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70
270. 용사 사냥(4)
쟤 이름이 뭐였더라.
아, 마족 장수들의 이름 자체를 아예 듣지 않았던가.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거기. 그래, 너 말이야.”
“아, 네! 말씀하십시오!”
“넌 싸우지 마.”
“예…?”
당혹스럽고 뜬금없는 명령에 마족 장수의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
“싸우지 말고 병력 일부를 차출해서… 그래, 지금 저기 있는 마족들 중 대충 열댓 명만 데리고 가면 되겠네. 그리고 이 성 내를 헤집고 다니도록 해.”
“헤집고 다니라 하심은….”
“진의 주축으로 보이는 것은 모조리 부수라 이거지. 마법 억제 진의 파훼가 네 임무다. 어려운 건 아니고, 방금 말한 대로 그냥 눈에 보이는 모든 걸 건드리고 부수면 될 거야.”
성에서는 마법 사용이 불가능하다. 이는 모두 마법 억제 진 때문이니. 그 주축만 찾아 부순다면 일은 어렵지 않게 흘러갈 터.
‘찾는 것 자체가 문제지만.’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어 온 것이니 길가의 돌멩이 같은 허접한 것을 주축으로 삼지는 않았으리라.
사실 추측하기로는 ‘성벽’이 아닐까 싶긴 한데…….
‘정말 성벽이라면 손 쓸 도리가 없겠지만, 혹시 모르기도 하고… 아예 시도하지 않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래서 소수만 차출하라 한 것이다. 전력이 크게 비지 않도록.
‘정말 주축을 찾아서 부수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거고.’
명령을 이해한 듯 녀석의 머리 위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즉시 고개를 꾸벅 숙인 녀석이 눈에 보이는 마족 병사들을 일부 골라 움직인다.
데온은 근처에 있는 다른 장수를 돌아보았다.
“로프티 기사단 이외에 남은 전력은 모두 후방의 제국군을 맡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얌전히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미친개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너희는 나와 같이 전방을 뚫는다.”
이대로 물러가기에는 여기까지 오는 데 소모한 병력과 시간이 아깝다. 어차피 거의 다 몰아넣어서 이쪽을 뚫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적이기도 하고.
마음 같아서는 귀찮게 직접 나설 일 없이 마족들까지 전부 이쪽에 몰아넣어 빨리 뚫고 싶지만, 그렇다고 등 뒤의 멀쩡한 적을 무방비 상태로 그냥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충 보기에도 산국보다 제국 측의 병력이 더 많고 강해 보이던데, 소수만으로 상대하라 할 수도 없으니.
‘무엇보다 다른 어느 나라도 아닌 ‘제국’이니까.’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다시 산국 측 병력을 보았다.
언제 신나서 달려간 건지, 한바탕 맞붙고 있는 미친개들이 눈에 보인다. 데온은 피식 웃고는 창을 들었다. 옆에서 단이 저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으나 무시하고 팔을 한껏 뒤로 당겼다.
쉭! 매섭게 날아간 창이 상처 때문에 움직임이 뻣뻣한 밀란을 지나쳐 산국 측 병사를 꿰뚫었다. 화들짝 놀란 밀란이 뒤를 돌아보았다.
“대장! 절 죽이려고 작정하셨습니까?!”
“그럴 리가.”
새빨간 눈동자가 가볍게 휘어졌다.
손이 가벼우니 이제 좀 편하다. 역시 창은 휴대성이 나빠서 취향이 아니란 말이지.
이로써 마지막 남은 창까지 미련 없이 버린 데온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이 마주친 산국의 병사들이 저마다 마른침을 삼키거나 흠칫하는 등 긴장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에 보란 듯이 미소 지었다.
‘그래, 그나마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틴 것도 다 내가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었지.’
긴장하는 것이 당연하다.
‘상대가 나빴네.’
한 걸음 나아가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녀석의 무기를 붙잡은 뒤, 끌어당기며 생각했다.
산국의 왕이 내린 선택은 나쁘지 않았으나, 상대가 나빴다고.
가볍게 딸려 온 놈의 목을 꺾어버렸다. 우드득- 하는 섬찟한 소리가 울리고, 소리를 들은 적들이 크게 동요하며 몸을 굳힌다. 놈이 데온에게 닿기 전에 먼저 나서 처리하려 했던 단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데온은 기분 나쁜 손아귀의 감촉을 떨쳐내겠다는 듯 손을 탈탈 털며 말했다.
