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81
281. 손해뿐인 결과(7)
마왕의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기웃거리며 데온의 눈치를 살핀 미친개들이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우르르 밖으로 빠져나간다. 단과 벤도 걸음을 옮기고. 에드 역시 그 뒤를 따라 나가려던 순간, 가만히 있던 데온이 그를 불렀다.
“에드 넌 밖에서 대기하도록 해.”
“……?”
실로 오랜만의 부름에 미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에드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나를 부르신 것이 맞는지, 혹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물음표 가득한 얼굴에 혼란이 스민다. 데온도 이를 본 듯 설명을 덧붙였다.
“할 말이 있어.”
“……알겠습니다.”
에드마저 밖으로 나가고, 문이 닫혔다.
정신 사납게 방 안을 채우고 있던 녀석들에게 나가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부터 데온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마왕이 아직까지도 제 손목을 잡고 있는 하얀 손에 힐긋 시선을 던진다. 잡히지 않은 손이 올라갔다.
“……!”
역으로 손목을 잡힌 데온이 흠칫 그를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왕은 그대로 힘을 살짝 줘 데온의 손을 떼어내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다정하기 짝이 없는 음성이 속삭이듯 흘러나왔다.
“뭘 그렇게 서두르고 있어.”
“…….”
“2차전도 좋지만, 우리도 내부 정비를 할 시간 정도는 있어야지.”
아니면, 인간계가 신경 쓰여서 그런 거야?
아이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와 달리 차가운 달빛이 스민 듯한 눈이 데온을 본다. 그것도 잠시, 마왕은 싱긋 웃음 지었다.
“어차피 인간계도 제 몸 추스르느라 이쪽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텐데. 우리 용사님께서 그쪽의 영웅을 절반 가까이 죽여놓았잖아?”
“……르웨체에 숨겨둔 영웅들이 있다고 합니다. 아직 규모 파악이 되지 않아 염두에 두긴 해야 해요. 그리고 인간계가 전력을 추스를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편이….”
“그 정도의 피해라면 하루 이틀로는 완전히 추스르는 것이 불가능할 거야. 몇 달의 시간을 준다면 모를까, 조금 쉬는 정도의 시간으로는 안 될걸. 르웨체에 숨겨둔 영웅들이 있다 해도 그때처럼 많지는 않을 테고.”
백번 양보해서 최대한으로 쳐줘도 그때와 비슷한 정도겠지.
심지어 그때 데온이 밀린 것은 발목을 잡는 인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것만 조심하면 큰 문제는 없을 터.
“무엇보다.”
불만스러운 듯 미간을 좁히는 데온의 손목을 놓고 근처에 놓인 의자에 걸터앉았다. 턱을 괸 채 데온을 보던 눈이 습관처럼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마물들이 너무 늘어서 말이지.”
“…….”
“슬슬 마력이 부족해서 혼자서는 안 되겠더라고.”
엄살인가 진실인가.
가늠할 수 없는 말에 데온이 눈살을 찌푸렸다. 노골적인 표정을 마왕이 읽지 못할 리 없었다.
‘이런, 정말인데.’
뭐, 믿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만.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잠시 끊겼던 주제를 이어갔다.
“그래서 이참에 모든 군단장들을 동원해 마물 대토벌을 벌이려고. 기왕이면 대회 형식으로 진행할 생각인데……”
“……허.”
이 시기에 대회라니. 데온이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물론 자존심 강한 군단장들에겐 그냥 토벌보단 이쪽이 더 효과가 좋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태평한 것 아닌가.
황당함 서린 웃음에 화답하듯 마왕이 태연히 말했다.
“경계선을 비워둬도 되는 몇 안 되는 시기잖아? 이걸 그냥 놓치기엔 아깝지.”
어차피 경계선을 비워둬도 인간계는 감히 이쪽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한다.
그것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여유가 있어야 하지, 어느 머저리가 궁지에 몰린 주제에 유리한 무대를 버리고 적의 영역에 들어서겠는가.
그러니 급하게 굴 것 없이 잠시 여유를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대청소를 벌이는 김에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내부도 함께 살피는 것이 좋겠지.
‘사실 마물은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긴 하지만….’
앞으로 마왕 자리에 얼마나 더 앉아있겠다고 진심으로 마물 정리를 하겠는가. 마물 정리는 그저 핑계일 뿐이다.
선생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한 핑계, 아슬아슬한 상태의 데온에게 억지로라도 쉴 시간을 주기 위한 핑계.
그가 왜 마물 따위에 순순히 마력을 쏟아부었겠나.
