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71
271. 용사 사냥(5)
앞에선 산국이, 뒤에선 제국이, 성벽 위에선 르웨체가 밀려오는 상황이다. 이곳은 놈들이 모여드는 중심지이고.
물론 ‘용사’는 이곳에서 싸운다 해도 멀쩡할 가능성이 높겠지. 하지만 로프티 기사단원들은 아니다. 자신들이 데온 하르트의 약점임을 잘 아는 그들은 이곳에서 그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제 몸을 지킬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들고 날랐다.
“내려놓으라니까!”
“조금만 더 갑시다!”
“대장이 한 번만 봐주자!”
“착한 대장이 조금만 참아주자!”
데온이 버둥거렸으나 나름의 훈련으로 단련된 이들은 용케 떨어뜨리지 않고 자리를 벗어나 달렸다. 도망치기 전에 좁쌀만큼의 배려를 발휘해 대충 아무 마족 병사나 붙잡고 “데온 님께서 알아서 이곳을 벗어나랍신다!” 하고 전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족들은 제국과 산국을 상대하면서 몸을 빼라고 해.”
조금은 진정된 듯 머리 위에서 한 층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전 황제가 미친 듯이 ‘영웅’들을 긁어모았었거든. 아직 더 남아있을지도 몰라. 산국은 제국에게서 ‘영웅’들을 빌린 모양이고.”
제국은 한때 가장 많은 용사의 파편 소지자 – 속칭 ‘영웅’ – 를 보유한 나라였다.
평범한 인간들로서는 그들을 상대하는 것이 힘드니 그나마 마족들이 상대하는 것이 나을 터. 마족들은 ‘영웅’을 상대할 때 인간계에서 받는 제약이 사라지지 않는가.
물론 ‘영웅’ 역시 마족들을 상대할 때 유독 강해지긴 하지만.
납득한 클레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족을 돌아보았다.
“들었지? 그렇다고 하신다.”
“어, 어…….”
이 대답이 눈앞의 인간에게 하는 것이 되는지, 저들의 머리 위에 번쩍 들려 있는 데온 님께 답하는 것이 되는지 몰라 잠시 버벅거리던 마족이 이내 데온을 향해 ‘알겠습니다’ 하고 답한 뒤,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뛰어간다.
미친개들의 머리 위에 축 늘어진 채 놈의 뒷모습을 보던 데온이 흘긋 아래를 보았다.
“말 안 해도 알아서 잘하겠지만, 너희는 르웨체를 위주로 상대하며 몸을 빼도록 해.”
“물론입죠!”
***
[……라고 데온 하르트는 명령할 거다.] [……라고 데온 하르트는 명령할 거예요.]산국의 왕 연화와 그녀의 책사 사에린은 그렇게 말했다. 제국 측 ‘영웅’들의 통솔자로서 통신기를 통해 둘의 말을 듣던 린델 라이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데온 하르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과거 행적을 살펴보니 아예 생각 없는 인물도 아닌 것 같고, 두 분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그렇겠군요.]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입에 올리기도 전에, 산국의 왕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래, 그는 제국에 영웅이 남아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겠지. 산국이 제국으로부터 영웅을 빌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필시 르웨체를 노릴 게다.] [예, 이해했습니다. 다만.]린델은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은 첫 습격에서 목숨을 확실하게 노릴 텐데, 영웅을 나누어 따로 배치하시려는 겁니까?]그녀의 발언은 무려 산국의 왕을 미끼로 내건 습격의 실패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왕이 몸소 미끼가 된 이상 계획은 실패해서는 안 된다. 한 번의 습격에 모든 전력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나누려 들다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두 번째 방안을 위해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방안을 반쯤 포기하는 셈이지 않는가.
그런 그의 마음을 읽은 듯, 차분한 답이 돌아왔다.
[어차피 한 번의 습격에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의 수에는 한계가 있지 않나. 오히려 너무 많으면 무기의 경로가 서로 얽히게 되겠지. 게다가 영웅들은 자존심과 개성이 강해 협동도 잘 하지 않으니.] […….] [그리고 우리는 연합이다. 어느 한 나라만 잘해서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것이야.]차라리 필요 이상의 남아도는 병력은 제2안을 위해 르웨체 쪽에 보내두는 편이 낫다는 말이다. 만약 르웨체가 끝까지 오지 않는다면 빈 자리에 배치하면 되는 것이고.