“그럼 빨리 끝내도록 할까.”
호위를 위해 근처에 서 있던 단이 눈치껏 전장에 뛰어든다.
데온 역시 단검을 꺼내든 뒤 느긋하게 혼란 속에 발을 디뎠다.
이후는 설명할 것도 없었다.
산국 측 병사들이 추풍낙엽처럼 힘없이 스러지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상황에 대한 자세한 묘사도 데온 하르트의 공격을 한 합이라도 버텨내는 자가 있어야 가능할 텐데, 그가 움직이는 족족 모조리 죽어 나가니 그저 ‘압도적’이라는 감상밖에 꺼내지 못한다.
어느새 전투를 멈춘 단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럴 거면 우린 왜 데려온 거야…….’
아, 원래 데려오지 않으려고 했었나? 그럴 만했네. 따라온 미친개들이 쓸데없는 짓을 한 거였어.
상황은 어느덧 산국의 왕이 보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병사들로 이루어진 벽이 사라져 적들의 시야에 노출된 것 치고는 이상하리만치 표정이 침착했지만.
‘……눈빛이 거슬리는데…….’
웅크린 채 기회를 엿보는 듯한 눈빛. 애초에 왕이 가장 먼저 대피하지 않고 이리 노출된 곳에 나와 있는 것부터가 굉장히 수상하다. 뭔가 숨겨진 수가 있을 터. 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게다가 가만 보니 그 옆의 여자도 눈빛이 심상치 않다. 보아하니 참모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데온 하르트를 보는 눈에 짙고 어두운 살의와 저열한 희열이 담겨 있다. 마치 도박판에서 손장난으로 돈을 따기 직전인 사람의 눈빛과 같은…….
“……마스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단은 다급히 멀리 간 제 상관을 불렀다. 이건 용사라고 마음 놓고 지켜볼 사안이 아닌 것 같다. 용사의 힘을 봤음에도 저런 눈빛이라는 것은 그만한 자신이 있다는 것. 그런 상황에서 너무 멀리 혼자 가버렸어!
단의 외침이 데온 하르트에게 닿은 것과, 산국의 왕 주변에서 ‘영웅’들이 튀어나와 습격을 감행한 것, 주위를 둘러싼 성벽 위에서 쩌렁쩌렁한 외침이 울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르웨체의 자식들아! 공을 세우기에 적합한 제물들이 저기에 있다! 가라! 공을 세우는 자에겐 큰 포상이 내려질 것이니!”
“인생 역전을 위하여!!”
르웨체는 또 왜 여기에…! 아니 그 전에,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인 습격자들의 낯이 익은데, 쟤네 ‘이름 없는 기사단’ 아닌가? 아직까지 남아 있었어?
너무 큰 일이 동시에 일어나서 어느 것에 우선순위를 둬야 할지 모르겠다. 잠시 혼란에 빠져 있던 단은 재빨리 정신을 수습하고 가장 먼저 제 상관에게 달려갔다.
이미 데온 하르트는 재빠른 미친개들에 의해 둘러싸인 뒤였다.
“마스….”
“대장!! 괜찮으십니까?!”
“어, 괜찮아.”
단의 외침이 들린 즉시 이상을 감지하고 몸을 뺀 덕분에 목과 뺨에 생채기가 조금 난 것이 전부다.
그마저도 전부 아물어 핏자국만 남은 뺨을 손등으로 훔친 데온이 차분히 말했다.
“그보다 물러서. 저놈들, ‘영웅’이야.”
제국의 공식 영웅은 크루엘 하르트의 이름이 올라간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새로이 인정된 영웅이 없으니 정확하게는 ‘영웅 후보’겠지만. 공식 영웅들이 전부 난장판이 되었는데 이제 와 그런 구분이 무슨 상관일까.
성벽 위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르웨체의 병사들과, 숨어 있다가 습격한 ‘영웅’들. 르웨체가 등장했을 때 어렴풋이 ‘오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만’ 하고 중얼거리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를 기억한 데온은 차갑게 웃었다.
“스스로를 미끼로 내걸다니, 산국의 왕은 참 대담하시네.”
그것도 모자라 이렇게 두 번째 패까지 마련할 줄이야.
성벽은 이미 이쪽에서 발을 디디며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마계 측도, 산국 측도 더 이상 성벽을 사수할 이유가 없다는 것. 그래서 당연히 방치해두었다.
