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83
283. 말도 많고 탈도 많은(2)
동시에 여러 발을 날리는 것 자체가 첫 시도다. 황당한 눈으로 마왕을 본 것도 잠시, 데온은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르고 활과 화살통을 받아들었다.
손과 바지를 번갈아 보는 시선이 있었지만 무시하고 시위를 당겼다.
…….
결과는 뭐… 당연하게도 성공이었다.
솔직히 너무 쉬웠다. 아예 활을 쏠 줄 모르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한 번 쏘자마자 바로 감을 잡았지.
시킨 대로 곧잘 하자 마왕은 점점 더 바람이 강하게 부는 곳을 찾아 자리를 옮겨가며 같은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물을 죽이다 보니 생각난 것이 있다.
막 도착한 곳에서 화살 세 개를 꺼내든 데온이 바람을 가늠하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아무런 감정도 안 느껴지십니까?”
“뭐가?”
“마물과 마족들 말입니다.”
붉은 눈동자가 힐긋 마왕의 표정을 살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은 당신의 자식들이잖습니까. 마물은 그렇다 쳐도, 마족 중에서도 유능한 군단장들이 제법 죽었는데. 분노나 슬픔은 없는 건지.”
“……아.”
바람이 거세서 그런가. 묶지 않은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휘날리며 당긴 시위에 감긴다. 데온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타인의 손길이 머리에 닿았다.
“‘자식’이라…….”
제법 자라 날개뼈에 닿을 정도로 내려온 하얀 머리칼을 하나로 쓸어모은 마왕이 넥타이 대신 매고 있던 본인의 리본을 당겨 풀었다.
비웃음 서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확실히 다른 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등 뒤에 있어 얼굴은 볼 수 없지만 이게 비웃음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다. 데온이 의아함을 담아 얼굴을 찌푸렸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머리를 빗질하는 손이 느껴진다. 손가락 사이로 머리카락이 사락거리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선, ‘마왕’과 ‘마족’이 같은 종족이 아니라는 것은 알아?”
“……예?”
그게 무슨… 마족은 마왕으로부터 탄생하니 같은 종족인 것이 당연하지 않나? ‘마족’의 범위에 마왕 역시 포함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고?
혼란 가득한 기색을 읽은 마왕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이제는 마왕만이 아는 정보가 용사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마왕은 인간을 본떠 만들어진 ‘단일 종족’이야.”
과거 세계는 마왕을 용사를 죽이기 위한다는 목적 하나만을 가지고 급조했다. 다시 말해 외형에 크게 공을 들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애초에 일회용이었으니 굳이 신경 써서 만들 필요가 없었겠지.
하여, 대충 죽여야 할 대상의 외형을 본떠 만들었댔다.
그렇게 최초의 마왕은 용사의 종족인 ‘인류’를 본떠 만들어진, 그러나 인간이라 하기엔 애매한 무언가가 되었다.
“너희가 ‘인류A’라면 마왕은 ‘인류B’ 정도가 될까. 식물에 비유하자면 붉은 장미와 검은 장미, 동물로 비유하자면 같은 종인데 애완용이냐 실험용이냐 정도로 나뉘겠지.”
그렇기에 같은 ‘인류’의 틀에 묶였음에도 ‘A’냐 ‘B’냐에 따라 세계의 애정 차이가 극명한 것이리라.
‘참으로 비참하지.’
깔끔하게 묶은 머리에서 손을 뗀 마왕이 붉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보란 듯이 눈을 접어 웃었다. 인간과 유일하게 다른 부분이 눈꺼풀 사이로 숨어들고, 기묘한 분위기를 가진 미남이 데온의 망막에 비쳤다.
거기서 데온은 깨달았다.
“……정말이군요.”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로,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마왕이 어깨를 으쓱했다. 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데온은 굳이 답하지 않았다.
그저 동족이라 하기엔 창조된 목적 자체가 다르고, 타 종족이라 하기엔 그 뿌리가 너무도 밀접하게 얽혀있는 눈앞의 친숙한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실없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인간과 마왕을 계보에 빗댄다면 친척, 그중에서도 사촌이 되지 않을까.’
