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48
248. 감정은 언제나 누군가를 죽여왔기에(3)
때아닌 눈싸움이 벌어졌다.
데온이 말없이 압박하듯 괴식물을 내려다보고, 괴식물은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그를 마주한다. 식물 주제에 고집은 또 어찌나 강한지, 이대로면 하루 종일도 이러고 있을 것만 같아 결국 그는 기묘한 대치 끝에 손을 들어 괴식물을 쿡 찔렀다.
“끠애앩!”
가장 연약한 꽃봉오리 가운데를 찔린 괴식물이 발광했다.
이번에야말로 한 방 먹이겠다는 듯 줄기가 매섭게 날아온다. 휘두르거나 찌르는 등 다양한 패턴으로 공격해오는 줄기를 툭툭 쳐내던 데온은 힐긋 눈만 굴려 한쪽에 서 있는 이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어정쩡하게 서서 이쪽을 지켜보던 셋과 눈이 마주쳤다.
“나가 있어.”
가벼운 명령이 내려졌다.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는 명령이다. 식물 따위가 백날 덤벼봤자 데온 님께 생채기 하나 낼 수 있을 리도 없고. 벤이 군말 없이 돌아섰다.
단 역시 짐을 챙겨 든 채 밖으로 나가고, 에드가 못마땅한 시선을 괴식물에게 던진다. 쯧, 불만 섞인 소리가 낮게 울렸다.
‘식물을 어떻게 교육했으면 감히 주인에게 덤비는 일이 일어나는 건지.’
데온 님께서 즐거워하시는 것이 눈에 보여 일단은 그냥 두고 보고 있긴 하지만, 원래였다면 진즉에 난리가 났었어야 할 일이다. 오래전 그때처럼 정원이 불타고 마왕님께 목이 졸려도 할 말이 없어야 했겠지. 고작 그뿐일까, 책임자는 죽음으로써 책임질 각오를 해야 했을 터다.
하지만….
‘그 인큐버스 정원사가 준 것이라고 했던가.’
설령 난리가 났어도 그 녀석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데온 님께서 은근히 아끼시는 놈이니까.
‘역시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녀석이군.’
보일 듯 말 듯 하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다른 건 몰라도 식물 건에 관해서 만큼은 제대로 한 소리 해야겠다고 벼르며, 에드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고요함이 찾아왔다.
데온은 어느샌가 공격을 멈춘 괴식물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정말 눈이 있는지 확언할 수 없음에도 괴식물이 말간 시선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것이 느껴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아무리 이쪽에서 먼저 장난쳤고 위협조차 되지 않는다지만, 저를 감히 공격하기도 하는 버르장머리 없고 위험한 생물을 곁에 두는 이유는 이 시선에 호의가 담겨 있음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그런 실없는 생각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북함에 다시 손가락을 들었다.
“끠애액?!”
녹색 줄기가 황급히 손목을 붙잡았다.
“끠앩끠액!”
“……그래.”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지.
아직까지도 허리에 감겨 있던 녀석을 떼어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다시금 침묵이 흘렀다.
‘…….’
툭. 툭. 툭. 하얀 손가락이 화분 옆 테이블을 두드린다. 알 수 없는 시선으로 괴식물을 내려다보던 데온이 무언가에 이끌린 듯 대뜸 입을 열었다.
“나 좋아하지 마.”
“끠액?”
그게 뭔데.
“나 좋아하지 말라고.”
“끠액.”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이 새끼가?”
“끠깱앩! 끠앩애애!”
말로! 말로 합시다!
팔의 역할을 하는 녹색 줄기가 제 몸통을 쥔 손등을 아프지 않게 찰싹찰싹 때린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가만히 그 꼴을 지켜보던 데온이 깊은 한숨과 함께 손을 거뒀다.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때 모른 척했다는 걸 분명 알고 있었을 텐데.”
[너 나 좋아하냐?] [끠액!] [시발.]그때, 그 대화를 하고 이어서 중얼거리듯 내뱉었던 말.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 있어야지…….]평소엔 잘만 알아듣다가 그때만 못 알아들었을 리 없지 않은가. 그건 명백한 거부였다.
“끠…끠애?”
“모른 척하지 마라.”
어딜 모른 척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어.
끩…. 단호한 음성에 식물이 급격히 시들해진다. 데온은 제 눈치를 보는 녀석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느리게 운을 뗐다.
“내가 이대로 널 전쟁터에 데리고 간다면, 넌 나를 지키기 위해 애쓰겠지.”
“끠액.”
“설령 그것이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야.”
