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68
168. 지친 사람들이 많은 시기(4)
“마법 억제 부적은 안 넣습니까?”
“마계에서 제일 눈치가 빠르고, 마법을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마족이 누군지 알 텐데.”
“……아.”
데온은 마족과 인간을 통틀어 마왕과 가장 많이 대면하는 사람이다.
마법의 사용을 막는 부적을 소지하고 있다간 얼마 못 가 들킬 터.
“마왕은 ‘경계선을 통해’ 인간계에 나가본 적이 없으니까… 아니, 못 나가니까… 그건 소지하고 있어도 들키지 않겠지….”
“……마왕을 믿지 않으시는 모양이군요.”
“그야… 당연히….”
“……마스터?”
“…….”
“주무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미친개들 때문에 피곤한 하루였다. 약이라도 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면 모를까, 그것마저 빼앗겨버렸으니….
데온은 희미해져가는 의식에 순순히 몸을 맡겼다.
‘……정말 자네.’
남에겐 일을 시켜놓고 맘 편히 잠이 들다니.
어느새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든 데온을 불퉁하게 보며 단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럼에도 마계에 온 이후 데온 하르트의 수면량이 상당히 부족해졌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소리 죽여 다가가 이불을 덮어줄 수밖에 없었다.
***
르웨체가 동맹 파기를 선언했다.
사실 제국이 보낸 지원의 질이 좋지 않다는 정보를 입수한 순간부터 예상한 상황이었다.
제국의 입장도, 르웨체의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소식을 듣기 무섭게 한숨부터 나왔더랬다.
마계는 강하다. 어째서인지 모든 전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전력을 다하지 않고도 이 정도이니 아마 전력을 다해 나선다면 동맹이 휘청이기 시작한 인간계 따위는 어렵지 않게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깨진 동맹을 이쪽에서 어떻게 할 수도 없으니….’
어느새 완연한 혁명군의 수장이 된 폴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내키지 않지만 제국을 도와야 해.’
제국이 버텨야 인간계가 살고, 인간계가 살아야 혁명을 할 수 있다.
폴은 이젠 희미해진 개인적인 원한보다도 자신을 주워 제대로 키우고 교육한 다니엘을 향한 보답을 우선시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기에 만인의 앞에서 데온 하르트와 설전도 벌였던 것이고.
“지금 제 말 듣고 있습니까!”
“…….”
“제국을 돕다니, 이게 혁명군의 수장으로서 할 짓이냐 이 말입니다!”
시끄럽다.
상념에서 깨어난 폴이 보일 듯 말 듯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어지간한 머리 빈 쓰레기들은 분명 다니엘 형이 처리했을 텐데 남은 게 이런 인간들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제국을 도운 게 아닙니다.”
“발뺌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황제를 옹호하는 것을 모두가 봤습니다!”
아, 침착해야 하는데.
쾅!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이기지 못하고 테이블을 내리쳤다. 절로 언성이 높아졌다.
“황제를 옹호한 것이 아니라!”
“…….”
“인간계를 지킨 겁니다!”
그때 왜 다니엘 형이 책상을 내리쳤는지 알 것 같다. 답답해 터질 것 같은 속을 가라앉히는 동시에 저들의 가벼운 입을 닥치게 할 효과적인 방법으로 이것만한 것이 없으니까.
“제가 언제 그와의 설전에서 황제가 쓰레기라는 것을 부정했습니까? 그럴 리가! 저는 그저 데온 하르트가 더한 쓰레기라는 것을 언급하며 공격했을 뿐입니다! 마계에 붙는 배신자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 마계로부터 인간계를 지키기 위해서!”
“…….”
“우리의 혁명은 인간계의 존재를 기본 전제로 두고 시작됩니다! 인간계가 멀쩡해야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마계는 강적입니다. 인간계 내부에서 분열이 생겨서야 마계를 상대로 버티기 어려워요. 전 그걸 막은 겁니다!”
저들이 왜 이러는지 알고 있다.
이번 기회를 빌미로 어리고 만만한 수장의 목에 목줄을 채우려 했겠지.
