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79
279. 손해뿐인 결과(5)
그렇지 않아도 의문인 점이 있었다.
‘드벨라니아의 정보력이라면 진즉에 낌새를 눈치채고 있었을 텐데, 어째서 말하지 않았을까?’
각국에서 지원군이 출발했을 때 온 연락은 통신석이 부서져서 못 받긴 했지만, 애초에 그때 상황을 알게 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적어도 ‘각국 사이에 무언가 있다’ 정도는 미리 알고 대비한 상태여야 했는데.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우리가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긴 했지.”
“데온 님께서 워낙 공사다망하셔서요-.”
앞뒤 잘라먹고 뱉은 혼잣말에 곧장 답이 돌아왔다.
그에 데온은 눈을 들었다. 시선이 마주치고, 보란 듯이 눈매를 휘어 웃었다. 드벨라니아는 붉은 눈동자가 눈꺼풀 사이로 숨어들기 직전, 비웃음을 띠는 것을 발견했다.
……이곳에서 오래 지내셔서 그런가. 가면 갈수록 마왕님과 닮아 가시는 것 같네. 반사적으로 그녀의 입꼬리가 움찔 떨렸다.
“서면 보고조차 양이 줄었던데. 날 배려한 것이라면 그것참 고맙다고 해야 하나.”
“…….”
“뭐, 지금은 그걸 따지려는 게 아니고.”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에 놓인 소파에 앉았다.
까닥거리는 손짓에 줄곧 서 있던 드벨라니아가 맞은편에 앉는다. 짧은 침묵이 흐르고, 데온이 담배를 허벅지에 지져 끄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가 문득 입을 열었다.
“사실, 일이 있기 전에 제국에서 르웨체에 사신을 보낸 적이 있었어요.”
“…….”
“하지만, 네. 데온 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죠.”
그럴 줄 알았다. 그녀가 몰랐을 리 없지.
건조한 눈빛이 이유를 요구하듯 그녀를 향했다. 답은 흔쾌히 돌아왔다.
“데온 님과 엮인 군단장들이 하나둘씩 죽어 나가고 있으니까요.”
그 내용은 심히 무거웠지만.
“겉으로도 데온 님과 연관 있는 10군단장과 8군단장은 물론이고, 얼핏 관련 없어 보이는 5군단장도 언제부턴가 로프티 기사단의 연무장을 자주 오가며 간접적인 연관성을 보였죠.”
“…….”
“물론 5군단장 건은 우연일 수도 있지만…….”
눈빛은 이미 우연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것 같은데.
차원이 다른 정적이 내려앉았다.
새빨간 눈이 속내를 파헤칠 듯 드벨라니아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압박이 느껴지는 눈빛에도 그녀는 지지 않고 눈을 마주했다. 팽팽한 분위기가 흘렀다.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던 듯, 이어진 목소리가 침묵을 밀어냈다.
“심지어 이번 전쟁에서는 데온 님 휘하의 인간들만 무사히 돌아왔죠. 그래서 말인데요, 데온 님.”
“…….”
“또 군단장이 죽는다면, 다음은 누가 될 것 같나요?”
공기가 얼어붙었다.
데온은 앉은 상태에서 미동도 않고 드벨라니아를 노려보았다. 긴장감 속에서 으르렁거리듯 낮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헛소리.”
“……그야.”
그제야 드벨라니아가 활짝 웃었다.
“당연히 농담이니까요. 제가 감히 데온 님을 의심할 리 없잖아요? 다만 정보를 다루는 군단장으로서 지금의 수상한 상황을 짚고 넘어가긴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의심할 리 없다니. 지금 대놓고 의심하고 있으면서.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정보를 누락시켜 죄송합니다. 수상함에 지나치게 경계하다 보니 그만 실수를 저질렀네요.”
……죽일까? 데온은 손끝을 보일 듯 말 듯 하게 까닥였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군단장이 죽었다. 드벨라니아가 의심하기 시작한 이상 이델리아를 비롯한 다른 군단장들이 의심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터. 명분도 있으니 마왕이라면 여기서 사고를 쳐도 필시 저를 감싸줄 테지만, 그와 별개로 군단장들의 의심을 앞당겨주는 행동이 될 것이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당연하죠.”
죽이는 것은 무리수다. 결국 데온은 순순히 한 걸음 물러났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손을 못 대는 것은 아니고.