‘그냥 빈 자리에 들키지 않도록 몰래 배치해둔 뒤, 르웨체가 오면 합류하게 하는 편이 낫겠군.’
오지 않으면 그대로 움직이게 하고.
르웨체의 확답이 아직도 오지 않았다. 분위기는 허락이었다고 하나, 일단은 오지 않는 쪽에 중점을 두는 편이 좋을 터.
‘그래도 계획이 완성되면 일단 전해두고 움직이는 것이…….’
산국의 왕이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이, 진중한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넘어왔다.
[실패 이후 바로 이어질 충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물론 자칫하면 그 자리에서 곧장 데온 하르트와 맞붙게 되겠지. 확실히 그건 이쪽에도 손해야. 일반 병사로는 수가 아무리 많아봤자 용사의 체력조차 제대로 깎아 먹지 못하고, 쓸데없는 개죽음만 될 테니까. 과인이 거기에 휘말리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을 테지.] [그걸 아시면서….]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다.]놈도 어리석진 않으니 일단 성 밖으로 탈출하려 하리라.
놈들이 그토록 들어가고 싶어 했던 성은 안에 진입하는 즉시 빠져나가기 힘든 구렁텅이가 될 것이다.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겠지.
물론 용사인 데온 하르트는 마음만 먹는다면 ‘독 안에 든 쥐’의 입장을 뒤엎을 수도 있겠지만…….
[놈은 혼자가 아니거든.] […….] [놈에게도 약점이 있지.]살인귀 기사단.
8년 전쟁부터 데온 하르트와 함께 해온 녀석들.
과거 증오와 공포, 혐오가 뒤섞여 탄생한 놈들의 멸칭을 입에 담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간 그래왔듯이, 데온 하르트는 이번에도 살인귀 기사단과 함께 움직일 것이다. 추측하기로 살인귀 기사단을 제법 아끼는 것 같던데, 그런 주제에 과연 그곳에서 싸우겠다며 버틸 수 있을까?
‘절대 못 하지.’
제아무리 살인귀라 한들 용사의 파편을 지닌 자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여럿이서 하나에게 달려든다면 모를까, 이번에 작정하고 ‘영웅’들을 끌어모았으니 이기긴커녕 버티는 것조차 힘들 터.
일반 병사조차 진지하게 상대해야 하는 그들에겐 밀려오는 적들 또한 목숨을 위협하는 하나의 요소가 될 테니, 데온 하르트로서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도 자리를 옮길 것이다.
[그러니 따로 한 곳에 몰아서 영웅들하고만 맞붙도록 유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살인귀들이 함께하는 편이 좋겠군요.] [그래, 발목을 잡는 인질이 되어줄 테니까.]그건 이쪽에서 어떻게 유도할 수 있는 게 아니긴 하지만… 심리적으로 압박을 가하면 알아서 잘 뭉치지 않을까? 애초에 어지간해서는 떨어지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연화는 당장 손 쓸 수 없는 주제에서 눈을 돌려 짜인 계획을 되짚었다.
[그보다, 조용히 성 내에 들어오기 위한 길이 필요할 텐데.] [아…….] [비밀통로를 알려주지.]습격을 위한 무리가 이용할 통로와 르웨체에 합류할 무리가 이용할 통로, 그리고…….
‘…….’
연화는 눈을 들었다.
데온 하르트를 머리 위에 올린 놈들이 멀어진다.
발 한번 빠르기도 하지. 놈들의 뒷모습을 좇던 연화가 힐긋 뒤쪽에 시선을 던졌다.
“그대도 움직일 텐가.”
“통솔자로서 왔으니 움직이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과인은 그대의 무력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 그냥 ‘영웅’들만 보내도 충분하지 않나?”
“원수의 얼굴 정도는 한 번쯤 봐두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예상치 못한 발언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미련하구나.”
린델은 그저 미소로 화답했다.
“……성벽을 제외하고 르웨체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은 북문이다. 가깝기까지 하니 필시 그리로 가겠지.”
“압니다. 계획이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위한 지름길 겸 비밀통로도 추가로 알려주셨고요.”
“…….”
“그러니 이제 나머지는 제게 맡기시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십시오. 전하께서는 일국의 왕이시잖습니까.”
제대로 된 후계자도 없는데, 산국의 왕이 죽어서는 안 된다.
린델의 재촉과 사에린의 눈빛에 연화는 순순히 돌아섰다.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3안은 없다. 이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거라. 없던 이쪽의 ‘영웅’도 샅샅이 뒤져 쥐어 짜내듯이 찾아 내밀었는데, 설마 실패하진 않겠지.”
