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47
247. 감정은 언제나 누군가를 죽여왔기에(2)
아, 그런가.
상세한 설명을 위해 좀 더 기억을 더듬은 데온이 입가를 만지작거리며 건물의 특징을 읊었다.
“2층 건물이고… 1층이 도박장이고 2층이 주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 어디를 말씀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즉각 마족이 앞장섰다.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던 듯, 도착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기가 맞습니까?”
도착한 건물 앞에서 마족이 데온을 돌아보았다.
“맞아. 수고했어.”
“예, 그럼 저도 가보겠습니다.”
“그래. 잘 가.”
기억 속에 있는 그 건물이 맞다. 익숙한 건물을 눈으로 훑은 데온이 안내해준 마족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안에 들어섰다.
새 호구의 방문을 기대했던 모양인지, 은근히 빛나는 시선들이 모여들었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
“…….”
그를 알아본 듯 내부에 정적이 찾아왔다. 불안한 침묵이 흘렀다.
‘0군단장…….’
‘……데온 하르트, 맞지?’
‘총지휘관이라고 들었는데, 한창 바쁠 사람이 왜 여기에…….’
왜 이곳에 다시 찾아온 건지. 혹, 이전의 일을 이제 와 응징하기라도 할 생각일까.
적어도 그때 이 자리에 있었던 이들 중 그를 몰라보는 마족은 없었다. 잊기에는 당시의 기억이 너무도 충격적이었으니까.
오직 한 명만 죽임으로써 건물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은 자를 어찌 잊겠는가. 당시의 사건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악몽으로 겪는 마족이 있을 정도로 뇌리에 깊게 남았기에, 마족들은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바삐 눈을 굴리며 눈치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데온이 움직였다.
예의 그 붉은 눈동자로 내부를 죽 훑은 그가 목적한 이를 찾은 듯 한 곳을 향해 똑바로 걸어간다. 절로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의 목적지로 유추되는 곳에 모여들었다. 그곳에는 오래전, 멋모르고 그에게 약 탄 술을 건넸던 마일이 있었다.
‘왜… 왜?’
마일은 숫제 울 것 같은 얼굴로 몸을 움츠렸다.
‘그때 그냥 약만 뜯어내고 갔잖아. 그걸로 끝난 거 아니었어?’
데온 하르트가 점점 가까워진다. 조명의 각도에 따라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우며 섬뜩한 붉은 눈동자가 더욱 부각된다. 그 모습이 악마가 따로 없어 차마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굳어있던 마일은 그저 본능에 따라 몸을 뒤로 물리다 기어이 쿠당탕 뒤로 넘어갔다.
생각보다 큰 소음에 지레 놀라 허둥지둥 일어나려는데, 그 앞에 신발이 멈춰 섰다.
친절하게 시선을 맞춰주려는 듯, 데온이 천천히 무릎을 굽혀 앉아 눈을 마주한다. 눈매를 휘어 웃기라도 한 건지 새빨간 눈동자가 반달의 형태를 띠었다.
“안녕, 약쟁아. 오랜만이지?”
“……네, 네!”
“내가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렇게 마주하고 있으니 언젠가의 과거가 생각난다. 데온은 살풋 웃으며 그때 했던 말을 그대로 읊었다.
“죽기 싫으면….”
“…….”
“가진 약 다 내놔.”
***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내놓으라는 가벼운 듯 무거운 협박에 약은 빠르게 준비되었다.
기왕이면 담배 형태의 약이면 더 좋겠다고 농담처럼 붙인 사족까지 확실하게 신경 쓴 건지 약 주머니와 별개로 따로 준비된 담뱃갑에 데온은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고 마일을 향해 칭찬하듯 미소 지었다. 정작 마일은 기겁하며 시선을 피했지만, 아무튼.
약주머니를 열고 가볍게 냄새를 맡았다.
“…….”
데온의 미간이 보일 듯 말 듯하게 좁아졌다.
“창문 열어.”
“……네?”
“창문 열라고.”
피비린내 때문에 확인을 못 하잖아.
아닌 척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던 마족들이 후다닥 움직여 건물의 창문이란 창문은 죄다 연다. 서늘한 바람이 실내의 온기를 몰아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정면에 두고, 데온은 다시 코에 약주머니를 살짝 가져다 댔다.
