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92
192. So long to the regret(4)
“……그런가.”
아무래도 ‘외면’은 데온 하르트만이 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에도아르도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은 그저 돌아볼 자신이 없었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 등 뒤에 산처럼 쌓여있을 시체를 똑바로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한 번 후회하기 시작하면 끝없이 후회해야 할 테니까, 그래서 후회 대신 책임에 목을 매며 앞으로 나아갔던 모양이다.
대부분의 이들은 에도아르도가 강하다 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나약하다.
책임에 목을 매면서도 그 어떤 것도 책임지지 못했고, 죽고 싶어 하면서도 기어이 죽지 못했다. 형제들을 죽인 것에 대한 책임도, 제국과 제국민에 대한 책임도 지지 못했으며, 자살도, 적의 손에 죽는 것도 못 해 꾸역꾸역 살았다.
참으로….
“그렇다 해도.”
우유부단한 인간이 아니던가.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리 맞이하는 죽음이 제법 마음에 든다. 어느 것도 택하지 못한 얼간이에겐 과분한 최후이니.
에도아르도는 이해하지 못한 듯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데온의 붉은 눈을 한 차례 바라보고는 눈을 감았다. 이도 저도 아니게 굴 바엔 차라리 두 조카들에게 집중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스쳤으나, 후회로 번지기 전에 지워냈다.
‘……아.’
그제야 데온은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존재는 ‘황제’가 아니었다.
주요 자리에서 빼놓지 않고 꼭꼭 쓰던 황관을 벗고, 언제나 두르고 있던 망토를 벗어 던진 채 간편한 복장으로 검 한 자루를 든 그는 전투 내내 스스로를 ‘짐’이라 칭하지 않았다.
복잡한 시선으로 눈을 감은 에도아르도를 바라보던 데온이 천천히 단검을 들어 올렸다.
“……아, 깜빡했군. 한 가지 말해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
“살고 싶다면 속히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좋을 거다. 황궁 곳곳에 폭탄이 심어져 있으니. 40분 뒤에 터지도록 설정해두었으니, 곧 터질 때가 되었겠군.”
“……터지는 시간도 조정이 가능했습니까?”
만약 가능해진다 해도 혁명군 쪽에서 먼저 개발될 것 같았는데. 폭탄은 혁명군이 잘 만드니까. 휴대용 폭탄도 당시 수장인 다니엘이 개발했다던가.
이젠 제국민이 아니어서 하는 말인데, 솔직히 제국을 비롯한 각 왕국들의 폭탄은 불량이 많고 시원찮다. 너무 잘 터져서 사용하기도 전에 폭발하거나, 아예 안 터지거나. 그래서 전쟁에서의 폭탄 사용이 드문 거고.
에도아르도가 나른히 답했다.
“분석만 할 수 있다면 개량은 어렵지 않지. 예전 암시장에 혁명군 측 휴대용 폭탄이 나온 적이 있어서 정보가 들어온 즉시 입수하라 했다.”
개발자들을 얼마나 갈아 넣었을지 안 봐도 훤하군. 여전히 에도아르도의 목을 노린 자세로, 데온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보다 휴대용 폭탄이 암시장에 나왔다고? 그걸 혁명군에서 가만히 두고 보았을 리 없는데.
‘걔네가 그쪽으로 얼마나 예민한데.’
오죽하면 잡힐 것 같을 때 자폭을 하려 들까. 그게 다 폭탄이 적의 손에 들어가 분석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걸 단순히 빼돌린 것도 모자라 경매장에 팔아넘기기까지 한 간 큰 녀석은 필시 죽었으리라.
“본래 목적은 궁 내에 진입한 모든 마왕군이었다만, 설마 혼자 들어올 줄이야. 헛수고가 되었군.”
“…….”
“뭐하지? 시간도 없을 텐데, 어서 끝내지 않고.”
에도아르도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괜히 눈 뜬 채 죽어 제 시신을 발견한 누군가가 그 흉한 꼴에 대한 말을 옮기지 않도록. 그래서 그렇지 않아도 충격받았을 조카들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겨주지 않도록.
‘…….’
데온이 단검을 내리찍었다.
그리고.
──어느 눈이 내리던 날.
한 영웅의 별이 졌다.
***
에스페라네스의 용병이 도착했다. 그들은 정확히 시간 맞춰 도착했으나, 공작은 기뻐할 수 없었다.
