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62
262. 죽이기 위하여(6)
“이 정도의 폭탄을 구해올 정도면 일반적인 세력은 아닐 거야. 그리고 산국에는 이렇게 많은 폭탄이 없지. 있다고 해도 이런 곳에 쓰기 전에 진격해오는 마왕군을 막기 위해 썼을 테고.”
애초에 ‘게임’으로 이득을 얻고 있는 산국의 왕이 단물을 다 빼먹기도 전에 저를 죽이려 들 리도 없다.
“그러다가 마침 떠오르는 게 있더라. ‘폭탄’ 하면 ‘혁명군’ 아니었나?”
“……!”
“생각하고 보니 혁명군은 자체적으로 산국을 돕기도 했지. 정보력도 꽤 되는 것 같았고.”
정답이구나.
저마다 흠칫 어깨를 떨거나 눈을 키우는 놈들을 향해 눈매를 휘어 웃었다. 붉은 안광이 억눌린 분노와 광기를 담고 섬뜩하게 빛났다.
“혁명군 특유의 문양만 감추면 되는 줄 알았어?”
짓누르는 듯한 기세가 점점 강해진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긴장감에 이들 중 우두머리가 덜덜 떨리는 턱을 꽉 물며 나직이 말을 뱉었다.
“주….”
“신경 쓸 가치도 없다고 생각해 우선순위를 뒤로 미뤄두었는데, 아무래도 순서를 바꿔야겠네.”
“죽여!!”
“그래, 말 한번 잘했네. 그 말대로야. 일단…….”
너희부터 죽이고 시작하자.
***
목걸이에 신호가 왔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 왔다.
용사가 아니었다면 몇 번이고 죽었을 것이 분명한 부상 신호. 도착한 이후 줄곧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던 벤은 이를 보는 즉시 생각할 것도 없이 막사를 뛰쳐나갔다. 하얗게 질린 머리는 이 늦은 밤에 왜 막사가 아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신호가 울리는지에 대한 의문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몇 초 정도의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에 몇 번이고 부상을 입었다가 회복하기를 반복한 듯 신호는 짤막하게 끊겼다가 울리길 반복했다. 벤은 달리는 속도를 높이며 이를 악물었다.
‘데온 님께 대체 무슨 일이…….’
목적지에 도착하면 풀릴 줄 알았던 의문은 오히려 더 커졌다.
시커멓게 타고 그을린 땅과, 주위에 널브러진 인간의 시체. 그리고 한 인간 사내의 목을 움켜쥔 채 들고 있는 데온 님.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음에도 기척을 느낀 듯 그가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살의로 번들거리는 시뻘건 안광을 마주한 순간, 벤은 직감했다.
아, 내가 알아선 안 되는 것을 알아버렸구나.
일단 데온 님이 무사하시다는 것을 확인하고 머리가 식자 뒤늦게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늦은 시간에 먼 곳까지 와 있다는 것은 비밀리에 무언가 하고 있었다는 것. 저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벤’은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는 뜻이니….
“……데온 님.”
함부로 입을 놀리면 죽는다. 마른침을 삼키고 멈춰있던 걸음을 내디뎠다.
잔뜩 수축된 붉은 눈동자가 제게 가까워지는 상대를 집요하게 응시한다. 벤은 경계하는 야생 짐승을 상대하듯 그의 눈을 피하지 않은 채 발에 치이는 시신을 대충 밀어내며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혔다.
이윽고 손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지자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날 선 정적 속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
“일단 눈에 보이는 곳은 멀쩡한데…….”
“……하.”
긴장이 탁 풀린 듯 헛웃음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감싸고 있던 공기가 느슨해진 것을 느낀 벤이 용기를 내어 손을 뻗었다. 인간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는 듯 눈조차 두지 않고 너덜거리는 옷자락을 들추는 행동에 황당하다는 시선이 따라붙었다.
“……뭐해?”
“혹시 모를 숨겨진 부상이 있는지 확인 중입니다.”
“없어. 진즉에 다 회복됐지.”
확실히 부상은 없다.
마왕의 힘에 당한 것도 아니니 빠른 회복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제야 정말 마음이 놓인 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내밀었다.
