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75
175. 승리를 위하여(2)
사냥대회 때, 데온 하르트가 잡아온 독특한 몬스터가 있었다. 필시 그 종류겠지. 마족들이 숲에 식물형 몬스터를 풀어놓은 것이리라.
다행히도 그때 황제는 데온 하르트에게서 대처 방법을 받아두었다.
“서면으로 전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 오래 걸리니….”
어차피 대처 방법도 별거 없다.
사람을 먹는 입으로 보이는 부분과 뿌리의 연결로를 아무 데나 자르거나, 근본은 식물이니 불로 지지거나 태우면 된다는 것 정도.
일반 식물들과 확연히 다르게 생겼다 했으니 따로 구분 방법을 알 필요도 없이 주의 깊게 살펴보기만 하면 될 터다.
‘사실 영웅 후보들이라도 보내 지원하고 싶지만.’
마족과의 전쟁에 관한 역사가 기록된 고서에서 마족들의 제약은 용사나 그 파편을 상대할 때 사라진다고 했다. 물론 ‘제약’과 ‘억제’는 다르기에 각 성에 설치된 ‘마법을 억제하는 진’은 기능할 테지만, 그것이 마족들의 신체 능력까지 억누르진 못할 터.
본 힘을 다 쓸 수 있는 마족과 용사의 파편을 지닌 영웅 후보들의 충돌이라니. 승패의 가능성을 가늠하기 이전에 그 주변이 초토화가 될 것이 분명했기에, 황제는 과감하게도 그들을 밀레르가 아닌 다른 곳으로 보내길 택했다.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건 정보를 전달하는 것밖에 없군.’
서면으로 전하는 것이 민망한 수준이기에 황제는 망설임 없이 아미아블 변경백과 연결되는 통신기를 들었다.
***
숲에 마력을 주입한 씨앗들이 뿌려졌다.
마계의 식물답게 그것들은 단 하루 만에 급성장을 이루며 숲의 식물들 사이에 섞여들었고, 숲에 잠복해 있던 인간들을 집어삼키거나 붙잡아 포로로 만들었다.
‘물론 그쪽도 대처법을 찾은 듯 얼마 못 가 효과가 대폭 줄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한 셈이다.
무엇보다 곧 있으면 성벽 앞에 도착하기에, 데온은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진격하는 이들을 지켜보았다.
빈도가 대폭 줄었지만 여전히 간혹 습격해오는 이들을 상대하고 치워가며 나아가길 한참, 드디어 밀레르 영지의 성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조금 더 나아가자 시야 일부를 가리던 나무들이 치워지고 시야가 탁 트인다. 그리고 나무들에 가려져 있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데온이 허, 하고 기가 찬 웃음을 뱉었다.
“이렇게 친히 마중을 나와주실 줄이야.”
아미아블 변경백의 병력이 성 앞에 나와 진을 치고 있었다.
공성전을 예상했다만, 이렇게 되면 백병전이 되겠군. 마족을 상대로 백병전이라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의문이 든 것도 잠시, 조금만 생각하자 데온은 알 수 있었다.
‘기습을 상대해가며 숲을 헤치고 나와 잔뜩 지쳐 있을 우리를 쉴 틈 없이 몰아붙이려는 생각이겠지.’
숲을 불태우기 이전이었다면, 아니 식인식물을 활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면 필시 저들의 생각대로 됐을 테지만…….
가벼운 비웃음을 머금었다. 덩달아 차가운 조소가 담긴 목소리가 뒤따라오던 장수를 향해 던져졌다.
“지금 바로 전투 가능하겠지?”
“당연히 가능합니다.”
“좋아.”
공성전을 예상했던 탓에 백병전에서 큰 효과를 보이는 미친개들은 일부러 부르지 않았다만, 상관없다. 마침 책에서 읽어본 것 중 가장 써보고 싶은 전략이 있었으니까.
단과의 체에스에서도 활용해보았던 유명한 전략.
데온은 기꺼이 지시를 내렸다.
“방패병 앞으로.”
***
빠른 기동력을 위해 오로지 기병으로만 이루어진 인간 측 병력이 돌진한다.
그에 대응하듯 마족 방패병이 앞에 나서고, 창병에 뒤에 섰다. 진격 도중 빼앗은 건지 인간계의 말도 타고 있는 기병은 한쪽에 치우쳐 움직이고 있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신속한 움직임이었으나 인간 측, 특히 성벽 위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아미아블 변경백은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당장 3시 방향으로 빠져라!”
