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18
218. 부관참시(1)
“뭐? 대장이 왔다고?!”
벌컥. 쿵! 곳곳에서 문이 열리며 미친개들이 튀어나왔다.
하나, 둘… 체념한 채 머릿수를 세던 단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들을 확인하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수가… 그대로인데?’
본래 계획대로라면 지금 절반 가까이 되는 인원이 비어있어야 하건만.
얼떨떨한 것도 잠시, 상황 파악은 빨랐다.
‘……내 말을 따르지 않았구나.’
덕분에 들키지 않아 다행이긴 한데, 기분은 썩 좋지 않다.
복잡한 심경으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데온 하르트를 에워싸는 로프티 기사단을 지켜보는데, 클레터가 기분 풀라는 듯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지나간다. 대화는커녕 한순간도 곁에 체류하지 않는, 스쳐 지나가는 듯한 움직임이었으나 단은 그 틈에서 속삭이듯 목소리 낮춰 전달된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감이 뭔가 그래서 그냥 있었던 거니까 기분 풀어.”
이어서 데온 하르트를 향해 달려가던 밀란도 그를 지나치며 말을 남겼다.
“왠지 오늘 대장이 올 것 같았거든. 나 말고도 다들 그렇게 느꼈더라.”
허……. 이번엔 다른 의미로 할 말을 잃었다.
순수한 감으로 이걸 때려 맞췄다고…. 이 무슨 짐승 같은 감각인지.
‘원래 전쟁터에서 구르면 다들 이렇게 되나?’
단이 잘못된 상식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을 무렵, 이 누추한 곳까지 웬일로 오셨냐며 열렬히 반기는 미친개들 사이에서 힐긋 단에게 시선을 던진 데온이 입을 열었다.
“줄 게 있어서.”
“예? 선물입니까?”
“선물은 아니고.”
“대장이 선물을?!”
“우와아아아!”
“…….”
그래, 선물이라 치자…….
현명하게도 빠른 포기를 통해 스트레스를 최소화한 데온이 뒤쪽의 단이 밀고 온 카트를 가리켰다.
“저기에 있는 거 다 너희 거야.”
“헉, 저 술이 다 저희의 것이라고요?”
“그래.”
그가 어깨를 대충 으쓱인다. 데온의 태도와 그를 향해 눈을 빛내는 로프티 기사단원들을 번갈아 보던 단의 눈빛이 묘해졌다.
이 분위기 뭔가 익숙한데… 어디선가 본 적이 있나?
언제였을까…….
‘아, 들개한테 잔반 뿌릴 때.’
산골짜기 들개들에게 잔반을 뿌리던 아주머니의 태도가 마치 저랬던 것 같다. 거기에 익숙해진 들개들의 태도도 지금과 비슷했고.
‘뭐, 장본인들은 전혀 모르는 모양이지만.’
무슨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본인들이 좋으면 됐지.
떠오른 생각을 대충 넘겨버리고는 곧장 터져 나온 환호성으로부터 고막을 보호하기 위해 침착하게 귀를 틀어막았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귀를 막았음에도 다 들렸지만.
“와아아아아아!”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복잡해서 술이 땡겼는데! 대장 만세!”
“대-세!”
“……잠깐.”
가만히 미친개들의 외침을 듣던 데온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 빌어먹을 ‘데-세’인지 ‘대-세’인지는 그렇다 치고.
“머리가 복잡하다고? 너희가 머리가 복잡할 일이 최근에 있었나? 난 아무 일도 시킨 적이 없는데.”
“헙.”
생각 없이 말을 뱉었던 단원이 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입을 막음과 동시에 등 뒤에서 뻗어져 나온 수많은 손이 그를 붙잡고 인파 사이로 끌고 들어간다. 그의 모습이 데온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이내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읍읍거리는 억눌린 비명이 울렸다. 그마저도 얼마 못 가 과장된 웃음에 묻혔지만.
데온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한 걸음 나선 밀란이 예의 그 어색한 웃음을 재차 흘리며 더듬더듬 말했다.
“하하, 그러니까… 피곤해서 술이 땡겼다, 이 말입니다!”
“그것도 마찬가지야. 난 일을 시킨 기억이 없는데, 너희가 피곤할 일이 뭐가 있지?”
“어… 그게…….”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밀란이 힐긋 데온의 어깨 너머에 시선을 두었다.
검지를 세워 제 입술 앞에 둔 단이 이내 중지도 함께 펴며 손목을 틀어 손등을 보인다. 짐승 같은 감으로 그것이 탈출구라는 걸 눈치챈 밀란이 성큼 데온에게 다가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흠칫한 데온이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뭐야?”
