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7
17. 수하들이 너무 유능해서 미칠 것 같다(5)
일생일대의 위기…인 줄 알았던 말에 관한 문제는 예상외로 쉽게 풀렸다.
에드가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더니 말을 치우고는 마차를 준비한 것이다.
그러고는 내게 다가와 극히 정중한 태도로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하는데… 왜 그렇게 저자세인지 솔직히 의문이었다.
나는 좋은데 말이지.
아무튼 거듭된 에드의 사과를 받고 마차를 탄 나는 지금 성을 빠져나와 도시로 향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길이 전혀 닦이지 않은 탓에 마차가 달릴 때마다 엉덩이가 아팠으나… 뭐, 참아야지 어쩌겠나. 그 말을 타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
그리고 참기 싫어도 참을 수밖에 없다. 내 앞에 에드가 있거든.
설명해야 할 것이 있다며 맞은편에 앉은 그는 이 거칠게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차분히 서류를 넘겨 가며 그 깨알 같은 글씨를 읽고 있었다.
실로 굉장한 능력이었다.
“마물들이 도시를 노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먹을 것이 풍부하기 때문이죠. 본래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작은 마을들을 노렸겠지만 이제 남은 것은 도시밖에 없으니 그리로 몰려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마왕성 역시 규모가 소도시 급인데….”
“마왕성에는 마왕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더해서 군단장님들도 계시고요.”
“아.”
“반면에 도시는 그에 비해 만만한 놈들밖에 없습니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강자들이 가득한 마왕성과, 수로 밀어붙이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도시. 그 둘 중 어느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도시를 선택하지 않겠습니까.”
마물은 이성이 없다. 본능에만 충실하다.
이성이 없는 만큼 본능이 발달되어 있는 놈들이 마왕성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느끼지 못했더라도 최소한 위험 정도는 감지할 수 있었겠지.
이성이 없는 것뿐이지,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포를 느끼는 감정이 손실되지 않은 이상 마왕성을 기피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도시는 교류를 위해 다른 지역의 이들이 자주 오갑니다. 그러니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그들을 습격하기만 해도 충분한 식사를 할 수 있었겠지요.”
“지금은 없으니 성 자체를 노리는 것이겠군요.”
“네, 그렇습….”
콰앙!
크아아아아아!!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종잇장 같은 내 몸도 흔들렸다.
박치기라도 할 기세로 제게 달려드는 날 자연스럽게 잡아준 에드가 몸에 이상이 없는지 살피더니 그대로 자리에 앉혀주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성안에서….”
-죽여!!
“방비를….”
-마차 근처엔 얼씬도 못 하게 해!
“……할 예정입니다.”
-이 빌어먹을 마물 새끼들!! 죽어! 죽으라고오오오오!!
……정말이지, 여러 의미로 대단하다.
이곳까지 오는 사이 마물의 습격이 여러 차례 있긴 했다. 오죽하면 처음엔 기겁했던 나도 지금 이렇게 태연히 앉아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에드의 태연함은 상식을 초월해 있었다.
참다못한 나는 슬쩍 창문을 열고 밖을 살피며 넌지시 말을 건넸다.
밖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에드, 안 도와줄 겁니까?”
“군단원들이 알아서 할 겁니다. 괜히 0군단이 아니니 안심하십시오.”
“어… 뭐….”
확실히 그래 보이긴 한다. 군단원들은 착실히 마물들을 죽여나가고 있었다.
큰 부상을 입은 녀석도 딱히 없는 것 같고, 아무리 못해도 다들 적어도 한 마리 정도는 온전히 맡을 수 있는 정도이니….
근데… 벤은 왜 저기에 있는 거지?
“죽어! 죽어어어어어!!”
콰악!
피가 튀었다. 나는 급히 몸을 뒤로 물리며 창문을 닫았다.
나름 빠르게 움직였다고 생각했건만, 이미 늦은 모양이다. 뺨에 뜨끈한 액체가 묻어 있었다.
음,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지금 벤은 제정신이 아니야.
손등으로 그걸 대충 훔치자, 어째서인지 기겁한 에드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황급히 손수건을 꺼내 그것을 닦아주더니 단호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창문은 전투가 끝난 다음에 여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 네. 알겠습니다. 근데 벤이….”
조금 전에 봤던 벤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왕진 가방을 휘둘러 마물의 머리를 박살 내며 그보다 더한 괴성을 지르던 모습.
오죽하면 그의 직업에 혼동이 생길 정도였다.
쟤 주치의 아니었나? 주치의는 어디 가고 웬 광전사가 저기에 있었던 것 같은데?