신속한 명령 하달을 위해 항시 켜둔 통신기에 대고 급히 외쳤다. 돌진하던 기병이 급히 방향을 꺾어 빈 공간으로 몸을 뺀다. 그러나 마족들의 움직임은 예상보다 빨랐다.
기어이 후미가 포위망에 집어 삼켜졌다. 괴물의 입이 닫히고, 아가리 안에 고립된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간다. 변경백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전략에 관심이 있는 자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망치와 모루.’
보병이 앞에서 버티고, 그 사이 기동력 좋은 기병이 에워싸며 포위된 적을 섬멸하는 전략.
분노가 치솟았다.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전략에 당한 스스로의 무능함에 분노한 것이 아니다. 마족의 움직임이 저렇게까지 신속할 수 있을 줄 어느 누가 알았으랴. 다만.
“저자는… 전쟁을 도대체 뭐로 생각하는 거지?”
게임이라도 즐기는 듯 가볍게 병력을 놀리는 상대의 행동에 분노했다.
지휘관이 성벽 위에서 모든 걸 관망하고 있다는 것을 저자가 모를 리 없다. 멍청하지 않았던 발언과 행동을 생각해보면 필시 병력이 움직인 즉시 이쪽이 무슨 전략인지 눈치채리란 것도 예상했겠지. 그럼에도 병력을 이따위로 움직인 이유라 하면….
‘그냥, 한번 해보고 싶어서.’
그래, 딱 그 마음이 느껴졌다. 텐더 아미아블은 이를 부득 갈았다.
이게 무슨 체스라도 되는 줄 아는 것인가. 지휘관의 판단 하나에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오가거늘. 사냥대회 때 만난 첫인상이 소문과 달리 정상적이라 생각했다만 역시 그건 가면이었던 모양이다.
통신기에 대고 나직이 명령했다.
“……성으로 복귀하라. 수성전에 돌입한다.”
예상과 달리 마족들은 지치지 않았고, 이 방법은 실패했다.
제대로 된 수성전에 들어갈 차례였다.
***
예상은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적을 완벽히 포위하기 전에, 위에서 보던 지휘관이 눈치채고 명령을 내린 듯 인간 측 기병이 채 닫히지 않은 틈으로 빠져나갔다. 후미를 집어삼켰다지만 그뿐이었다.
마족들이 포위망에 들어온 인간들을 섬멸하고 진형을 다시 가다듬는 사이, 그들은 성안으로 들어가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수성전에 돌입하겠다는 굳센 의지가 느껴져 데온은 피식 웃었다.
“여기선 역시 무력으로 밀어붙이는 게 좋겠지.”
공들여 상대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을 길게 끌지 않고 끝낼 수 있는 것을 굳이 돌아서 갈 필요는 없다. 데온은 통신석을 들었다.
…….
– 이런, 미안하지만 군단의 사용은 자제해주었으면 하는데. 혹시 0군단만으로는 부족한 거야?
예상과 달리 거절의 말이 돌아왔다. 곤란하다는 듯한 음성에 데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이건 계약 위반이다.
데온 하르트는 마왕의 인간계 정복을 돕는 것을 대가로 제국을 철저히 부숴달라 했다. 계약서와 도장이 오간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엄연한 계약이니 최소한 이쪽의 청을 거절하지 않아야 옳을진대.
통신석 너머, 이러한 기색을 읽은 마왕이 뺨을 긁적였다.
“마족의 탄생은 줄었는데, 마물은 엄청 늘었거든.”
– …….
사실 왜 이런 상황이 펼쳐졌는지 이유는 알고 있다.
데온 하르트를 살리기 위해 마력의 9할을 소모한 이후, 마왕의 힘으로부터 탄생하는 마족과 마물이 줄었으니까.
‘마왕의 힘으로부터 탄생하는’ 마족과 마물이 줄었다 했다. 안타깝게도 마족은 번식이 불가능하지만, 마물은 번식이 가능했다.
‘정상’인 마족과 달리 마물은 ‘오류’니까.
“게다가 황제가 영웅 후보들로 이루어진 병력을 경계선에 보냈어. 뚫고 들어오려는 걸 막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군단의 낭비는 자제해야 할 것 같아.”
경계선에 다른 누구도 아닌 ‘용사의 파편을 지닌 자’들이 나타났다.
그 소식을 들은 순간 마왕은 황제가 ‘제약’에 관한 건을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필시 그때 보였던 고서에 적혀 있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그 좋은 전력을 제국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지 않고 이곳에 보낼 이유가 없으니까.
