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44
244. 나비효과(12)
가이시텔이 황급히 몸을 피하고 히엔이 받아주려는 듯 팔을 뻗는다.
데온은 공중에서 떨어지는 그 잠깐 사이 히엔의 상태가 엉망인 것을 확인하고 내심 혀를 차며 그의 손을 피해 몸을 틀었다. 정확히 둘 사이에 착지하고 고개를 드니 가이시텔과 눈이 마주쳤다.
……자, 말문을 어떻게 떼는 것이 좋을까.
“마왕성 안까지 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소란스럽던데…….”
가이시텔은 저보다 높은 자, 강자의 눈치를 과할 정도로 보는 마족이다. 불퉁하게 군다면 필시 알아서 몸을 낮추겠지.
아니나 다를까, 인상을 조금 찌푸리기 무섭게 안색이 허옇게 질린 녀석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감히 저 따위가 데온 님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당장 이 자리에서 저 정원사의 목을 베어…!”
“허……?”
자기 잘못이라 말해놓고 애꿎은 히엔의 목을 베려는 건 무슨 사고의 흐름이지…?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어이없음에 무심코 나온 탄식이 무슨 신호라도 된 듯 가이시텔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바삐 움직이는 눈에서 눈치를 살피는 것이 선명히 느껴져 데온은 미간을 꾹꾹 누른 뒤 입을 뗐다.
“됐으니까 이쯤에서 그만 소란 피우고 들어가. 내가 널 불러들인 건에 관해서는… 나중에 따로 전달하지.”
부러 히엔을 언급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았다. 히엔을 두둔하든 두둔하지 않든, 그를 언급한 순간부터 가이시텔의 분노는 그를 향할 테니까.
역시나, 데온 하르트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에 온 신경이 집중된 가이시텔이 허둥지둥 허리를 숙이고 물러간다. 데온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놈의 뒤통수를 보다가 옆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히엔이 과할 정도로 눈을 빛내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데온 님… 감사합니다…!”
“…….”
부담스러움에 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물론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지만.
아닌 척 시선을 먼 곳에 두고 느리게 답을 뱉었다.
“딱히. 그냥 소란이 싫어서 그랬던 것이니 감사할 필요는….”
“그래도 감사합니다!”
“…….”
음, 그냥 말을 돌리는 게 낫겠다.
마침 제대로 봉변을 당한 듯 히엔의 상태가 척 보기에도 좋지 않다. 얘는 이런 꼴로 떨어지는 나를 받으려 했단 말이지…?
복잡미묘한 눈으로 상처를 훑다가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물을 필요도 없어 보이지만 혹시 모르니 일단 확인해두는 게 낫겠지.
“가이시텔이 왜 그런 건지 이유는 알고 있나?”
“그게… 지나가는 길에 인큐버스가 눈에 띄어서… 거슬렸다고…….”
“……아, 그래. 그거면 됐어.”
더 들을 필요도 없다.
성 방향으로 턱짓했다.
“따라와.”
어떻게 보면 그의 상처 또한 내가 가이시텔을 불러들여서 생겼다고도 볼 수 있으니. 나 때문에 생긴 것 같은 상처, 내가 치료해줘야지.
이 자리에서 내 몸에 상처를 내어 벤을 호출할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간 후폭풍은 전부 이 녀석이 감당해야 할 터다. 그럼 내가 더 귀찮아지겠지. 그렇지 않아도 여러모로 머리 아픈데, 여기서 더 귀찮은 일이 생기는 건 사양이다.
때문에 데온은 귀찮음을 무릅쓰고 몸소 벤이 머무는 방으로 앞장섰다.
***
제 주치의는 언제나 몸소 찾아가거나 부르기도 전에 먼저 이상을 눈치채고 바람처럼 달려오곤 했다. 때문에 데온은 평소 벤의 방에 갈 일이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이번 방문은 벤의 입장에서는 꽤나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방문자가 데온 하르트라는 것을 깨닫기 무섭게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어쩐 일로 오셨냐, 어디 다치셨냐, 혹 마력석에 걸리지 않는 저주에라도 당하신 것이냐 등등.
몇 번이고 멀쩡함을 피력하고 다른 이의 치료를 부탁하고자 왔다는 것을 알리고 나서야 데온은 간신히 벤의 집요한 시선과 손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저는… 데온 님의 주치의인데…….”
“…….”
“이런 정원사는 성 내 다른 의원에게 가도 충분한데…….”
“…….”
“다른 의원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전 마왕의 주치의이자 현 0군단장의 주치의가 담당 환자를 앞에 둔 채 인큐버스 정원사나 치료하고 앉아있다니…….”
대신 투덜거림에 가까운 한탄이 이어졌지만.
