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65
265. 죽이기 위하여(9)
리리넬은 데온 하르트를 좋아한다. 인간들이 흔히 떠드는 성애적 의미 따위가 아니다.
그것보다 더 고고하고 맹목적인 종류일지니. 그녀는 보이지도 않을 이를 위해 통신석을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예시가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듯, 침묵하던 상대가 물었다.
– ……어째서 그렇게까지?
“글쎄요.”
0군단장이라는 자리가 생기고 데온 하르트가 들어오며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생소한 종류의 애정을 받았다.
인간계에서도 미성숙한 개체, 즉 어린아이를 향한 보살핌의 형태에서 나온 애정이라고 했던가. 군단장으로서는 모욕이라 볼 수 있지만, 언제나 아닌 척 날을 세우고 벽을 치던 경외의 대상이 주는 은근한 애정은 이유 모를 쾌감과 기쁨을 주었더랬다.
“데온 님은… 으음, 그러니까…아! 다정! 다정하시잖아요!”
– ……내가?
“네.”
동의는커녕 이해조차 할 수 없다는 반응이 돌아왔으나, 리리넬은 꿋꿋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성숙한 개체라는 것은 즉 약한 자를 뜻하지 않는가. 약자들은 도태되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역으로 이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보살피는 것은 데온 하르트가 선하기 때문일 터.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이미 그 선함이 주는 다정함에 푹 절여진 상태였다.
‘데온 님은 모르시겠지.’
그저 본인의 외모 때문이라고만 생각할 것이다.
물론 외모의 비중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크다고 볼 수 있지만…!
다정을 기반으로 한 생소한 애정이라는 밑바탕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맹목적이진 않았으리라.
‘당연히 알려드릴 생각도 없고.’
아마 평생을 모르시겠지.
– 어… 그래… 고맙다.
할 말은 많지만 괜히 입씨름하기 싫다는 듯 떨떠름한 답이 돌아왔다.
– 뭐… 더 할 말은 없지? 끊는다.
“네! …가 아니라! 그, 이건 말씀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보고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건데…….”
– ……뭔데?
“으음…….”
이걸 말해도 될까?
마왕님께서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라 말씀하신 범위에 속하진 않을지 고민한 것도 잠시, 리리넬은 이내 말문을 열었다.
“인간계에 진출한 데몬교가 현재 절멸 직전이에요.”
이 소식은 현 황제가 데몬교 근거지를 쓸어버렸을 때 이미 전달된 적 있으니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때 극소수만이 살아남았던 것을 이번에 혁명군 수장을 제거하기 위해 이용하며 거의 다 소모해버린 거지만.
뒷말은 꿀꺽 삼킨 채 말을 이었다.
“사실상 끝났다고 보시는 편이…….”
– 그래?
“무… 물론 노력하면 다시 일으키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테니 원하신다면…!”
– 아니, 됐어.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정리할 생각이었으니.
생각보다 태연한 목소리였다.
어리둥절한 리리넬이 잠시 눈을 깜빡이는 사이, 명령이 내려졌다.
– 이참에 인간계에서 아예 철수하도록 해.
얼떨떨한 것과 별개로 그녀가 뱉을 대답은 뻔했다.
“네…!”
***
데몬교가 절멸 직전이라고? 뻔하지.
엘피디우스가 데몬교를 쓸어버렸을 때도 소수나마 살아남았던 이들이다. 그들마저 죽을 정도의 사건이라면 최근에 들어온 소식밖에 없으니. 데온은 조소를 지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혁명군 수장을 제거하는데 쏟아부었구나.’
물밑 작업부터 시작해서 시이아를 들키지 않게 밀어 넣고 보조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소모했을지.
그럼에도 예상과 달리 기분은 최악에 도달하지 않았다. 어쩌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맹목적인 리리넬의 태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대충 상황을 정리한 데온은 통신을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덕분인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감정이 정리되었으니 이제 움직여야지.
‘미친개들은 어디에 있으려나.’
얌전히 막사에 있긴 할는지.
묘하게 느껴지는 불길함에 입에 문 담배를 까닥이다가 끝내 걱정을 털어내지 못한 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역시나.
이놈들이 얌전히 있을 리가 없지. ……아니, 일단 막사에 머물고 있긴 했으니 칭찬을 해주어야 하나.
‘이건 또 무슨 일이래.’
미친개들의 구역에 도착한 데온이 눈에 들어온 광경에 걸음을 멈췄다. 한결같은 소란 속에서, 클레터가 단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고 있었다.
