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54
254. 감정이 죽인 것은 나인가, 너인가(1)
“……데르니반.”
아기를 빼돌리는 작업은 마지막 날 새벽에 진행되었다.
원래는 더 빨리 처리하고 싶었지만… 어디 세상사가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는 것이었던가.
아슬아슬하게나마 아기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만족하며 오엘은 복잡한 눈으로 부관의 품에 안긴 아기를 보았다.
“있지, 나… 생각하고 보니 아기 이름도 안 지었다?”
“…….”
“……그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아마 지금을 마지막으로 두 번 다시 아기를 볼 일은 없겠지.
마음 같아서는 붙잡고 싶다. 계획 따위, 전부 취소하고 다시 마왕성 어딘가에 숨겨둔 채 몰래 키우고 싶다.
……하지만 그러다가 또 들키게 되면 나도, 아기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게다가 아기는 인간이잖아? 마족들이 득실거리는 이곳보다는 인간계가 더 좋을 것이 당연해.
‘무엇보다 나는 아기의 부모를 죽인 원수니까.’
아기를 키우며 정신 또한 성장한 듯, 점점 성숙해진 사고가 스스로를 아프게 찌른다.
차라리 생각 없이 호기심 하나로만 살아가던 때가 더 나았어.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지만, 아기를 주운 것 자체는 후회하지 않는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니까.
손을 뻗었다. 희미하게 떨리는 손끝이 축복하듯 아기의 이마를 짚었다. 떨리는 손과 달리 침착한 목소리가 나왔다.
“아기를 주워 키우는 인간이 이름을 직접 지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정말 다행이야.
직접 이름을 지은 것은 더 애착이 가고 소중해지기 마련이다. 아기를 주울 인간이 아기에게 애착을 가지고 소중히 여긴다면 그야말로 다행일 터.
‘아기야, 너에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엄마’의 손길이 기꺼운 듯 아기가 꺄르르 웃는다. 오엘은 쓰게 웃으며 손을 미끄러뜨렸다. 부드럽게 내려간 손이 아기의 뺨을 문질렀다.
내게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해준 네게 감사한다.
‘엄마’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어서, ‘성숙함’을 가르쳐 주어서, ‘부모 자식 간의 이별’이 얼마나 아픈 건지 직접 경험하게 해주어서, 정말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한때나마 즐거웠다. 어쩌면 행복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애초에 줍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그날 내가 줍지 않았다면 아기는 죽었을 거야.’
그렇다면 아기의 어머니를 죽이지 말았어야 했나? 하지만 명령이었는걸.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사고의 흐름이 점점 시간을 거슬러 위로 올라가더니 적당한 시점을 찾지 못하고 비슷한 구간만 빙빙 맴돈다. 거기서 생각을 부러 끊어낸 오엘이 손을 거뒀다.
시선을 조금 올리자 데르니반과 눈이 마주쳤다.
“잘 부탁해, 데르니반.”
“…….”
……아기를 주운 이후로 상관의 새로운 모습을 참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
데르니반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오엘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아까부터 짐승으로서의 감이 불길함을 알리고 있었으나 원인을 특정 지을 수 없는 현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다녀오겠습니다.”
되도록 빨리, 다녀와야겠다.
고개를 가볍게 숙인 그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마지막인데 뒷모습이라도 볼 수 있게 좀 천천히 가지. 상황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운한 마음에 불퉁한 얼굴로 데르니반이 사라진 자리를 보던 오엘이 무언가 느낀 듯 순식간에 표정을 굳혔다.
“이런.”
“…….”
“한발 늦은 건가?”
서둘러 뒤를 돌았다. 인간의 것과는 전혀 다른 거대한 손이 뻗어오고 있었다.
급히 활을 움켜쥔 오엘이 손을 쳐내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냥 한번 시도해보았던 듯, 있어서는 안 되는 마족이 가만히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트로버.”
“마지막 날이라 와봤는데, 설마 정말 일을 칠 줄이야.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현장을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좀 아쉽네.”
오후나, 하다못해 늦은 아침에 찾아와도 될 것을 이 새벽부터 찾아오다니, 이날만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모양이지? 게다가 이곳까지 찾아온 걸 보면 방에는 이미 들러보았다는 뜻이잖아.
질린 시선이 트로버를 향했다.
상종 못 할 마족으로 보는 시선을 모를 리 없음에도, 트로버는 그저 어깨를 한 차례 들썩이고는 빙글빙글 웃었다.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어때, 그냥 이대로 곧장 마왕님께 보고하러 갈까?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금방 추적할 수 있겠지. 그땐 네 부관과 아기 모두 죽지 않을까. 아, 물론 너는 죽는 게 당연할 테고.”