그래도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치료는 꼼꼼히 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 와중에 가장 불편해할 것 같았던 히엔은 의외로 감격에 젖어 벤의 눈치를 전혀 보고 있지 않으니, 이것도 일단 다행이라고 칠까.
“데온 님께서… 나 같은 것을 위해 주치의를 내어주시다니…….”
“…….”
음, 다행이 아닌 것 같다. 벤의 눈꼬리가 삐죽 올라갔네.
그래, 기껏 불만을 삼키고 치료해주고 있는데 저는 안중에도 없으면 기분이 나쁠 만도 하지.
히엔… 제발 눈치 좀 챙겨라. 왜 다치지도 않은 내가 내 주치의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건데.
“……붕대는 왜 이렇게 안 풀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붕대를 쫙쫙 찢은 벤이 그것을 약을 바른 상처 위에 콱콱 감는다. 손에 아주 힘이 들어간 것이 아플 법도 하건만, 히엔은 흔한 신음 하나 흘리지 않은 채 시선을 이쪽에 고정했다.
여전히 감동으로 빛나는 눈이 영 부담스러워 데온은 슬쩍 고개를 틀었다.
“……그것만 감으면 치료 끝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이 정도의 상처는 성 내 다른 일반 의원에게 데려가도 충분했을 텐데 왜 굳이 제게 데려오신 겁니까?”
다른 일반 의원들이 있는 곳을 몰라서.
……라고 답하면 어이없다는 듯 나를 보겠지. 데온은 태연히 입을 열었다.
“‘치료’를 생각하니 너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아무래도 내게 있어 너 외에는 믿음직한 의원이 없었던 모양이야.”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제가 좋아할 줄 아십니까?”
그러면서 왜 사탕을 꺼내는 건데…?
“제 실력을 좋게 봐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전 데온 님의 주치의입니다. 다른 환자를 살피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담당 환자의 부상을 놓치고 싶진 않습니다.”
“지금 내 손에 사탕을 쥐여주고 있는데….”
“마왕 님께서 데온 님한테 마…담배 금지령을 내리셨다고 들었습니다. 종종 입이 심심하실 테죠.”
“…….”
“그럴 때 이걸 드시면 됩니다.”
손을 폈다. 익숙한 포장지의 사탕이 보인다. 데온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이거… 미친개들이 약 빼앗고 대신 먹이던 사탕의 포장지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아니, 비슷한 게 아니라 아예 같다.
……너 이 새끼, 설마…?
“그보다, 직접 전투에 나서신다고 들었습니다.”
사탕에 관해 입을 열기도 전에, 벤이 슬쩍 눈을 피하는가 싶더니 먼저 대화의 방향을 틀었다. 눈치 빠른 자식.
“몸소 인간계에 가신다고요.”
“……맞아.”
“저는 당연히 같이 가는 것일 테고, 에드는 데려가실 겁니까?”
왜 너는 당연하다는 듯이 포함시키냐.
물론 내 주치의니까 그게 맞긴 한데… 나 이제 어지간해서는 안 다치고, 다쳐도 금방 회복되잖아. 아무래도 필요 없지 않을까….
무엇보다 마약 금지령이 내려졌다는 걸 알고 있던데 그 앞에서 당당히 약을 했다가 뒤따를 잔소리가 벌써부터 껄끄럽고 귀찮다.
때문에 두고 가겠노라 말하려 했으나, 한발 앞서 이런 내 기색을 읽은 듯 그가 단호히 말했다.
“설마 전쟁터에 가는데 주치의를 두고 가시는 건 아니겠죠. 설마, 어느 지성체가 그런 무, 지막지하게 답답한 짓을 하겠습니까.”
방금 무식하다고 말하려 했던 것 같은데.
어쨌거나 할 말이 없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저렇게까지 말한 이상 벤은 반드시 데려가야겠지.
수긍은 빨랐다. 데온은 짧은 침묵으로 벤의 말에 동의를 표하고, 그 전의 질문에 대한 답을 꺼냈다.
“……에드는 두고 갈 거야. 혹시 모를 상황에서 0군단을 통솔할 마족이 필요하니까.”
“0군단을 데려가지 않으시는 겁니까…?”
“이번엔 0군단 대신 미친… 로프티 기사단을 데려가려고.”
“아, 그 미친… 인간 기사단 말씀이시군요.”
“…….”
나는 그렇다 쳐도 너는 왜 앞에 ‘미친’이란 수식어가 붙는 거냐…?
옆에서 눈을 빛내며 경청하던 히엔마저 ‘아, 그 미친….’하고 중얼거리는 것을 본 데온이 이마를 짚었다. 이 새끼들은 뭘 어떻게 하면 여기서도 미친놈들로 소문이 나는 거지? 여긴 마계잖아. 인간계도 아닌데.
“뭐, 일단 저를 데려가신다니 됐습니다. 정원사의 치료도 잘 끝났고요.”
