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51
251. 감정은 언제나 누군가를 죽여왔기에(6)
혹시 모를 탈출구까지 봉쇄한 마왕이 한숨 돌리듯 등받이에 상체를 기댄다. 그대로 다리를 꼬고 오엘을 보았다.
“굳이 시체를 내 앞까지 가져올 필요는 없어.”
피비린내가 날 텐데, 그딴 것을 집무실에 들일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저런 하찮은 것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움직일 생각도 없고.
“하지만, 확인은 해야 할 테니….”
다른 녀석을 시켜야겠다.
누구를 시킬까. 역안이 생각에 잠기듯 나른하게 내리깔렸다.
오엘보다 직위가 낮은 녀석이면 압력에 굴복할 수도 있으니 안 된다. 최소 같은 지위, 회유되지 않을 대상으로.
눈동자가 스르륵 움직여 한쪽에 서 있던 트로버를 보았다.
“제보자인 트로버가 시체를 확인하면 되겠네. ”
“예, 알겠습니다.”
트로버가 히죽 웃는다. 그와 대비되게 오엘의 얼굴은 처참히 일그러졌다.
‘……적어도 확인 하나는 확실히 하겠군.’
둘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골이 생각보다 더 깊다면 철저한 확인을 넘어 트로버가 누명을 씌울 가능성도 있겠지. 물론 보아하니 그전에 오엘이 일을 칠 것 같다만.
‘어쩌면 데온이 바라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네.’
무슨 결과가 나오든 재밌으리라는 건 확신하지만…. 마왕은 트로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시선을 옭아매는 듯한 눈빛에 그가 흠칫하며 자세를 정돈했다.
“확인 보고를 할 때 시체의 모습을 다각도로 촬영한 마력석을 들고 오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래도 ‘확인’하라 ‘명령’했는데 진실을 거짓으로 둔갑시켜 보고하는 것만큼은 안 된다. 그건 마왕을 우습게 본다는 뜻이 되니까.
다만, 그건 바꿔 해석하면 ‘시체 확인 명령에 관한 보고에 거짓만 없으면 된다’는 뜻이 된다. 이걸 과연 트로버나 오엘이 눈치채고 이용할지는 모르겠다만….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 것 같으니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마왕은 손가락을 닦았던 손수건을 벽난로에 던져넣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모두 나가.”
“…….”
“아, 그전에 창문은 열어두고.”
마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간 아기 특유의 포근하고 연약한 냄새가 달갑지 않았다.
***
마왕의 집무실 앞에서 제 상관을 기다리던 데르니반은 문 여는 소리에 기민하게 고개를 돌렸…다가 멈칫했다. 금방이라도 다가갈 듯 틀었던 몸은 멈춰버린 지 오래였다.
“……오엘 님?”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그녀의 품에 안겨 있었다.
혹 환각이 아닐까 잠시 의심했지만, 특유의 낯설면서도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자신이 이런 정교한 환각을 만들어낼 정도로 아기를 신경 쓰지는 않았기에 데르니반은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니 상황 파악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마왕님의 소환과 품에 아기를 안고 나온 오엘 님. 어딘지 모르게 충격받은 듯 멍한 표정의 연인을 보던 데르니반은 성큼 다가가 아기를 건네받고자 손을 뻗었다.
순순히 아기를 내밀던 오엘이 흠칫- 빠른 속도로 아기를 뒤로 뺐다.
“무슨… 무슨 짓이야!”
어느샌가 데르니반의 손은 늑대의 것으로 변해 있었다.
날카롭게 선 손톱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에 번뜩인다. 데르니반은 표정 없이 답했다.
“죽여야 오엘 님께 피해가 가지 않습니다.”
“…….”
“아시잖습니까.”
그녀가 살아서 나왔다는 것은 마왕님께서 기회를 주셨다는 뜻이 된다.
아기를 키우는 것을 허락하셨다면 그녀의 표정에 스스로도 자각 못 한 절망이 어리진 않았을 테니 필시 죽이라는 명령이 있었을 터. 아기까지 살아서 나온 것을 보면 아마 유예 기간이 주어졌을 것이다.
데르니반은 안다. 이는 마왕이 베푸는 최대한의 배려이자 자비인 동시에 마지막 기회다. 이것마저 걷어차면 오엘이 죽는다.
“고작 인간 아기 하나를 위해 군단장이 죽게 둘 수는 없습니다.”
하여, 그는 합리적인 계산 하에 아기를 버리는 것을 택했다.
“…….”
오엘은 말없이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든 아기가 눈이 마주치자 방긋 웃는다. 티 없이 해맑은 미소에 반사적으로 아기를 안은 손이 떨렸다.