“가을이 가까워지고 있어 밤은 제법 쌀쌀합니다. 걸치십시오.”
“…….”
용사가 고작 감기에 걸릴 일은 없겠지만…. 벤의 배려를 눈치챈 데온은 말없이 움켜쥐고 있던 인간의 목을 놓고 겉옷을 걸쳤다.
놓기 전에 한 번 손에 힘을 준 듯 우두둑- 하고 뼈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으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옷을 걸친 데온이 고개를 돌린다. 벤을 보는 눈매가 가늘어졌다.
“하고 싶은 말은?”
“돌아가시겠습니까, 밤 산책을 더 하시겠습니까?”
“…….”
여기까지 왜 온 건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묻지 않겠다는 의미.
저번에도 그렇더니, 정말 아예 이쪽 편이 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물끄러미 그를 응시하던 데온은 그의 장단에 맞춰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말했다.
“이 차림으로 밤 산책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돌아가자.”
“네.”
***
군막 근처에 도착해 들어가기 전, 벤과 헤어져 나갈 때처럼 병사들의 눈을 피해 귀환한 데온은 기다리고 있던 단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제 몰골을 보고 경악하여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며 붙잡고 묻는 그의 눈에서 걱정을 읽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혁명군이라…….”
이야기를 들은 단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가만 보면 그놈들은 안 끼어드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마스터.”
남의 일을 말하는 듯 태연한 음성에 나직이 그를 불렀다.
“이런 일까지 터졌는데 설마 그냥 넘어갈 생각은 아니시겠죠.”
“당연히 아니지.”
데온은 어깨를 으쓱했다.
혁명군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열쇠도 손에 넣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미루고 미루다 이렇게 일이 제대로 터졌다. 심지어 그전에도 몇 번 거슬리는 일이 있었음에도 그냥 넘어갔으니. 호구가 아닌 이상 손을 쓰는 것은 당연했다.
“혁명군은 오직 수장 하나를 중심으로 뭉친 세력이니 수장만 처리하면 뒤는 신경 쓸 필요 없을 겁니다.”
“나도 알아.”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
침묵이 돌아왔다.
입술을 달싹이다 끝내 다물어버린 그를 물끄러미 보던 단이 말을 덧붙였다.
“마침 우리에겐 그 수장의 약점도 있습니다만.”
“……그것도 알아. 이용해야지. 인질로 사용하면….”
“마스터.”
데온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침묵 속에서 잠시 마주하던 붉은 눈동자가 스르륵 옆으로 굴러간다. 도망치는 눈동자를 집요하게 따라가며, 단이 조곤조곤 말을 뱉었다.
“정말,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
마스터는 이미 그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을 알고 계실 텐데요.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으나 데온 하르트는 알았을 것이다. 역시나, 데온이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확실히.”
“…….”
“더 좋은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지. 그보다, 아마 게임은 다음이 마지막이 될 것 같은데….”
이미 충분히 미뤘습니다만. 단은 이 말 역시 조용히 삼켰다.
‘역시 착하단 말이지…….’
천성이라는 건가.
물론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생각하면 더 나은 방법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은 지금 머릿속에 있는 그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인간으로서 지키고 있던 최후의 선만 넘어버리면 되는 것을. 알고 있는 방법은 선택지에도 넣지 않는 꼴이라니.
‘뭐… 상관없어.’
내가 하면 되니까.
때문에, 말을 돌리는 데온을 알면서도 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단이 인간계를 상대로 선동 아닌 선동을 했을 때, 그는 군단장들에게 나름의 인정을 받았다.
군단장들이 지켜보는 압박감 속에서 제가 하고 싶은 짓은 죄다 하는 동시에 좋은 결과를 끌어낸 실력과 담력. 9군단장 트로버에겐 로프티 기사단원들 다음으로 명예 마족 칭호를 얻을 정도였더랬다.
……미친개들은 대체 언제 그런 칭호를 얻은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고.
요는 그 일로 군단장들과 연을 트며 통신석도 서로 등록해두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리리넬 님, 마스터를 위해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만… 들어주시겠습니까? 약소하지만 보답도 드리겠습니다.”
– 응? 데온 님을 위해서라고? 뭔데?
