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45
245. 나비효과(13)
“잘 들어.”
“꿹.”
“……그렇게 삐딱하게 굴지 말고. 이건 데온 님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
“……끠액?”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말해줄게. 데온 님께서 인간계에 가신대. 직접 나서시려는 거지.”
“끩.”
“설마 평범한 관상용 식물처럼 방에서 얌전히 데온 님이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리려는 것은 아니겠지?”
“끠애액! 끠액끠액!”
“그래, 아주 찰싹 달라붙어서 따라가야지. 너는 호위 식물이야. 데온 님을 지키는 것이 네 일이고.”
“끠액!”
“다만 문제라면… 데온 님께서 용사라는 것일까.”
“끠액…?”
“데온 님의 목숨이 위험할 만한 상황이라면 어지간한 강자가 아닌 이상 누구도 그분을 구하지 못한다는 뜻이니까. 용사가 아니었던 예전에도 그랬는데 지금은 어떻겠어. 마왕님이 아니면 어떻게 손을 써볼 시도조차 못 할걸. 아마 나서기도 전에 이미 다 죽어있지 않을까. 거기에 너 역시 포함되어 있을 테고.”
“끠애…….”
“그래서 말인데, 네게 줄 것이 있어.”
“끠액?”
“정확히 무슨 결과를 낳을지조차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이지만… 무려 ‘용사’를 위기에서 구해내려는 것이니 이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겠지.”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하고 상냥하신 분이다. 이번에만 해도 10군단장의 적의를 살 가능성까지 감수해가며 한낱 정원사인 나를 굳이 구해주셨으니 말 다 했지.
생명은 삶이라는 빛을 위해 장작처럼 소진되는 것이라지만, 난 그분의 빛이 가능한 한 오래 타오르길 바란다.
“그래서 말인데.”
그렇기에 그분을 위해 직접 키운 아이를 붙들고 묻는다.
“희생할 각오는 되었니?”
***
“……그건 뭐냐?”
“말씀드렸던 대로 영양제를 좀 줬답니다!”
“영양이 문제가 아니라….”
데온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애가 배 터져 죽으려 하는데?”
“끠액…!”
괴식물이 저는 괜찮다는 듯 잎사귀를 말아 치켜올린다.
나름 멀쩡한 척 연기한 것 같지만 힘겨워 보이는 태도가 선명히 보여 데온은 말없이 시선을 내렸다. 화분의 흙이 속에 든 무언가를 견디지 못하고 불룩 솟아있는 것이 보였다.
‘……저게 영양제를 ‘좀’ 준거라고?’
차라리 통째로 들이부었다고 말하지 그래.
척 보기에도 영양제가 아닌 무언가를 준 것 같긴 하지만…….
걸고넘어지고 싶은 부분은 많았으나 굳이 입 밖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히엔이 다른 것도 아닌 ‘데온 하르트’의 식물을 죽일 리도 없으니. 데온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 됐다. 식물에 대해서는 나보다 네가 더 잘 알 테니.”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지.
오래 끌 생각 없이 대충 대화를 마무리 짓고 내보내려는데, 그 말이 무언가를 건드린 듯 히엔이 눈을 크게 떴다. 확장된 동공에서 넘실거리는 감동을 목격한 데온이 불길함을 감지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감정에 눈이 가려지기라도 한 건지, 평소라면 이쯤에서 먼저 표정을 읽고 자중했을 히엔은 작게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저를 믿어주시는 건가요…!”
“…….”
믿음. 껄끄러운 단어에 반사적으로 몸이 굳었다.
순간이지만 눈에 비치는 핏물이 일렁인 것 같은 기분이다. 데온은 잠시 침묵한 뒤 천천히 답을 꺼냈다.
“……너 정원사잖아. 식물에 관련된 일인데 정원사에게 맡겨야지, 그럼 누구에게 맡기겠어.”
“아…….”
“볼일도 다 본 것 같은데, 이만 나가지 그래. 피곤한데.”
“아…아! 실례했습니다!”
***
이 마왕성에서 미친개…가 아니라 로프티 기사단이 있을 만한 곳은 별로 없다.
숙소, 아니면 연무장. 혹은 가끔 마스터의 방에 대뜸 쳐들어가서 죽치고 앉아있는 것이 전부.
덕분에 단은 어렵지 않게 그들을 찾을 수 있었다. 장소는 연무장이었다.
다만 예상하지 못한 것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 둘이나 있었다는 것일까.
그 탓에 괜히 얽혀 피곤해지기 전에 빠르게 용건을 전하고 돌아가려던 초기의 목적과 달리 단은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걸음을 멈춰야 했다.
“이 무슨… 하…….”
