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88
288. 말도 많고 탈도 많은(7)
마침 연회장에 돌아와 있었던 듯 에드가 급히 벤의 뒤를 따라 들어온다. 테라스에서 벌어진 참사를 본 그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경악은 잠시였다.
품에서 손수건을 꺼낸 그가 침착하게 데온이 흘린 피를 닦아준다. 때아닌 소란에 기웃거리는 군단장들을 무시한 채 검게 죽은 피가 묻은 손수건을 벤에게 내밀고는 어서 성분 분석을 하라며 독촉했다.
결과는 뻔했다.
“독이야. 그것도 미미하게 마력이 혼합된 독.”
“……역시… 그렇다는 것은…….”
애초에 용사에게 이 정도의 피해를 줄 수 있는 독은 마족의 것이 아니고서는 없다. 일반적인 독이라면 신체에 들어온 것과 동시에 해독이 됐을 텐데, 아직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답은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모여든 이들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쏟아지는 시선의 화살 속에서 데온 하르트와 단둘이 있었던 독의 능력을 가진 마족, 다하르는 침묵을 지켰다.
“대체 왜?”
누군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문을 표했다.
“그럴 이유가 없잖아.”
“이미 행한 죄에 이유를 묻는 것 자체가 우습긴 하지만, 일단은 그렇지.”
“……어쩌면 다하르가 한 짓이 아닐 수도 있어.”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데온은 이 목소리의 주인을 잘 알고 있었다.
드벨라니아. 언제 온 건지 그녀가 짐짓 심각한 척 입을 가린 채 중얼거렸다.
“누명을 씌우기 위한 다른 이의 소행일 수도 있지.”
왜 벌써부터 다하르를 범인으로 확정 짓고 그래?
그리 말하는 그녀의 눈은 은근히 데온 하르트를 보고 있었다.
‘하, 자작극으로 몰아가겠다 이건가.’
그래, 그렇게 하면 날 견제하는 동시에 뜻대로 움직여준 다하르도 살릴 수 있으니 이득이긴 하겠네.
쿨럭- 재차 피를 뱉어낸 데온이 보일 듯 말 듯 하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가 피를 뱉어낼 때마다 곁에서 피를 닦아주는 에드의 안색이 현재 진행형으로 시커멓게 죽어가고 있었으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다하르의 성격이라면 나도 알고 있어서 말이지.’
괜히 잔을 테라스 밖으로 밀어버린 것이 아니다. 데온은 흐릿하게 비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데온에게 임시 해독약을 먹이면서도 다하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던 벤이 생각하고 보니 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며 테라스 난간을 넘는다. 그리고 얼마 못 가, 깨진 잔을 발견했다는 외침이 돌아왔다.
“독이 남아있는 잔입니다!”
“성분은?”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나. 데온 님께서 드신 것과 달랐다면 애초에 말도 안 했….”
“커흑-.”
작은 신음이 울렸다.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혹은 인내심에 한계가 온 듯 리리넬이 하늘거리던 촉수로 다하르의 목을 움켜쥐었다. 어울리지 않게 사나운 목소리가 공간을 가로질렀다.
“뭘 그렇게 질질 끌고 있어? 정황상 얘가 범인이라는 거잖아. 그렇지?”
다하르처럼 꼼꼼한 녀석이 범행 장소에 도구를 남겨뒀을 리 없다. 누군가 누명을 씌우려 했다면 테라스 밖으로 잔을 버리는 것이 아닌 이 장소에 대놓고 남겨뒀겠지.
하여 지금 이렇게 증거를 지우려고 한 흔적을 발견한 리리넬은 더 이상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다하르가 할 법한 짓이 드러났는데 더 참을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터진 분노는 같은 군단장이 팔을 잡았을 때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리리넬, 심정은 이해하겠는데 조금만 진정하고….”
“이해한다면 방해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세요!”
저 귀한 얼굴의 혈색이 죽었다. ‘용사’의 혈색이 저렇게 될 정도라는 것은 아주 작정했다는 뜻일 터.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침착할 수 있겠나. 적어도 난 못한다.
목소리만큼이나 날카로운 눈빛이 이델리아를 노려보았다. 눈물을 글썽이는 주제에 눈빛은 보는 사람이 다 말문이 막힐 정도로 사나워 잠시 멈칫한 이델리아는 이내 태연한 척 끊긴 뒷말을 이었다.