또 다른 산국의 지원군이 성벽을 넘을 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겠지.
성벽 위에서 르웨체의 병사들이 쏟아져 내린다. 그 광경은 인간 측의 사기를 올리고, 그렇지 않아도 주춤하던 마족들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기 충분했다. 주춤거리는 마족들을 흘긋 훑은 데온은 상대 왕국의 이름을 상기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르웨체가… 결국 이렇게 뒤통수를 때린다 이거지…….’
하. 실소가 나왔다.
“이 새끼들이.”
지금까지 마계가 르웨체를 건들지 않은 이유는 마왕군에 저항하지 않아서였다. 그 암묵적인 약속을 이 절묘한 타이밍에 깨버리다니.
‘그래, 그렇게 죽고 싶다 이거지.’
머리에 열이 오른다. 복잡하게 흘러가는 상황은 눈앞마저 핑핑 돌게 하기 충분했으나, 이글거리는 눈과 달리 나온 목소리는 지나치게 평이했다.
“단. 혹시 몰라 묻는 거긴 하지만… 예비 통신석 같은 거, 없지?”
“네, 마스터가 이미 하나 갖고 계시지 않았… 아, 박살 났군요.”
“날 보좌하는 녀석이 예비 통신석 하나 안 갖고 다녀? 나중에 에드에게 말해야겠네.”
“아… 그건 좀…….”
떨떠름한 반응을 흘려넘기고 다시 초기의 주제로 돌아갔다.
“그럼 벤에게 가도록 해. 주치의니까 비상용 통신석 하나 정도는 분명 가지고 있을 거야. 위치는… 이곳을 제외하고 가장 소란스럽게 날뛰는 마족이 있는 곳에 가면 있을 테니 찾는데 어렵진 않을 테고. 아, 그곳에 웬 광전사가 하나 있을 텐데, 그 녀석이 벤이니까 잘못 본 거라 치부하고 지나치지 마.”
“…….”
딴지를 걸고 싶은 듯 연신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던 단이 이내 그냥 넘어가길 택한 듯 눈을 데굴 굴렸다.
“……가서 통신석을 빌려오면 되는 겁니까? 오고 가는 시간에 찾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아니, 그 자리에서 바로 에드에게 연락해. 당장 0군단을 이끌고 태혼국의 경계선을 이용해서 르웨체를 공격하라고.”
이곳에 온 병력의 수와 질을 생각하면 아마 지금 르웨체는 빈집에 가깝겠지. 어쩌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나라는 산국이 아닌 르웨체가 될지도 모르겠다.
르웨체의 속국으로 알려진 태혼국은 예전에 이쪽에 붙겠노라 조심스럽게 연락해왔으니 순순히 경계선의 이용을 허락할 테고, 0군단은 내 직속이니 복잡한 절차 없이 멋대로 이용해도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명령이지만 문제 될 것도 없으니.
“알겠습니다.”
깔끔한 명령에 가볍게 긍정한 단이 멀어진다.
중간에 눈먼 무기에 맞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지만, 누군가와 맞서 싸우라는 것도 아니고 마족 하나 찾으라는 건데 설마 그것 하나 못할까. 데온은 냉정히 시선을 거두고 손에 든 단검을 빙글 돌렸다.
“가자.”
“모든 것은 생존을 위해.”
따로 명령이나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음에도 마음을 읽은 듯 한결같은 화답이 돌아왔다.
이후의 행동은 조금 달랐지만.
─덥석!
“!?”
냅다 데온을 집어 든 살인귀 기사단이 그대로 이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당황한 데온이 버둥거렸다.
“뭐, 뭐해, 이 새끼들아!”
“생존을 위해서잖습니까!”
“이곳에서 싸우면 죽을 확률이 높아요!”
“지금 열받아서 눈에 뵈는 게 없는 건 이해하는데, 적어도 자리는 옮기고 합시다!”
“대장이 한 번만 봐주자!”
“봐주자! 봐주자!”
적들이 몰려오는 이곳에서 싸우는 것은 자살 행위다.
얼핏 차분하게 상황 판단을 하고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보이나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로프티 기사단원들은 알았다. 저건 제대로 빡친 거다.
아니나 다를까, 차분한 척 내린 명령으로 최소한의 대처를 취하고 방해꾼들을 치운 그가 이제 제대로 날뛰려는 듯 눈을 빛낸다. 그 순간 기사단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평소 지겹도록 투닥거리면서도 이 순간만큼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들고 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