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91
291. 나의 행복을 묻지 않기에(1)
현 5군단장이라는 유용한 지위를 가진 데르니반은 데온의 물음에 당황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았다. 그저 복종하듯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럼 그렇지. 데온의 눈빛에서 의심이 사그라들었다. 그 대신 떠오른 것은 경계.
“뭔데?”
“9군단장… 트로버만큼은 제 손으로 죽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
데르니반은 아직도 9군단장을 죽이는 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늑대를 기반으로 탄생한 마족이어서 그런 것일까, 일편단심인 마음을 기반으로 생긴 분노와 증오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오히려 더 강해졌을 뿐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5군단장이 되어 이전보다 더 바빠졌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눈만 감으면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선명히 떠오르는데 어찌 태연할 수 있겠는가.
‘……늦바람이 무섭다 했던가.’
한번 깨닫기 시작한 감정은 이제 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휘몰아쳤으니.
하여, 연유를 눈치챈 듯 탄성을 뱉는 주인이 될 자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데온 님께서 누구를 얼마나 죽이시든 상관없습니다.”
“…….”
“그저 따를 테니, 9군단장만큼은 제게 양보해주십시오.”
데온 하르트의 입장에서는 어려울 것 없는 소소한 청이다.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필시 수락하겠지.
‘물론 그가 오엘의 죽음에 아예 연관이 없다는 확신은 없지만…….’
8군단장과 10군단장도 각기 다른 방법으로 교묘히 죽였는데 5군단장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그 두 군단장과 달리 오엘 님의 죽음에는 명확한 원인이 달리 존재하니까.’
트로버.
‘직접’ 오엘을 죽인 이를 눈앞에 두고 굳이 원흉이 맞는지조차 확실치 않은 자를, 그것도 복수가 불가능에 가까운 자를 노릴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데온 하르트가 유도하여 벌어진 상황이었다 해도 결국 선택과 행동은 트로버가 한 것 아닌가. 그에겐 분명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
무엇보다 데르니반은 본디 하나만 보는 성격이다. 복수의 대상인지 확실하지 않은 자를 눈에 담고 가늠하기엔 그의 시야는 턱없이 좁았다.
‘그리고… 로프티 기사단에 진 빚도 있으니…….’
숨넘어갈 것 같은 인간 아기를 살리기 위해, 정확하게는 오엘을 위해 급히 그들을 찾았을 때, 살리기만 하면 보답은 확실히 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을, 데르니반은 아직 잊지 않았다.
‘대장이나 잘 좀 챙겨달라고 했었지.’
지극히 가벼운 어조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받아들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데온 하르트를 걱정하는 그들의 마음 자체는 분명 진심이었으니까.
그렇기에 8군단장과 10군단장이 잇달아 죽을 때부터 데온 하르트를 주시하고 있던 데르니반은 이번 사건을 통해 확신을 얻고 그를 찾았다.
자신이 바라는 단 한 가지 부탁만 들어준다면 최선을 다해 모실 생각과 함께.
“……일단….”
잠자코 데르니반의 말을 듣고 무언가 생각하던 데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는 했어.”
“그럼….”
“그러면 말이야.”
이해와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다.
그가 잔을 든 채 압박하듯 상대에게 다가간다. 그대로 묵묵히 시선을 내리깔고 있는 마족의 눈을 들여다보며, 시험하듯 말을 꺼냈다.
“내가 네 바람을 들어준다는 전제하에, 넌 어디까지 할 수 있지?”
“데온 님께서 명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죽음도?”
그건 상정 범위에 넣지 않았던 듯 멈칫한 것도 잠시.
“‘무엇이든’이라고 했습니다.”
흔들림 없는 답이 돌아왔다.
“……좋아.”
눈에 거짓은 비치지 않는다. 데온은 숨통을 틔워주듯 한 걸음 물러섰다.
확답을 바라는지 충견이 고개를 들고 저를 본다. 그를 향해 싱긋 눈을 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
“필요하면 부를 테니 이제 나가 봐.”
애초에 쉬려고 온 것이라.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데르니반이 뭐라 답하기도 전에 축객령을 내렸다. 입술을 달싹이던 데르니반이 실례했다며 테라스를 나간다. 커튼을 걷고 나가다가 무언가를 본 듯 멈칫하는 기척이 느껴졌으나,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히 멀어졌기에 데온은 신경 쓰지 않았다.