인력이 부족해서? 아니. 마물 정리에 부족한 인력은 끌어모으고자 하면 충분히 보충할 수 있다. 당장 마왕성에 상주하고 있는 군단 중 아무나 골라서 추가로 집어넣어도 충분했을 테지.
데온 하르트가 그걸 바라서? 아예 틀린 것은 아니다만,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마왕은, 이번 용사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니 데온 하르트는 무너져서는 안 된다.
끈질기게 강하면서도 한없이 약한 인간은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어서.
어느새 마왕은 저를 보는 데온과 눈을 마주했다. 데온이 입술을 달싹이고, 썩 내키지 않는 듯 떨떠름한 목소리가 울렸다.
“……저도 참가해야 합니까?”
“왜, 싫어?”
“싫다고 하면, 들어주실 겁니까?”
“내가 언제 네게 이겨 먹은 적이 있었나?”
없지. 데온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하고 보니 마왕은 항상 제게 져주었다. 유일하다시피 강경하게 나왔던 마약 건도 끝내는 임시라는 명목하에 풀어주고 흐지부지 넘겼고.
……대체 왜? 데온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가는 가운데, 마왕이 들으라는 듯 대놓고 중얼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군단장 자리가 좀 비어서 인력이 부족하긴 하지만…….”
“…….”
“농담이야. 모든 군단이 모여서 벌이는 대회인데, 너 하나 빠진다고 그렇게 큰 차이가 날 리가.”
아니, ‘용사’가 빠지는 것이니 차이는 확실히 나겠지.
하지만 데온 하르트 한 명이 빠졌다고 힘을 못 쓸 정도는 아니다. 그 정도로 허접한 군단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최근 들어 군단장들이 죽어 나가며 위세가 예전 같지 않다지만, 어디까지나 ‘위세’일 뿐. 마왕의 군단은 그렇게 약하지 않았다.
“대회의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용사는 빠지는 편이 좋을 테니 차라리 잘 됐지. 넌 좀 쉬어. 그냥 기다리는 건 지루할 테니 대회가 끝날 때까지 활을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저번에 말했잖아? 가르쳐주겠다고.
가볍게 웃는 눈이 말한다. 이 보라고. 아직 내게 배울 것이 많이 남지 않았느냐고.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 가자고.
“대회가 끝나면… 연회를 열도록 할까. 삼 일 밤낮을 쉼 없이 열어두는 것도 재밌겠네.”
“……사용인들이 죽어 나가겠군요.”
“그들보단 인간계를 여기까지 몰아붙인 이들이 더 중요하지. 공로를 치하해야 하지 않겠어?”
그럼 연회는 휴식 및 격려를 위한 것이 되는 셈인가.
확실히, 목표까지 몇 걸음 남지 않은 상황에서 크게 패했으니 병사들의 사기가 죽었을 만도 하다. 그럼 곤란하지.
대충 납득한 데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납득과 별개로 제 고집은 여전하지만.
“르웨체 측 영웅의 규모만 알아두고 쉬겠습니다. 그래야 연회가 끝나고 일을 진행할 때 수월할 것 같아서요.”
그렇게 다독였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에 마왕이 질린 표정을 짓는다. 데온은 입을 다물고 시선을 피했다.
자신도 안다. 이건 쓸데없는 고집이라는 것을.
마왕의 말대로 이쪽에서 특별히 경계선을 지키지 않아도 인간계는 마계를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그럴 여유가 없으니까. 궁지에 몰린 만큼 자신들의 영역에서 유리한 전투를 벌이려 들겠지. 오히려 데온 하르트를 제 무대로 불러내려 들 것이다.
거기에 적당히 장단 맞추며 상황을 조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지만……. 데온은 손바닥을 바지에 비볐다.
‘쉬고 싶지 않아.’
그저, 쉬고 싶지 않았다. 멈추고 싶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면 핏물에서, 그림자에서 손이 올라와 발목을 붙잡을 것 같아서.
‘이래서 전 황제도 폭주하듯 나아갔던 건가.’
멈추지 않은 것이 아니라 멈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며 꿋꿋이 나아가던 에도아르도 데세르트를 떠올리다가 문득 들리는 목소리에 흐려진 눈에 초점을 맞췄다. 시야에 마왕의 얼굴이 들어왔다.
“뭐… 그래. 그래서 에드를 밖에 대기시킨 거지? 당시의 상황에 대해 물어보려고.”
“…….”
“그렇게 해서 네 마음이 편하다면야, 하고 싶은 대로 해.”
