온에게 공손히 내민다. 잠시 그것을 보던 데온이 이내 받아들고 조금 전까지 혼내던 기사단원들을 돌아봤다.
“여기 다 모여봐.”
“앗 대장 말투 돌아왔다!”
“닥치고 모여.”
꼭 두 번 말해야 듣지.
후다닥 주변에 모여든 기사단원들을 잠시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부적을 한 장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일단 대장이 줘서 받긴 했는데 이게 도통 무엇인지.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누런 종이를 살피던 기사단원들 중 누군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대장, 이게 뭡니까?”
“네놈들과 마족들의 전투 조건을 조금이나마 비슷하게 만들어주는 부적. 물론 어디까지나 ‘조금’이지만…. 앞으로는 이걸 언제 어느 때건 반드시 소지하고 있도록 해. 이런 대비도 없이 0군단에 시비를 걸면 어떡하자는 거냐.”
다시 생각하니 혈압이 오른다.
열이 오르는 듯한 기분마저 들어 데온은 조용히 이마를 짚었다.
그래, 저 미친놈들이 아무런 대비도 없이 0군단에 시비를 걸었다. 뒤늦게나마 그 소식을 듣고 싸움이 터지기 전에 말렸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전부 찍소리도 못 내고 죽을 뻔했다.
‘이곳은 마계인데.’
온갖 제약이 존재하는 인간계가 아니다. 인간계에서 상대했던 마족들을 생각해서는 곤란했다. 심지어 그들이 시비를 걸었던 상대는 0군단. 정예 중의 정예였다.
‘영웅’도 아닌 미친개들이 맞붙는다면 백이면 백, 삽시간에 죽을 터. 데온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랬지?”
“네?”
“왜 시비를 걸었어.”
생존에 특화된 놈들이 적과 자신의 수준 차이를 파악하지 못했을 리 없다.
생각 없어 보여도 의외로 상대와 자신의 역량 차이, 상황, 배경, 명분까지 전부 파악하고 계산하여 어느 정도 죽지 않을 선에서 움직이는 녀석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는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계에서, 마족들의 본거지에서, 내 이름을 배경에 두었다지만 너희를 달갑지 않게 보는 분위기 속에서, 대체 왜….”
“하지만….”
억울함을 가득 담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녀석들이 자신들이 ‘진정한 데온 님의 수하’라고 했단 말입니다! 대장은 자신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있는 듯 없는 듯 구석에 처박혀 있으래요!”
“대장은 우리 건데!”
“우리가 더 오래 모셨는데!”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애지중지 키웠는데!”
맙소사.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단이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고작 그런 이유로?”
“고작 그런 이유라니! 아주 중요한 건데!”
“맞아, 아주 중요하지! 그래서 대장을 걸고 한 판 붙으려 했던 거고!”
대장이 와서 못 싸웠다는 작은 중얼거림까지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듣던 데온이 한심함을 듬뿍 담아 기사단원들을 둘러보았다. 마찬가지로 한심함을 숨기지 않은 음성이 고스란히 입 밖에 나왔다.
“정말 쓸데없는 짓을 했군.”
“대장, 쓸데없는 짓이라뇨! 저희에겐 아주 중요한….”
툭. 제지의 뜻으로 손가락을 뻗어 다시 흥분해 떠들려는 녀석의 이마를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전제부터가 틀렸어.”
“?”
“내가 네놈들의 것이라니, 네놈들이 내 것이겠지.”
“……!”
“안 그래?”
애초에 싸울 이유가 없었다고.
기사단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짧은 정적이 스친 것도 잠시, 폭발하듯 반응이 일었다.
“그렇습죠! 우리가 대장의 것이죠!”
“아휴, 아주 큰 오류를 범하고 있었네! 그 중요하고 당연한 사실을 착각하다니!”
“내 살아생전에 대장이 저런 말을 하는 것을 듣다니….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단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으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기분 나쁜 발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원들은 마냥 기뻤다.
우리의 대장, 데온 하르트의 발언은 기사단만의 일방적인 유대감이 아니라는 확언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대장이 말로 표현할 줄은 몰랐어….”
“나도야….”
행동이나 툭툭 던져지는 말에서 옅은 애정과 배려가 느껴진다지만 직접적으로 듣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데온과 단이 황당해하든 말든 단원들은 저마다 눈물을 훔쳤다.