“역시…….”
약 냄새가 난다.
위기를 모면했다는 안도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힌 밀란이 한층 낮아진 목소리를 내었다.
“대장, 또 약 하셨습니까?”
“뭐어? 약?! 정말입니까?”
“…….”
이렇다 할 대답은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침묵에서 긍정을 읽은 기사단원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잔소리와 입 안 가득 밀고 들어오는 사탕의 연속에 조금 전의 주제가 까맣게 잊혀 묻히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
화면을 띄울 날이 정해졌을 때도, 이후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단은 담담한 태도를 유지했다.
복도를 지나다 이따금 마주치는 군단장들이 힐긋 그를 살핀 뒤 나름의 감탄을 표하며 지나가고, 데온 하르트가 생각보다 담담하다며 칭찬 아닌 칭찬을 건넸을 때도 희미한 미소만 지을 뿐, 기본적인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속내는 전혀 달랐지만.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몇 번이고 이성을 들쑤시는 감정에 흔들렸다.
결국 그도 사람이다. 평소 인간계를 자주 오간 단은 인간계에서 데온 하르트의 이름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아주 잘 알았다.
듣는 것만으로도 재수 없다는 듯 침을 뱉고, 이름 주인의 죽음을 쉽게 입에 담고, 피눈물이 배어나는 저주를 퍼붓는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자의 혼을 토해내는 듯한 원한 섞인 비명은 또 어찌나 섬뜩하던지. 데온 하르트. 그 이름 하나만을 되뇌며 울부짖는 모습은 광인의 것과 다를 바가 없어서.
이들에게 던져진 데온 하르트는 세 치 혀 아래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죽으며 수천 갈래, 수만 갈래로 찢겼다. 이름에 형체가 존재했다면 아마 본 형태를 유지할 수 없었겠지.
물론 데온 하르트가 첫 번째, 최초이기에 반응이 더 격했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두 번째 역시 적지 않은 반응을 얻게 될 테지. 세 번째 정도는 되어야 반응이 좀 미미해지려나. 그러니 제가 화면 앞에 서게 된다면 그와 비슷한 꼴이 될 터.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그로부터 걱정이나 두려움과 비슷한 성질의 무언가를 느꼈음에도, 단은 끝내 말을 바꾸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을뿐더러, 애초에 거절할 수도 없었다.
‘데온 하르트가 추천했으니까.’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단은 쓴 미소를 머금었다.
제가 회의장에 들어와 마왕의 앞에 서고 그로부터 제안을 받은 이상, 상황은 단순한 데온 하르트의 추천 정도로 여길 수 없게 되었다.
마왕이 직접 제안한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회의를 하고 결론이 내려졌다는 것. 즉, 군단장들도 이 사안을 알고 나름의 의견 표출을 한 끝에 나온 결과라는 뜻이니. 여기에서 거절을 하면 이 자리의 모든 이들에게 본의 아닌 모욕을 주는 셈이 된다.
그로 인해 발생할 부정적인 인식을 포함한 모든 대가는 최초의 추천자인 데온 하르트에게 돌아갔겠지.
‘게다가 이 상황까지 오도록 부추긴 사람이 발을 빼는 것도 우습고.’
무언가를 통해 바라는 바를 이루고자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 또한 각오해야 한다.
이득만 빼먹고 대가는 피하고자 기를 쓰고 발버둥 치는 것은 어린애가 하는 거로 충분하다. 다 큰 성인이 그러는 건 너무 추하지 않나.
그렇기에 복잡한 감정과는 별개로 단은 도망치는 대신 주어진 상황을 잘 이용하고자 했다.
“잘 들어.”
어깨 위에 하얀 손이 얹어졌다.
못내 불안한 듯 본인이 직접 화면 앞에 서서 발언할 때보다 더 진지한 낯을 한 데온 하르트가 말했다.
“네가 말해야 할 건 별거 없어. 기껏해야 30초에서 1분밖에 안 되겠지. 아무리 미적거린다 해도 2분이 넘지 않을 거야.”
“…….”
“이건 선동이 아니야. 연설도 아니고. 그저 사실을 나열하는 것뿐이야. 그러니 어깨에 힘 줄 것 없어.”
그가 어깨를 꾹꾹 누른다.
무게감 없는 손길에 어쩐지 웃음이 나와 단은 긴장도 잊고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모습을 본 데온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아예 긴장하지 말라는 건 아닌데.”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면서도 입가의 미소는 지워지지 않는다. 데온은 가만히 그를 보다가 더 타박하는 대신 입을 열어 조언을 덧붙였다.