하지만 폴은 다니엘의 후계자로서 저들을 상대하는 방법 또한 배웠다. 고작 그 정도에 기죽을 리 없었다.
“…….”
폴에게서 다니엘의 기세를 느낀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이번 수장도 만만치 않다는 확신이 머리를 강타해 저마다 침음을 삼키는데, 누군가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작게 항변했다.
“……하지만 저희에게 어떠한 언질도 없이 멋대로 나선 것은….”
“여러분들게 알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 점은 사과드리지요.”
정확하겐 알린 이후 그들을 일일이 설득할 시간이 없었다.
사과를 패배의 인정으로 받아들인 어리석은 이들이 입을 열 기미가 보인다. 폴은 그들에게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저는 또 같은 행동을 할 겁니다. 이 혁명군에서도 무려 간부 자리에 앉으신 분들이니 멀리 볼 줄 아는 시야와 유연한 사고를 갖고 계시겠지요. 그렇다면 당연히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 또한 알고 계실 겁니다.”
몇몇이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이가 슬며시 손을 들었다.
“좋아요, 다 좋습니다. 그런데 혁명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마계와의 전쟁이 끝나고, 인간계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을 때 일으켜야겠지요.”
“그렇다는 것은….”
“아마 우리 세대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음 세대에 맡겨야겠지.
자, 여기가 관건이다. 살아생전에 혁명을 보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에 실망한 이들이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야 한다.
‘무엇을 내세워야 하지?’
폴은 다니엘과 함께 지켜봤던 마왕과 황제의 설전을 떠올렸다.
‘숭고함.’
혁명 이후의 이득보다는 본인이 위대하고 엄청난 일에 가담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집중하도록. 그걸 형성해야 한다.
“……지금은 그보다 더 큰 것에 집중해야 하니까요. 우리가 맡을 역할은 기반을 닦아놓는 겁니다. 후세대가 혁명을 일으키고, 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그게 인간계를 지키는 것이라는 말이군요.”
“네, 혁명보다 더 큰 일이라 자부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무려 인류를 지키는 것입니다!”
역경 속에서 인류를 위해 싸우며 끝끝내 혁명을 위한 불씨를 남기고 간 선세대들.
이 멋진 수식어를 거절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폴은 웃었다.
“역사에 이름을 남겨보고 싶지 않습니까?”
***
결과적으로 일은 폴이 의도한대로 흘러갔다.
수뇌부들은 혁명보다 인간계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에 동의했고, 더 나아가 인간계 보호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에 동의했다.
이로써 그들은 폴이 제국을 도와도 딴지를 걸 수 없게 되었다. 인간계를 위한 것이라 하면 할 말이 없어질 테니까.
‘이미 설전을 통해 수면에 드러난 거, 아예 대놓고 활동하기로 했고.’
폴은 얼굴이 알려졌다. 나름 정보력이 있는 자들이라면 이미 그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겠지. 이래서는 아는 자들의 무기로 사용될 뿐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전부 밝히는 게 나을 터.
그러니 시작은 데온 하르트를 상대로 설전을 벌인 사람이 혁명군의 수장이라는 것부터 밝힌다.
‘예전엔 마왕과 황제가 맞붙었지. 이번엔 ‘마계의 대표’인 데온 하르트와 내가 맞붙었어.’
마계의 대표를 상대한 인간계의 누군가.
그자가 ‘인간계의 대표’로 연결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폴은, 혁명군의 수장은 황제가 했어야 할 역할을 대신했다. 혁명군의 수장이 인간계의 대표가 된 것이다.
‘덕분에 혁명군을 알리게 되겠어.’
항시 목숨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인간계를 대표하는 단체인 혁명군이라니.
가벼운 걸음으로 집무실에 돌아온 폴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을 마주하고 빙긋 웃었다.
“이람 씨, 기다리고 계셨군요. 제가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지만, 이렇게 미리 기다리고 있지 않으셔도 됐는데.”
“…….”
“아, 제가 이람 씨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미리 후계를 두어야 할 것 같아서요. 현 시기는 누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혼란스러운 시기고, 후대에게 혁명을 맡길 우리의 입장에선 맥이 끊기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그러니….”
“폴.”
“네?”
