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00
200. 휴식인가 게으름인가, 그도 아니면…(2)
“지금처럼 식사를 꾸준히 챙겨드리고 잠깐씩이라도 산책을 하시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겠지. 저 친구처럼 뭔가 의욕이 날 만한 선물을 드리는 것도 좋고.”
안타깝게도 실패인 모양이지만.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인 퍼즐을 턱으로 가리킨 벤이 누구 들으라고 하는지 모를 몇 가지 잔소리를 늘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하튼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야.”
…….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빌어먹을 마족들이 귀찮게 굴기 시작한 것은.
‘망할 놈들.’
누워 있다가도 식사 때가 되었다 하면 저를 억지로 일으키는 단은 그래, 참을 수 있다. 어쨌거나 살려면 식사는 해야 하니까.
식단이 조금 부담스러운 것도 괜찮다. 심적 부담과는 별개로 요리사가 유독 힘을 주고 만든 만큼 맛도 좋고 먹을 종류도 많으니까.
미친개들이 저들끼리 인원을 나눠 돌아가며 찾아오는 것도 괜찮아. 걔네는 나 하나만 보고 이곳에 온 놈들이니까. 나 아니면 기댈 곳이 없으니 보호자 된 도리로 마음을 넓게 가지고 받아들이는 것이 옳지.
하지만 이건 아니다.
“데온 님, 오랜만의 정원 산책은 어떠세요?”
“…….”
어떨 것 같냐?
달빛으로 짠 베일이 내린 기괴한 정원 한복판에서, 데온이 힐긋 시선을 돌렸다. 시선 끝에는 눈이 달린 식물이 공격이라도 하고 싶은 듯 이파리를 움찔거리고 있었다.
저를 노려보는 눈을 가만히 마주 보고 있다가 히엔에게 손을 뻗었다.
“횃불.”
“네? 아, 네!”
예전엔 항상 횃불을 직접 들고 계셨던 탓에 잠시 착각했다.
갑자기 내게서 왜 횃불을 찾는 건가 싶어 잠시 멍하니 있던 히엔이 뒤늦게 제 손에 들린 것을 깨닫고 급히 횃불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데온이 성큼 걸어 눈 달린 식물에게 걸어간다. 위협적으로 흔들리던 이파리에 입이 달려있다는 것을 안 것도 그때였다.
“데… 데온 님…?”
이파리에 달려있던 입이 저를 물어뜯을 듯 달려든다. 데온은 그것을 잎사귀째 콱 잡아 뜯어 바닥에 던지고, 다른 손에 쥐고 있던 횃불을 들었다. 이어서 치익, 하고 무언가 익는 소리가 들렸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지?”
“…….”
“아주 귀찮고, 좇같아. 그러니 산책 권유는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가뜩이나 피곤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에게 신경 날카롭게 만드는 식물을 들이대면 기분이 어떻겠어.
건조한 음성에 흠칫 몸을 떤 히엔이 그의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눈이 없는’ 식물이 힘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일반적인 이들이었다면 이쯤에서 겁을 먹고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데온 하르트에 한해서는 한없이 긍정적인 히엔의 마음가짐이 쓸데없이 빛을 발했다.
‘……인간계의 꽃이 보고 싶으신 거구나!’
마침 적당한 것이 있다.
언제 몸을 떨었냐는 듯 히엔이 밝은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기분 전환과 건강을 위한 산책인데 오히려 기분이 나빠지신다면 곤란하죠. 마침 드리고 싶은 선물도 있으니 이만 들어가시는 것은 어떠세요?”
“……선물?”
그래 봤자 괴식물일 것 같은데.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이만 방에 돌아가 눕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데온은 괜한 딴지를 놓는 대신 별말 없이 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방에 도착하여 그리운 침대에 곧바로 눕는 대신 히엔의 성의를 생각해 소파에 앉아 녀석이 선물을 들고 오길 기다렸고.
후회했다.
“끠액.”
“나가.”
그럼 그렇지. 괴식물 맞잖아.
저번에 본 적 있는 식물이 인사하듯 줄기를 흔든다. 더 봐줄 것도 없이 히엔을 쫓아내고 침대에 누웠다.
원치 않는 산책에 원치 않는 식물을 보느라 오히려 정신력을 낭비했다. 피곤함에 팔을 들어 눈을 가린 것도 잠시, 데온은 이내 천천히 팔을 내렸다.
‘……정말이지.’
하나같이 쉴 시간을 주지 않는군.
새빨간 눈동자가 옆으로 굴러가 머리 옆에 꽂힌 단검을 눈에 담는다. 언젠가 겪어본 적 있는 상황에 익숙하게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드벨라니아.”
“네에, 데온 님.”