이번에도 그는 다 안다는 듯 미소 짓고 있었다.
***
마왕이 나가고 데온의 부름에 따라 에드가 들어왔다.
손끝을 비비다가 짜증스럽게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른 데온이 담배를 꺼내 물고 에드를 본다. 오랜만의 독대가 어색한 듯 머뭇거리는 그를 죄책감에 뭉그러진 시선으로 본 것도 잠시, 다소 차가운 목소리가 나왔다.
“넌 르웨체에서 직접 영웅들과 충돌했으니 알겠지.”
“…….”
“당시 그곳에 있던 영웅들의 구체적인 규모에 대한 보고가 빠졌던데. 넌 알고 있나?”
방황하던 하늘빛 눈동자가 단단히 굳어졌다.
“죄송합니다.”
모른다는 뜻이다.
“당시 르웨체는 전력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력을 내건 이들 특유의 필사적인 긴장감이 없었으니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역으로 이쪽이 당할 정도의 수였으니, 그 수가 적지 않다는 것밖에는 드릴 말씀이…….”
군단장 후보에 4군단장까지 같이 갔음에도 역으로 당할 뻔했다고.
규모는 짐작도 안 되고, 그 와중에 내비친 전력도 심상치 않고…….
“……일단 나가봐.”
정보를 알아 올 마족이 필요하다.
에드를 내보내고 통신석을 향해 뻗은 손이 멈칫- 그 위를 배회한다. 습관적으로 드벨라니아를 부르려 한 데온이 허공에서 지그시 주먹을 움켜쥐었다.
‘……지금 그녀는 믿을 수 없어.’
누구에게 연락을 취해야 하지?
한참의 고민 끝에, 상대를 정하고 통신석을 집어 들었다. 통신을 시도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상대의 목소리가 울렸다.
– 네, 데온 님!
“……리리넬.”
반사적으로 멈칫한 데온이 느리게 상대를 불렀다.
목소리를 들으니 그녀와 단이 멋대로 벌인 일이 떠오르며 덩달아 거북한 감정도 고개를 든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리리넬만큼 편히 이용할 수 있는 존재가 없기에.
데온은 껄끄러움에 멈칫거리면서도 끝내 입을 열었다.
“지금 이리로 올 수 있어?”
– 물론이에요! 당장 가겠습니다!
똑똑.
마법으로 이동한 듯, 말이 끝난 것과 거의 동시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을 연 리리넬이 잔뜩 들뜬 얼굴로 발을 들였다.
무슨 일이냐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저를 보는 마족을 복잡한 표정으로 보던 데온이 느리게 말문을 열었다.
“……르웨체 측 사람을 하나 잡았으면 하는데.”
“네, 말씀만 하세요! 누구를 원하세요? 왕을 잡아 올까요?”
“……그건 시간이 걸릴 테니 됐고. 일반 병사 이상이면 충분해. 지위가 높을수록 좋긴 하겠지만….”
“아, 장수들을 원하시는 거군요! 알겠어요!”
“잠깐.”
동작 그만.
의욕이 너무 넘치잖아. 말도 다 안 끝났는데, 얘는 뭐가 그렇게 급해? 후다닥 달려 나가려는 리리넬을 급히 불러세웠다.
이러다 방심하면 정말 홀랑 떠나버릴 것 같다. 또 사라지기 전에 핵심부터 말해야지. 미간을 꾹꾹 누르며 곧장 말을 꺼냈다.
“직접 움직일 필요는 없어.”
“네? 빨리 끝내려면 제가 직접 움직이는 게….”
“이건 비밀리에 내리는 임무야.”
“비밀리에…요?”
“그래. 곧 모든 군단장이 참여하는 사냥 대회가 열리는데, 거기서 네가 자리를 비우기라도 했다간 의심을 살 거 아니야. 부하들을 이용하도록 해.”
고작 병사나 그 윗선의 자잘한 장수들을 납치하는 건데, 군단장 본인이 나서는 건 좀 아니잖아. 부하들은 뒀다 어디에 써먹으려고.
‘비밀’이란 말에 눈을 내리깔고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던 리리넬이 시선을 들었다.
“비밀이라면… 마왕님께도 비밀인가요?”
“그래.”
사실 동네방네 다 들켜도 상관은 없지만.
마계에 해가 되는 행동도 아니지 않은가. 이건 그저 리리넬이 정말 진심으로 나를 따르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내린 명령이다.
그녀는 언제나 지독할 정도로 맹목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그렇기에 더 믿을 수가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