상황을 지켜보던 트로버가 툭 끼어들어 이죽거렸다.
“대신 손에 피를 묻혀주겠다니, 정말 훌륭한 부관을 뒀네.”
“……넌 닥쳐.”
“이제부터 난 네가 허튼수작을 부리지는 않는지 지켜봐야 하는데?”
“아니지. 마왕님의 명령은 허튼수작에 관한 감시가 아니라 ‘시체 확인’이었어. 그러니 얌전히 방에 처박혀서 시간이나 죽이다가 일주일째 되는 날 확인하러 오지 그래? 시신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넌 닥치고 보고만 하면 되는 거야.”
네까짓 게 뭐라고 날 감시하려 들어?
제법 매서운 말이 화살처럼 날아왔다. 평소엔 애 같은 화법을 구사하더니만, 이럴 때만 날카롭고 유창해진다. 잠시 표정을 굳힌 트로버는 이내 어깨를 한 차례 들썩이고는 돌아섰다.
“제발 재밌는 선택을 해주길 바란다.”
마지막까지 포장한 저주를 던지면서.
발끈하는가 싶던 오엘이 뒤늦게 품속의 아기를 의식한 듯 멈췄다. 그 틈을 타 트로버가 사라지고, 데르니반이 곁에 다가왔다.
“아기를 넘겨주십시오.”
“……싫어.”
“넘겨주십시오.”
“죽일 거잖아.”
오엘은 고개를 힘껏 저으며 아기를 꼭 안고 물러섰다. 애나 다름없는 행동에도 데르니반은 끄덕조차 하지 않았다.
“죽여야 합니다.”
“난 마왕님께 일주일의 기간을 받았어.”
“그건 정을 뗄 시간을 베푸신 겁니다.”
이렇게 실컷 정을 주고받으라고 준 시간이 아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여기서 당장 죽이고 주어진 일주일 동안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나을 터.
“어쨌거나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있잖아.”
“하지만.”
“너까지 이럴 거야?”
“…….”
서러움 가득한 눈을 마주한 그가 멈칫했다.
뻗었던 손이 스르륵 내려간다. 처음 보는 상관의 모습에 데르니반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듯 침묵했다.
오엘은 답답함에 칭얼거리는 아기의 등을 다독이고는 말했다.
“방으로 돌아가자, 데르니반. 일단 좀 쉬고 싶어.”
“……예.”
***
돌아가는 길은 침묵만이 가득했다.
본래 데르니반이 말이 없는 탓에 평소 대화는 오엘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녀는 지금 무언가 고민하고 생각하기에 바빴다.
조용한 그녀가 못내 의심스러운 듯 데르니반이 자꾸 시선을 두었으나, 그가 저를 보든 말든 오엘은 생각했다.
‘어떡하지.’
아무래도 정말 그 정이라는 게 붙어버린 모양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기의 시신 생각을 할 때마다 심장이 조이는 기분인 걸 보면 필시 이와 연관이 있겠지. 과연 일주일 안에 정을 뗄 수 있을까.
“우음─.”
“……?”
“엄-마.”
“…….”
엄마.
별생각 없이 아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가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아버렸다. 오엘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찬물을 확 뒤집어쓴 것 같았다. 이번엔 정말 아무 생각도 안 했는데, 괜히 심장이 조여서.
발은 어느새 문 앞에 도달했건만, 오엘은 문을 열 생각도 못 한 채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얼어붙었다.
“……오엘 님.”
“으응… 들어가자.”
아기의 말을 들은 순간 깨달았다.
난 이 아기를 버리지 못한다. 그러니까, 모른 척 입 다문 채 죽는 것을 외면하지도 못한다는 말이다.
살려야겠다. 여전히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 아기가 죽게 된다면 평생을 후회하게 되리라는 것 하나는 확실히 알겠으니까.
문을 열었다. 무언가 직감한 듯 데르니반의 시선이 따갑게 달라붙었으나 모른 척 안에 들어가 아기부터 내려놓았다.
내내 얌전히 있던 아기가 그제야 뒤뚱거리며 넓은 방을 돌아다닌다. 그 위태로운 걸음걸이를 보고 있으려니 문득 깨닫는 것이 있어서.
“……이제 겨우 걷기 시작한 아기인데.”
“…….”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 나갔다.
너무 어리잖아. 덧붙는 말을 들었을 텐데도 데르니반은 침묵했다.
답을 기대하고 한 말이 아니었기에 오엘은 별말 없이 자리에 앉아 고민했다. 살리겠노라 마음먹었으니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아기를 빼돌릴 수 있을까?