“가능하면 30초대에서 끝낸다고 생각해. 발언의 순서? 서론? 다 잊어버려. 본론만 말하고 빠지면 돼. 다른 쪽에서 간섭할 시간을 주지 마.”
“제게 믿음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당연하지.”
제안을 받아들일 때부터 다른 생각을 하는 게 눈에 보였는데 믿음이 갈 리가.
어깨에 있던 손을 내려 멱살을 콱 잡아당겼다. 데온은 제 눈높이에 맞춰 낮아진 단의 얼굴을 꿰뚫을 듯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경고하듯 낮은 목소리가 속삭였다.
“네가 멍청한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하는데, 혹시 모르니 경고해두지.”
“…….”
“허튼수작 부리지 마.”
“……당연한 말씀을.”
단의 입꼬리가 매끄럽게 올라갔다.
보는 이의 긴장이 다 풀릴 정도로 여유로운 미소에 데온이 한숨을 내쉬며 손을 놓는다. 단은 태연히 구겨진 옷매무새를 다시 다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데온이 손을 뻗었….
“아, 마스터. 마음은 감사하지만 옷 정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
……다가 다시 거뒀다.
조금은 신경질적인 음성이 이어졌다.
“재차 말하지만 네가 말해야 할 건 두 가지야. 데온 하르트가 용사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마왕군은 데온 하르트가 아닌 인간도 받아들인다는 것.”
“걱정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단이 한 말이 아니다. 데온은 고개를 돌렸다.
언제 다가온 건지 근처에서 싱글거리는 마왕과 눈이 마주쳤다. 그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부관 에드는 덤.
‘마왕이 왔으면 보고를 해야지 그러고 있으면 어떡하냐….’
질책 어린 시선을 보낸 것도 잠시, 데온은 마왕의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기껏 조성해놓은 분위기를 다 흩트리는 가벼운 목소리가 공간에 퍼졌다.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안 그래?”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자, 그쯤하고.”
단의 차림새를 훑은 마왕이 데온을 보았다. 눈에 웃음기가 서렸다.
“데온, 단보다는 네 옷매무새부터 다듬어야 할 것 같은데? 옷이 구겨졌어.”
“……좀 전에 직접 다듬었습니다만.”
“예? 직접 다듬으셨다고요? 어쩐지… 분명 완벽하게 입혀드렸는데 옷이 구겨졌더라니…!”
“…….”
마왕이 조용히 돌아섰다.
애처롭게 떨리는 어깨를 가만히 보던 데온이 입을 열었다.
“답지 않게 왜 참고 계십니까. 그냥 웃으세요.”
“하하하!!”
“…….”
그냥 계속 참으라 할 걸 그랬나.
눈치를 보던 에드가 다가와 옷을 다시 정돈해준다. 데온은 가만히 서서 이곳저곳을 매만지는 손길을 받으며 아니꼬운 눈초리로 마왕을 쳐다봤다. 당연하게도 마왕은 신경 쓰지 않고 웃어댔지만.
차라리 화제를 돌리는 편이 낫겠다. 아직까지도 피식피식 웃고 있는 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이번 일에는 별로 관심 없는 거 아니었습니까? 어차피 금방 끝날 텐데 굳이 오실 필요가….”
“맞아. 솔직히 관심 없어. 말했잖아?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라고.”
“그럼 왜….”
“다음에 가르칠 게 떠올랐거든.”
마왕이 매끄럽게 눈매를 휘었다.
“그림, 어때?”
“……현 상황과 굉장히 맞지 않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만.”
“상관없잖아? 악기는 흥미가 없는 것 같으니까 다음엔 그림을 배워보자.”
“…….”
기껏 여기까지 와서 한다는 말이 그런 거라니. 황당함에 말도 안 나온다.
대답을 하지 않았건만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 마왕이 이만 가보겠다며 돌아선다. 왔을 때처럼 소리 없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던 데온이 고개를 돌려 단을 보았다.
“준비는 됐어?”
인간계의 계절에 영향을 받지 않는 마계 특유의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실내에서 진행했던 마왕, 데온과 달리 단의 연설 아닌 연설은 야외에서 진행된다. 단을 믿지 않는 군단장들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화면 범위 밖에서 직접 지켜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벌어지는 즉시 처리하겠다는 노골적인 의지의 표현.
저보다 강하고 높은 이들이 직접 지켜보는 앞에서 발언을 해야 하니 아무리 짧다 해도 긴장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필요하다면 시간을 더 주려 했으나.
“‘사실 나열’도, ‘후처리’도 모두 완벽하게 준비됐습니다.”
단이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