데온은 손을 뻗었다. 손끝이 휘어진 눈매 사이에 숨은 마왕의 상징을 향한다. 눈가에 닿을 듯 말 듯 한 온기에 마왕이 웃었다.
“우습게도 이게 ‘마왕’이 인간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증거이자 ‘인간’과 ‘마왕’을 구분하는 유일한 선이지.”
“?”
“뭐… 이것까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
인간들에게 있어 눈은 영혼을 비추는 창이라 하였던가. 어쨌거나 ‘인류’인 마왕 또한 예외는 아니었기에 ‘용사를 죽인다’는 태초의 목적에 치중된 나머지 발생한 오류 – 마력 – 가 눈에 비쳐 이렇게 되었더랬다.
하지만 지금 대화 주제는 이게 아니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기 전에 마왕은 대화의 흐름을 바로잡았다.
“반면에 마족과 마물은 그런 마왕으로부터 탄생한 ‘오류’이자 ‘돌연변이’야.”
“……?”
“어느 누구도, 심지어 ‘마왕’인 나조차도 만들려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멋대로 탄생한 놈들이란 뜻이지.”
의도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무언가를 한 것이 아님에도 멋대로 탄생한 놈들.
그저 흘러넘친 힘이 일관성 없이 다양한 요소에 깃들거나 저들끼리 뭉쳐 제각각의 외형을 지닌 채 탄생한 놈들이다. 그나마 이성을 가지고 대화가 가능한 마족들을 모아 통치하기 시작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편의를 위해서일 뿐.
“역대 마왕 중 그 누구도.”
그들을 제 자식이나 동족으로 여겼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마족’들을 동족으로 생각하지 않았어. 당연하지. 이건 감정적인 문제가 아닌 엄연히 객관적인 사실이니까.”
마력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연관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게 ‘자식’이나 ‘동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마족’의 뿌리는 ‘인류’에 속해 있지 않으니까.
마물은 말할 것도 없으니 넘어가고, 마족 또한 꼴에 제 육신을 이루는 마력의 주인이 가진 근원을 따라 하겠답시고 본능적으로 어설프게나마 인간의 형태를 취한 채 탄생하지만, 결국 그들의 눈은 근원을 비추지 못한다.
인류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을 지니지 못했으니 ‘마족’은 ‘마왕’과 달리 ‘인류’가 아닌 것이다.
“……?”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데온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구구절절 쓸데없는 소리까지 늘어놓고 싶진 않은데, 뭐라고 설명해야 이해가 쉬울까. 굽힌 검지를 턱에 댄 채 잠시 생각하던 마왕이 이내 입을 열었다.
“좀 더 직관적으로 비유하자면, 너희 인간들은 배 속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너희가 싼….”
“아.”
“ㄸ….”
“거기까지. 이해했습니다.”
“변을….”
“단어가 바뀐다고 뜻이 달라지는 건 아니잖습니까.”
데온의 얼굴에 피곤이 스쳤다.
반응이 제법 마음에 든 듯 장난스러운 웃음이 낮게 터져 나왔다.
“뭘 그렇게 질색하고 그래. 너도 인간이면 생리적인 현상은 있을 거 아니야.”
“……적어도 그건 용사가 된 이후 없어졌습니다.”
“아, 그렇지. 용사구나.”
용사의 육체가 ‘파편’을 제외한 쓸데없는 찌꺼기를 만들어낼 리 없지.
“아무튼, 인간이 ‘그걸’ 동족으로 여기진 않잖아? 따로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과 같다고 볼 수 있지.”
“……네.”
그 똥이 자기 의사와 감정을 가지고 말을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긴 하지만, 데온은 굳이 딴지 걸지 않고 넘어가는 것을 택했다.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았으니까. 의미만 통하면 됐지.
솔직히 그 더러운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마족들이, 심지어 군단장들이 죽어 나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뜻 아냐.’
손익을 따져 불쾌함이나 분노를 느낄 수는 있어도 죽음 그 자체에는 의미를 두진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태연했던 거구나. 데온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다시 활 연습을 할 차례다. 고개를 들어 목표인 마물들을 보았다. 세 발 모두 시위에 걸고, 당겼다.