“고작 사과 하나로 끝내려는 것은 아니겠지.”
“……네?”
“네 실수 하나 때문에 전쟁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고 봐도 무방한데 말이야.”
마음 같아서는 이 부분을 공론화하여 처벌하고 싶지만… 그럼 그녀가 왜 그랬는지에 대한 이유도 나온다. 마족들의 시선은 다시 내게 쏠리게 되겠지.
사적으로도 못 죽이고, 네가 끌어안고 있는 폭탄 때문에 공론화하지도 못하지만, 너 하나 엿 먹이는 정도는 할 수 있다. 데온은 싱긋 웃었다.
“제국, 산국, 르웨체, 에스페라네스까지. 그들의 움직임에 관한 정보는 전부 네가 책임지고 모아오도록 해.”
“알겠….”
“아, 네 잘못으로 벌어진 일인데 괜히 다른 녀석들에게 시키지 말고. 그러다 실수로 누락되기라도 하면 큰일 나잖아? 너도 실수했는데, 그 밑의 녀석들은 어떻겠어.”
“…….”
“설마 이번과 같은 일을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
일해라, 노예야.
할 말을 잃은 드벨라니아의 얼굴이 제법 보기 좋아 부러 얄밉게 웃었다. 그녀가 또 정보 누락을 저지를까 걱정하진 않았다.
이번엔 전적으로 드벨라니아 본인에게만 일을 맡겼으니까. 면대면으로 확실하게 말했고, 부릴 수하도 없으니 이번에도 정보 누락이 발생하면 그녀는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밑에 놈 목을 날리는 것으로 대충 넘어갈 수 없다 이거지.
“알…겠습니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드벨라니아가 조금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돌아가려는 듯한 모습에 빙글빙글 웃으며 지켜보던 데온이 입을 열었다.
“아직 내 말 안 끝났는데.”
“……말씀하세요.”
“르웨체에서 영웅을 숨겨두고 있다는 보고가 있던데, 그 규모가 정확하지 않더라고.”
“일단 알아 오긴 할 테지만… 에드와 대화를 나누는 걸 먼저 추천드리고 싶네요. 데온 님으로부터 르웨체 공격 명령을 받은 것도 에드고, 르웨체를 공격하며 영웅들을 마주한 것도 에드잖아요? 부관이니 만나기 어려운 것도 아닐 테고요.”
“…….”
그건 그렇네.
껄끄럽다는 이유로 나도 모르게 그 녀석을 제외한 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쓰러진… 아니, 조금 길게 잠든 탓에 추가 명령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인 데다 예상치 못한 영웅들의 출몰로 마왕이 대신 귀환 명령을 내렸었지. 덕분에 눈을 떴을 때부터 시야 한쪽에 머무르며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자 했던 부관이 새삼 떠올라 절로 표정이 묘해졌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에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했던가?’
그래도 시킨 대로 착실하게 행했던데.
그 사이, 드벨라니아가 슬쩍 문에 시선을 던졌다.
“……방문객이 있네요. 방해되기 전에 전 가보겠습니다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익숙한 외침.
“대자앙!!”
“……그래.”
거의 노크를 한 것과 동시에 열린 문을 황당하다는 듯 보던 데온이 드벨라니아가 있던 곳을 흘긋 돌아봤다. 그녀는 재빠르게 사라진 뒤였다.
그제야 데온이 조금 풀린 얼굴로 미친개들에게 시선을 두었다. 단이 따라 들어온 것을 보아 그가 이 녀석들을 데려왔다는 것을 알 것 같았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았다.
“왜 왔냐?”
“왜 왔냐니요!”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
짚이는 것이 너무 많아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데온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
데온 님께서 기르는 광견들을 제법 아끼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광견들이 저리 대놓고 방자하게 구는 모습을 직접 보니 머리가 어질하다. 그걸 또 받아주는 데온 님은 어떻고.
쓸데없이 그 자리에 머무르다가 괜한 충격을 받을 것 같아 드벨라니아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문은 인파로 꽉 막혔지만, 창문이 열려 있었기에 방문객들의 이목을 끄는 일은 없었다.
우당탕탕.
마왕성은 층고가 높아 꼭 이렇게 실수하게 된다니까. 아래층 창고의 창문으로 굴러떨어지다시피 들어온 드벨라니아가 벌떡 일어나 옷을 탁탁 털고 문을 나섰다.
