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33
233. 나비효과(1)
끝내 한숨이 나왔다.
답답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한숨에 헬이 흠칫하더니 눈치를 살피며 슬슬 몸을 웅크린다. 데온은 스르륵 주저앉는 검은 그림자를 어이없다는 듯 보다가 눈을 꾹 감았다.
“혼내려는 게 아니고…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어서 일어나.”
“예…….”
“애초에 혼낼 이유가 없잖아. 누가 봐도 이건 좋은 일인데 왜 다들 눈치를 보는 거지?”
“데온 님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셔서… 역시 제가 아닌 다른 군단장이 소환되었어야…….”
“아니, 너로 충분해.”
내가 왜 여기서 이 녀석을 달래야 하는지 모르겠다.
회의감이 들었으나 이를 내색하면 상황이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기에 데온은 자꾸만 사라지려는 표정을 의식하며 부러 싱긋 웃었다.
“소환되었을 당시의 상황이 엉망이었다며. 그 와중에 계약까지 맺다니, 능력 좋잖아? 정신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적대 세력에 정보가 넘어가는 것도 막았고.”
현재 헬이 피투성이인 이유가 이 때문이다.
타이밍 한번 절묘하게도 하필 그가 소환된 것과 동시에 데몬교에서 마족 소환을 진행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제국 측 병사들이 현장에 들이닥쳤으니까. 그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적아를 구분하고 골라내 제거해야 했다.
“그거면 충분히 능력을 입증하고도 남지.”
“…….”
“내 표정이 안 좋았던 건… 네 계약자가 예상치 못한 인물이라 그랬던 거고.”
오히려 다른 군단장들보다도 유능한 것 같던데 왜 그렇게 자존감이 낮은지 모르겠다.
너무 유능해서 지금 내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인데 말이지.
“그…렇습니까?”
“그래.”
저걸 인간계에 안 보낼 수도 없고.
현재 마족들은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인간계 정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총지휘관이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을 내린다면 곧장 딴지가 걸려오겠지. 아니 오히려 총지휘관이기에 더 그럴 것이다.
마족들은 질문을 퍼붓고 마왕은 예의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장난치듯 견제를 넣을 터.
엉거주춤 일어난 8군단장 헬을 복잡한 눈으로 보던 데온이 느리게 운을 뗐다.
“일단… 인간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네 능력의 종류와 범위에 대해 제대로 파악해보도록 할까.”
***
“전멸…이라고.”
“예.”
“데몬교의 신도들이 제국군을 전멸시킬 정도로 강하지는 않을 테니, 아마 마족 소환에 성공한 것이겠지.”
그것도 하필이면 병사들이 도착한 타이밍에.
그간 줄곧 실패한 것 같던데, 이번에 성공할 건 뭐란 말인가. 엘피디우스가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전멸이라서 얼마나 강한 마족이 소환된 건지도 알 길이 없고…….”
수상하다 여기긴 했으나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재상 아르달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뛰어 들어와 당장 데몬교에 병사를 보내야 한다고 외칠 때 얼마나 놀랐던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내밀어진 서류는 믿기 힘든 내용을 담고 있었다.
‘데몬교가… 같은 인간이, 마족 소환을 시도하고 있다고.’
마계와 전쟁을 하고 있는데, 내부에 적이 있었다.
그래,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는 법이지. 머리로는 이해한다만… 엘피디우스는 지그시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심장을 짓눌렀다. 그건 얼핏 절망의 빛도 띠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상황이 안 좋은데.’
아니, 어쩌면 상황이 좋지 않아서 이렇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생명체에게 내재된 생존에 대한 열망이 강자에게 붙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왔을 테니.
그러니… 이해한다. 그들은 그저 인간이기 이전에 한 생명체로서 가장 기본적인 본능에 패배한 것뿐이다.
하여, 엘피디우스는 느리게 입을 열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일단 넘어가지. 산국의 왕에게도 조심하라는 경고를 보내두는 것으로 대충 마무리 짓도록 하고.”
“…….”