의문을 가득 담고 이람을 마주한 폴의 얼굴이 서서히 굳었다.
불러놓고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는 모습. 피곤해서 표정이 이상했겠거니 싶었던 것이, 아무래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터졌기에 그랬던 모양이다.
그 사이 몇 번이고 입을 열었다 닫은 이람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침착하고 들어.”
“네? 무섭게 왜 그러세….”
“시이아가 실종됐어.”
“…….”
폴이 입을 다물었다. 지진이라도 난 듯 잔뜩 흔들리는 그의 동공에 이람이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폴에게 있어 시이아는 다니엘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기에 그리도 신경 썼건만, 감시인들이 잠시 눈을 뗀 사이에 사라진 모양이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어 방심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상대는 혁명군 수장의 역린이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상상조차 되지 않아 이람이 불안한 눈으로 폴을 살폈다.
지독한 침묵 끝에, 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렇군요.”
이성을 챙긴 듯, 침착한 목소리.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반응에 이람이 눈을 크게 떴다. 그 순간에도 폴은 동요를 빠르게 수습하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니… 떠들썩하게 찾을 수는 없어요.”
“…….”
“가능한 조용히, 우리가 누군가를 찾는다는 것을 들키지 않도록… 그 아이를 찾으세요.”
폴은 다니엘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순수한 의미로도 훌륭한 스승이었고, 반면교사로서도 적절한 예시가 되어주었다.
무엇을 흡수하고 무엇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가. 적어도 폴은 혁명군의 수장이 소중한 사람의 위기에 이성을 놓는 것은 옳지 않다는 걸 배웠다.
“그럼 제가 말한대로 해주시는 걸로 하고… 이제 나가주시겠어요?”
“……그래.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푹 쉬어.”
마지막까지 걱정스러운 듯 그를 돌아보던 이람이 끝내 방을 나갔다.
방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듣던 폴이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손가락 사이로 드러난 두 눈에서 짙은 절망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한숨과도 같은 목소리가 방 안을 공허히 맴돌았다.
“대체 어딜 간 거야, 시이아…….”
***
“예상대로 됐구나.”
르웨체가 동맹을 파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얼마 후, 끈질기게 버티던 파라스령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은 데온이 태연히 연무장 구석 벽에 기대며 말했다. 입가에 차가운 비웃음이 묻어났다.
“혹시 모르니 동맹에서 떨어져나온 르웨체를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다시 전해둬야겠어.”
르웨체는 모두의 본보기다. 마계가 동맹을 파기한 르웨체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눈치를 살피던 다른 왕국들의 반응이 달라질 터.
마왕 또한 이를 알고 르웨체를 건들지 말라 명했겠지만, 만약을 대비해 각 군단장들에게 재차 못을 박아두는 것이 좋겠다.
“어쨌든, 덕분에 제국을 상대하기 더 손쉬워졌구나.”
강한 군사력은 물자가 제때 공급될 때나 발휘된다. 물자를 담당하던 르웨체가 빠졌으니 제국의 자랑인 막강한 군사력도 기세가 한풀 꺾이겠지.
0군단 전용 연무장에서 어깨에 견장을 단 채 0군단원들과 으르렁거리는 미친개들을 지켜보던 데온이 한숨을 내쉬듯 가볍게 연기를 뱉어냈다.
나른한 기분에 취해 눈을 몇 번 깜빡이다 미친개들의 시선이 닿기 전에 손에 든 것의 불을 허벅지에 지져 끄고 에드를 돌아봤다.
“이제 방으로 돌아….”
“데온 님.”
에드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불을 허벅지에 지져 끄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아, 그렇구나. 옷이 엉망이 되지. 앞으로는 목이나 손에 지져 끌 테니 이번만 봐주렴.”
“……옷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상처는 벤의 목걸이에 신호가 가지 않는 상황인데, 귀한 몸에 그런 짓을 하시면.”
“귀하긴.”
지독한 경멸이 붉은 눈동자에 스쳤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단단하게 굳어진 눈동자가 통신석을 쥔 에드의 손을 힐긋 보고는 눈을 마주한다. 우아한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내겐 과분한 말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