‘…….’
빗나갔다.
강한 바람 탓에 목표로 한 곳보다 멀리 떨어진 곳에 박힌 화살을 본 데온이 오차범위를 가늠하듯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때, 뻗어온 손이 활을 가져갔다.
“그보다 좀 더 바람의 역방향으로 조준해야지.”
화살통에서 화살 세 개를 꺼낸 마왕이 목표로 한 곳으로부터 한참 벗어난 방향을 겨눠 시위를 당긴다. 별생각 없이 그를 본 것도 잠시, 소매 끝에 달린 커프스단추가 유독 시선을 잡아끌어 데온은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저게 원래 달려 있었나…?’
귀족들은 물론이고 예술가들마저 환장하며 달려들 정도로 아름다운 디자인이다. 예술에 일가견이 없는 저조차 가치를 함부로 매길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알 정도.
다만… 마왕은 거추장스러운 걸 싫어해서 화려한 것보단 단순하게, 쓸데없는 장식 없이 천으로만 이루어진 가벼운 디자인을 선호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만큼 커프스단추도 눈에 띄지 않는 단순한 디자인이었고.
갑자기 왜 저런 걸 착용한 건지. 의문을 담고 살피던 시선은 얼마 못 가 은근한 위화감을 잡아냈다.
‘그러고 보니 커프스단추 자체의 디자인은 화려한데… 가운데 박힌 보석은 투박하네.’
마치… 마력석처럼.
눈길을 잡아끄는 디자인 탓에 조금 늦게 알아차렸지만, 주의 깊게 살피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건 마력석이다.
언제 시위를 놓은 건지 쏘아진 화살이 마물들을 꿰뚫었으나, 데온은 그쪽엔 시선 한번 던지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제대로 봤냐며 돌아보는 마왕에게 대뜸 말을 붙였다.
“그거, 디자인이 참 예쁘네요.”
“응? 아, 이거.”
무슨 마법이 걸려 있는 걸까.
바삐 돌아가는 머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제 손매를 돌아본 마왕이 흘긋 데온을 보더니 이내 눈웃음 지으며 물었다.
“어울려?”
데온은 마왕이 그 말을 하기 전, 순간 멈칫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안 어울리진 않는데… 그걸 달고 이런 곳을 돌아다녀도 되는 겁니까?”
“음?”
“귀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러다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곤란할 것 같습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어울리긴 더럽게 잘 어울린다.
저 정도로 화려하면 소매만 보여야 정상일 텐데, 역시 얼굴이 완성이라는 건가. 엄청 고귀해 보이네. 재수 없는 새끼.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걸 언제부터 달고 있었는지, 무슨 마법이 걸려 있는지, 정도인데…….
그의 소매를 주의 깊게 볼 일이 없어서 모르겠다. 마왕의 분위기나 태도를 보면 물어본다고 답해줄 것 같지도 않고.
기습적인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것도 그렇고, 역시 재수 없다. 퉤.
그 사이, 마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몇 번 쓰고 말 예정이야. 그리고 귀한 거라니, 칭찬 고맙네.”
“……?”
“이거 내가 만든 것이거든.”
……능력 좋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나와 노닥거리고 있어도 되겠어?”
“?”
마왕이 싱긋 불길한 웃음을 지었다.
“마물들이 도망가고 있는데.”
“아…!”
“이번에도 도망가기 전에 전부 잡도록 해. 물론 활로.”
“…….”
데온은 말없이 시위를 당겼다.
매섭게 날아간 여러 발의 화살이 정확하게 목표물의 숨통을 끊는다. 여전히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음에도 더 이상 머리카락이 거슬리지 않아 데온은 낮게 묶인 머리를 한 번 매만진 뒤 새 화살을 꺼내며 흘리듯 말했다.
“머리 잘 묶으시네요.”
“뭐, 그렇지? 나도 한때는 머리가 길었으니까.”
“?”
“허리까지 내려왔었나.”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다룰 때 거슬려서 묶었었지.
의외인 듯 시위를 당기다 멈칫한 손이 보인다. 마왕은 슬쩍 하늘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슬슬 시간이 되어가는데, 어서 마저 정리하고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