“……!”
아닌 척 오엘의 몸이 굳었다.
하, 머리 위로는 마왕 하나뿐이라는 그 군단장이 고작 인간 애새끼 하나 때문에 이런 꼴이라니. 트로버의 입가에 비웃음이 서렸다.
“그게 싫다면 다른 방법도 있는데.”
“……다른 방법?”
“그래,”
아마 너도 이쪽이 마음에 들 거야.
장난치듯 손가락을 까닥였다. 은근한 목소리가 서늘한 새벽이슬을 품고 떨어져 내렸다.
“날 죽이는 거야.”
“…….”
“마왕님은 옛날 분이시라 대놓고 강자를 편애하시지. 특히 이미 벌어진 일이고 주변에 알려지지 않아 적당히 무마할 수 있다면 망설임 없이 승자, 즉 강자의 편을 드실걸.”
이를테면 자리를 옮긴 두 군단장의 사투라든가.
군단장만 한 무력은 귀하다. 상대 군단장이 이미 죽었으니 어쩌겠나. 남아있는 군단장이라도 챙겨야지.
어지간한 일이라면 무마하고, 필요하다면 이미 죽어 쓸모없는 군단장에게 죄를 뒤집어씌워서라도 살아남은 군단장을 챙길 것이다.
“날 죽이고 싶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나 역시 네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참에 목숨 걸고 한 판 붙는 게 어때?”
“……헛소리.”
생긴 건 뇌까지 근육으로 꽉 찬 것처럼 보이는 주제에 혀는 뱀 같아선.
가만히 듣던 오엘이 얼굴을 팍 찌푸렸다.
“그 가정은 ‘마왕님의 명령’이 사이에 끼어있지 않았을 때의 가정이잖아.”
지극히 개인적인 군단장들 간의 충돌을 예시로 들면 어떡하나. 지금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른데.
어디서 약을 팔고 있어. 절로 혀에 신랄함이 깃들었다.
“따지자면 넌 마왕님의 명에 따라 파견된 녀석이니까. 네 말대로 내가 너와 싸워서 죽이는 것에 성공한다면 그건 마왕님의 명령에 정면으로 반한 셈이 되지. 난 분명 죽게 될 거야. 반면에 너는 나를 죽이는 것에 성공한다 해도 아무 문제 없을 테고.”
오히려 마왕님의 명령에 반발한 내가 너를 죽이려 든 탓에 역으로 죽였다고 하면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
“하지만.”
활대를 만지작거렸다. 혹시 몰라 화살통을 챙겨오길 잘했다. 오엘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어차피 지금 상황은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그럼.”
“기왕 죽을 거, 너라도 죽이고 죽어야 하지 않겠어?”
이대로 충돌 없이 보낸다 해도 트로버가 보고하기만 하면 끝날 목숨이다. 그럴 바엔 저 빌어먹을 원흉의 목이라도 따고 죽어야 속이 후련할 테지.
활을 들었다. 한발 늦게 말뜻을 이해한 트로버의 얼굴이 점점 환해진다. 이윽고 시원스러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 그래, 바로 그거지! 아주 좋아!”
“…….”
“그럼 자리부터 옮길까? 중간에 방해받으면 곤란하니까!”
“……그래.”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마왕성 밖으로.
***
죽이고 싶다.
트로버가 아기를 마왕님께 가져다 보였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상당히 화가 났더랬지.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친절히 자리를 마련해주다니, 저 녀석은 고마워 미칠 것 같은 지금의 내 심정을 알기나 할까.
이참에 끝을 내자.
오엘은 전투가 벌어지기 무섭게 뒤로 빠져 거리를 벌리며 시위를 당겼다.
‘…….’
눈동자와 흰자 대신에 존재하는 겹눈이 가늘게 뜬 눈꺼풀 사이에서 빛난다.
굶주린 마물처럼 돌진하는 녀석의 미간을 침착하게 겨누고, 손을 놓았다. 하나만으로는 아쉽다는 듯 세 개의 화살이 목표를 향해 매섭게 날아갔다.
일반적인 화살과는 질적으로 다른 속도였으나 트로버는 용케 고개 숙여 피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대로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든 녀석이 인간보다는 마물의 것에 가까운 손을 휘두른다. 평소 외치던 우스꽝스러운 마법 주문은 없었다.
콰앙!!
한순간, 오엘이 공중을 날았다.