데르니반이 무엇을 마주쳤는지 알게 된 것은 짧은 휴식을 겸한 생각 정리를 마치고 테라스를 나갔을 때였다.
“…….”
“……오.”
테라스 입구 바로 근처에 에드와 제이카르가 있었다.
데르니반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나갔기 때문일까,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몰랐던 듯 데르니반이 나오고도 곧장 자리를 피하지 않고 넋 놓은 채 있던 에드가 데온과 정통으로 시선을 마주치고 흠칫- 고개를 돌린다. 제이카르는 담담한 기색이었다.
어디서부터 들은 건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중요한 건 다 들었겠군.’
에드의 태도만으로도 알 수 있다. 제이카르는 태도만으로는 모르겠지만, 에드가 놈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을 봐서는 분명 같이 들은 거겠지.
“……에드,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
차마 답을 뱉지 못한 채 입술만 달싹이던 그가 이내 눈동자를 옆으로 스르륵 굴린다. 당황과 두려움으로 뒤덮인 눈빛 속에서 희미한 걱정과 죄책감을 발견한 데온은 굳이 더 캐묻는 대신 걸음을 뗀 제이카르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이쪽에 다가오고 있었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공기 중에 깔린 긴장감이 더욱 팽팽해진다. 열 걸음, 다섯 걸음, 세 걸음, 두 걸음… 당장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이 고조된 순간.
“……!”
제이카르가 데온을 지나쳤다.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들은 척, 태연히 상대를 지나쳐 멈추지 않고 걸어간다.
그가 스쳐 간 자리에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가 잔향처럼 남았다.
“조만간 다시 보도록 하지.”
“…….”
그리고 정적이 찾아왔다.
데온이 무언가 생각하듯 시선을 내리깔고, 졸지에 데온과 둘만 남은 에드가 눈동자를 덜덜 떤다. 그것도 잠시,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데온 님.”
단이 다가오자 다시 입을 다물고 한 걸음 물러났다.
이제는 밀려나는 것이 당연해진 듯한 체념 어린 태도. 흘긋 그를 본 붉은 눈동자가 이내 단을 담는다.
눈이 마주친 것도 한순간, 습관적으로 비껴가는 시선에 단은 잡설 따위로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그에게 드벨라니아가 준 선물을 내밀었다.
“드벨라니아 님이 전해달라 했습니다.”
“……드벨라니아가?”
붉은 머리끈을 본 데온이 헛웃음을 흘렸다. 의미 모를 웃음과 달리 손은 그것을 받아 꾹 쥐고. 고개를 돌려 에드를 보자 안절부절못하던 마족이 제게 닿은 시선을 느끼고 자세를 바로 했다.
“난 쉬러 가도 문제없겠지?”
“아… 네! 이번 연회는 3일 동안 밤낮 구분 없이 열리기 때문에 자유롭게 쉬러 가셨다가 다시 오시면 됩니다.”
사실 첫날엔 늦게까지 있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지만… 한바탕 사고도 있었고, 가장 최근의 연회와 관련된 책도 상당히 오래된 것이었으니까.
에드는 쓸데없는 정보는 삼킨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안 된다고 해도 쉬러 갈 생각이었는데, 잘됐네. 애초에 피를 토한 이상, 적어도 오늘 나를 이곳에 묶어둘 수 있는 자는 없었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하루 만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서 피곤한 참이었다. 단을 지나친 데온이 에드마저 지나쳐 걸어가다가 멈칫-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의아한 시선이 등 뒤에 느껴졌으나 돌아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나직한 목소리가 짤막한 내용을 담고 툭 떨어졌다.
“오늘, 네 잘못이랄 건 없었어.”
“……!”
순간 에드의 표정이 무너졌다.
데온 하르트가 자리를 뜨고, 모실 상관이 방에 돌아가 더 할 일이 없어진 에드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뒤통수에 단의 시선이 따라붙었으나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그리고 혼자가 되기 무섭게, 그는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차라리….”
절망 어린 목소리가 울렸다.
“당신이 정말 나쁜 인간이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매정하고 악랄한 자였다면. 그랬다면 이리 고뇌할 이유가 없었을 텐데.