끝맺지 못한 말을 누르고 한숨이 나왔다.
목구멍에서 수없이 많은 거친 말이 맴돈다. 방심하면 그대로 욕설을 뱉을 것 같았으나, 견고한 이성은 용케 그것들을 눌러 삼키는 것에 성공했다.
‘내가 뭐라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니까.’
상대는 군단장들이다. 차라리 로프티 기사단이었다면 시원하게 소리라도 내질렀을 텐데.
난장판인 연무장과 그곳에서 날뛰는 손님들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아 관자놀이를 손끝으로 지그시 눌렀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5군단장과 9군단장이 자주 오가긴 했지… 최근 들어 급격히 사이가 나빠진 둘이니 언젠가 일이 터질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될 줄이야.
5군단장과 9군단장이 싸우고 있었다. 그것도 여기, 로프티 기사단 전용 연무장에서!
“꺼져 트로버!”
5군단장 오엘이 이를 드러내며 활시위를 당겼다. 시위에 걸린 세 개의 화살이 매섭게 목표물을 노리고 날아갔다.
“뒤끝 한번 더럽게 길긴!”
9군단장 트로버가 주먹을 내질렀다. 매서운 소리와 함께 생성된 풍압이 화살을 몰아냈다.
“닥쳐! 내 보물들을 망가뜨려 놓고!”
“보물? 그깟 잡동사니가? 게다가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아직까지도 이러냐? 이러다 평생 우려먹겠다, 쪼잔한 자식!”
“언제 적 일-? 그런 말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해야 하는 거야, 이 멍청한 돌머리 새끼야! 그러니 네가 마법 하나 못 쓰는 거지! 무식하고 뻔뻔한 새끼!”
아예 화살비가 내린다. 트로버가 대응함에 따라 땅 곳곳이 움푹 파였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은 채 둘을 지켜보던 단이 문득 든 의문에 헛웃음을 흘렸다.
‘오엘이 원래 이렇게 말을 잘하는 군단장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화가 나니 언변이 화려해지네.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이러다 연무장 자체를 못 쓰게 생겼다. 왜 아무도 안 말리는 건데! 단은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소 오엘의 곁을 지키던 데르니반이라는 부관은 어딜 간 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대신 옹기종기 모여 간식을 나눠 먹는 로프티 기사단이 눈에 들어왔다.
혈압이 올랐다.
“이… 망할…….”
“어? 단! 웬일이냐?”
“우린 싸움 구경 중인데, 같이 볼래?”
“이리 와서 앉… 야야, 옆으로 좀 가라! 자리 만들어!”
“군단장들이라 그런지 싸움 수준이 확실히 다르다? 배울 게 많아!”
배울 게 많은 건 좋은데… 정식 대련도 아니고 ‘싸움’이잖아. 말려야지 이 미친 인간들아…….
‘결국 말릴 사람은 나밖에 없는 건가.’
급격히 피로가 밀려온다. 단은 머리에서 손을 떼고 눈가를 꾹꾹 누른 뒤, 한 걸음 내디디며 소리 높여 두 마족을 불렀다.
“두 분,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진정하시고…….”
“당장 이곳에서 썩 꺼져!”
“여긴 네 소속 연무장도 아니거든?!”
“꺼지라고!”
“하, 더럽고 치사해서…!”
……시발.
***
우여곡절 끝에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아, 우여곡절까지는 아닌가. 트로버가 먼저 속 좁다며 한껏 투덜거리며 물러갔으니.
그간 마왕성에서 지내며 트로버의 단순무식한 성격과 오엘의 어린애 같은 성격을 아는 만큼 이것이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지 또한 잘 알기에 단은 마음속 깊이 트로버에게 감사했다.
오엘마저 기분 나빠졌다며 돌아가고, 마침내 데온 하르트의 직속들만 남은 공간에서 단은 로프티 기사단을 돌아봤다.
‘…….’
금방이라도 잔소리할 듯 벌어졌던 입이 한숨만 뱉고 닫힌다. 잠시 내려앉았던 정적은 얼마 못 가 다시 열린 입에 의해 깨졌다.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가 나왔다.
“싸움이 나면 말리는 것이 기본 상식입니다.”
“알아! 하지만 재밌잖아?”
“이…! ……하, 됐습니다. 더 말해봤자 듣지도 않으실 테니.”
체념은 빨랐다.
데온 하르트가 연관된 것이라면 무슨 사고든 괜찮다며 넘어가는 마왕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게 만든 이들이다. 항상 여유로울 것만 같던 마왕의 얼굴이 깨진 것을 그때 처음 보았더랬지.