“일단 다하르의 독이 맞는지부터 확인해야지.”
“…….”
점점 힘이 들어가던 촉수가 움찔하더니 조금 느슨해진다. 그에 따라 창백하게 질려가던 다하르의 안색도 조금 나아지던 찰나.
“확인 끝났습니다.”
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드가 잡고 있던 다하르의 손목을 툭 놓는다. 덩달아 그의 손톱 끝에 맺혀 있던 액체가 바닥에 뚝 떨어졌다.
별거 아닌 작은 반응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고, 그 가운데에서 벤이 침착하게 결과를 발표했다.
“다하르의 독이 맞습니다.”
“역시.”
다하르를 보는 시선이 더욱 무겁고 뾰족해졌다. 드벨라니아는 데굴 눈을 굴려 주위를 훑었다.
증거도, 여론도 이미 다하르를 범인으로 확정 지은 상황.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해도 이 분위기에서는 말을 꺼내지 못한 채 다들 넘어갈 것이다.
‘더 볼 것도 없겠네.’
다하르는 분명 죽겠지. 생각보다 더 시시한 결말이다.
흥미가 떨어진 듯 드벨라니아가 물러간다. 놈의 목을 휘감은 리리넬의 촉수에 다시 힘이 들어가고, 에드가 놈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상대를 족치고 싶지만 부관으로서의 책임을 잊지 않았다는 듯, 억눌린 목소리가 침착하게 벤을 불렀다.
“데온 님의 상태는 괜찮은 건가? 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데.”
“용사의 육신이 알아서 밀어내거나 해독할 거다. 신체에 들어온 타 마족의 마력 자체를 해독하는 약을 먹였으니 이 이상 더 손댈 것은 없어.”
“……그런가.”
벌써부터 나아지고 있는 데온의 안색에 안도하는 한편, 정작 에드 본인의 안색은 여전히 시커멓게 죽은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이 터졌으니까. 이는 명백한 제 실책이다. 심지어 자리를 비운 이유조차 제 미숙을 보완하기 위함이었으니.
그렇지 않아도 데온이 저를 밀어내고 있는 상황에서 받고 있던 심적 압박감이 터진 듯, 에드의 눈빛이 죽었다.
‘…….’
이를 살피던 데온은 시선을 들었다. 리리넬이 워낙 날뛰고 있어서 그렇지, 다른 군단장들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다하르를 노려보는 것이 보인다. 아, 이델리아는 뭔가 찝찝한 듯 이유를 듣고 싶어 하는 기색이지만 이 분위기를 거스르고 캐물을 정도로 궁금한 건 아닌 듯 침묵하는 상태고.
공기 중에 깔린 은은한 분노를 배경으로 다하르가 침묵 속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지금 이게 무슨 일일까.”
마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쪽에 유독 몰린 인파와 심상치 않은 분위기, 그리고 죽어가는 다하르와 입가에 묻은 피를 훔치는 데온을 번갈아 살피던 역안이 알겠다는 듯 싱긋 휘어진다. 평소처럼 태연한 음성이 근처에 있던 사용인을 불렀다.
“12군단장은 어디에 있지?”
“그….”
“뭐, 굳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긴 하네. 보나 마나 먼저 들어갔겠지.”
불러와. 아무런 설명도 하지 말고.
나직한 명령에 내내 미동도 없던 다하르가 움찔했다. 그를 면밀히 살피던 마왕이 시선을 옮겨 그의 목을 조르고 있는 촉수의 주인을 보았다.
서늘한 역안을 마주한 리리넬이 흠칫 몸을 떨었다.
“리리넬은 그 녀석 내려놓고.”
“……네.”
공중에 들려 있던 다하르가 뚝 떨어졌다.
그리고 정적이 찾아왔다. 간간이 다하르가 내뱉은 기침 소리만이 공간을 울리는 가운데, 마왕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짚었다.
……화려한 커프스단추는 어디로 간 건지, 빈 소매를 발견한 데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일단…….”
침착한 목소리가 침묵을 갈랐다.
“지금 내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대충 파악한 걸 말해볼 건데, 일단 듣고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짚도록 해.”
길게 늘어놓을 것도 없다. 마왕은 주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지도 않고 곧장 말을 뱉었다.
“다하르가 데온을 독살하려 한 것 같은데. 그래서 리리넬이 다하르를 죽이려던 찰나에 내가 들어온 것 같고.”