“아, 벤은 한 번 손맛을 느끼면 자제를 잘 못 합니다. 저래 보여도 마족이니까요.”
그렇지, 마족이지. 잠시 잊고 있었다.
주치의인 데다 전투까지 잘하다니. 이 정도면 쟤 하나만 데리고 다녀도 충분한 거 아닌가?
하지만 한 번 날뛰면 자제를 못 한다고 하니 절대로 단둘이 있고 싶진 않다.
지금까지 치료 등의 목적으로 단둘이 있었던 과거들을 떠올리며, 뒤늦게 밀려오는 충격에 나는 슬며시 배를 매만졌다.
‘아, 속 쓰려.’
어째 주변에 유능한 인물들이 늘어날수록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이다.
-흐하하하핫! 죽어, 이 자식들아아아아!!
“하아….”
밖에서 들려오는 벤의 광기 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힘없이 마차 벽에 머리를 기댔다.
아, 마물이고 나발이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잠시 휴식!”
“휴식!”
에드의 우렁찬 목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마차 내부까지 들어왔다. 더해서 복창하는 군단원들의 목소리까지.
나는 한참을 앉아 있어 찌뿌둥한 몸을 쭉 펴며 내심 생각했다.
‘저러는 걸 보니 역시 부관이 맞는 모양이네.’
하도 시중을 들려 하고 잔심부름만 하다 보니 시종과 헷갈렸다.
제국의 시점으로 보면 저건 부군단장이 해야 하는 것이지만, 마왕성에서는 군단장들의 부관이 부군단장의 역할도 겸하고 있기에 지금 에드는 본인의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하고 있는 것이 되겠다.
하루 종일 마차에만 있으니 답답하기도 하고, 아픈 엉덩이도 좀 쉬게 하고 바람도 쐴 겸 마차에서 내렸다.
문을 열고 내리기가 무섭게 보인 것은 검은 기류를 풍기고 있은 검은 말 무리. 한 마리만으로도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는 그것들은 한곳에 모여 무언가를 뜯고 있었다.
얼핏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한 분위기에 잠시 흠칫했던 나는 조금이지만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래도 말은 말인 모양이네. 생긴 거랑 어울리지 않게 풀을 뜯고 있는 것을 보니… 음?’
……뭔가, 좀 이상한데.
저거… 마물 시체 아니야?
맞다. 정말 마물 시체다. 그러니까 저놈들은 지금 평화롭게 옹기종기 모여서 마물 시체를 뜯어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가 무섭게 반사적으로 주춤 물러섰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등에 딱딱하고도 차가운 마차의 문이 느껴졌을 때였다.
“데몬 님.”
“…….”
“데몬 님?”
“…….”
제길, 무시무시한 것들! 심지어 많기까지 하다.
군단원들의 수만큼 있으니 많은 것은 당연하다만… 역시 무섭다. 갑자기 저게 미쳐 날뛴다던가 그러진 않겠지?
인간계에서는 볼 수 없는 무시무시한 외형 탓일까, 의지와는 다르게 자꾸만 시선이 그리로 간다.
절대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관심이라면 관심이겠지. 경계를 위해 시야에 두는 것 역시 관심의 일종일 테니까.
그렇게 멍하니 말 무리를 바라보는데, 난데없이 코앞에 불쑥 물병이 들이밀어졌다.
“데몬 님, 물 드시겠습니까?”
불쑥 내민 것 치고는 제법 정중한 태도.
내밀었다기보다는 바쳤다고 보는 것이 어울릴 듯한 그 행동의 주인은 다름 아닌 충성스러운 부관 에드였다.
사실 예상하긴 했다.
‘내게 이렇게 지극정성인 이들이 얼마나 되겠어.’
상대가 한낱 인간임에도 이렇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다니.
“고맙습니다.”
물에 대한 감사와, 인간인 내게도 내색 없이 본인의 의무를 다하는 것에 대한 감사.
두 가지 의미를 담은 인사임을 알 리 없는 에드가 그저 당연한 일이라며 한 번 싱긋 웃어 보인다.
그러고는 조금 전 내가 멍하니 보던 말 무리를 한 번, 내 눈치를 한 번 살피더니, 이내 뭔가 각오한 듯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조금 전에 보니까… 말을 보시는 것 같던데….”
“아, 네.”
젠장, 기껏 잊고 있었더니만.
그래, 보고 있었지. 혹시라도 저것들이 미쳐 날뛸까 봐.