“…….”
툭. 툭. 툭. 툭.
테이블을 두드리는 손가락의 속도가 느려진다. 데온은 시선을 내리고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길게 드리운 속눈썹 아래 붉은 눈동자가 침잠하게 가라앉았다.
기분 탓일까, 조금은 어둑한 목소리가 나왔다. 있지, 난 말이야.
“누군가의 순수한 애정과 호의가 버거워.”
사람이든 마족이든, 하다못해 그 상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물이라 할지라도.
그냥, 누군가 나를 위한다는 것 자체가 버겁다. 내가 뭐라고.
그렇기에 나름 계산적인 관계인 단을 가장 편히 여긴 것이다. 미친개… 아니, 로프티 기사단은 이러한 버거움을 깨닫기 전부터 함께 해온 탓에 그저 언젠가 올지도 모를 후폭풍을 각오하고 곁에 두고 있는 거고.
‘밀어낸다 해도 들러붙을 놈들이라서 그냥 둔 것도 있지만.’
어쨌거나.
만약 누군가 계산이 아닌 순수한 감정에 따라 목숨 바쳐 나를 위한다면 난 그 무게에 숨이 막힐 것이다. 어쩌면 질식해 죽으려 들지도 모르지. 날 위해 한 행동이 도리어 내 숨통을 조이는 꼴이 되리라.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꽃봉오리를 갸웃거리는 녀석을 향해 흐리게 웃었다. 속에 담아두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입을 통해 형체를 드러냈다.
“받은 만큼 돌려줄 자신이 없거든.”
데온 하르트는 형 크루엘의 죽음을 통해 ‘애정’을 절실히 배웠다.
내가 아는 애정이란 그런 것이라, 감히 흉내 낼 자신조차 없어서.
“끠액…!”
“돌려줄 필요 없다는 건 더 부담스럽고.”
식물이 축 처졌다.
데온은 낮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봉오리를 슬슬 문질렀다.
“아무튼, 간단한 이야기야. 네가 따라오길 바란다면 데려갈 수는 있어. 하지만 나서는 건 안 돼. 그게 나를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끠액…….”
“그래도 데려가길 바란다면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줄기가 뻗어왔다. 몸을 휘감고 화분째 매달린다.
명확한 의지 표명에 피식 웃은 데온이 좀 더 매달리기 쉽게 팔을 살짝 들었다. 녀석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려준 뒤, 허리춤에 대롱대롱 매달린 화분을 아닌 척 쓸어주고는 기다리고 있을 이들을 위해 문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말이야.”
“끠액?”
“너 진짜 성별 뭐냐? 그때 그건 정말 못 알아듣겠던데.”
“끠액(끠액).”
“……그거 의미 없는 울음소리지?”
“끠…끩?”
이 새끼가.
***
단과 에드는 어딜 간 건지, 문을 열고 나오니 저를 기다리고 있는 이는 벤 하나뿐이었다.
벤을 한 번, 아무도 없는 복도를 한 번 훑은 데온이 벤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얼굴에 의문이 서리고 입이 열리기 전에, 벤이 한발 앞서 말을 꺼냈다.
“에드와 단은 데온 님께 필요한 물품을 제대로 챙겼는지 재확인을 위해 먼저 자리를 비웠습니다. 데온 님께 죄송하다 전해달라더군요.”
정확하게는 에드가 단을 끌고 간 거지만.
자신이 데온 님의 곁에서 직접 보필하지 못하니 네가 대신 잘 챙겨드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약간의 질투심과 분풀이의 의도를 담아 질질 끌고 가던 모습이란…….
[이미 전부 확인 끝났습니다!] [혹시 모르니 다시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조금 어이없고 우습긴 하지만 둘 다 썩 마음에 드는 녀석들도 아니고, 이건 둘이 풀어야 할 감정이니까. 귀찮게 끼어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벤은 깔끔히 외면하는 것을 택했다.
데온 하르트가 ‘사과할 것까지야….’하고 중얼거린다. 그 사이 벤은 힐긋 시선을 내려 데온에게 매달린 식물을 보았다. 녹색 줄기로 그를 칭칭 휘감고 매달려 화분째 대롱거리는 모습.
시선을 느낀 건지 꽃봉오리가 이쪽을 향해 휙 돌아간다. 눈…으로 유추되는 것과 시선이 마주쳤다.
“…….”
“…….”
기묘한 눈싸움이 시작되었다.
데온 님 취향도 참……. 생각 없이 식물을 살피던 벤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식물 주제에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해…?’