이미 마왕군은 수도에 도착했으니까. 황궁에 데온 하르트가 들어갔다고 했다. 그에 반해 황제나 황족들이 대피했다는 소식은 통 없으니 자꾸만 최악의 경우가 떠올라 궁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정문엔 마왕군이 있으니 다른 곳으로 들어가죠.”
그렇지 않아도 적은 병력인데, 괜히 마왕군과 싸우며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 최우선은 황족들의 안전 확보. 어디 적당한 담벼락이라도 넘기 위해 공작은 정문을 피해 궁 근처를 크게 빙 돌았고.
막 비밀통로에서 나오는 황족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여기서 다른 통로로 옮겨가서 이동하면… 일루스터 공?”
“물러서십시오.”
빠르게 두 황족을 제 뒤로 물린 네메세우스가 검을 뽑고 공작을 겨눴다. 근위대 또한 바짝 긴장한 채 무기를 겨누고, 덩달아 에스페라네스의 용병들도 무기를 꺼내 든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터질듯한 긴장감을 늦춘 사람은 다름 아닌 공작이었다.
“해칠 생각이 아니니 안심하시지요.”
“잘도 그 말을 믿겠군.”
“용병분들도 검을 거두시길. 보호 대상과 싸워서야 되겠습니까.”
“……보호 대상?”
황태자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고, 네메세우스의 검 끝이 흔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작은 눈을 굴려 그들의 뒤를 살폈다.
부디 제가 생각하는 사람이 이곳에 있길 바랐는데….
‘……없다.’
불길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달렸다.
“폐하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남으셨다.”
“남으셨다니…….”
짧은 한 마디였으나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었다.
공작은 눈을 감았다. 어디에, 따위의 어리석은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예상했으니까. 그저 담담히 중얼거릴 뿐이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지.
“아니길 바랐는데.”
일은 이미 벌어졌다. 이제 와 어떻게 바꿀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면 이쪽이 취해야 할 행동도 정해진다.
황제 성격상 오롯이 혼자 남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질문을 던졌다.
“폐하와 함께 남은 병력은 몇이나 됩니까?”
“없다. 홀로 남으셨지.”
더 들을 것도 없다. 공작은 즉시 용병들에게 말했다.
“모두, 두 분 전하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셔드리세요.”
“……모두, 말씀이십니까?”
“예, 모두.”
“……알겠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의뢰에 의문을 가진 것도 잠시, 이미 돈도 받았고 거부감 드는 의뢰도 아닌데 굳이 토를 달 필요는 없다. 용병들은 의문을 접고 즉시 두 황족을 호위하듯 주위에 둘러섰다.
공작은 의문을 감추지 않는 황태자와 황녀를 향해 싱긋 웃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시군요.”
“…….”
이런 점에서 황제와는 다른 그들의 미숙함이 느껴진다. 공작은 선심을 베풀어 두 병아리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가르침을 주기로 했다.
“정치에 영원한 적과 아군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공은 아군이라는 뜻인가?”
“일단은 그렇게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군요. 그리고….”
이건 앞으로 골 아픈 정치를 하게 될 둘을 향한 조언.
“정치에는 절대적인 선과 악도 없죠. 만약 절대적인 선이나 악으로 보이는 것이 존재한다면 의심의 여지도 없이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주로 선으로 불리는 쪽이 아주 구릴 테니 의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구원교에서 구원이라 부르며 찬양하는 공처럼 말이죠?”
“네, 황녀 전하.”
공작이 눈을 휘었다.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콰아아앙!!
거대한 소음이 일었다. 모든 이들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소음의 근원을 찾아 돌아가고, 끔찍한 정적이 찾아왔다.
“저게 무슨…….”
황녀가 경악을 감추지 못한 채 입을 틀어막았다. 황태자는 동공을 덜덜 떨고, 눈을 크게 떴던 네메세우스는 이내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근위대는 저마다 동요를 감추지 못한 채 술렁였는데, 심지어 용병으로 온 에스페라네스인들마저 그러했으니 공작은 어땠겠는가.
“……하.”
헛웃음이 나왔다.
거대한 폭발음을 시작으로 황궁이 무너지고 있었다.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유구한 역사와 그만큼의 가치를 가진 것이 볼품없이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크기만큼이나 무너지는 모습이 느리게 보여 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저기에 황제가 남았다고.’