“다시 데몬교에 병력을 보내게. 한번은 방심해서 허용했다 쳐도, 두 번 허용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지. 이번엔 저번보다 더 제대로 된 이들을 보내서 확실하게 처리하게.”
당시 아르달이 들고 왔던 서류에 이번엔 꼭 성공해보자느니 하며 의지를 다지는 대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을 미루어 보아 이번이 첫 소환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지.
두 번은 없다. 명령에 담긴 뜻을 읽은 아르달이 흠칫 고개를 들었다. 엘피디우스는 기꺼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며 못 박듯 말했다.
“굳이 체포할 필요는 없다. 악마 소환에 가담한 신도들은 물론이고, 데몬교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자들은 모조리 찾아서 죽이도록.”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자들’이라 하심은… 신도가 아니어도 죽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데몬교에서 빵 한 조각 받아먹은 사람도 포함이니 그렇겠지.”
“…….”
어쩔 수 없다. 데몬교에 호의를 품은 자들도 걸러야 하니. 그래야 데몬교의 부활이나, 제2, 제3의 데몬교가 나올 가능성을 막을 수 있다.
표정이 굳은 아르달을 향해 툭 덧붙였다.
“숙부님이셨어도 같은 명령을 내리셨을 것이네.”
“……압니다. 하지만 그분은 적어도 죄책감을 느끼셨습니다.”
“그래, 정말 쓸데없는 감정이었지. 명령을 번복할 것도 아닌데 굳이 자처해서 마음을 불편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데몬교 신도들에게 죄책감은 사치다. 신도가 아닌 자들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어디까지나 그뿐이고.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본능을 누를 수 있는 이성 덕분이다. 본능에 진 이상 그들은 짐승이므로.
‘생존에 대한 열망 탓에 등을 돌렸다면, 이쪽도 그 본능을 자극해주는 수밖에.’
의미 없이 제 욕망을 기반으로 내린 명령도 아니고, 필요 하에 내린 명령이다.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엘피디우스에게서 선명히 보이는 폭군의 기질에 아르달이 한숨을 내쉬었다.
“무서운 말씀을 다 하십니다. 필요 없는 듯 보일지 몰라도 죄책감은 황제에게 있어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다른 더 좋은 방안을 찾게 도와주는 장치니까요. 죄책감이 없다면 이와 같은 명령을 쉬이 내리겠죠. 나중엔 다른 방안을 찾을 생각도 없이 더 쉽고 빠른 처리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망설임 없이 제국민을 버리는 명을 내릴지도 모릅니다.”
“……잔소리가 길군.”
엘피디우스는 보란 듯이 턱을 괴고 삐딱하게 고개를 틀었다. 잔소리는 듣지 않겠노라 온몸으로 외치는 행태에 아르달은 도움을 요청하듯 다른 이를 보았다.
제게 닿는 시선을 느낀 알레테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황태제 전하.”
“음… 일단 폐하의 명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재상의 말에는 동의하지만, 적어도 데몬교 신도에 한해서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요.”
“……맙소사.”
“군주는 제 백성들만 잘 챙기면 되죠. 짐승은 상정 범위 밖이니 굳이 신경 쓸 필요 없잖아요?”
그녀는 아예 대놓고 데몬교 신도들을 짐승이라 칭했다. 아르달이 딱딱하게 굳었다.
차라리 범죄자라 칭했다면 나았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다른 인간의 가치를 짐승으로 떨어뜨릴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것만큼은 황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의 말은 황제도 해선 안 되는 발언이었다는 말이다.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입 밖에 내는 것은 다르다. 자칫하면 오래전에 폐지되었던 노예제를 부활시킬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발언일지니.
정녕 둘이 누구보다 온화했다던 1왕자에게서 태어난 남매가 맞단 말인가. 아르달은 속으로 한탄했다.
적어도 선황이 살아있던 시절에는 선했던 것 같은데,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아르달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엘피디우스는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들었지? 어서 가서 병력이나 꾸리게.”
“…….”
“감히 마족과 내통하려 들면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지, 그 예시를 똑똑히 보여주도록.”
과거 폭군을 자처하던 누군가와 비슷하지만 보다 포악한 기색을 담은 황금빛 눈동자가 매섭게 번뜩였다.