“마비약이랑 수면제가 섞여 있네. 아직 그 수법 못 버린 모양이야.”
“……!”
“뭐… 일부러 섞어둔 건 아닐 테고, 남은 약 다 내놓으라 한 건 이쪽이니 뭐라 할 생각은 없지만.”
다만 약을 섞어서 보관하는 건 다시 봐도 영 아니다. 아무리 자기가 먹는 용도가 아니라고 해도 그렇지.
“아무튼 수고했어.”
“그, 그럼 이제… 가시는 겁니까…?”
“……글쎄.”
원래는 가려고 했는데, 간절히 가주길 바라는 눈빛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더 머물고 싶어진다.
한쪽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올렸다.
“마침 시간도 좀 남았고… 게임이나 한 판 하고 갈까.”
건물 내 마족들의 얼굴에 절망이 어렸다.
…….
마족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행한 게임은 우습게도 본인의 운을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측정 도구가 되어주었다.
데온은 가만히 손에 든 카드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전에 비해 운빨이 좀 떨어졌네.’
마왕을 죽이고 인간을 위해야 할 용사가 인간계를 향해 무기를 들어서 세계가 가호를 거둬가기라도 한 것일까. 운이 영 예전 같지가 않다.
썩 좋지 않은 데온의 표정을 본 상대가 판돈을 올린다. 데온은 피식 웃고는 그에 응하며 카드를 내려놓았다.
‘그렇다 해도 완전히 거둬가진 못한 모양이지만.’
풀하우스.
상대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밥 먹듯이 포카드와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잡고 종종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도 꺼냈던 과거를 생각하면 확실히 운이 떨어진 것 같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전에 비교한 것이지 지금도 썩 나쁜 편은 아니다.
어쨌거나 용사가 마왕을 죽일 마음이 있고 아직 행하기 전인 이상, 세계로서도 목적을 이루기 전에 용사가 죽게 둘 수는 없었겠지. 그 최소한의 가호가 이렇게 운으로 드러났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만…….’
더 많은 나라가 무너지고 더 많은 인간이 죽는다면, 그땐 세계도 용사를 포기할까. 혹은 수많은 용사 중에서도 특별 케이스인 나를 택할까.
흐리게 웃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전과 달리 산처럼 쌓이진 않았지만 두 손을 가득 채우고 조금 넘칠 정도로 쌓인 금화를 혹시 몰라 챙겨온 주머니에 담고 등을 돌렸다.
“난 이만 간다.”
“네, 네! 또 오…….”
“…….”
“또… 또 오세…….”
빈말로도 또 오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듯 녀석이 머뭇거린다.
제가 제 무덤을 판 것 같은 표정이 제법 웃겨 데온은 키득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다신 볼 일 없길 바라지.”
“……네.”
***
무사히 마왕성에 귀환하고, 시간이 흘러 출정 날이 밝았다.
더 이상 로브를 입어 피부를 가릴 필요가 없어진 데온은 생각 없이 이전처럼 간편하고 무난한 전투복을 챙겨입으려다가 에드가 공식 전투복이라며 내민 옷을 보고 멈칫했다. 익숙한 디자인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상징이나 다름없던 로브를 벗어던졌으니 복장에 집중하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이 디자인… 누가 생각한 거지?”
“마왕님께서 준비하셨습니다.”
“하.”
마왕 새끼 진짜 성격 나쁘네… 이쯤 되면 악질적인 것을 넘어 변태라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제국 측 공식 전투복과 똑같으나 색만 다른 디자인. 등허리에 교차하여 장착될 단검의 검집 착용 및 발검의 편의를 위해 상의가 조금 짧은 것까지 완벽히 똑같다. 지난번 화면을 띄울 때도 그렇더니, 아주 톡톡히 이용해 먹는구나. 제국에서 보면 거품 물고 발작하겠어.
“……빌어먹을 검은색.”
“……검은색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니, 그건 아닌데.”
마계 소속임을 드러내고 인간계를 도발하기 위한 마왕의 수로 사용되어서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지.