여기서 더 시간을 끌고 있을 수는 없다. 내내 손에 쥐고 있던 것을 곧장 황태자에게 건네주고 네메세우스에게 다가갔다.
목적은 그의 손에 들린 비밀통로가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종이였으나, 괜히 제국의 첫 번째 영웅이 아니라는 건지. 빼가기도 전에 그가 즉각 손을 뒤로 물리며 경계하듯 물었다.
“뭡니까?”
“어차피 이곳의 비밀통로는 오늘 이후로 쓸 일이 없을 거잖습니까. 잠시만 보겠습니다.”
“…….”
대답은 없었으나, 더 이상의 회피나 저항도 없다. 공작은 네메세우스의 손에서 종이를 빼가 빠르게 훑으며 이곳에서 황궁 내부까지 가는 길 하나만 외운 뒤, 다시 돌려주었다.
복잡한 표정으로 손에 들린 것을 만지작거리던 황태자가 기다렸다는 듯 그를 불렀다.
“이건 뭔가?”
“도움이 될 겁니다.”
“…….”
그따위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니라는 걸 알 텐데. 이 쪽지가 무엇이길래.
시원찮은 대답에 황태자의 얼굴이 일그러졌으나 공작은 개의치 않고 돌아섰다. 미련 없는 목소리가 가볍게 퍼졌다.
“그럼 이만 여기서 헤어지는 걸로 하지요. 두 분 전하를 잘 부탁드립니다.”
***
비밀통로로 내려가 황궁을 향해 달려가는 내내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다양한 가정과 예측되는 상황, 그에 따른 대응 방법, 그리고… 과거. 그중에서도 공작이 집중한 것은 과거 1왕자와의 대화였다.
계약이 끝난 이후의 대화였지.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미련한 방법을 사용하시느냐 물었던 것 같다. 그때 그가 뭐라 대답했더라.
[물론,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 있었을 겁니다. 아마 지금도 있겠죠. 하지만 난 아둔하여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더군요.]그래, 아둔했지. 그의 선택이 한 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끌고 인간계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으니. 입술 사이를 비집고 비웃음이 기어 나왔다.
비웃음은 무너진 황궁에 도착했을 때 변질되어 허탈하게 흘러나왔다.
“……하하.”
모든 것이 무너진 공간에서 찬란한 황금빛 머리카락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행히도 돌에 깔리진 않은 모양이야. ……아니, 다른 이가 막아준 건가.
홀린 듯 느리게 걸음을 걸어 그에게 다가갔다. 붉은 시선이 걸음 하나하나에 진득하게 따라붙었으나 공작은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저 그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천천히 손을 뻗었다.
“……죄책감 따위에 쩔쩔매는 주제에 열심히 해보겠답시고 이를 드러내는 꼴이 귀여워 두고 보았더니만.”
황제로서 살다가 에도아르도로서 죽고자 나선, 그러나 황제답게 죽은 이의 뺨을 어루만지며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어디까지나 계약에 묶인 관계였다.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하는 대상이자 지키기 위해 도리어 그 자리를 앗아와야 하는 대상. 귀찮고 번거로운 변수.
황좌에 손을 뻗는 저를 경계하고 막아서며 으르렁거리는 것이 제법 흥미로워 계약 기간이 끝나고도 그냥 두었다지만 딱 거기까지다. 공작은 마지막으로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고 느리게 손을 거뒀다.
시선을 들어 데온 하르트를 마주했다.
“기다려주다니, 답지 않은 배려군요.”
“배려?”
나직한 헛웃음이 공터를 맴돌았다.
“네 반응이 궁금했을 뿐이야.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기분이 어때?”
“가장 소중한 것?”
일순간, 공작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것도 잠시, 그의 시선이 황제의 시신에 닿았다.
……아아. 그런 거였군.
“제겐 권력이 가장 소중합니다.”
“그럴 리가.”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행동하고 있는데 어찌 모르겠어.
자각도 못 한 상태였군. 데온이 키득 웃었다.
뭐, 상관없다.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 괴로운 것은 매한가지이니. ……하지만 자각하는 쪽이 더 괴롭겠지. 심술을 담아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곳엔 왜 혼자 온 거지?”
“병력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황제를 살리고자 병력을 데려오는 것은 낭비니까. 상황도 황제의 죽음이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음을 알리고 있고, 무엇보다.
‘……그가 죽고자 했으니까.’
공작은 마지막까지 황제의 자유의지를 존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