‘가장 쉬운 것은 조력자를 얻는 것인데, 도움을 요청할 만한 곳이….’
……없다.
최후의 동아줄인 마왕성의 인간들은 죄다 데온 님을 따라 출정했다. 만약 출정하지 않아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해도 데온 님께서 가만두지 않으셨겠지.
그분은 제 휘하의 인간들이 위험해지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시니까.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혹은 분노해 도리어 아기를 해하려 들지 않는다면 다행일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혼자서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아니지. 생각하고 보니 아예 혼자는 아니다.
눈을 들었다. 한결같이 묵묵히 서서 이쪽을 보는 데르니반과 시선이 마주쳤다.
“데르니반.”
“예, 오엘 님.”
“…….”
그는 충실한 내 편이다. 내 부관이고, 내 연인이다. 다른 이들은 내가 상관이기에 그가 철저히 나를 따르는 것이라 말하지만, 군단장으로서 다져진 감은 그게 아님을 알고 있다.
감히 확신한다. 그는 나와 마왕님과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 한다면 나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의 내 선택을 지지하지 않겠지.’
보다 안전한 길이 있음에도 굳이 나서서 위험한 길을 택하는 꼴이니까.
직감이 말한다. 직설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서는 안 돼. 그럼 저 사내는 내게 원망을 받는 한이 있어도 가차 없이 아기를 죽여버릴 거야.
그러니 조금 돌아서 가야 한다.
그가 거절할 수 없도록, 밑밥을 미리 깔아서.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가듯이.
“아기 말이야. 보아하니 트로버가 발견해서 나와 연관이 있음을 확인하고 마왕님께 데려간 것 같던데.”
“…….”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재차 말하지만.
오엘은 호기심이 많은 거지, 멍청한 것이 아니었다.
***
부관이 말한다. 내 탓인 것 같다고. 내 꼬리가 길어 밟힌 것 같다고. 아기를 보고 나왔을 때, 시선이 느껴졌었노라고.
기분 탓으로 넘겨버린 것까지 실토하며 사죄했다. 죽어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의 연인 된 자로서 말한다. 괜찮다고. 죽일 생각 없다고. 벌은커녕 네게 화낼 생각조차 없으니 어서 고개를 들라고.
대신.
“부탁이 있어.”
두 손으로 연인의 뺨을 감싸 고개를 들게 한 뒤, 눈을 맞추며 웃었다.
“들어줄 거지?”
지은 죄가 있으니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가 있는 곳이 질척한 늪이라는 것을 깨달은 데르니반이 입을 다물었다. 언제나 굳건할 것 같던 눈동자가 조금은 흔들린 것도 같았다.
***
“안 됩니다.”
“부탁이야.”
“그래도 안 됩니다.”
지은 죄가 있다지만 이건 아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건 상관인 오엘에게도 최악인 선택이므로, 드물게도 긴말이 이어졌다.
“지금 그게 무슨 발언인지 알고 하시는 겁니까. 아기를 숨겨달라니, 그건 마왕님의 명에 정면으로 거역하는 행동입니다.”
“숨겨달라는 게 아니야. 인간계에 버려달라는 거지.”
“같은 말이지 않습니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듯하자 아기가 칭얼거리며 안겨 온다. 오엘은 아기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책임은 내가 질게.”
“지금 제가 제 안위를 걱정하는 것으로 보이십니까?”
“그럼 날 걱정하는 거야?”
“…….”
아기 하나 때문에 군단장을 잃게 되는 비효율적인 상황을 걱정하는 것도 거기에 포함된다면, 걱정이라 말할 수 있겠지.
흔들림 없는 태도로 조용히 그녀를 보던 데르니반이 다시 닫았던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발언은 못 들은 것으로 치부한 듯 자연히 건너뛰고, 다시 초기의 주제로 돌아가서 말했다.
“아무튼 안 됩니다.”
“하지만.”
“안 됩니다.”
“…….”
철벽같은 태도에 오엘이 고개를 푹 숙였다.
고집을 부리리라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반응에 데르니반의 눈에 의아함이 스친다. 짧은 침묵이 잠시 찾아왔다가 다시 떠날 무렵,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정말 안 돼?”
“…….”
“이건 네 부주의함의 대가인데도?”
화내지 않고 벌을 내리지 않는 것에 대한 대가가 이런 부탁이라면, 차라리 벌을 내려달라는 말을 하려 했다. 평소였다면 망설임 없이 그렇게 말했겠지.
그러나 데르니반은 난생처음 보는 오엘의 눈물에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