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85
285. 말도 많고 탈도 많은(4)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따로 사냥했어…?’
미친 새끼들. 보아하니 마물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 같은데, 그러다 정말 위험해지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데온은 이마를 짚었다. 화면 속 광경이 두통을 불러와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같은 팀인데 뭘 그렇게 경쟁하듯 사냥하고 그래…….’
누가 보면 둘이 다른 팀인 줄 알겠다.
특히 우리 쪽 애들이 심하다.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면서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사냥하는 건지.
거기에 봐주지 않고 약 올리듯 사냥하는 0군단원들도 문제다. 물론 미친개들이 좀 적을 잘 만드는 성격이긴 하지만….
‘정작 지휘하는 에드는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은데.’
미친개들을 상대한다기보다는 내게 결과를 보이고 인정받기 위한 것에 가까워 보이는 화면 속 에드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인간 측에서 그와 비슷한 역할을 맡은 듯한 단에게 시선을 옮겼다.
검 하나 다루지 못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능숙하게 마물을 베어 넘기는 모습이 보였다.
‘…….’
반사적으로 현실의 단을 힐긋 돌아보았다. 줄곧 이쪽을 보고 있었던 듯 단과 눈이 마주쳤다.
……그래도 아직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닌 이상 굳이 대화를 나누고 싶진 않다. 데온은 못 본 척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이 시야 가장자리에 비쳤다.
‘사냥한 마물의 수는…….’
845.
이쯤 되니 인간계의 사냥 대회는 우습게 보일 정도다. 하긴, 그쪽은 ‘개인’이 참가하는 거고, 한 사람당 데리고 갈 수 있는 보조 인원의 수가 제한되어 있어 그런 거긴 하지만.
‘그래도 의외인데.’
군단장이 빠진 상황에서의 사냥이었다. 대신 – 이라기엔 뭐하지만 어쨌든 ‘대신’이라는 명목으로 – 모두의 암묵적인 승낙 속에서 로프티 기사단이 참여했지만……. 애초에 데온 하르트의 빈자리를 메우기는커녕 참여하든 참여하지 않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란 것을 알기에 이루어진 승낙이었다.
‘상대가 상대니까.’
그 녀석들이 목줄 없이 하는 일은 대박 아니면 쪽박이기도 하고.
그런 상황에서 2위를 차지했으니, 솔직히 이건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데온만이 아닌 듯,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데온 님이 빠졌는데도…….”
“……괜히 0군단이 아니라는 거겠지.”
“사고만 치는 줄 알았더니 인간들도 제법….”
“괜히 데온 님께서 데려온 게…….”
또다시 에드의 시선이 느껴진다. 이번엔 눈이 마주쳤으나 데온은 아닌 척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쩐지 누군가의 씁쓸한 감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보다… 1, 2위의 사냥 수를 합치니 벌써 2000마리가 넘었다. 데온이 중얼거리듯 감탄했다.
“……많이도 잡았네.”
다른 군단은 또 얼마나 잡았을지.
다른 건 몰라도 이번 사냥 대회를 기점으로 마물들의 수가 씨가 마르다시피 줄어들 것이란 건 확신할 수 있겠다.
데온의 중얼거림을 0군단이 사냥한 마물 수에 대한 감탄으로 받아들인 듯, 옆에서 마왕이 속삭였다.
“참고로 네 직속 인간들이 사냥한 마물의 수는 107마리야.”
“……정말 많이도 잡았네.”
설마 세 자릿수를 넘겼을 줄이야.
“푸핫.”
감탄 섞인 혼잣말에 마왕이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많이도 잡았지. 정말 열심히 하더라.”
“그렇게 해서 얻을 게 뭐가 있다고…….”
마물 사냥이 아닌 인간 상대가 특기인 놈들이, 그것도 죽이는 것이 아닌 사기를 낮춰 쫓아내는 쪽에 특화된 녀석들이 이만큼이나 잡았다는 건 정말 이 악물고 했다는 뜻이다. 데온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마왕은 대답 대신 군중을 훑었다. 슬슬 화면을 보는 이들의 시선에서 흥미가 사그라들고 있다. 손가락을 튕겨 화면을 없앴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갈까?”
그러고 보니 3위의 사냥 장면이 인상 깊었다고 했지. 잡념을 지워낸 데온이 호기심을 담아 마왕을 보았다. 다른 이들의 얼굴에도 흥미와 호기심이 떠올랐다.
재촉하듯 저를 향한 눈빛에 마왕이 싱긋 웃으며 입을 뗐다.
