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74
274. 용사 사냥(8)
세계의 사랑을 받는 인간계에서 태어나 세계로부터 미움받는 마족의 마력을 받아 이도 저도 아닌 존재로 변모한 괴식물은 일반적인 마계의 식물과는 달랐다.
마왕의 마력으로 변화한 것도 아니요, 마족이나 마물의 탄생을 위한 재료가 된 것도 아니다.
엄연히 살아있는 채로 갑작스럽게 소속이 바뀐 돌연변이. 그렇기 때문인지 괴식물은 필연적으로 세계의 흐름에 민감했다.
요정왕이 알았다면 불쾌하게 여길 정도로.
세계는 데온 하르트를 주목한다.
단순히 용사 후보였기에, 용사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깊고 짙으며 노골적인 목적을 담은 시선이 언제나 데온 하르트의 행보를 좇고 있었다. 숨길 생각도 없는 듯 대놓고 그를 휘감고 있는 선명한 세계의 존재감에 괴식물은 처음 그를 마주한 순간 숨이 턱 막혔더랬다.
내린 사명에서 조금 엇나간 길을 걷는 용사에 대한 증오와 경멸. 그럼에도 끝내는 뜻대로 움직여줄 것을 알기에 버리지 못한 채 지켜보는 시선. 어서 내 뜻대로 움직이고 끝내라는 압박.
그런 세계와는 별개로 그런 그를 향해 느끼는 안타까움과… 환희.
첫 돌연변이는 저와 같은 존재의 탄생을 막을 자에게 무한한 호의를 느꼈고, 그다음은 세계의 뜻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부수며 나아가는 돌연변이 용사에게 환호했다.
요컨대, 마계와 인간계 사이의 돌연변이들은 필연적으로 데온 하르트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울지 마.
내가 원해서 한 것이니까.
***
녹색 식물이 이파리를 크게 펼쳐 미친개들을 향해 쏟아지는 원거리 무기를 막아낸다. 근거리 영웅들은 줄기로 후려쳐 날려버리고, 끝내는 데온 하르트를 향해 달려드는 녀석들까지 쳐냈다.
기르던 식물이 갑자기 강해져서 저와 미친개들을 지켜주는 상황이다. 좋게 보는 것이 마땅했으나, 데온은 차마 기뻐할 수 없었다.
“……안 돼.”
직감이라는 것은 때로 그 무엇보다도 정확해서, 깨닫고 마는 것이다.
어디선가 끌어온 지금의 힘이 바닥을 보이면… 두 번 다시는 저 식물을 볼 수 없게 되리라고.
“안 돼…!”
억눌린 절망을 담은 음성이 튀어나왔다.
괴식물이 슬쩍 데온에게 시선을 던지더니 줄기를 한 차례 흔들어 보이고는 미친개들을 돌아본다. 그제야 정신 차린 미친개들이 눈치껏 데온 하르트를 안아 들고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데온은 버둥거렸다. 시선은 괴식물에게 고정한 채였다.
“무슨…! 당장 내려놔!”
“안 됩니다, 대장!”
“일단 살아야죠!”
본능이 말했다. 시선이 마주친 그 잠깐, 괴식물이 저를 향해 웃었노라고.
‘…….’
뚝- 발버둥이 멈췄다.
도망치는 와중에도 의아한 듯 힐긋거리는 시선 속에서, 힘없는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제발… 제발 내려놔 봐…….”
부서질 듯 짙은 감정이 서린 목소리였다.
흠칫한 기사단원들이 시선을 교환하더니 슬그머니 데온을 내려놓는다. 비척거리며 몇 걸음 나아간 데온이 단검을 들었다.
전투 중에 입은 부상은 이미 전부 회복된 상태였다.
“분명 말했는데…….”
매서운 속도로 날아간 단검이 괴식물을 베어내려던 영웅의 급소에 박힌다. 언제 두 개를 날린 건지, 앞선 단검을 쳐낸 영웅은 곧바로 뒤이어 날아오는 단검에 대처하지 못한 채 목숨을 내어줘야 했다.
영웅들이 바짝 긴장하든 말든, 붉은 눈동자가 괴식물을 노려보았다.
