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92
292. 나의 행복을 묻지 않기에(2)
드벨라니아는 다하르가 생각보다 더 똑똑했노라 말했다. 덕분에 놓치고 있던 부분을 짚을 수 있게 되었다고. 유능한 부관을 두었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마왕에 관한 의심을 논했다.
[솔직히 어느 마족이 감히 마왕님을 의심하겠어. 그 녀석이 독특한 거지. 난 아마 그때 마왕님도 당황했을 거라고 생각해. 분노를 표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인 게 아닐까.]부관에 대한 칭찬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하르는 이미 떠났는데 그에 대한 칭찬이 이제 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마이어스는 그보다는 제가 부관을 통해 했던, 마왕에 대한 의심을 확인시켜주는 발언에 주목했다.
‘만약 다하르의 외침과 행동이, 드벨라니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서서 무언가 하는 일은 없어도 마왕에 대한 충성심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군단장이 눈빛을 어둡게 가라앉혔다.
***
데온 하르트는 어지간해서는 자지 않는다.
이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알만한 사람’에 속하는 로프티 기사단원들은….
“꺼져.”
“아니, 대장! 얼굴 보자마자 하는 말이라는 게 고작 그겁니까?!”
“오랜만에 봤는데!”
“너무하십니다!”
데온의 방을 점령했다.
독설에 상처받았다며 미친개들이 방바닥에 드러눕는다. 쉴 생각으로 문을 열었는데 난장판인 상황을 마주한 데온이 곧장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왜 온 건데.”
“대장 독을 드셨다면서요?”
“그놈의 새끼를 직접 족쳤어야 했는데!”
아, 벌써 거기까지 소식이 들어갔나.
당장이라도 쫓아낼 듯하던 데온이 멈칫한 순간을 들개들은 놓치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걱정 어린 손길이 그를 향해 쏟아졌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일단 안색은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만지작만지작.
내상에 관한 의료지식이라고는 조금도 없으면서 뭘 이렇게 더듬어대는 건지. 입을 벌린다고 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서툰 걱정이라는 것을 알기에 일단은 얌전히 있어 주던 데온이 뺨을 쭉 잡아 늘이는 손길에 인상을 팍 쓰고 단검을 빼 들었다.
“죽을래?”
“으아아아! 대장 진정하십쇼!”
“자꾸 그렇게 단검부터 들고 보는 습관을 들이시면 안 됩니다!”
“이 단검 이름이 진정이다, 개새끼들아.”
“그놈의 망할 단검 이름!”
미친개에겐 매가 답이지.
잠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대장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이렇게 쫓아내시다니!”
“닥치고 빨리 나가.”
“잠은 꼭 주무….”
쾅! 문을 닫았다. 시끄럽게 떠들던 목소리가 끊기고, 정적이 찾아왔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걱정이라는 것을 아니 진심으로 뭐라 할 수도 없고.
장난기를 담은 언사와 달리 걱정 가득하던 눈을 떠올린 데온이 입술을 달싹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 왜 날 찾아온 거지?”
뒤를 돌았다.
창문 밖에 둥둥 떠 있는 작은 인영이 시야에 들어온다. 데온은 피곤함에 잘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리리넬.”
창문이라는 비공식적인 루트로 찾아온 것을 보면 단순히 연회장에서의 사건 때문에 걱정되어서 그런 것만은 아닐 테고.
가늠하는 듯한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제 이름이 불렸다는 것이 기쁜 듯 리리넬이 활짝 웃는다. 해맑은 인사가 튀어나왔다.
“안녕하세요, 데온 님!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와.”
기다렸다는 듯 그녀가 안에 폴짝 뛰어든다. 방음을 신경 쓰는 건지 언제나 열려 있던 창문을 닫는 행동에 데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평소의 리리넬이었다면 데온의 불편한 기색에서 무언가 눈치챘겠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들고 온 소식에 정신이 팔린 그녀는 데온이 손을 들어 코와 입을 가리는 것을 주의 깊게 살피지 못했다.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하고 싶은 듯 빙글 돌아선 그녀가 생글생글 웃었다.
“말씀하신 대로 르웨체 측 인간을 잡았어요!”
……결국 했구나.
그래서 창문으로 온 거였어. 이건 ‘비밀리’에 내린 임무였으니까.