“3위는 8군단. 군단장도 없는데 열심히 했더라.”
8군단의 사냥 장면이 허공에 떠올랐다. 529마리. 앞선 순위에 비해 수는 적었으나… 모두가 말을 잃었다.
화면에는 거대한 방패로 마물을 두들겨 패는 8군단원들이 있었다. 아니, 단순히 ‘두들겨 패는’ 정도가 아니었다. 고작 그 정도였다면 군단장들마저 침묵했을 리가 없지.
“피떡….”
누군가 중얼거렸다.
“피떡으로 만들고 있어…….”
“무슨 마물을 반죽 두들기듯이….”
마물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할 말을 잃고 화면을 쳐다보던 4군단장 이델리아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분명 8군단은 전 군단장을 닮아 온순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쟤네가?”
“……나도 아니까 닥쳐.”
방패로도 마물 사냥이 가능하구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충격과 감탄 어린 목소리에 8군단원들이 어깨를 쭉 펴고 고개를 들었다. 저를 향한 눈빛에서 ‘8군단의 존재 가치를 증명했으니 우리는 남겨달라’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 마왕은 피식 웃었다.
애초에 8군단은 군단장만 잃었을 뿐, 병력이 너무 멀쩡해서 그냥 둘 예정이었다만.
‘이건 입 다물고 있어야겠네.’
말했다간 폭동이 일어날 것 같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뻐하는 8군단에게서 눈을 떼고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몰골만 보면 1등인 피범벅이 된 7군단부터,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5군단까지. 다른 존재감이 적은 군단도 하나하나 확인한 뒤, 다시 고개를 돌려 1군단을 보았다.
“그럼 이쯤에서 오늘의 사냥 대회는 마무리 짓도록 할까.”
“……?”
“나머지 군단 중 자신들의 순위가 궁금한 녀석이 있으면 각자 마력석에 손을 올려보면 돼.”
“아니 그게 아니라…….”
……‘오늘’?
군단장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누군가 뱉은 중얼거림을 못 들었을 리 없는데도 마왕은 신경 쓰지 않고 고민하듯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명색이 ‘대회’이니 적어도 1등에겐 뭔가 상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허, 설마 상품도 생각 안 했었어? 아무리 주목적이 마물 사냥이라고 해도 그렇지……. 옆에서 지켜보던 데온이 황당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따로 추가 예산을 주는 것으로 할까. 이걸 어디에 쓰든 너희의 자유야. 1군단끼리 따로 소박하게 연회를 여는 데 써도 좋다, 이거지.”
1군단원들의 안색이 밝아…지는가 싶더니 한쪽을 힐긋 보고는 푹 죽었다. 그들의 시선을 좇아 1군단장 제이카르를 본 마왕이 알겠다는 듯 피식 웃었다.
“기왕이면 고생한 군단원들을 치하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좋겠네. 아, 군단장에겐 또 따로 예산을 지급할 테니 그건 자기 자신을 위해 쓰면 되고.”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연회를 시작하도록 할까.”
애초에 그들이 모인 이곳이 바로 야외 연회장이었다. 따로 자리를 옮길 것도 없이 마왕의 신호에 따라 마족 사용인들이 들어와 곳곳에 배치되어 있던 테이블에 음식을 올리기 시작했다.
긴 전쟁이 이어지며 굳은 분위기가 길어지고, 덩달아 긴장이 많이 쌓였다. 과한 긴장은 될 일도 망하게 만드는 법. 때문에 사냥 대회 참가자와 별개로 마왕성 전체에 연회를 연 마왕은 머릿속으로 각 연회 장소를 다시 점검했다.
‘군단장과 그 부관 등의 핵심 전력은 실내, 군단원들은 실외, 다른 일반 병사들은 외성…… 그 세 곳을 오가는 경로 중 중앙 정원으로 가는 경로와 겹치는 건…….’
없다.
좋아, 적어도 중앙 정원으로 가는 경로 근처에 있는 놈들은 없겠네.
그거면 됐다. 마왕은 씩 웃었다.
“아, 내일부터 모레까지는 2차 사냥 대회 기간이야. 또 마력석을 사용하긴 좀 그렇고, 군단별로 마물을 사냥할 영역을 지정해줄 테니 모레 오후 8시까지 느긋하게 잡으면 돼. 그땐 사용인이 직접 가서 일일이 세어야 하니 지금처럼 너무 과하게 잡진 말고.”