“나서지 말라고 경고했잖아.”
억눌린 목소리가 울렸다.
“누가 이런 걸 바랐냐고. 왜 다들 내 말을 안 듣는 건데.”
대체 왜.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방금도 눈 하나는 내어줘야 했겠지만, 목숨만은 사수할 자신이 있었다. 제아무리 용사라 해도 잘려 나간 신체까진 복구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터진 안구 또한 복구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얼핏 했지만, 그래봤자 목숨값에 비하면 쌌기에 별다른 유감은 없었다. 없을 예정이었다.
“그딴 짓 하지 않아도 충분했어.”
당장 이기고 빠져나가진 못해도 몇 날 며칠이고 시간을 끌어 저들의 체력이 떨어지든, 지원이 오든 결국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끝맺을 수 있었다.
“……하.”
그렇지 않아도 최근 단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크게 흔들린 정신이 이 상황에 버거움을 표한다. 눈에 열이 오르고, 이마가 뜨거워지는 것 같아 데온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가라앉은 붉은 눈동자와 그의 주위에 내려앉은 분위기를 읽은 기사단원들이 다급히 시선을 교환했다.
‘터졌다.’
‘뭔가 터졌어.’
감정적으로 무언가 크게 터졌다. 이대로 싸우면 백이며 백, 적에게 말려들 터. 그러니 어서 데리고 튀어야 하는데…….
“퇴로부터 차단하십시오. 절대 놓아주어서는 안 됩니다.”
데온 하르트의 동요를 눈치챈 것은 로프티 기사단만이 아니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읽은 린델이 즉각 명령을 내렸다.
“퇴로 차단이 1순위, 저 몬스터 처리가 2순위입니다. 퇴로를 차단하고 남은 병력이 몬스터를 처리하세요.”
저 몬스터와 데온 하르트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태도를 보아하니 눈앞에서 몬스터를 죽인다면 필시 크게 동요하겠지.
‘아예 무너져버린다면 더 좋고.’
명령이 내려지고 나서야 반쯤 넋을 놓고 있던 붉은 눈에 빛이 돌아왔다.
아니 정확히, 눈에 불꽃이 튀었다.
“엇, 대장!”
“안 됩니다!”
생각하고 보니 다 저 린델 라이너라는 작자가 영웅들을 데리고 와서 벌어진 일이었다. 하다못해 미친개들을 집중적으로 노리라는 명령만 내리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기사단원들이 말릴 틈도 없이 뛰쳐나간 데온이 린델 라이너에게 달려들었다.
당연히 영웅들이 그걸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으나……,
“어딜…!”
“킈애애애액!”
신체 일부분을 휘감거나 매섭게 휘둘러지는 녹색 줄기에 발목이 묶여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용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네가 이곳에서 가장 높은 녀석이겠지.”
순식간에 린델에게 도달한 그가 곧장 얼굴을 잡아 뒤통수를 바닥에 처박은 뒤 단검을 뽑아 들었다.
“대다수의 병력은 통솔자만 죽이면 알아서 물러가니까.”
“…….”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단검이 목을 겨냥하고 내려찍는다.
그러나 목을 꿰뚫기 바로 직전, 놈의 얼굴을 잡은 손가락 사이로 눈이 마주쳤다.
기억 속 누군가와 똑 닮은 색, 흔들림 하나 없이 올곧은 눈빛.
“……빌어먹을!”
단검이 급히 방향을 틀었다.
푹! 목에 작은 생채기를 남긴 날붙이가 어깨에 꽂힌다. 낮은 신음이 울렸다.
데온은 얼굴을 잡아 누르고 있던 손을 거두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날카로운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던 린델 역시 눈을 들어 그를 마주 보았다.
침묵 끝에, 데온이 신음했다.
“아.”
“…….”
“……리엔 경.”
왜 이럴 때까지 내 발목을 잡는 겁니까.
울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그의 목에 손을 얹었다. 손 아래 맥박이 뛰는 것이 선명히 느껴진다. 그리고 데온은 깨달았다.
지금 이 구도가 언젠가 악몽에서 리엔과 마주했을 때와 같다는 것을.