대답을 했음에도 못내 불안한 듯 눈치를 살피는 에드를 안심시키기 위해 옷을 받아들고 바로 탈의했다. 단이 돕기 위해 손을 뻗다가 에드를 보더니 한 걸음 물러난다. 아마 같이 출정하지 못하는 에드를 배려한 것일 테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에드는 곁에서 환복을 돕는 것에 충실히 집중했다.
잠시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이를 지켜보던 벤이 문득 고개를 들고 데온을 불렀다.
“아, 저… 데온 님.”
“응?”
“…….”
듣고 있으니 말하라는 뜻을 비쳤는데, 다음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의아함을 담은 시선이 벤을 향했다.
그는 곧장 말을 꺼내는 대신 머뭇거리며 마력석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데온 하르트의 신체에 이상이 생길 경우 곧장 신호가 가는 목걸이.
이를 본 데온이 한쪽 눈썹을 까닥였다.
벤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느리게 운을 뗐다.
“……금지령이 내려졌다고 들었습니다.”
“…….”
“데온 님께서 애용하시는 담배 같은 경우 너무 자주 신호가 온 탓에 걸러지도록 설정해두어 얼마나 자주 피우신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지금 이 자리에는 데온 하르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단과 에드를 의식하여 말을 고르고 고른 듯 벤은 잠시 숨을 돌린 뒤, 제법 생략되고 빙빙 돌린 말을 꺼냈다.
“……그래도 자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데온은 답하지 않고 벤을 쳐다보았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이해했기에 더 살필 수밖에 없었다.
내려진 마약 금지령. 그 와중에 첫 번째 도시로 가서 애용하는 담배가 아닌 다른 종류를 사용했으니 목걸이에 신호가 갔을 것이다.
데온 하르트는 마왕이 내린 금지령을 어겼고, 벤은 이를 알고 있음에도 말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다. 당장 마왕에게 가서 일러바치거나 그러겠노라고 협박하며 말리는 것이 아닌, 자제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선에서 그친 것이 그 증거였다.
침묵은 에드가 막 정리된 옷에서 손을 떼며 깨졌다.
“다 됐습니다.”
“……수고했어.”
언제 무기까지 착용시킨 건지. 착용된 무기를 손으로 훑은 데온이 에드를 돌아보았다. 같이 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 이전보다 더 어두워진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
입가를 만지작거리다가 그를 불렀다.
“에드, 내가 인간계에 나가 있는 동안 네가 맡아줬으면 하는 임무가 있는데.”
“예? 무엇…입니까?”
“마계에서 새 정보가 들어오는 족족 내게 보고해. 군단장끼리 싸웠다더라- 하는 사소한 정보도 상관없어.”
“……!”
“믿을 수 있는 정보 전달책 하나 정도는 이곳에 남아있어야지.”
어차피 다 결정된 사안을, 부러 임무라는 이유를 들어 마계에 남을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초라함을 덜 느끼게 하기 위한 배려. 네가 쓸모없어서 두고 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배려 섞인 명령에 눈을 둥그렇게 뜬 에드가 이내 부스러지듯 웃었다.
“믿을 수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 가볼까. 단. 체에스 챙겨.”
……체스?
벤과 에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의문 가득한 둘의 표정을 본 데온이 오해를 정정했다.
“체스가 아니라 체-에-스.”
“……?”
직접 개발한 게임이라는 건 들어 알고 있지만… 그걸 전쟁터에 왜 챙겨간단 말인가. 의문이 더 커졌다.
그러나 데온은 더 설명해줄 생각이 없는 듯 고개를 돌렸다.
얼핏 보면 단순히 체스에서 파생된 게임으로만 보이겠지만, 전략을 짜기 위한 도구로도 유용하다는 것을 아는 단만 군말 없이 체에스를 챙기고.
그대로 나가려는데, 잊고 있던 존재가 발목을 붙잡았다.
“끠액.”
“……?”
녹색 줄기가 몸을 휘감고 화분째 매달린다. 멈칫한 데온이 괴식물을 내려다보았다.
“끠애애! 끠애끠앩! 끩앩!”
“……같이 가자고? 두고 가지 말라고? 버리고 갈 거면 차라리 즈려밟고 가라고?”
“끠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