“저희도 대장을 사랑합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
“무섭지만 사랑해요!”
“도대체 생각을 어떻게 했으면 이야기가….”
“대장 만세!”
“대-세!”
“그건 또 어디서 주워들은… 아니, 됐다.”
대체 어째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만, 여기서 더 말해봤자 입 아픈 것은 이쪽뿐이다.
미묘한 짜증에 입가를 만지작거리던 데온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입에 물었다. 단이 자연스럽게 불을 내밀고, 살짝 고개를 내려 불을 붙이려는 순간.
“대장, 그거 약입니까?”
경악이 여과없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전투 중이 아닌데요?”
“……내 맘이지.”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전투가 아닌데도 약을 하는 녀석이 있다면 목을 쳐서라도 말리라 하셨던 사람이 대장입니다!”
“난 대장이라 괜찮아.”
“억지 부리지 마십쇼! 그거 권력남용입니다!”
점차 낮아지는 목소리에도 따박따박 말대꾸를 한 이들이 와르르 몰려들어 입에 물린 담배를 빼간다. 데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으나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탕, 사탕이라도 쥐여 주어야 하는데….
저마다 주머니를 뒤지던 단원들이 울상을 지었다.
“사탕이 없다.”
“사탕이 없어.”
“초콜릿도.”
대장의 목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 주머니 네 주머니 혹시 몰라 옆 사람의 입까지 벌려 확인한 이들의 시선이 줄곧 가만히 서 있던 단에게 향했다.
“……뭡니까?”
“사탕 있냐?”
“없… 생각하고 보니 있네요.”
원래 주술사는 다 이런 것일까. 좋아하지도 않는 사탕을 내밀기에 뭔가 싶었더니만.
이곳에 오기 전, 주술사로부터 받은 사탕을 주섬주섬 꺼냈다. 후다닥 다가와 그것을 받아간 단원이 독을 확인하듯 냄새를 슬쩍 맡고는 껍질을 벗겨 데온의 입에 쏙 넣어준다.
갑작스럽게 입안 가득 퍼지는 단맛에 데온이 눈살을 찌푸렸으나 그뿐이었다. 화를 내거나 무어라 잔소리하는 대신 사탕을 입안에서 몇 번 굴린 그가 단을 돌아보았다.
“어련히 알아서 잘 했겠지만, 그래도 설명을 듣긴 해야 할 테니… 방에 돌아가자.”
…….
달칵. 방문을 닫은 단이 데온에게서 겉옷을 받아 옷걸이에 걸쳐두며 대수롭지 않게 운을 뗐다.
“부적용 종이 유통 경로는 성공적으로 뚫어두었습니다. 많은 주술사들의 협조를 약속받았죠.”
“주술사 찾는게 일이었을 텐데, 고생했네.”
“아뇨, 뭐… 돈이 있으니 다 되더군요. 정보 길드 같은 곳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잖습니까.”
그보단 마족들의 능력을 억제한다는 부적을 한 뭉치 구하는 게 훨씬 어려웠지.
“……아, 집사님도 만났었는데.”
“레멤베르? 저택에라도 찾아갔던 모양이지? 거긴 왜….”
“아뇨, 정보 길드에 가던 중에 마주쳤습니다.”
평소와 다름 없는 얼굴로 ‘오랜만이네’하고 인사해오던 노인을 떠올린 단이 조금 얼빠진 기색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도움을 많이 받았죠. 아마 연을 맺은 주술사들 중 절반은 집사님을 통해 만났을 겁니다. 그 중에는 전직 황실 주술사였던 사람도 있었어요.”
물론 중개비를 받았다지만, 결과를 생각하면 큰 도움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그는 단이 데온 하르트를 따라갔다는 것까지 알고 있지 않았던가. 신고는커녕 오히려 도왔으니 이득과 별개로 찝찝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데온도 마찬가지인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 할아버지는 도대체 정체가 뭐야….”
“역시 마스터도 모르시는 겁니까.”
“몰라. 내가 그 저택을 받았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집사로 있었으니까.”
“그렇군요.”
어느 정도 예상한 답이었기에 무심히 대답한 단이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기이할 정도로 싱싱한 창가의 화병을 들어 물의 양을 확인했다.