데온은 한숨을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놀란 기색은 전혀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살의도 없거니와, 단검이 노리는 곳이 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만약 일말의 살의라도 느껴졌다면 단검은 데온의 손에 방향을 틀어 이 침대가 아닌 드벨라니아의 목을 노렸겠지.
침대에 깔끔히 박혀 들어간 단검을 뽑아 빙글빙글 돌리며 물었다.
“이렇게 왔다는 것은, 내가 시킨 일을 해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크루엘 하르트의 몸을 찾으라는 명령.
즉시 드벨라니아가 앓는 소리를 냈다.
“이러실 것 같아서 오지 않으려 했는데….”
“……아직인가 보군.”
“죄송해요. 그래도 군단원들까지 동원해 최선을 다해 찾고 있으니 늦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흐음.”
나한텐 지금도 늦은 건데. 불만스러운 음성이 방을 채웠다.
단검이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흐르듯 움직인다. 그대로 몇 번 더 단검을 가지고 놀던 데온이 조금 늦게 입을 열어 기묘한 긴장감을 깨뜨렸다.
“마냥 기다릴 생각은 없어. 어디까지 조사하고 추적했는지, 보고서를 써서 보내.”
“네….”
괜히 왔다가 일을 받게 된 드벨라니아가 울상을 짓는다. 데온은 신경 쓰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그럼 여기에 온 이유는?”
“용사가 되셨다는데 어떻게 오지 않을 수 있겠어요.”
너무 궁금한 것을.
대체로 마족들은 인내심이 길지 않다. 특히 굳이 무언가 참을 필요가 없는 군단장들은 더더욱. 그나마 잠입이 주 임무라 인내심이 긴 편인 드벨라니아조차도 이 건만큼은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만약 데온 님을 찾아오지 않은 군단장이 있다면 그건 아주 바쁘거나 데온 님의 심기를 거스를까 걱정될 정도로 친분이 깊지 않은 군단장이겠지.’
단검을 돌리던 손이 뚝 멈췄다.
데온이 표정 없는 얼굴로 고개를 든다. 이어서 마주친 속을 알 수 없는 눈동자에 드벨라니아가 의문을 띤 순간.
쉭- 얼굴 옆으로 무언가 지나갔다.
“……!”
“그래서.”
드벨라니아가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얼어붙든 말든, 단검을 던진 자세 그대로 데온이 나른하게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용사가 된 날 본 소감이 어때?”
“…….”
주륵.
뒤늦게 뺨에 실선이 생기며 피가 흘러내린다.
하, 그녀가 웃었다.
“……어쩐지 실루아의 마음이 이해가 되네요.”
단검 들고 설치는 7군단장 그 미친년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이리도 섹시하니 죄 없는 사용인을 바쳐서라도 그 모습을 다시 보려고 안달이지. 게다가 지금은 더 잘생겨지고 여유까지 생기셨으니 아마 환장하지 않을까.
‘그게 난 아니지만.’
놀란 건 잠시였다. 잠시 흔들린 이성을 빠르게 다잡은 드벨라니아가 영양가 없는 대화의 주제를 틀었다.
“아예 일을 손에서 놓으셨다면서요?”
“결국 그게 주목적이었군. 잠시 쉬는 것뿐이야.”
“그런 것 치곤 너무 오래 쉬시는 것 같은데…….”
“몇 달을 쉰 것도 아니고 이제 고작 열흘하고도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성질들이 너무 급한 거 아닌가? 설마 군단장들이 그 정도로 무능한 건 아닐 테고.”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하루라도 쉬면 큰일이 날 것처럼 바쁘게 굴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늘어지니 군단장들로서는 적응이 안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신경 쓰면서 직접 나설 때는 언제고.
입을 다문 드벨라니아를 두고 입가를 만지작거리던 데온이 품을 뒤져 담배를 꺼냈다.
“그럼 이제 그만 귀찮게 굴고 어서 가지 그래? 피곤한데.”
“제가 알기로 오늘 데온 님께서 하신 일이라고는….”
“시간이 남는다면 추가 임무라도 줄까?”
“실례했네요오. 피곤하실 텐데 어서 쉬세요.”
들어올 때와 같이 드벨라니아가 소리 없이 사라진다.
이제야 제대로 쉴 수 있게 되었네. 바로 잘까, 한 대 피우고 잘까. 입에 문 불이 붙지 않은 담배를 까닥거리며 고민하는데, 노크와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데온은 굳이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가 알기로 이 마왕성에서 이렇게 간이 부은 듯 버르장머리 없이 굴 놈들은 한 무리밖에 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대자앙! 저희 왔습니다흐아악! 또 약을 하시려고!”
“뭐?! 약?”
“대장! 안 됩니다!”