“아, 수고했어.”
“수고랄 것도 없었습니다. 저만큼 믿음직한 의원이 없으시다는데 당연히 제가 해야죠.”
아무래도 그 말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사탕 더 필요하십니까?”
“……됐어. 난 이만 가볼게.”
이곳에 더 있을 이유도 없겠다, 데온은 즉시 몸을 돌렸다. 눈치를 보던 히엔이 뒤에 따라붙었다.
“…….”
“…….”
……계속 따라붙었다.
복도를 지나가던 걸음은 벌써 내 방문 앞에 멈춰 섰다. 대체 언제까지 쫓아오는 거야?
설마 방까지 따라 들어오는 것은 아닐까, 데온이 문을 여는 대신 뒤를 돌아보았다. 기다렸다는 듯 호의 가득한 얼굴이 저를 마주했다.
“……왜 따라오는 거지?”
“아, 저 그게…….”
화사하던 얼굴에 망설임이 들어차고, 말끝이 늘어진다. 목소리가 끊길 듯 말 듯 느리게 이어졌다.
“전쟁에… 인간계에 직접 나가신다고 하셔서요.”
“그렇지. 그게 왜?”
“그래서 말인데…….”
히엔이 우물쭈물 눈치를 살핀다. 답답함에 데온이 다시 말을 꺼내려던 찰나, 녀석이 먼저 대뜸 말했다.
“제가 저번에 드렸던 식물을… 잠시 살필 수 있을까요?”
“……뭐?”
“아… 역시 실례였군요. 죄송합니다…….”
“아니, 딱히 상관은 없는데… 내가 전쟁에 가는 거랑 네가 식물을 살피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도로 가져간다는 것도 아니고, 잠시 살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다. 그저 둘의 연관성이 뭔지 이해가 안 가서 조금 어리둥절했을 뿐이고.
“앞으로 데온 님의 손길이 자주 닿지 못할 텐데, 미리 영양제라도 좀 놓아주려고요.”
“아… 그래, 그럼. 들어와.”
문을 열었다.
방 안에서 저를 맞이하던 단이 뒤따라 들어오는 히엔을 발견하고 의아한 눈빛을 보낸다. 데온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손짓으로 괴식물을 불렀다.
“이리 와.”
“끠액!”
즉시 녹색 줄기가 허리를 휘감고 매달렸다.
익숙하다는 듯 제게 달라붙은 녀석을 화분째 떼어낸 데온이 곧장 히엔에게 내밀었다.
“자, 살펴.”
“어, 그…….”
“……?”
……뭐야? 기세는 바로 영양제 꽂아줄 것 같더니만.
의아한 눈빛에 히엔이 눈을 도르륵 굴려 시선을 피한다.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가 중얼거림의 형태를 띠고 나왔다.
“영양제를 안 가져와서요.”
“…….”
“일단 허락부터 구하고 가져오려 했는데…….”
“……그래, 그럼 기다려줄 테니까 가져와.”
“아, 혹시 그냥 식물 자체를 빌려 갈 수 있을까요? 영양제만 주고 바로 돌려드리겠습니다.”
“끠액?”
괴식물이 울었다.
데온은 힐긋 식물을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그게 더 낫겠네. 가져가.”
“끠액?!”
“네, 감사합니다.”
“끠애액?!”
괴식물의 어리둥절한 외침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이동이 이루어졌다.
화분을 넘겨받은 히엔이 꾸벅 허리를 숙이고 물러간다. ‘끠애애애…!’하는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렸으나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소리가 단절되기 무섭게 데온은 침대에 몸을 날렸다. 미친개들한테 가봐야 하는데, 축 늘어져 베개에 얼굴을 박고 있으려니 영 움직이기가 싫다.
‘다른 건 다 넘어가도 출정 준비하라는 건 꼭 얘기해야 하는데…….’
귀찮아. 피곤해.
잠들지 않기 위해 손가락만 까닥이다가 힘겹게 고개를 틀어 단이 있는 쪽을 보았다. 얼굴이 시야 범위보다 위에 있어 보이지 않았으나 녀석이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단. 미친개들에게 가서 출정 준비하라 전해. 약도 잊지 말고 챙기라고 하고.”
“네.”
“그리고… 가능하다면 놈들이 이곳에서 무슨 사고를 쳤는지도 알아 와.”
명을 이행하기 위해 곧장 움직이던 몸이 우뚝 멈췄다.
“……꼭 알아보셔야겠습니까?”
“……생각하고 보니 그냥 모르는 게 더 낫겠네.”
내게 피해가 올 정도로 녀석들이 날뛰었을 리도 없고, 피해가 올 정도였다면 단이 진즉에 보고했을 테니.
세상에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다.
꼭 알아보셔야겠느냐는 물음만 들었음에도 위장이 아파 오는 것 같아 데온은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