아래로 내려간 눈동자가 정처 없이 방황했다.
“……너무하십니다.”
순간순간 던져지는 온정과 배려가 저로 하여금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에드는 데온 하르트를 잃고 싶지 않으며, 마왕이 없는 마계 또한 상상할 수 없었다.
“어떡하지.”
그렇기에 오늘 정말 심각한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이도 저도 선택하지 못한 채 고민하게 된다.
아마 대화를 들었다는 것을 데온 님도 눈치채셨겠지. 그럼에도 아무 말 없이 넘어가 주셨지만.
“…….”
그래서 더욱, 에드는 움직일 수 없었다.
***
“안녕하세요오, 데온 님.”
방으로 돌아가던 길, 달갑지 않은 목소리를 들은 데온의 얼굴이 인정사정없이 구겨졌다.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 드벨라니아가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진즉에 들어가신 줄 알았는데, 이제 쉬러 가시는 모양이네요.”
“…….”
“참고로 전 마이어스를 만나고 오는 길이랍니다.”
“……왜.”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 상태라 당장은 상대하고 싶지 않아 침묵했건만.
혼자서도 말을 어색하지 않게 잘 이어간다. 무시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은 데온이 한쪽 입꼬리를 삐딱하게 올렸다.
“마이어스까지 꾀어내려고?”
“꾀어내다니요.”
드벨라니아가 살살 눈웃음쳤다.
“그저 상심한 마이어스를 달랬을 뿐인 것을요.”
“그래, 양심이 있다면 마이어스는 건들면 안 되지.”
데온도 지지 않고 눈을 휘어 웃었다.
“애꿎은 부관을 꾀어내 죽음에 몰아넣은 주제에 그로 인해 상심한 상관까지 건드려서야.”
네가 다하르를 꾀어낸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런 의미를 담은 웃음이었다.
완벽한 책임 전가에 한순간 드벨라니아의 눈매가 가늘어지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원래대로 돌아왔다.
“글쎄요. 이걸 꾀어냈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한 것은 사실 나열뿐이라.”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부관이 움직인 것이다. 정당한 이유가 없었다면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움직이지 않았겠지. 결국 원흉은 당신이다.
대충 그런 의미의 발언이었다.
데온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가 무언가 반박하려는 듯 입을 열었으나.
“뭐, 그보다─”
드벨라니아가 말을 돌리는 것이 더 빨랐다.
“선물은 잘 받으셨나요? 단에게 전달을 부탁했는데.”
“……그래. 색이 꼭 피 같더라.”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마음에 든다고는 안 했는데.
하지만 이것까지 입 밖에 내기엔 너무 유치하다. 속마음은 속마음으로 남겨둔 데온은 짜증 나기만 할 뿐인 이 대화를 끝내기 위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난 이만, 피곤해서.”
“제가 실례했네요. 들어가세요.”
데온 하르트가 멀어진다.
그 뒷모습을 보던 드벨라니아는 흐응-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얼핏 진심이 묻어나는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외모 하나는 정말 아깝단 말이야…….”
꾸미는 맛이 있었는데. 이젠 못하겠네.
그건 좀 아쉬웠다.
***
방에 돌아와 혼자가 된 마이어스는 조용히 생각했다.
‘드벨라니아의 말이 사실일까?’
데온 하르트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드벨라니아와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정보 전달에 가까운 그것은 의심에 불을 끼얹어주는 행위라 봐도 무방했다.
[따지고 보면 네 부관은 ‘데온 하르트를 의심했기 때문에’ 죽은 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아?]내용 자체는 새로울 것 없었다. 전부 이미 다하르가 연회장에서 말했던 것들이니까. 드벨라니아의 말을 모두 믿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난 지금까지 마왕님께 충성을 다해왔는데.’
지금은 죽고 없는 군단장들이 머릿속에 스친다. 5군단장 외에는 빈 군단장의 자리를 내버려 두고 있는 현 상황 또한 떠오르고.
8군단장과 10군단장이 죽기 전, 명령을 내렸던 데온 하르트는 이제 확실한 의심 대상이다.
그렇다면 마왕님은?
[마왕님은 다하르가 무언가 말을 하려 할 때 목을 조르셨어. 결국 걘 끝까지 말을 뱉지 못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