단은 데몬교를 관리하는 11군단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어렵지 않을 겁니다.”
마족보다 더 마족 같은 인간이 무른 상관을 대신해 계획을 늘어놓는다. 윤리와 거리가 먼 마족 군단장은 보이지도 않을 고개를 열심히 끄덕여가며 들었다.
– 응, 정말 어렵지 않네! 금방 처리할게. 데온 님을 위한 것이니 보답은 필요 없어.
“그렇다면 준비한 것은 보답이 아니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뇌물로 드려야겠군요.”
애초에 이런 일에 사용하려고 갖고 있던 것이라 지금을 놓치면 딱히 쓸 일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이참에 11군단장의 호의나 사는 게 좋겠다.
어떻게든 주겠다는 의지가 느껴진 듯 리리넬이 의문을 표했다.
– 뭔데 그래?
“마스터의 초상화입니다.”
– ……뭐?!
“참고로 실물과 아주 똑같죠. 마스터조차 거울을 보는 것 같노라 말씀하셨으니까요.”
그 말을 하면서 불쾌함을 표하긴 했지만.
통신기 너머로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 똑같다니… 초상화가? 데온 님의 외모를 담을 수 있는 초상화가 있단 말이야?
“마왕님께서 그리신 겁니다.”
– 그, 그그그런…!
마왕의 그림 실력은 좀 오래 살았다는 마족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애초에 마왕님은 모든 분야에서 최고점을 찍으셨으니까. 그림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마왕님께서 직접 그린 데온 님의 초상화라니! 리리넬은 떨리는 감정을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 그 귀한 것을 날 준다고?
“네.”
– 정말?
“네, 뇌물이니까요. 보관해둔 위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뇌물이라는 게 이렇게 달달한 거였구나…!
인간들이 분에 넘치는 뇌물을 받다가 자멸하곤 한다던데, 왜 그런 건지 이제 알겠다.
“너 정말 좋은 애구나!”
리리넬은 감격에 젖어 외쳤다. 머릿속은 벌써부터 데온 님의 초상화를 어디에 걸어둘지 계산하는 중이었다.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하면 편히 말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라면 얼마든지 도울 테니까!”
***
데온 하르트를 죽이는 것에 실패했다.
그 정도의 폭탄으로도 죽이지 못하다니, 도대체 용사의 몸뚱이는 어떻게 돼먹은 것인지.
보냈던 사람도 전부 죽었다고 한다. 정체를 들키고 죽은 건지, 들키지 않은 채 죽은 건지조차 확실하지 않아 폴은 이마를 짚었다.
‘……어쨌든 그 건은 이미 터진 일이니 넘어가고….’
어느 쪽이든 수습할 것도 없다. 이미 혁명군은 진득하게 마왕군을 방해해왔는데, 이번 일을 알았다고 해서 그쪽이 뭐 어쩌겠는가.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쪽이지.’
이번에 들어오게 될 새 혁명군을 확인하는 것.
매번 새 혁명군이 들어올 때마다 나간 일정이다. 혁명군의 수장으로서 일원의 얼굴조차 모를 수는 없지 않은가. 원래는 몰래 가서 구경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호위가 붙어 사실상 공식 일정이 되어버렸더랬다.
‘그곳에서 첩자가 나오는 경우가 드물다는 걸 알면서 과보호하긴.’
지금 그가 가고 있는 곳은 첩자를 걸러내기 위한 외부 장소다. 그 탓에 주변인들이 위험하다며 말리다 못해 호위를 붙인 것이고.
사실상 그 장소에 모집할 때는 이미 뒷조사를 하며 한바탕 걸러낸 이후이기에 그곳에서 걸리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냥 형식상의 절차에 가깝단 말이지. 그렇기에 폴은 여느 때처럼 태연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은 예비 일원들이 시야에 들어올 때쯤 멈췄다.
‘이번에도 연령대가 다양하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없는 연령대가 없다. 폴은 근처 나무에 기댄 채 대충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훑었다.
나이가 어린 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입안이 쓰다. 어린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되어야 할 정도로 미쳐 돌아가는 세상 때문인지, 시이아가 떠올라서 그런 건지 스스로도 모르겠다만…….
‘시이아는… 아직도 찾지 못했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