정통으로 맞기는커녕 공격을 허용한 것도 아니었다. 활을 마주 휘둘러 용케 막아냈건만…….
“……무식하게 힘만 세선…!”
“부럽냐?”
이번엔 제 차례라는 듯 땅을 박차고 도약한 트로버가 공중에 뜬 오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부웅! 하고 섬뜩한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그의 주먹이 목적으로 한 곳에 도달했을 때, 오엘은 그곳에 없었다.
“……!”
트로버는 급히 몸을 뒤틀었다. 마법을 쓴 건지, 등 뒤로 이동한 오엘이 손에 화살을 쥔 채 뒷목에 내리꽂고 있었다. 공중이었으나 나름 피한다고 피한 탓에, 그녀의 화살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목에 생채기를 내는 선에서 그쳤다.
“비겁하게 마법을…!”
“어차피 죽을 거, 있는 마력 다 털어보려고.”
마왕님이나 11군단장에 빗댈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력이 아예 없는 트로버에 비하면 넘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게 왜 비겁한 거야? 마족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건데, 쓰지 않는 쪽이 이상한 거잖아. 너도 쓰면 되지.”
“…….”
“평소에 ‘마법’ 많이 썼으면서.”
뿌드득.
트로버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본래부터가 마물의 것이었던 손부터 시작하여 검은 기운이 팔을 타고 올라가 어깨까지 잠식한다. 멀쩡한 인간의 손이었던 반대쪽 역시 손부터 시커멓게 물들며 커지더니 어깨까지 변화가 일었다.
나름 단정하게 입는다고 입고 있던 흰 셔츠의 팔 부분이 팽팽해지다 못해 모조리 터져나갔다.
트로버는 목을 양옆으로 우두둑 소리가 나게 기울인 뒤, 주먹을 쥐었다 폈다.
“……짜증 나는 새끼.”
“내가 할 말이야. 개자식.”
오늘을 생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아낌없이 마법을 쓸 각오로 오엘은 화살통에서 화살을 한 움큼 쥐었다.
이윽고, 화살 비가 하늘을 까맣게 메우며 쏟아졌다.
***
싸움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원거리 전투가 주력인 오엘과 근접전이 주력인 트로버여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둘은 자신에게 유리한 거리를 만드는데 천부적이었으니까.
한 명은 거리를 벌리고, 한 명은 좁히고, 무한 반복의 굴레 속에서 서로의 목숨을 노리던 그들의 전투는 후반에 이르러선 치열하다 못해 처절한 양상을 보였다.
오엘은 화살이 떨어지자 마력으로 화살을 만들어 쏘았다. 군단장 중에서도 마력이 가장 많다는 11군단장조차 보는 즉시 경악할 만한 행동이었다.
가진 게 튼튼한 몸과 체력밖에 없는 트로버는 마법에 대항하기 위해 신체 변화의 수준을 팔을 넘어 머리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 이르게 하여 싸우고 있었다. 신체에 무리가 심하게 가는 탓에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었다.
싸움은 이제 치킨 게임의 형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한쪽이 먼저 멈추지 않는 한, 둘 모두 위험해지는 상황. 아마 이 싸움에서 이긴다 해도 손해가 막심할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둘 모두 물러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야, 멈추면 패배할 테니까. 패배는 곧 죽음을 뜻한다. 같이 죽을지언정 멈출 수 있을 리 없었다.
시간이 흘러 선명하던 화살이 흐릿해지고, 검은 신체 곳곳에 균열이 가는 것이 눈에 띌 무렵.
승패가 갈렸다.
“아.”
트로버를 향해 나아가던 화살이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힘을 잃고 허공에서 흩어졌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오엘이 탄식을 뱉은 순간,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내 그녀의 코앞에 도달한 트로버가 작은 머리통을 붙잡고 바닥에 처박았다.
콰아앙!
“……!”
몸도 다 부서져 가는 녀석이 대체 어디서 힘이 나온 건지, 생각보다 강한 충격에 오엘은 순간 정신을 잃었다. 거대한 손에 정면으로 안면이 짓눌린 탓에 비명이나 신음이 나올 틈은 없었다.
쾅! 콰앙!
확실히 하려는 듯 머리를 놓지 않은 손이 연신 뒤통수를 바닥에 처박는다.
‘아, 죽겠구나.’
더는 싸울 힘이 없어 오엘은 그 순간까지 꾹 쥐고 있던 활을 놓았다. 주인의 손에서 떨어진 활이 힘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제야 검은 손이 얼굴에서 떨어져 나갔다. 멀어지는 손바닥에도 균열이 가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
“마지막으로 할 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