로프티 기사단의 사고가 끊이질 않자 몸소 연무장에 찾아온 마왕이 그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데온은 왜 이런 것들을 기르는지 모르겠네.’라고 중얼거렸던가.
훈련이랍시고 창문을 뛰어넘다가 밑에 지나가던 마족 사용인을 깔아뭉개고, 0군단과 시비가 붙어 사이좋게 의무실로 실려 가는 등, 알음알음 들려오는 로프티 기사단이 친 사고의 목록을 아련한 눈빛으로 떠올린 단이 뭐든 좋으니 지금까지처럼 마스터에게 피해를 주는 종류의 사고만 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타협하며 고개를 들었다.
지나치게 온화하면서도 조금 식은 듯한 눈빛이 미친개들을 향했다.
“바로 본론만 말씀드리죠.”
“……?”
“출정 준비하세요. 마스터의 명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오랜만에 대장과 함께 출정하는 것이 되겠네요.”
“……!”
미친개들의 눈빛이 한순간 바뀌었다.
놀람, 희미한 두려움, 약간의 걱정, 이내 덩치를 키우는 기쁨을 거쳐 터져 나오는 흥분까지.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난 변화에서 얼핏 평범하던 한 사람이 살인귀로 변모해간 시간을 엿본 것 같아 단이 주춤 물러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프티 기사단은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직접 전투에 나서는구나!”
“대장과 함께 날뛸 수 있게 되었어!”
“와아아아!!”
그나마 침착한 클레터조차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누군가 이를 본다면 전투에 미친 놈들이라며 학을 뗄 것이다. 아마 단이 주춤 물러선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겠지.
그러나 틀렸다.
전투에 미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였던 만큼 전혀 기쁘지 않다. 잔혹한 손속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으니 마찬가지고. 티를 내진 않지만 같은 인간을 죽이는 것은 여전히 꺼려지고 구역질이 난다. 아마 평생이 가도 그렇겠지.
‘직접 전투에 나선다는 것’이, ‘날뛸 수 있어서’ 기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대장과 함께’할 수 있기에 기쁜 것이었다.
잠자코 보고 있으려니 최근 들어 용사가 되었다고 몸을 막 쓰는 모양이던데, 그러다 정말 큰일이 터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만약 데온이 다시 전쟁에 몸소 나서기라도 하면 그를 붙잡든 같이 나가든 떼를 써서라도 시야 범위에 둘 생각이었는데… 마침 적절한 명령이 내려와서 정말 다행이다.
기쁨에 풀린 입이 자연히 농담을 지껄였다.
“9군단장에게서 배운 마법을 연습할 좋은 기회야!”
“드디어 실습인가! 단 너도 따라가냐? 기왕이면 따라와서 우리가 부리는 마법을 봐줬으면 좋겠는데.”
“……여러분들을 보니 따라가기 싫어집니다만….”
“하하하! 농담도!”
진심인데.
……라고 답하면 의미 없고 피곤한 대화만 길게 이어지겠지. 침묵으로 대화를 넘긴 단은 명령받은 마지막 말을 착실히 꺼냈다.
“약은 충분합니까?”
“약? 쓸 일이 없었으니 차고도 넘치지. 저번에 네가 가져다준 것들도 쓰지 않아서 전부 그대로 있거든.”
“다행입니다. 만약 없다고 했으면 곤란했을 텐데.”
가만히 듣던 클레터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의문을 표했다.
“그동안 잘만 구해오더니, 갑자기 왜?”
“금지령 때문에 수색이 엄중해져서요. 외부에서 구해와야 하는데, 나갔다 오기라도 하면 입구에서 몸수색으로 다 털려버리니 현재로서는 새로 구하는 게 어렵습니다.”
“엑, 금지령?! 그럼 우리 마약 걸리면 큰일 나는 거 아니야?”
“저와 마스터, 11군단장 같은 특정 이들 한정으로 내려진 거라 괜찮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새삼 마왕이 사람을 얼마나 잘 꿰뚫어 보는지 실감하게 된다.
똑같이 데온 하르트를 모시더라도 단은 마약이든 뭐든 그가 원한다면 구해다 주는 타입이고, 로프티 기사단은 데온 하르트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면 오히려 빼앗으면 빼앗았지 본인이 원한다 해도 거절하는 타입이다.
자주 보지도 않았으면서 이를 알고 적절히 구분해 금지령을 내리다니……. 마왕다우면서도 마왕답지 않달까. 오래 살았다던데, 확실히 그 세월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대장은 그렇다 쳐도 너와 11군단장은 왜…?”
“……아무튼 약 잊지 말고 챙기세요. 전달도 끝냈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단…?”
단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달라붙는 의문 어린 시선들을 떨쳐내고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