다른 점이라고는 지금 자신의 자리에 리엔이 있었고, 린델 라이너의 자리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 정도일까.
“……복수가 주목적이라 말했다면 난 네게 함부로 손댈 수 없었을 텐데.”
“…….”
대의가 아닌 개인적인 복수를 앞세웠다면 데온 하르트는 린델 라이너에게 상해를 입힐 수 없었을 것이다.
대답 없는 그를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상체를 숙였다. 그의 귓가에 대고 나직이 속삭인다.
“이건 경고야.”
“…….”
“동생의 뒤를 따르고 싶지 않다면 이쯤에서 그만하도록 해.”
천천히 상체를 물리며 목에서 손을 뗐다. 그대로 일어나려는 데온을 지켜보던 린델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날.”
데온이 멈칫했다.
“제 동생이 죽어야 했던 이유가 뭡니까.”
“……너무 올곧아서.”
“……그렇습니까.”
린델의 얼굴에 쓴 미소가 퍼져나갔다.
“뻔하군요. 제 동생은 기사도에 집착했으니, 보나 마나 기사로서 주군이 엇나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며 목숨을 걸었겠죠.”
부질없는 짓을.
냉소에 가까운 중얼거림을 뱉은 그가 이내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복수가 주목적이라 말했다면 제게 함부로 상해를 입히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
“전 동생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존중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그녀가 기사도에 집착하게 된 이유가 바로 저 때문이니.
검술을 취미로 삼을 정도로 건강하고 검에 일가견이 있던 본인 대신 8년 전쟁에 나간 몸이 약한 오라버니. 검술은 취미가 아니냐며 그걸로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고 다독이던 어른들의 말은 어린 리엔에게 제법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럼 오라버니는요? 검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우리 오라버니는요?]그리고 눈치챘겠지. 이미 집안 어른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장남 대신 장녀를 후계로 정했다는 것을.
어른들의 모순을 파훼하기 위해서는 검술이 취미로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여, 기사가 되고자 했으리라.
오라버니가 살아 돌아와 후계 자리를 가져가길 바라면서 후계 구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혹은 오라버니가 돌아오지 못할 경우 속죄하기 위해, 가문의 성마저 버린 진정한 기사가 되려 했을 것이다. 그렇게 기사로서의 자세, 기사도를 곱씹으며 노력하고 노력하다가 지금의 선황 폐하의 눈에 들고, 그것이 데온 하르트에게 연이 닿는 것까지 이어졌을 터.
‘결국 내 탓이다.’
그렇기에 동생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 린델 라이너는 대외적으로 개인적인 복수를 내세울 수 없다. 그렇게 하면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게 되니까.
“다만 저도 사람인지라 감정은 별개더군요.”
“…….”
힐긋, 린델의 눈이 데온의 어깨 너머를 훑었다.
“감히 개인적인 복수심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대장!!”
“……저는 당신이 죽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왜 입을 여나 했더니.
제 두 무릎을 꽉 눌러 잡은 손을 슬쩍 내려다본 붉은 눈동자가 뒤를 향했다. 등 뒤에서 영웅들이 무기를 휘둘러오고 있었다.
정확히 급소만 노린 공격들이었으나 이미 알고 있던 데온은 태연했다. 대충 그 자리에서 상체만 틀어 피하려는데….
카가가강!!
……어디선가 창이 날아왔다.
“뭐…!”
“누구냐!”
얼마나 강하게 던진 건지, 데온 하르트를 노리던 모든 무기를 쳐내고도 힘이 남은 그것이 보란 듯이 땅에 깊숙이 박힌다.
데온이 투창으로 바위를 부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그걸 연상시키는 광경에 눈을 둥그렇게 뜬 미친개들이 창이 날아온 곳을 본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있던 영웅들도 덩달아 그곳으로 눈을 돌리려 했으나.
“데온 님!!”
“마스터!”
새로운 인물들의 난입에 다시 시선을 옮겨야 했다.
피 묻은 가방을 든 얼굴 일부가 뱀 비늘로 뒤덮인 마족과, 화면에서 보았던 단의 등장에 영웅들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