잔챙이 정도는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놈으로 보이지만, 그뿐이다.
마계의 식물이라면 못해도 마족들의 마력량 정도는 파악이 가능할 텐데, 그럼에도 이렇게 똑바로 눈을 마주하다니.
벤은 주치의답지 않게 마족 평균을 넘는 강대한 마력을 지닌 만큼, 이따금 정원 산책을 할 때면 식물들이 알아서 수그리거나 몸을 피해주었기에 지금의 상황이 조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마계의 식물이 아닐 리는 없고…….’
관찰하듯 애매한 눈초리와 당당한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이러한 한 식물의 일방적인 기 싸움은 데온이 걸음을 떼며 끝났다.
“그럼 가자.”
화분을 대롱대롱 매단 채 그가 걸어간다.
덩달아 멀어지면서도 제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식물을 어이없다는 듯 보던 벤은 이내 픽 소리 없이 웃고 데온의 뒤를 쫓았다.
‘확실히 저런 식물이라면 재밌을 것 같긴 하군.’
간이 탱탱 부어서 찌르는 맛이 있을 것 같긴 하다.
데온 님이 저 식물을 아끼는 이유를 일부나마 이해하며 아직까지도 저를 보고 있는 식물을 향해 부러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끠액!?’
예상치 못한 도발에 식물이 움찔했다.
“끠애액!!”
“뭐야, 갑자기 왜 이래?”
***
“저 새끼 식물 아닐 수도 있어…….”
데온의 상체를 휘감은 식물을 본 리리넬이 한 말이었다.
인간계의 문화를 공부했다며 데온 님께 드리기 위해 챙겨 온 손수건이 하얀 치아 아래 잘근잘근 처참히 물어뜯긴다.
얘도 정상은 아니야. 지켜보던 10군단장 가이시텔이 질린 얼굴을 했다.
배웅 겸 구경을 위해 나와 있던 5군단장 오엘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저게 식물이 아니라고? 그럼 뭐야?”
“……진짜가 아니라 그냥 한 말이에요.”
“그냥 한 말? 왜?”
“……데르니반!”
가뜩이나 기분도 안 좋은데 질문 세례까지 받아줄 여유는 없다.
신경질적인 외침에 근처에서 지켜보던 데르니반이 즉시 오엘을 데리고 리리넬로부터 떨어졌다. 하루 이틀 모셔온 것이 아니라는 듯 다른 이야기로 주의를 끌고 걸음을 유도하는 것이 제법 능숙했다.
그제야 물어뜯고 있던 손수건을 거둔 리리넬이 저를 발견하고 다가오는 데온을 보며 눈을 빛냈다. 새 전투복! 묶은 머리! 이전의 출정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리리넬,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설마 배웅 나온 거야?”
“네! 데온 님께서 출정하신다는데 멀리 나가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당연히 배웅해야죠! 마침 제가 최근에 인간계의 문화를 공부해서 데온 님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는데……아.”
뒤늦게 축축한 손수건의 감촉이 손안에 느껴져 입을 다물었다. 슬금슬금 손아귀의 손수건을 펼쳐 본 리리넬이 울상을 지으며 그것을 아예 구겨버린다. 단순히 축축하기만 했다면 자수 부분만이라도 살짝 보여드리려 했으나, 좀 전에 열심히 물어뜯은 탓에 기껏 놓은 자수까지 뜯겨 죄다 엉망이 되어버렸다.
특별히 데온 님을 위해 검은 손수건에다가 붉은 실로 심장을 수놓았던 것인데. 그녀를 감싼 분위기가 급격히 암울해졌다.
‘……저 손수건이 날 위해 준비했던 거구나.’
리리넬의 행동과 잠깐이지만 펼쳐졌던 손수건을 놓치지 않고 본 데온은 눈치껏 상황을 파악했다. 왜 엉망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은 바탕에 붉은 자수라니……. 뭘 새겼던 건지 알 것 같다.
‘누가 데몬교 교주 아니랄까 봐…….’
썩 내키는 선물이 아니라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그런데.
“…….”
“……?”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말이 없는 그가 이상한 듯 리리넬이 슬쩍 고개를 든다. 그녀가 경청할 자세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데온은 그제야 분위기 탓에 차마 꺼내지 못했던 말을 입 밖에 내었다.
“……지금, 네 품속에서 누가 소리치고 있는데.”
“아.”
– 리리넬! 리리넬! 안 들립니까?! 댁만 데온 님과 대화 나누지 말고 나한테도 기회를 좀 주지 말입니다! 야 이 광신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