“말해, 말하라고!”
“켁, 이것 좀 놓으시고….”
“닥쳐!”
“…….”
말하라면서 닥치라는 건 대체 뭐냐. 애초에 손을 놓아야 말을 하든가 하지.
도착하자마자 혼을 빼놓는 광경 덕분에 단의 모습을 봤는데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한동안은 얼굴 보면 안 되겠다 생각했는데, 참…….
그때, 둘을 보며 키득거리던 밀란이 문득 표정을 굳히더니 허공을 향해 킁킁거렸다.
“……근데, 어디서 약 냄새가 나지 않냐?”
“그러고 보니…….”
“전투도 아닌데 어떤 새끼가 약을 한 거냐!?”
아차. 서둘러 담배를 목에 지져 껐다.
그리고 동시에 밀란과 눈이 마주쳤다. 녀석의 눈이 커지고, 입이 열리는 것을 본 데온이 체념하고 꽁초를 구겨 바닥에 버렸다.
……젠장. 또 시끄러워지겠네.
“대자아아앙! 목에 담배를 지지면 어떡합니까!! 아니 그 전에, 또 약을!”
“뭐?!”
“대장! 이게 무슨 짓입니까!”
삽시간에 녀석들이 몰려온다. 개중에는 조금 전까지 단의 멱살을 흔들고 있던 클레터도 있었다.
데온은 흘긋 목을 매만지는 단을 보았다가 언제 시선을 두었냐는 듯 다시 눈을 돌려 미친개들을 보았다. 허둥대는 움직임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탕! 아니 붕대! 약초!”
“너흰 내가 용사라는 걸 자주 잊는 모양인데, 이미 다 나았어.”
“그럼 사탕!”
“…….”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얌전히 받아먹었다.
달짝지근한 설탕 덩어리를 입안에서 굴리고 있자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클레터가 물었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아, 시킬 일이 있어서.”
눈치는 있는지 단과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 않는다. 분명 단의 멱살을 쥔 채 어서 말하라며 털고 있었던 것을 보면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을 넘어, 사건의 전말을 상당히 궁금해하는 모양이던데.
미친개들이 호기심을 억누르는 꼴이라니.
“…….”
“……?”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는 침묵에 놈들의 눈에 의문이 떠오를 무렵, 스륵 눈동자를 움직였다.
미친개들의 가장 앞에 서 있는 밀란을 잠시 눈에 담은 데온이 입을 열었다.
“밀란, 그리고… 클레터.”
“예, 대장!”
“말씀하십시오.”
“둘이 10군단장 쪽에 좀 가 있어야겠다.”
슬슬 지친다. 아니, 처음부터 지쳐있었던가.
어쨌든 빨리 일을 끝내야지, 이러다 제풀에 숨 막혀 죽을 것 같다.
“그가 죽기 전까지… 곁에서 2m 이상 떨어지지 마. 조금 거리가 벌어지더라도 3m, 그 이상은 안 돼.”
조만간 산국이 10군단장 측을 공격할 것이다.
일단은 산국의 마법 억제 진의 범위 안에서 일을 진행하고 있다지만, 기마가 특기인 데다 날개까지 달려있어 기동력이 좋은 10군단장이라면 그들을 뚫고 진의 범위 밖까지 탈출할 가능성도 있겠지.
미친개들의 어깨 견장에는 부적이 들어 있다. 양어깨에 각각 한 종류씩. 마계에서도 상대 마족들에게 인간계와 같은 제약을 가하는 부적과, 적은 범위지만 상대 마족의 마법을 억제하는 부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경 3m까지 효력이 발동한다고 알고 있지만, 혹시 모르니 2m라고 강조해두는 편이 좋겠지.’
명령이라는 것을 눈치챈 놈들이 눈빛을 달리한다. 데온은 둘과 시선을 맞추며 느리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너희의 목숨이 위험하다면 언제든 바로 빠져나오도록 해.”
이 많은 녀석들 중 밀란과 클레터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눈치를 봐서 여차할 때 몸을 빼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강한 무력과 침착한 두뇌가 필요하니까. 안타깝게도 둘 모두를 겸비한 정상적인 녀석은 이곳에 없으니 각각 하나씩 지닌 녀석 둘을 보내야지 어쩌겠나.
그런 의미에서 기사단원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밀란과 가장 침착한 클레터가 제격이었다.
‘침착한 게… 맞겠지…?’