이리도 빨리 찾아온 것을 보면 명령을 듣자마자 바로 움직였겠지. 마왕과 데온 하르트 사이에서 망설임 없이 데온 하르트를 선택한 것이다.
손으로 하관을 가리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덕분에 순간적으로 드러난 표정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으니.
무너진 표정은 수습했지만, 숨이 막힌다. 의아한 리리넬의 시선을 의식한 데온은 한번 숨을 고른 뒤, 손을 내리고 미소 지었다.
“……빠르네.”
“네! 장수인 것 같았어요. 백인장이라던데요?”
어색한 명칭이다. 르웨체의 병력 체계는 제국과 확실히 다르군.
그래도 책에서 본 적은 있다. 백인장이… 병사 백을 다루는 위치였지. 지위 명칭이 노골적이라 이해하고 외울 것도 없었다.
병사 백을 다루는 장수라…….
‘대체 어떻게 잡은 거야?’
전쟁이 한창인 것도 아니라 그런 놈들은 밖에 잘 나다니지 않을 텐데.
황당한 시선이 리리넬을 향했다. 시선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한 건지 리리넬이 어깨를 쫙 폈다.
……그래, 이 정도면 확실히 자신만만할 만하네.
“수고했어.”
그만큼 숨이 막히지만, 데르니반을 뛰어넘는 유용한 패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차라리 데르니반처럼 내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고작 인사말 하나에 기뻐하는 그녀를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보다가 다시 코와 입을 가리고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더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말씀만 하세요!”
“그 녀석을 이용해서 르웨체 측의 영웅들 규모를 알아 오도록 해.”
툭.툭.툭.
하관을 가리지 않은 다른 손이 허벅지를 두드린다. 기억 속에서 개인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졌던 마도구를 떠올린 데온이 고개를 들어 개발자를 보았다.
“저번에 내가 인간계로 출정 나갈 때, 네가 배웅을 핑계로 들고 왔었던 일방적 화면 전달 통신석 있지?”
데온 하르트의 얼굴을 보지 못해 징징거리는 7군단장의 부탁도 들어줄 겸, 본인 개인의 욕망도 채우기 위해 만들었던 유용한 마도구.
상대의 얼굴만 제 쪽으로 보이게 하는 동시에 영상 기록 능력도 있던, 무려 두 개의 마법이 담긴 유용한 도구였지. 그걸 고작 내 얼굴을 보고 저장하겠다고 사용했으니, 역대급 재능 낭비라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리리넬도 잊지 않았던 듯 어깨를 움찔했다.
“네…네! 그건 왜…?”
“그걸 이용하면 좀 더 르웨체 내부의 세세한 사정을 알 수 있겠지. 고작 백인장의 말만 믿을 수는 없잖아?”
고문을 하든 뭘 하든 결국 적이고 사실 확인이 어려운 이상 거짓말을 뱉을 가능성이 높다. 그럴 바엔 차라리 놈의 몸에 마도구를 부착해 들여보내고 이쪽에서 직접 확인하는 편이 낫지.
리리넬이 대충 계획을 눈치챈 듯 탄성을 뱉는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어서 좋네. 데온은 싱긋 웃었다.
“녀석이 안에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마도구를 몸에서 떼어내고 도망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 정도는 네가 알아서 하겠지?”
“물론이에요! 지금 당장…!”
“잠깐.”
동작 그만.
뭐가 이렇게 급해? 아직 말도 다 안 끝났… 이 상황 저번에도 겪었던 것 같은데.
리리넬도 찔리는 듯 시선을 피해 눈을 데굴데굴 굴린다. 데온은 미간을 꾹꾹 누르고는 성격 급한 마족이 또 사라지려 들기 전에 재빨리 말을 꺼냈다.
“여유가 된다면 성에 있을 진의 주축을 알아내는 것도 한번 시도해봐.”
저번에 산국의 성에서 전투를 벌일 때, 성 내를 헤집고 다니는 소수의 부대가 있었음에도 끝까지 진이 깨지지 않은 것을 보면 어지간히 튼튼한 곳에 꽁꽁 숨겨져 있는 것 같고, 왕국의 기밀 중의 기밀일 것이 분명한 진의 주축을 고작 백인장이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테지만.
여유가 될 때 시도해봐서 나쁠 것은 없겠지.