“……맞습니다.”
“하아…….”
미간을 꾹꾹 누르던 손을 떼고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차갑게 가라앉은 역안이 다하르를 서늘히 내려다보았다.
“왜 그랬어?”
“…….”
녀석이 곧장 대답하는 대신 흘긋 주변을 살핀다.
사람이 많아서 말을 못 한다기보다는 주변에 사람이 얼마나 모였는지 확인하는 듯한 느낌. 마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답 안 하면 마이어스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고….”
“데온 님과 얽힌 군단장들이 죽어 나갔으니까요!”
다급한 목소리가 연회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피가 스민 데온의 옷을 닦아주던 에드의 손이 우뚝 멈췄다. 그뿐일까, 이곳에 기웃거리진 않아도 아닌 척 이쪽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연회장의 다른 마족들도 목소리를 들은 듯 저마다 하던 행동에 제동이 걸렸다.
“…….”
“…….”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공기조차 얼어붙은 듯 작은 소음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데온은 눈을 돌려 제게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 중 한 마족을 찾았다. 단의 근처에 앉은 드벨라니아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시야에 선명히 들어왔다.
덕분에 확신을 얻었다.
‘역시 너구나.’
네가 다하르에게 바람을 불어넣었어.
제게 닿는 군단장들의 시선이 따갑다. 데온은 힐긋 마왕을 보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가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더니 이내 힐긋 문을 보고는 다문다. 그리고, 연회장 문이 벌컥 열렸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이들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제게 쏠린 이목이 부담스러운 듯 다하르의 직속상관인 마이어스가 멈칫하더니 슬그머니 눈을 굴린다. 불안한 표정 위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기색이 뚜렷이 떠올라 있었다.
마왕이 그를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
“마침 잘 왔네. 일이 아주 제대로 터졌거든.”
“무슨….”
“네 부관인 다하르가 데온 하르트를 독살하려 했는데, 이걸 네가 시킨 건 아닌지 확인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
“……예?!”
화들짝 놀란 그가 급히 마왕과 데온, 다하르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 와중에 눈이 마주친 다하르가 사용인들이 있으니 말 더듬지 말고 똑바로 대답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긴 했지만… 사안이 사안인데 그런 게 눈에 들어올 턱이 있나.
“그럴… 그럴 리가…….”
누가 봐도 뇌를 거치지 않은 엉성한 답이 더듬더듬 나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고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듯한 모습. 지켜보던 다른 이들조차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 선명히 드러났으나, 심기가 불편한 상태인 마왕은 봐주지 않고 몰아붙이듯 물었다.
“그 말은, 지금 독살 시도를 한 네 부관을 감싸는 발언으로 받아들여도 되나?”
“……!”
끝내 말문이 막힌 듯, 그가 차마 말을 뱉지 못한 채 입만 뻐끔거린다.
이미 발언을 한 이상 뭐라고 답해도 의심을 사게 되는 상황. 방황하는 시선이 정말이냐고, 왜 그런 것이냐고, 난 어떻게 답해야 하는 것이냐고 묻듯이 다하르를 향한다.
그 안쓰러운 꼴을 견디지 못한 다하르가 이를 악물더니 소리쳤다.
“제게는 제 상관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
“데온 님과의 대화에서, 조만간 마이어스 님이 활약할 일이 있을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게는 그 말이 전 8군단장이나 10군단장과 같은 꼴이 될 수 있다는 말로 들렸고요.”
“…….”
“마이어스 님을 잃을 수는 없었습니다. 잃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제 상관의 죽음이 눈에 보이는데, 어찌 그 그림자를 거둬 내려 하지 않겠습니까…!”
처절한 외침이었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
“충동적인 행동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고요. 마이어스 님께는 폐를 끼쳐 죄송한 마음입니다.”
저 말을 들은 이상 그의 말이 무슨 의도를 담고 있는지 모를 수가 없다.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마이어스에게 갈 수도 있는 불이익을 거두려는 것.
‘아주 원하는 건 다 가져가려 하는군.’
욕심도 많지. 데온의 눈에 짜증이 서렸다.
‘그러게 리리넬, 마왕이 오기 전에 빨리 죽였어야지.’
질질 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됐잖아.
피해자는 나인데, 분위기가 이쪽에 불리해졌다. 시야 한쪽에서 드벨라니아가 다시 흥미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본 데온이 슬며시 눈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