……분명 히엔은 인간계의 꽃을 꺾어왔다 했을 텐데.
‘마계의 꽃도 아닌 것이, 해도 없고 물도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까지 싱싱하다고?’
바짝 마른 내부를 확인하고 물을 채워넣으며 눈싸움 하듯 꽃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나 위험한 느낌은 고사하고 무해함을 넘어 온화한 느낌마저 주는 듯한 꽃의 모습에 단은 헛웃음을 삼키며 화병을 다시 창가에 두었다.
그 과정에서 창 밖, 연무장의 살인귀 기사단에게 시선이 닿은 것은 우연이었다.
저마다 부적을 몸 이곳저곳에 숨기고 있는 모습. 그중 누군가 주머니에 부적을 챙겨넣다가 바닥에 툭 떨어뜨리는 광경을 목격한 단이 느리게 말을 꺼냈다.
“……저들이 부적을 항시 잘 챙길 것 같지 않은데, 차라리 견장에 넣어 착용시키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대충 데온 하르트 소속의 인간들이라는 증명이라 하면 다들 이해할 테고요.”
“그거 좋다. 다른 마족에게 시킬 수는 없으니 네가 해.”
“…….”
“그럼 내가 해?”
“……아닙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정말 모르나?
일부러 견장을 언급했는데도 반응이 없다. 역시 직접적으로 묻는 것이 낫겠다 판단한 단이 슬며시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런 부적의 존재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응?”
침대에 늘어지듯 누워 팔로 눈을 가리고 있던 데온이 몸을 굴려 옆으로 누우며 단을 보았다.
“군단장 회의에서 마왕이 말해주더라고. 마족들의 마법을 억제하는 것에는 ‘진’뿐만 아니라 ‘부적’도 있다고.”
“……예?”
“응?”
“……아니, 잠시… ‘마법’을 억제하는 부적이라고요? ‘능력’이 아니라?”
“그게 그거 아닌가?”
“……맙소사.”
난 무슨 개고생을 한 거지? 아니, 결과적으로 훨씬 좋은 부적의 존재를 알고 얻기까지 했으니 개고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억울하다.
단이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데온이 떨떠름한 기색으로 몸을 일으켰다.
“뭐야, 왜 그래.”
“…….”
“그 불손한 눈빛은 또 뭐고.”
“아뇨 그냥. 좀 억울해서….”
“?”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는 꼴이 참 얄밉다.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 게 맞긴 하지. 적어도 판단력은 챙기자. 단은 깊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리듯 답했다.
“그 부적은 마스터께서 생각하시는 ‘마법’을 억제하는 종류가 아닙니다.”
“……그럼 뭔데?”
“반경 3미터 이내의 마족들에게 ‘경계선을 통해 인간계로 나갔을 때와 동일한 제약을 가하는 부적’이라고 해야겠죠.”
“……인간계에서는 쓸모없을지 몰라도, 이쪽에 있어서는 훨씬 좋은 거잖아? 그런 걸 어떻게 알고 구했데?”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대단하네요.”
데온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하든 말든 단은 뻔뻔히 말을 이었다.
솔직히 이건 그럴만 했다.
“그러니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스터께서 말씀하신 부적보다 훨씬 좋은 기능을 가진 부적이라는 것을요. 참고로 존재를 알아내는 것도, 구하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습니다.”
“어… 그래… 수고했다….”
아무튼 그렇다면 미친개들이 죽을 걱정은 덜어도 되겠네.
경계선을 통해 인간계에 나갔을 때와 동일한 제약을 가한다고…. 그렇다면 저 부적은 상대 마족들의 마법 사용에 필요한 마력량을 배로 들게 할뿐, 마법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할 수 있다면 만전을 기하는 편이 좋겠지.
“한쪽 견장에는 네가 말한대로 인간계 제약의 부적을 넣고, 다른 견장에는 마법의 사용을 막는 부적을 넣어서 양 어깨에 착용시키는 게 좋겠다.”
“……제가 혹시 몰라 그 부적도 구해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단이 툴툴대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확답을 확인한 데온이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조금 나른한 목소리가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네가 구해온 인간계 제약 부적은 내 견장에도 넣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