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8
18. 들춰진 베일(1)
“그래서 말인데, 혹 물병에 독이 들어 있던 게 아닌가?”
“그럴 가능성도 있군! 일단 물병은 따로 챙겨두게. 그 물병을 누가 준비했는지도 알아두고!”
“그러지… 응? 잠깐, 생각하고 보니 그 물병은 내가 직접 준비했는데?”
“에드 네놈… 네놈이 그럴 수가…!”
“아니, 잠깐만. 어째서 사고가 그쪽으로 튀는 건데?!”
아, 생각하고 보니 벤은 아직 전투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즉, 제정신이 아니라는 뜻.
‘그런 녀석을 부르다니, 날 죽일 생각이었냐.’
조금 식은 눈으로 에드를 본 것도 잠시, 그래도 날 생각한 것인 데다 상당히 당황한 눈치였으니 그걸 감안해 참작해 주기로 했다.
절대 다음 부관이 12군단장의 부관, 다하르 같은 녀석이 올까 봐 두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러다가 정말 저 둘이 생사를 건 결투라도 벌일 것 같아 나는 황급히 기침을 갈무리하고 둘을 불렀다.
“난 괜찮으니 두 사람 다 그만하고… 켈룩.”
“데몬 님!”
“도대체 무슨…! 피가 나온 것도 아니고, 마력석에 반응도 없고… 도대체 뭐지? 마력석이 불량인가? 돌아가자마자 바꾸든가 해야지, 원!”
아니야, 그거 아니라고.
아, 망할….
하얗게 불태웠다.
뭐를? 내 정신력을.
고작 독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이리도 많은 정신력을 쏟아부어야 할 줄이야.
그럼에도 둘은 끝까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우리의 강인하신 데몬 님께서는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혼자 독을 이겨내시고 거짓말을 하시는구나. 그러니 이번 한 번만 속아주자’ 정도의 납득만 했을 뿐.
그쯤에서 멈춰준 것은 정말 고마운데 말이지… 왜 난 환장할 지경일까.
“그때 데몬 님께서 전 7군단장을 깔아뭉개며 그 사이에 떨어지는데…!”
들뜬 듯 잔뜩 과장된 목소리가 들렸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에드가 깔아준 망토 위에 앉아 마차 벽에 기댄 채 멍하니 그 목소리를 들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내 하얀 머리칼을 어지럽힌다.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헤집고 들어온 바람은 얼른 정신 차리라는 듯 두피를 시원하게 어루만졌다.
덕분에 어느 정도 머리가 식으며 ‘나의 무용담’에 관한 진실이 머릿속 빈자리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래, 저거. 저거 때문에 또 내가 위가 아프다니까. 환장하겠다, 진짜.’
나는 용사를 죽이지 않았다.
자폭하려던 용사를 제지하지도 않았고, 그의 자폭을 몸에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다.
전 7군단장에 관한 이야기도 사실은 조금 많이 왜곡되어 있었다.
이참에 나에 대해 다시 정리해 보겠다.
내 이름은 데온 하르트.
현재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마왕성에서 ‘데몬 아루트’란 이름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마지막 용사’의 ‘마지막 동료’였다.
‘마지막 용사, 라….’
고개를 젖혀 마차 벽에 기댔다.
세 개의 달과 별이 총총히 박힌 검은 하늘이 시야 가득 들어온다.
‘……우습지도 않지.’
‘마지막 용사’, ‘마지막 동료’.
이건 제국에서 칭하는 말이다. 이유는 별거 없다.
제국은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냥 ‘용사’와 ‘그의 동료’로 칭하는 것보단 ‘마지막’이란 수식어가 붙은 것이 좀 더 무게감 있어 보일 테니.
나는 ‘마지막’이란 수식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용사에게 붙은 것이라면 더더욱.
‘영원한 마지막이란 것은 없으니까.’
여기 두 아이를 낳은 집이 있다고 해보자. 여기선 둘째가 막내일 것이다.
그런데 한 아이를 더 낳게 되면? 둘째에게 붙어있던 ‘막내’라는 별칭은 셋째에게로 넘어가는 것이다.
용사도 그렇다.
세계는 균형을 중시한다. 마왕의 힘은 균형을 무너뜨릴 정도로 강대하고, 그렇기에 마왕이 살아 있는 한 언제가 될지 몰라도 세계는 또다시 용사를 보낼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내 죽은 동료에게 붙어있던 ‘마지막’이란 단어는 그 새로운 용사에게로 넘어가겠지.