오자마자 본 것이 단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모습이었지만, 여기 있는 놈들 중 가장 침착한 녀석인 건 맞을 것이다. 적절할 때 밀란을 말려주겠지.
‘원래 미친개들의 통제는 리엔 경이 잘했지만….’
핏물이 일렁인다.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피비린내에 새삼 머리가 아파 와 데온은 미간을 슬쩍 찌푸렸다가 표정을 되돌렸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너희 목숨이야. 우리 기사단 구호 기억하지?”
모든 것은 생존을 위해.
“명령을 이행하되 그걸 머릿속에 새겨둔 채로 행동해.”
“……알겠습니다.”
“?”
대답은 순순한데 둘의 표정이 이상하다. 주변에 있는 녀석들의 표정도 같았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데온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왜 감동한 표정이야?”
“대자앙….”
“……오지 마.”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저희를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군요…!”
“……누가? 아니, 오지 말라니까?”
그가 주춤 물러섰다.
하지만 미친개들이 고작 그 정도에 물러날 턱이 있나. 그들은 망설임 없이 데온을 향해 뛰어들었다.
건장한 장정들이 상대적으로 왜소한 몸집의 청년에게 달려드는 모습이라니.
‘볼만하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상황을 지켜보던 단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후로 미친 듯이 쏟아지는 애정 어린 손길은 참다못한 데온이 ‘진정’을 뽑아 들 때까지 이어졌다.
***
폴이 죽었다. 참으로 허무하게도 갔지.
그날의 수업을 위해 기다리던 이람은 그 소식을 접하고 잠시 넋을 놓았더랬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아직 다 배우지도 못했는데.’
그의 죽음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것 하나만큼은 다니엘이 잘못 가르쳤지. 다니엘이 한 사람만을 맹목적으로 바라보며 사랑했기에 폴 역시 한 사람만을 바라보다 간 모양이다.
심지어 폴이 가족이라 받아들이고 지켜본 자는 다니엘과 달리 피도 섞이지 않은 상대였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폴은 모든 가르침을 전하지 못한 채 갔다.
시작 전에 어설프게 배워서 사용하면 위험한 사상이라고, 완벽하게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가르침이 끊기면 폐기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폴의 말대로 현 전쟁과, 이후의 후폭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니엘의 방식보다는 폴의 방식이 알맞아.’
이대로 폐기하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거의 배운 상태이기도 했고, 세부적인 조정만 남았으니.
……이 정도면 그냥 사용해도 되지 않을까?
이람은 혁명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특히 다니엘의 사상에 반하여 초기 일원으로 들어왔기에 그 정도는 더욱 심했다.
하여, 혁명군을 지키기 위해 판단을 내렸다.
‘폴이 고안한 사상을 이용하자.’
그가 없으니 앞으로가 상당히 막막하다. 그나마 배울 건 배워둬서 다행이랄까.
폴의 말대로 적절한 다음 후계자를 찾아 지식을 전수해야 하는데… 과연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니엘이 폴을 데려와 가르치고, 성장한 폴이 혁명군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며 ‘수장’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아져 버렸으니….
‘일단… 내부부터 수습하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줄여 혁명군을 지킨다. 병력 낭비를 최소화하고 내부 체계 정리에 들어가야겠지. 제 목숨과 안정을 중히 여기는 간부들도 순순히 따를 테니 걸릴 것은 없다.
똑똑.
“이람 씨, 제국에서 사절로 보이는 자가 르웨체로 향했다는 정보가….”
“무시해. 어차피 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 게 없어.”
“아…….”
“당분간 모든 활동을 중지한다. 우리 스스로부터 수습하는 게 우선이야.”
다니엘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이었던 폴을 그리워한 것도 잠시, 이람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수장 대리로서 서류를 잡았다.
시작은 시이아가 어떻게 모두의 눈을 속인 채 그곳까지 들어왔는지부터 하는 게 좋겠지. 거기부터 파고들어야 내부의 위험인자들을 잡아낼 수 있으리라.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내부의 위험인물들을 철저히 색출한 혁명군은 갑작스럽게 숨는 것도 이상하다는 이람의 판단에 따라 서서히, 자연스럽게 음지에 숨어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수장이 죽어 자연히 해산한 것으로 보일 정도로 은밀하고 소극적인 움직임에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쓸 일이 많은 각 세력의 주요 인물들은 금세 눈을 뗐다.
혁명군의 존재가 잊히는 것은 금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