튼튼한 마족들이라면 모를까, 인간들 중에서도 유독 연약한 내가 저런 것에 부딪쳤다가는 그대로 몸과 영혼이 분리될 것이다. 그러니 경계를 할 수밖에.
그나저나 그걸 눈치채다니, 어지간히도 나를 감시하는 모양이다. 마왕이 명령이라도 내렸나?
‘아니 혹시, 사직서 얘기 때문에?’
내가 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어느 정도 가능성 있는 추측이다.
집요한 마왕의 태도에 치를 떠는데, 조금 망설이던 에드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머뭇거리며 열린 입술 사이에서 나온 말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내용을 담고 있었다.
“혹, 말이… 타고 싶으신 겁니까?”
“예?”
“역시 미련이 남으셨던….”
잘 나가다가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래. 내가 저런 끔찍한 걸 타고 싶어 한다고?
황당함에 입만 뻐끔거리다가 뒤늦게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 그게 또 그에겐 다르게 비친 모양이다.
“아니, 절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답답하시겠지만 적어도 몸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만이라도 마차를 이용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말은 그 뒤에 원 없이 타셔도 되니, 부디.”
“…….”
재차 부정하려던 입을 멈췄다.
잠깐만, 그럼 나 평생 탈 일이 없다는 거 아니야?
내 몸 상태는 후유증 따위가 아니라 선천적인 것이니, 평생 이 이상 나아질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부정할 필요가 있을까.
“……알겠습니다.”
마족에게 괜히 약한 모습을 보일 필요도 없고, 서로 민망해지는 것보다는 이게 나을 것이다.
자칫 말을 탈 뻔했다는 위기감 때문인지 목이 탄다.
마침 손에 물병도 들려 있겠다, 눈치를 살피며 입에 한 모금 머금는데….
“신입, 이젠 말도 제법 탈 줄 아네?”
“아닙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겸손은 무슨. 됐어,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그럼 이제 마지막 절차만 남았지, 아마?”
“그래, 제일 중요한 게 하나 남았지. 우리 군단만의 특수한 전통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지만.”
특수한 전통이라니. 0군단에 그런 게 있었나?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에 실례인 것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마지막 절차라, 무엇일까.
그전에 0군단에 전통이라는 게 있었다는 것부터가 의문이다.
0군단은 나로 인해 만들어진 군단. 즉, 만들어진 지 고작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신생 군단이라는 건데… 전통이라고?
물을 삼키는 소리가 저들의 말을 듣는 데 방해가 될까, 입에 머금은 채 저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리고 나는 물을 삼키지 않은 것을 후회해야 했다.
“0군단원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지. 우리의 군단장이신 데몬 님에 관한 이야기.”
“아, 설마….”
“그래, 명색이 0군단인데. 데몬 님께서 용사를 죽였을 때의 그 상황에 대해 확실히 알아두어야 어디 가서 쪽 당하지 않지.”
푸흡-!!
“쿠, 쿨럭! 컥, 커헉.”
“데몬 님?!”
곧장 고개를 숙인 덕분에 다행히 에드의 얼굴에 물을 뿜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급히 입가를 훔치며 잘못 넘어간 물을 빼기 위해 연신 기침을 내뱉었다.
덕분에 당황한 것은 에드였다.
허둥거리며 새 손수건을 꺼내 내 입가에 대준 그가 손수건을 살짝 떼 안쪽을 확인하더니 경악이 서린 표정으로 더듬거린다.
“피, 피가….”
응? 또 피가 나왔나?
저 파리한 안색을 보니 또 피가 나온 모양이다.
뭐, 한두 번 이런 것도 아니고. 너무 당황한 거 아니….
“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치의, 주치의!!”
“……?”
“벤! 어딨나! 베에에에엔!!“
저기요? 지금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어째서 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더 당황하는 건데. 원래는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거 아냐?
그의 손수건은 깨끗했다.
적어도 붉은 얼룩 같은 것이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하지. 난 그냥 사레들린 것뿐이라고.
“무슨 일인가!”
맙소사. 벤까지 와버렸다.
허둥지둥 달려온 저 꼴을 보아하니 괜히 양심이 쿡쿡 쑤신다.
지금이라도 상황을 수습하려 했으나, 너무도 충실해서 저 멀리 치워버리고 싶은 부관이 나보다 한발 앞서 그의 멱살을 잡고 바락바락 외쳤다.
“데몬 님께서 갑자기 심한 기침을 하셨는데, 피가 나오지 않았다!”
“세상에!”
이쯤에서 나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틀렸어. 이놈들, 상식이 전혀 통하지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