그렇다면 나는 ‘마지막 용사’의 ‘마지막 동료’가 아닌,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용사들 중 하나’의 ‘마지막 동료’가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마지막’이란 단어에 그리 큰 신경을 쏟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건 그저 있어 보이기 위한 일종의 허세와도 같으니까.
“자폭하려는 용사의 어깨를 딱! 잡더니!”
아, 아직도 이야기 중이었나.
그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건 그냥 용사의 목소리가 잘 안 들려서 귀를 가까이 댔던 것뿐이다.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나….
그래, 용사의 동료로 발탁되어 마왕성으로 향했던 이야기부터.
‘……다시 생각해보니 살아 있는 게 용하네.’
그때의 일을 다시 생각하자니 절로 몸서리가 쳐진다.
마왕성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험했다. 아니, ‘상당히’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 외에도 동료로 발탁되었던 그 많은 이들이 모조리 죽어버렸는데, 어찌 그리 단순하게 ‘험했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결국 저 멀리 마왕성이 시야에 들어올 쯤에 살아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고, 용사는 유일한 동료가 되어버린 나를 너무도 신뢰했다.
실상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인데.
‘그래, 운이 좋았지.’
나에 대해 신나게 떠들고 있는 군단원들을 보며, 나는 쓰게 웃었다.
***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가겠습니다.”
“……진심이십니까?”
절로 반문이 튀어나왔다.
지금 용사의 눈엔 저들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용사’가 괜히 용사일까. 용사는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 누구보다 압도적인 재능과 압도적인 신체를 타고난 존재.
현재 그는 내가 보고 있는 것 이상으로 저 군세를 선명하게 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틀어 거대한 마왕성을 쳐다봤다.
역시 웅장하다. 바로 저기에 마왕이 살고 있단 말이지.
그럼 저기에 그냥 처박혀서 계속 살고 있을 것이지, 왜….
‘왜 마중을 나와서 이 지랄인지.’
거대하고도 웅장한 마왕성.
보통은 저 덩치와 위엄에 시선을 빼앗길 테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다.
그 앞에 바글바글 모여 있는 까만 것들.
그래, ‘마족’들이다. 보나 마나 마왕님의 싸움을 구경하겠답시고 따라 나온 군단일 테지.
내 말 이해했나? ‘따라 나온’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지금 마왕성 앞에 마왕이 나와 있다는 뜻이다.
보통 최종 보스는 가장 안쪽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째서 나와 있는 건지.
“애초에 ‘동료’의 역할은 용사가 마왕 앞까지 도달하도록 길을 터주는 것입니다. 전투는 오롯이 용사의 몫이지요. 그러니까 하르트 님, 당신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수고하셨어요.”
“…….”
“그래도… 이기면 다시 여기로 돌아올 테니, 전투가 끝날 때까지만 여기서 기다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재차 어마어마한 군세를 내려다보며 나는 확신했다.
용사는 진다.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마왕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저 병력까지 상대해야 한다고? 아무리 용사라 해도 그건 불가능해.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마왕의 앞까지 길을 터주는 것이 바로 ‘동료’의 역할. 그러니까 저 병력을 막고 용사가 마왕과 온전한 전투를 벌일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동료의 역할이다.
그럼에도 그걸 굳이 언급하지 않은 것은 개죽음을 피하기 위해서겠지.
기왕 죽을 거, 한 사람이라도 살려놓고 죽는 것이 나을 테니까.
실로 용사다운 발상이다.
“그….”
나오려던 말이 목구멍에서 턱 걸린다. 누군가 목을 옥죄고 있는 듯 숨이 막혔다.
나는 지금 그를 불러 무얼 하려는 걸까. 어차피 붙잡을 수도, 붙잡아서도 안 되는 것을.
그를 불러봤자 할 말은 없다. 감히 돌아가자 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용사는 마왕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거니까. 그런 그가 마왕을 앞에 두고 돌아간다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버린다는 뜻이고.
그렇다고 해서 나도 같이 가겠다는 말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살겠다고 아등바등했는데, 그렇게 간신히 여기까지 왔는데, 죽을 게 뻔한 자리로 가겠다는 말이 쉬이 나올 리가 없었다.