간신히 찾아온 안온한 분위기가 깨졌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사라지고, 빈 자리에 사탕이 비집고 들어온다. 순순히 받아먹던 데온이 얼마 못 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어느 정도 선까진 투박한 배려라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이곳에 온 이후 한두 번 당한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너무 많이 먹이잖아.
“이에 어하응 이이야.(이게 뭐 하는 짓이야.)”
“푸흡.”
“우으애?(죽을래?)”
“푸흐하하하학! 발음이 그게 뭡니캬하하핰켈룩하핰!”
사탕을 하나만 줘야지, 한 사람당 하나씩 입에 밀어 넣으면 어떡하자는 건지.
뱉을 곳도 마땅하지 않아 입안 가득 사탕을 문 채 배를 잡고 바닥을 뒹구는 놈들을 노려보다가 협탁에 놓인 나무 상자 옆, 단검을 잡았다.
“어어? 대장, 설마 그거 휘두르시려는… 우왁!”
“그러다 저희 진짜 다칩니다으아악!”
“진정! 진정하십쇼! 웃겨도 안 웃겠습니다!”
“야 이 새끼야!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대머리한테 대머리라고 말하면 기분 나쁜 거 몰라?”
“아!”
좋아, 봐줄 마음이 사라졌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놈들이 손을 휘적거리며 진정하라고 외치지만, 이를 어쩌나. 마침 내가 잡은 단검의 이름이 ‘진정’인데.
단검을 고쳐 쥔 데온이 막 그것을 휘두르려 할 때였다.
“마스터…?”
믿을 수 없다는 듯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멈칫한 데온이 고개를 돌린다. 데온의 빵빵한 볼을 정면에서 본 단이 흠칫하더니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다른 곳으로 돌아간 시선은 죽었다 살아난 듯 새하얗게 질려 헐떡이는 미친개들을 훑고 나서야 납득의 빛을 띠었다.
“참… 여러 의미로 대단하십니다. 마스터의 감정을 저렇게까지 끌어내다니.”
“별말씀을!”
“칭찬 아닙니다. 활기를 끌어내야지, 살기를 끌어내시면 어떡합니까.”
“활기나 살기나.”
“완전히 다릅니다.”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데온에게 다가갔다.
펼친 손수건을 입에 대주니 이게 뭐냐는 듯 붉은 시선이 따끔하게 찔러온다. 단은 태연히 말했다.
“그러게, 손수건은 하나 정도 갖고 있어야 한다니까요. 손수건이 없으니 이런 모습이 되신 거잖습니까.”
“…….”
“퉤, 하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따끔하던 시선이 더 매서워졌다. 데온의 눈초리가 짐짓 살기까지 담고 날카롭게 올라갔으나 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뱉어야 할 테니까.
“하하하! 퉤, 하래! 하하하하!”
“뭐하십니까, 대장! 어서 퉤 하십쇼!”
“푸하하하랅쿨럭쿨럭하하하!”
기어이 단검이 날아갔다.
‘진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겁하며 조용해진 놈들을 두고 데온이 체념하듯 눈을 내리깔았다. 최대한 깔끔하게 뱉으려는 듯 손수건에 조금 녹은 사탕이 하나씩 소리 없이 떨어진다.
하나, 둘… 속으로 사탕의 수를 세던 단이 내심 기함했다. 도대체 얼마나 먹인 거야?
“……이제 됐어.”
남은 사탕 한 개를 입 안에서 굴리며 데온이 고개를 뒤로 뺐다.
대충 손수건을 감싸 묶은 단이 품에서 깨끗한 흰 손수건을 꺼냈다.
“여기 새 손수건입니다.”
“……?”
“정 필요하다 판단되면 나중에 따로 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얼떨결에 손수건을 받은 데온이 생소한 것을 만지듯 손에 들린 것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떨떠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흰색이네.”
“네, 피가 묻으면 티가 아주 잘 날 테죠.”
어차피 이젠 피를 토할 일도 없잖습니까.
눈빛이 그렇게 말한다. 데온은 잠시 단을 쳐다봤다. 부담스러울 법한 시선에도 단은 피하지 않고 붉은 눈동자를 마주했다.
미묘한 분위기에 미친개들조차 숨을 죽이고, 이내 달그락- 작은 소음이 들렸다.
입 안에서 굴린 사탕이 이에 닿으며 만들어낸 작은 소리. 데온이 피식 웃으며 손수건을 품에 넣었다.
“뭐, 그렇지. 그보다….”
“…….”
“저 새끼들 좀 쫓아내.”
정신 사나워.
흰 손가락이 척하니 미친개들을 향했다.
“대장? 기껏 얌전히 있었는데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지금 당장.”
“대자앙!”
……이제 보니 살기만 끌어낸 건 아닌 모양이다.
확연히 누그러진 방 분위기에 작게 웃은 단이 발을 움직였다.
“자자, 모두 들으셨죠? 나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