“……만에 하나 찾는다면 부수거나 흐트러트리도록 해.”
“이번에도 비밀리에 해야 하는 거죠?”
“그래.”
“알겠어요! ……그런데.”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듯 굴던 리리넬이 멈칫하더니 데온을 돌아본다. 걱정 어린 눈이 데온을 훑고, 이어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방을 채웠다.
“몸은… 괜찮으세요?”
“……그래.”
다들 자꾸 몸 상태를 묻는데, 애초에 용사를 걱정한다는 게 말이나 되냐고. 어지간한 건 그 자리에서 다 낫는데 말이지.
떨떠름한 대답에 리리넬이 실례했다며 서둘러 걸음을 뗀다. 그러나 채 창문을 넘기도 전에, 데온의 목소리가 그녀를 붙잡았다.
“그러고 보니 잠시.”
“……네?”
“가기 전에 여기에 어떤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는지 확인만 해줬으면 하는데.”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주머니에서 드벨라니아가 준 머리끈을 꺼내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리리넬이 데온의 머리와 끈을 번갈아 보더니 눈을 빛내며 살폈다.
답은 금방 나왔다.
“아무것도 없어요! 쓰셔도 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이건 그냥 드벨라니아의 마지막 선물이자 끝을 고하는 인사이며, 도발인 모양이다.
“묶어드릴까요?”
“됐어. 나가봐.”
“네…….”
축 처진 리리넬이 창문을 넘었다.
***
아무래도 데온 하르트는 제게 정이 떨어진 모양이다. 오늘도 데온 하르트에게 외면당한 단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슬슬 과감하게 움직여도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데온으로부터 느껴지는 분위기로 그가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있어 ‘단’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겠지.
그러므로 이 기회를 빌려 생각한다.
‘난 이미 목표를 달성했어.’
단은 데온 하르트가 재앙이 되어 인간계를 엉망으로 만드는 꼴을 보았다. 그러니 마땅히 그에게 도움이 되어야 계산이 확실해질 터.
연회장에서조차 으르렁거리던 두 군단장이 떠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사이가 좋지 않은 3군단장과 4군단장의 관계가 극에 치달아 일이 터지게 된다면.’
데온 하르트가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리라.
누구도 시키지 않은 위험한 모험이라는 것을 안다.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지금이라면.
***
2일째부터는 연회를 겸한 2차 사냥대회 기간이기에 결과 집계일까지 자유롭게 사냥하면 될 뿐, 정해진 사냥 시간이 따로 없다.
정해진 것은 군단별 마물 사냥 영역 정도일까.
마력의 낭비가 심해서인지 마왕은 첫날 때 사용했던 마력석을 통해 인식하는 방법이 아닌 각 군단에게 대충 특정 위치에 동그라미를 친 지도를 내밀었다. 문제는 말 그대로 ‘대충’ 표시했기에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군단끼리 마주치고 충돌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나중에 집계할 때 엉뚱한 군단에게 공로가 갈까 봐 군단장들은 협의 끝에 각 소속 군단의 숫자를 사냥한 마물에게 새겨놓기로 추가 규칙을 걸었다. 1군단원들이 미친 사냥뿐만 아니라 숫자를 일일이 새기는 노동까지 하게 생겼다며 우는 소리를 냈으나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 구역에서 사냥당한 마물에 숫자 3이 새겨져 있었다고?”
“예. 경계가 모호한 위치도 아니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데…….”
이델리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3군단에게 화가 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무턱대고 분노하기엔 그녀는 아실드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첫날에 우리가 그 녀석들의 사냥감을 빼앗으려고 했다지만, 그건 그놈들 눈앞에서 한 행동이었어. 그것에 대한 복수를 하려면 똑같이 우리 눈앞에서 마물을 사냥했겠지.”
그전에 아실드는 남의 구역을 침범하고 사냥감을 빼앗을 놈이 아니기도 하고.
아실드와 자주 싸운 만큼 그의 성격을 잘 알기에 오히려 확신할 수 있다. 이델리아는 접은 부채로 턱을 톡톡 두드렸다.
“이거… 조사가 필요하겠는데.”
“조사요?”
“그래. 이건 아실드가 의도하고 명령한 게 아니야. 어느 발칙한 3군단원이 멋대로 행했거나….”
……우리 사이가 틀어지길 바라는 누군가의 소행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