본 실력의 마족과 용사의 파편이 붙었다. 보아하니 마법 억제 부적을 소지한 것 같긴 하지만, 마족들의 강함은 단순히 ‘마법’ 하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니 상관없다. 당장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트로버도 9군단장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황제도 이 사실을 알기에 일부러 이쪽에 보낸 것일 테고.’
주변에 큰 피해를 줄 전투의 무대를 제국이 아닌 경계선으로 바꾸고 마족들의 주요 전력의 발목을 묶었다.
물론 잔챙이, 즉 일반 마족 병사들을 상대한다면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고도 얼마든지 상대 가능하겠지만, 현 상황에서 고급 전력을 그런 곳에 낭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영웅 후보들의 쓰임은 잔챙이를 상대하는 것보다 강한 마족을 상대할 때 더 효과가 좋으니까.
제법 머리를 쓴 듯했다.
– 어차피 너도 이쪽에 너무 기댈 생각은 없었잖아?
웃음기를 감추지 않는 능글맞은 목소리에 데온이 잠시 침묵했다.
“……알겠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서둘러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더 통신석을 들고 있을 필요를 못 느껴 대충 형식적인 예의만 갖추고 끊었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데온은 총지휘관으로서 드벨라니아와 이델리아로부터 인간계, 특히 제국에 관한 정보를 꾸준히 받고 있다. 개중 그나마 최근에 들어온 정보를 떠올렸다.
‘황제가 귀족들의 사병을 운용 중이라지.’
영지를 지킬 최소한의 사병조차 완전히 거둬가 운용 중이라고 들었다.
물론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귀족들의 영지를 지키는 데 사용하고 있다지만, 현재 거의 대부분의 병력이 이곳, 밀레르 영지에 지원을 와 있어 귀족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 상황에서 완전히 다른 영지에 마족들이 등장한다면….’
경계선 근처 영지 위주로 병력을 배치해두고 대다수의 병력을 밀레르 영지에 몰아둔 상황에서, 밀레르 영지도 아니고 경계선 근처 영지도 아닌 완전히 다른 곳에 마족이 등장한다면?
‘귀족들이 꽤나 귀찮게 굴겠지.’
황제는 과하게 몰아둔 이곳의 병력을 일부 빼서 그곳에 지원을 보낼 테고.
……좋아, 결정했다.
“단.”
“부르셨습니까?”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단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데온은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며 물끄러미 그를 보다가 느리게 질문을 던졌다.
“요정족의 약초를 유통하며 입지가 상당히 커졌을 텐데.”
“네, 아주 유명해졌죠. 예전에 귀찮게 굴던 로우펠 상단도 확실히 짓밟으며 복수할 수 있을 정도로 힘도 강해졌습니다.”
그걸 지금까지 기억해뒀다가 복수하다니.
놀라울 정도로 쪼잔하고 좋은 기억력에 눈빛이 식은 것도 잠시, 데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저기서 연락이 들어오거나 하지는 않던?”
“당연히 많이 들어옵니다. 누구 접촉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르웨체의 국왕.”
“오…….”
가볍게 던져진 말과 달리 내용은 장난 아니다.
잠시 입을 열었다 닫은 단이 언제 흠칫했냐는 듯 머릿속을 뒤졌다. 르웨체의 왕실로부터 연락이 온 적이 있었던가.
“……아쉽게도 없습니다. 하지만 찾아가면 거절은 하지 않을 것 같군요.”
아마 동생을 잃은 슬픔에 제정신이 아니라 이쪽은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신비한 약초를 유통하는 상단의 주인이 찾아간다면 필시 만나려 하겠지. 아마 죽은 동생을 살릴 수 있는 약초가 있는지 묻지 않을까.
데온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명했다.
“르웨체의 국왕을 찾아가서….”
***
동맹은 파기했고, 마왕군은 르웨체를 건들지 않는다.
달리 신경 써야 할 것이 없는 르웨체의 국왕은 걸릴 것 없이 슬픔에 잠겨 사는 상태였다.
국정을 돌봐야 한다고 측근들이 간언했으나, 가족을 잃은 슬픔에서 어찌 금방 벗어날 수 있을까. 그는 쉬이 동생의 망령을 떨쳐내고 일어설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의욕을 잃고 살아가던 중, 누군가의 알현 요청이 전해졌다. 한껏 날카로워진 국왕은 즉각 예민하게 반응했다.
“분명 모든 알현 요청은 거절하라 했을 텐데.”
“다른 귀족이 아닌 덴 상단의 상단주의 알현 요청이어서 여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거절하겠습니다.”
“……잠깐, 덴 상단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