직선의 복도가 보이고, 앞서 걸어가는 두 마족이 보인다. 익숙한 뒷모습에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이어스랑… 그 옆은 부관인가?’
12군단장 마이어스와 부관 다하르. 얼핏 다른 일반적인 군단장들처럼 업무 관련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듯하지만, 희미하게 들려오는 대화 내용이 심상치 않다. 그녀는 기척을 죽이고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
“어깨 펴시고… 그그 드시라그요.(고개 드시라고요.)”
“응.”
“제가 이렇게 말할 때는! ……답하지 믈르고 했을튼드요.”
복도에 다른 마족이 있을 수도 있다고요.
“응.”
“…….”
“……미안.”
“스그흐지 므시그요.(사과하지 마시고요.)”
역시 마이어스는 오늘도 착실하게 갈굼 당하고 있네.
‘쟤네 관계도 참 재밌단 말이야.’
오엘과 데르니반 만큼이나 독특하기도 하고.
제아무리 자신감이 바닥이라지만 그래도 마이어스는 엄연한 군단장이다. 건방진 부관 정도는 거슬리는 즉시 쳐낼 수 있을 터. 심지어 자신감만 부족할 뿐, 전 8군단장인 헬과 달리 자존감은 그렇게 낮지 않으니 진심으로 기어오르는 부관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리 따박따박 잔소리하는 부관을 그냥 내버려 두는 이유는 저 잔소리가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겠지.
내 상관이 어디 가서 무시 받진 않을까, 조금 더 당당해졌으면 하는 마음. 즉, 다하르는 그만큼 제 상관을 아낀다는 뜻이므로.
‘……쓸만하겠는데?’
드벨라니아는 미소 지었다.
마침 방 앞에 도착한 듯, 두 마족이 헤어진다. 마지막까지 걱정 어린 잔소리를 남기고 돌아선 다하르가 어느 틈엔가 제 앞에 선 2군단장을 발견하고 흠칫했다.
당황은 잠시였다.
“안녕하십니까, 2군단장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래, 오랜만인 것 같네.”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제 상관의 처참한 말솜씨를 대신하기 위해 갈고 닦은 혀가 매끄럽게 움직인다. 그게 제법 마음에 들어 드벨라니아는 긴장을 풀어주려는 의도를 담아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렇지?”
“그렇다면 자리를 옮기는 편이 좋겠군요. 모시겠습니다.”
눈치 좋고, 센스도 있네.
잔소리만 제외하면 볼 때마다 마음에 드는 녀석이다. 앞장서는 다하르의 뒷모습을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그가 안내한 곳은 본인의 집무실이었다.
군단장의 집무실도 아닌 부관 개인의 집무실임에도 적지 않게 쌓인 서류가 보인다. 주위를 둘러본 드벨라니아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군단장의 집무실에서도 일하고, 본인의 집무실에서도 일하고… 얘는 대체 언제 퇴근하는 거야?
달그락- 작은 테이블 위에 찻잔이 놓였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물끄러미 차를 내려다보던 그녀가 말없이 잔을 들어 올렸다.
“……넌 네 상관을 꽤 아끼고 있지?”
“부관에게서 상관을 향한 마음을 ‘아낀다’고 표현하는 것은 건방질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소중하다’ 정도로 정정해둘까. 어쨌든 의미만 통하면 되니까.”
“소중…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지는 알겠습니다. 한데, 그걸 왜 물어보시는지…….”
다하르는 긍정이나 부정의 답을 하는 대신 말을 돌렸다. 그러나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눈동자에서 충분한 답을 얻은 드벨라니아는 알겠다는 듯 매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네 충심이 기특해서 말이야. 그래서 특별히 말해주려고.”
“예? 무엇을….”
“어쩌면 네 상관의 목숨과도 연관이 있을지 모르는 이야기.”
“……!”
군단장이, 그것도 무려 정보를 수집하는 2군단장이 헛소리를 할 리 없다. 언제 놀랐냐는 듯 다하르가 자세를 달리 했다.
날카로운 눈빛을 본 드벨라니아가 짐짓 여유롭게 미소 짓는다. 호선을 그린 입과 달리 그녀의 두 눈은 상대의 눈만큼이나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