…….
이 명령은 단순한 본보기를 위한 것뿐만이 아니다. 어떤 마족이 소환되었는지 알 수 없어 위험한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만만한 인간인 계약자를 죽이는 것이므로.
데몬교와 연관이 있는 자들을 모조리 죽인다면 그 사이에 섞여 있던 계약자도 죽게 되겠지.
전멸 소식을 전달받고 마족 소환이 성공했으리란 유추까지 생각이 이어졌을 때, 엘피디우스는 생각했다.
‘계약자는 누구일까.’
***
전 황제 에도아르도 데세르트의 죽음 이후, 그의 눈치를 보느라 합류하지 않고 있던 정복 전쟁의 피해국 인재들을 흡수하며 유례없이 세력을 키운 혁명군의 수장 폴은 제국에서 데몬교 소굴에 병력을 보냈다는 소식을 듣기 무섭게 추가 정보 수집을 명했다.
‘병력 하나가 아까운 상황에서 나중에 정리해도 될 사이비 종교에 의미 없이 병력을 낭비할 리 없으니까.’
그것도 방치해두다가 갑작스럽게 보내는 꼴이 꽤 긴급해 보였으니 필시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추가로 입수한 정보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데몬교에서 꾸준히 마족 소환을 시도해오고 있었다는 것.
“미쳤네.”
기어이 소환에 성공하고, 그 마족을 통해 한발 늦게 도착한 제국군을 전멸시킨 것으로 유추된다는 정보까지 전달받은 폴이 차갑게 중얼거렸다.
“누구는 모두를 위해 마계를 막겠다고 이리저리 구르고 있는데, 누구는 인간계에 마족을 들이기나 하고.”
그렇지 않아도 혁명군은 산국을 공략하려는 마왕군을 철저히 방해하며 인간계를 지키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기에 이 소식이 유독 불쾌하게 다가왔다.
빠진 정보가 있는지 내용을 재차 읽어보고, 종이를 앞뒤로도 확인한 그가 고개를 들었다.
“소환된 마족이나 계약자에 관한 정보는 없나요, 이람 씨?”
“그건 아직. 직접 병력을 보냈던 제국조차도 모르는 모양이야.”
“하긴, 전멸했다고 했으니…….”
계약하여 인간계에 나온 마족은 개인적인 무력뿐만 아니라 응용 등의 측면에서도 위험도가 다르다.
‘인간’인 계약자가 중요한 작전지에서 ‘계약한 마족’을 소환하기라도 하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테니까. 심지어 계약한 마족은 인간계에서의 제약이 적어진다는 기록도 있던데, 그야말로 끔찍할 것이다.
“마족이든 계약자든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처리해야 해요. 정보가 들어오는 즉시 알려주세요.”
“그래.”
계약자는 마족의 통로이니 마족을 상대하기 힘들다면 그 통로라도 제거해야 한다.
이람으로부터 확답을 받은 폴이 긴 한숨과 함께 의자에 몸을 기댔다.
‘…….’
눈을 감은 채 모처럼 찾아온 고요함을 즐기던 그가 이내 천천히 눈을 뜨고 이람을 보았다. 시선을 느낀 듯 서류에 고정하고 있던 눈을 든 상대를 향해 폴은 위화감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람 씨.”
“응?”
드물게 찾아온 짧은 여유 시간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말해야겠다. 이건 여유 시간에만 할 수 있는 질문이니까.
“시이아의 소재는 아직인가요?”
“…….”
이람이 입을 다물었다.
표정은 용케 관리한 듯하지만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는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듯, 폴은 상대의 두 눈에서 동요를 읽었다.
하. 헛웃음이 나왔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부러 모른 척, 천연덕스럽게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제가 시이아를 찾아달라고 말한 지 굉장히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일언반구조차 없어서요.”
“…….”
“정말…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 혁명군의 정보력이 여자애 하나 찾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진 않을 텐데.”
그제야 얼음 상태에서 풀려난 이람이 한숨을 내쉬며 눈을 내리깔았다.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