빌어먹게도, 나는 살고 싶었다.
“…….”
입을 다물고 머릿속을 정리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그럼 이만 다녀오겠습니다.”
“……예.”
간신히 대답을 뱉었을 땐, 그는 어느새 우리가 숨어 있던 절벽 아래로 내려가 마왕군을 향해 걷고 있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담기지 않은 걸음걸이.
패배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 자신감이 넘치는 걸음걸이가, 마왕의 앞에 도달하고 나서야 멈춘다.
짧은 대화가 오가고, 마왕이 주위를 향해 손짓을 한다. 그러자 포진해있던 군단들이 우르르 물러서 거대한 원형을 이루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모양이네.’
솔직히 1 대 1로 싸울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명색이 마왕이지 않은가. 비겁한 짓을 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자리이니.
그러나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 못 가 내 생각은 바뀌었다.
‘미친, 저게 뭐야.’
그는 양심이 있어서 주위를 물린 것이 아니었다.
이길 자신이 있기에 물린 것이었다.
어째서 그가 역사상 최강의 마왕이라 불리고 있는지, 나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압도적이다.
상대는 ‘용사’인데.
마치 성인이 어린아이를 가지고 놀 듯, 마왕은 지루하고도 권태로운 표정으로 그의 모든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마왕의 승리였다.
용사의 배를 파고들어 등까지 뚫고 나온 그것이 붉은 핏방울을 뚝뚝 떨어뜨린다. 마왕은 시시하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더니 이내 죽이려는 듯 그의 몸에 꽂힌 검 손잡이를 잡았다.
그때였다.
“누구냐!”
“!”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성대를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목소리. 그것은 명백히 등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단검부터 빼 들었다.
그리고 상대를 확인한 나는 이내 손에 힘을 풀어버렸다.
‘……오우거.’
저건 절대 못 이겨.
심지어 말까지 한다. 그렇다는 건 마왕의 힘에 영향을 받은 ‘마족’이라는 것일 테고, 그만큼 일반 오우거들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겠지.
도망쳐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는 도망치는 데에는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80%의 운과 20%의 민첩한 몸놀림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니 말 다 했지.’
정확하겐 민첩한 몸놀림보다는 ‘도주 능력’이 더 어울리겠지만.
‘그래도 자존심상 ‘민첩’이라고 칭하는 게….’
부웅!
“윽, 미친!”
정말이지 겨우 피했다. 다짜고짜 검부터 휘두르다니, 공격 전 대화 시도는 기본 아니었나?
반사적으로 상체를 젖혀 피한 판단력과 그걸 버틴 유연한 허리에 감사하며, 나는 그로부터 두어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맞다, 여긴 절벽이지.’
투둑. 발뒤꿈치를 받치고 있던 바닥이 바스러져 아래로 떨어진다.
유일한 퇴로는 저놈이 막고 있는 길뿐.
녀석이 들고 있는 무식하게 긴 검과, 상체의 터질 듯한 근육, 그리고 지금 상황을 아주 잘 아는 듯 여유로운 태도를 확인한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지만 내 운은 여기까지인 모양이야.’
녀석이 무식하기라도 했다면 어찌어찌 유인해서 절벽 아래로 떨어뜨릴 수 있겠지만, 저 녀석의 태도를 봐선 적어도 멍청하진 않은 것 같다.
아마 내가 죽게 된다면 그건 바로 눈앞의 저 녀석 때문이겠지.
그렇지만 포기하기엔 목숨이 너무 아까웠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애초에 용사의 동료로 발탁된 것부터가 내가 원해서 된 게 아니었다.
그러니 이대로는 억울해서 못 죽겠다!
같이 죽는 것도 억울하다. 너는 죽어라, 나는 살 테니.
양손에 단검을 쥐고 녀석을 향해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기합을 내질러 저 아래의 적들에게 내 존재를 알려주는 그런 멍청한 짓은 당연히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물고 눈을 부릅뜬 채 소리 없이 달려들었다.
의외인 듯 눈을 크게 뜬 녀석이 이내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검을 재차 들어 올린다.
놈이 발을 앞으로 크게 딛고, 한껏 올라간 검이 공간을 가르며 나를 향해 내려올 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눈을 깜빡이지 않고 그 모습을 눈에 담던 나는 머릿속으로 타이밍을 셌다.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