어차피 오늘 거의 다 잡아서 잡을 것도 없겠지만.
장난기 어린 마지막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마왕은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나며 흘리듯 말을 던졌다.
“3일간은 마음껏 먹고 마시고, 사냥하도록 해. 부상 조심하고. 이상.”
“와아아아!!”
그가 떠나간 자리에 환호가 들어찼다.
***
로프티 기사단은 개방된 야외 연회장에서 연회를 즐기고, 에드는 너무 오랜만에 열린 연회라 규칙 및 예절을 복습해야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단은…….
“얼마를 거시겠습니까?”
“……칩 하나를 걸지.”
“허어, 가장 작은 액수를 거셨군요. 후달리십니까?”
“후달린다고? 이 내가?”
실내 연회장에서 군단장을 상대로 도박판을 열고 있었다.
칩은 또 어디서 꺼낸 거야……. 저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손목이 아니라 목이 날아갈 텐데 간도 크지. 그의 주위에 바글바글 모여있는 군단장들을 본 데온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2, 3, 4군단장으로도 모자라 7군단장과 9군단장까지……. 아주 미친놈들만 모였네.’
애초에 군단장들 중에 정상인 놈이 없긴 하다만.
3군단장과 4군단장이 살벌하게 투닥거린다. 2군단장 드벨라니아는 게임 자체가 아닌 다른 쪽으로 흥미가 있는 듯 종종 단을 관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그나마 7군단장과 9군단장은 얌전히 게임 자체에 흥미를 보이고 있지만… 저 둘이 가장 미친놈이라는 것을 아는 데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곁에서 도박판을 힐긋거리던 리리넬이 흠칫 시선을 거뒀다.
“저, 전 저런 거 관심 없어요!”
“…….”
누가 뭐래?
굳이 뭐라 답하는 대신 따라오라는 눈짓을 주고 테라스로 향했다.
이윽고 도착한 테라스에서, 커튼을 꼼꼼히 친 그가 리리넬을 돌아본다. 검지를 들어 입술 앞에 댄 채 속삭이듯 작게 그녀를 불렀다.
“리리넬.”
“네, 데온 님…!”
“쉿.”
눈치는 있는 듯 평소보다 작게 대답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목소리가 크다.
한 걸음. 그나마 있던 둘 사이의 공간마저 좁혀버린 데온이 리리넬의 양어깨를 짚었다. 저를 올려다보는 멍한 표정은 익숙하게 무시한 채 살짝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내 궁금했던 물음이 소리 죽여 흘러나왔다.
“마왕의 마력은 지금 얼마나 남았지?”
“아, 아아…?”
“…….”
“그… 저도 몰라요.”
“……뭐?”
여전히 표정은 신과 접촉한 신도처럼 감격에 젖어 있지만, 본인이 무슨 질문을 들었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는 아니다. 그녀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눈치챈 데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그게… 언제부턴가 마력을 감추는 도구를 착용하시더라고요.”
“……허?”
***
데온을 비롯한 모든 군단장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는 지금이 바로 적기다.
연회의 시작을 알리고 곧바로 자리를 뜬 마왕은 품에 고급 마력석을 챙긴 채 복도를 가로질렀다. 목적지는 중앙 정원.
데온도 그렇고, 군단장들도 쓸데없이 눈치 좋은 놈들이다. 조금만 오래 자리를 비운다면 뭔가 눈치를 채겠지. 때문에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는데.
쿵!
바삐 복도를 지나던 마족 사용인과 부딪혔다.
“아.”
“아! 헉! 죄, 죄송…!!”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투둑.
놈의 청소도구에 걸린 커프스단추가 떨어졌다.
“죄송합니…?!”
마왕의 얼굴을 보기 무섭게 하얗게 질려 넙죽 엎드린 마족이 멈칫- 고개를 들었다.
“마…왕님…?”
“……이런.”
분명 겉모습은 마왕님이 맞는데, 느껴지는 마력량은 마왕님이 아니다. 한낱 사용인인 제가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턱없이 적은 마력량.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던 그때, 무표정한 얼굴로 빈 소매를 내려다보던 마왕이 고개를 들고 싱긋 웃었다. 가벼운 본인의 허리춤을 쓸어내리는 손처럼, 가벼운 목소리가 태연히 흘러나왔다.
“봤구나.”
“……!”
어째서인지 소름 끼치는 분위기였다. 불길함을 느낀 사용인이 저도 모르게 주춤 물러선 것과 거의 동시에, ─푹.
목이 꿰뚫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