“당연히 이 한 번에 모든 걸 건다는 느낌으로 갈 겁니다.”
“그래…….”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녀가 걸어간다.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듯 곁에 있던 책사가 조심스럽게 괜찮은지 묻는다. 얼핏,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이 너무 많군.”
“아…….”
“이미 떠난 자를 위해 목숨까지 내걸진 말았으면 하건만. 저 자는 어떨는지.”
“…….”
린델 라이너는 못 들은 척했다.
***
[여러분들이 공식 영웅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대뜸 ‘영웅’도 아닌 자가 통솔을 맡게 되어 불만인 제국의 영웅들 앞에 선 그가 한 말이었다.
[용사의 파편?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파편을 가지고 있지요. 오히려 이전의 데온 하르트가 파편 없는 일반인이었음에도 공식 영웅으로 인정받았습니다.]저보다 더 건강하고 더 검술을 잘하는 동생이 있었음에도 린델 라이너는 동생을 아끼는 부모에 의해 8년 전쟁에 나갔다.
그곳에서 몸이 약한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귀족이라는 신분과 머리 덕분이었다.
귀족 신분은 날 때부터 있었던 것이니 넘어가고, 그가 가진 것 중 사람을 휘두르는 언변 하나는 제법 쓸만했더랬다. 요컨대 이들의 불만 가득한 시선 정도야, 말 몇 마디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니.
[현재 제국에 남아있는 공식 영웅은 없습니다. 첫 번째 영웅과 네 번째 영웅은 죽었고, 두 번째 영웅은 공식적으로 행방불명이 되었지요. 세 번째 영웅은 또 어떻습니까.]그걸 알기에 폐하와 황태제 전하께서도 내게 통솔을 맡기신 것이겠지.
[제국의 세대가 교체되었습니다. 공식 영웅의 세대교체 시간 또한 다가왔죠. 용사의 파편을 지닌 이들이 명백히 존재함에도 폐하께서는 섣불리 공식 영웅을 지정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공기가 술렁인다. 언제부턴가 발언에 집중하던 이들이 린델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눈치챈 듯 눈빛을 바꾼다. 부담스러운 시선 속에서, 린델은 태연히 시선을 정면에 고정했다.
앞서 말한 모든 것들의 답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
[‘공적’] […….] [공적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제국의 전 영웅들에 비해 부족한 것이라고는 ‘공적’ 하나밖에 없어요. 괜히 용사의 파편을 지닌 자들을 모두 뭉뚱그려 ‘영웅’이라 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미 공적만 부족할 뿐인 영웅이고, 그렇기에 공식 명칭이 ‘영웅 후보’인 것입니다.]이름을 알려야 합니다.
[데온 하르트는 일반인임에도 이름을 널리 알렸기에 공식 영웅으로 인정받았죠.] […….] [공적을 쌓으십시오. 인류의 배신자이자 역사상 최악의 용사를 죽여 이름을 알리세요.]똑같이 용사의 파편을 지녔음에도 ‘공식 영웅’과 구분되어 차별받아온 이들의 눈에 빛이 어렸다.
린델 라이너는 그들 앞에서 당당히 양팔을 펼쳤다.
[제가 그 통로가 되어드리겠습니다.]……산국 측 영웅들은 설득할 필요 없어서 다행이다.
그들은 산국의 왕에게 충성하는 만큼 린델 라이너를 따르라는 명령에도 충실하니까. 린델은 순순히 저를 따르는 ‘영웅’들을 데리고 산국의 왕이 알려준 통로를 가로지르며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보이고, 예상대로 데온 하르트와 그의 기사단이 보인다. 린델은 서둘러 ‘영웅’들을 대동하고 그들 앞에 섰다.
“……내려봐.”
“대장…?”
상대가 영웅들인 것을 눈치챈 듯 미간만 조금 찌푸린 채 들려 있던 데온 하르트가 진심으로 몸을 비틀어 바닥에 내려선다. 살인귀들을 뒤로 밀어내고 본능적으로 지휘관부터 찾는 붉은 눈동자를 인상 깊게 지켜보던 린델이 한 걸음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적인 게 분명한 자의 얼굴에서 익숙한 사람을 찾아낸 데온 하르트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린델 라이너라고 합니다.”
그것이 절망으로 뒤덮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