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93
293. 나의 행복을 묻지 않기에(3)
범인을 잡는 것은 금방이었다.
***
둘째 날에 데온은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전날 일이 많아서 쉬려는 것일 테지.
‘혹은 불편한 시선을 예상하고 피했거나.’
마왕은 데온 하르트의 빈자리를 의식하는 마족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아마 이곳에 데온이 입장했다면 수많은 시선을 받아야 했을 터.
‘물론 평소에도 마족들의 주목을 받긴 했지만… 지금 이건 다르지.’
이를 보니 쉬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의 여파가 선명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이곳에 나왔다면 은연중에 불편한 시선을 받아야 했을 테니까. 지금만 해도 연회장 전체에 묘한 긴장감이 은은하게 깔려 있지 않나.
‘긴장을 풀라고 열어준 연회에서 오히려 더 긴장을 하는 상황이라니.’
거의 다 온 상태에서 이게 뭐람. 마왕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를 어쩌나, 데온. 앞으로 활동하기가 힘들어지겠는걸?’
앞으로의 일을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데온 하르트를 향한 의심을 어느 정도 지워야 한다. 이를 데온이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금하긴 하지만….
‘뭐… 나도 슬슬 인내심이 닳아서 말이야. 마력 없이 생활하는 것도 답답하고.’
마왕은 가능하다면 이번에도 슬쩍 한 손 보탤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마왕’조차 의심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함부로 나서서 감쌌다간 역풍을 맞게 되겠지.
하여, 소극적인 위치에서 그를 도울 방법을 생각한다.
생각의 밑바탕이 되는 전제는 욕심을 부리지 않아 현실적이었다.
‘데온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솔직히 불가능해.’
마족들은 바보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게 어디까지나 미미한 의심에서 그치도록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뭐라고?”
3군단장 아실드가 불러 자리를 옮긴 곳에서 갑작스럽게 마주한 상황에 마왕이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이 녀석이 감히 이간질을 시도했습니다.”
“군단 간의 불화를 일으키려 했어요. 3군단의 영역에서 멋대로 마물을 사냥하고 숫자 4를, 4군단의 영역에서는 3을 새겼죠.”
“……하.”
상황을 파악하듯 아실드와 이델리아를 오가던 시선이 조금 내려가 엉망이 된 인간을 담는다.
주인은 어디에 두고 혼자 빨빨 싸돌아다닌 건지, 데온 하르트가 직접 데려온 인간 – 단 – 이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재밌는 짓을 벌였네.”
두 군단장의 사이를 조금 오해해서 벌어진 참사로군.
3군단장과 4군단장의 사이는 마냥 최악인 것이 아니다. 굳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빗대자면 ‘조금 격한 티격태격’ 정도에 가깝달까. 특별히 사이가 틀어질 만한 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성격이 안 맞아서 자연히 그렇게 됐을 뿐이니까.
뭐 때문에 이리 급하게 움직인 건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평소의 녀석답지 않게 성급했다.
‘평소에는 유들유들한 태도로 군단장들과 잘만 어울리더니.’
선도 아슬아슬하게 잘 지켰으면서.
뭐, 어쨌든 덕분에 데온 하르트를 향한 의심을 덜 방법이 떠올랐다. 역안이 불길한 기운을 담고 남모르게 빛났다.
“이 녀석은 데온 님의 부하인데, 아무래도 데온 님을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두 군단장의 눈에 깃들어 있던 의심이 덩치를 키우는 것이 보인다. 마왕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하다는 듯 올라간 손이 관자놀이를 짚었다.
“난 지하에서 이 녀석을 심문할 테니, 너희 둘은 가서 데온을 불러와.”
“알겠습니다.”
왜 사용인이 아닌 저희를 시키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실드가 이내 알아서 납득한 듯 고개를 숙인다.
대충 ‘용사여서’, ‘총지휘관이어서’ 따위의 이유를 붙여 납득했겠지. 고개를 돌려 이델리아를 보았다. 내키지 않는 듯 망설이던 그녀가 시선이 마주치자 눈을 도르륵 굴리더니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였다.
“그럼.”
두 군단장이 사라지고, 마왕은 사용인을 불렀다.
안에 들어오던 마족이 단의 상태를 보고는 흠칫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왕은 턱짓으로 단을 가리키고는 명령했다.
“들고 따라와.”
“네…네.”
사용인이 안쓰럽게 몸을 떨며 단을 들쳐멘다. 그의 떨림은 마왕이 가는 방향이 지하라는 것을 알게 되며 더욱 커졌으나, 용케 단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떨어뜨리면 죽는다… 떨어뜨리면 죽는다…….’
아무도 모를 주문을 외우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계단을 밟던 사용인이 어느덧 지하에 도착한 것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열 걸음 정도 앞서 나간 마왕이 그를 돌아보고 있었다.
“대충 아무 데나 넣어 놔.”
“네.”
사용인은 시킨 대로 착실하게 빈 곳에 인간을 내려놓았다. 이제 뭘 하면 되냐는 의미를 담아 마왕을 보자 기다렸던 명령이 돌아왔다.
“이제 돌아가.”
“네!”
살았다!
사용인이 후다닥 위로 사라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솔직한 태도에 황당하다는 듯 그 뒷모습을 보던 마왕이 다시 단을 내려다보았다. 복잡한 시선이 단과 마주쳤다.
‘……이걸 어떻게 운을 떼야 할까.’
놈이 일을 벌인 타이밍이 좋았다.
전날 일이 있고 바로 다음 날 이렇게 일이 터졌으니까. 이 녀석 하나로 의심을 덜어낼 길이 열린 것이다. 원래 의심과 소문은 초장에 잡아야 하는데, 아주 잘 된 셈이지.
다만 이 녀석이 죽으라는 말에 납득할 수 있을지……. 가만히 그를 보다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네가….”
“제가 다 안고 가겠습니다.”
“…….”
마왕이 무슨 말을 할지 안다는 듯 단이 먼저 선수를 쳤다. 순간 마왕의 표정이 흐트러졌다.
단은 보란 듯이 씩 웃어 보였다.
“애초에 일이 이렇게 되면 혼자 다 안고 갈 생각이었습니다.”
애초에 들킬 가능성이 적지 않은 계획이었다. 들켰을 경우의 수조차 계산에 넣지 않았을 리가 없잖은가.
“‘데온 하르트’는 그저 부하를 잘못 둔 탓에 애꿎게 의심을 산 인간이 될 테죠.”
“…….”
말 없는 마왕의 태도에서 단은 제가 가로챈 말이 마왕이 하려던 말이었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게 아니었다면 다른 말을 꺼냈겠지.
‘누가 마왕 아니랄까 봐.’
상황이 이렇게 되니 곧바로 목숨을 이용할 생각부터 한다. 미리 같은 생각을 하고 움직여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상당한 반발심이 들었으리라.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런 저를 곁에 둔 데온 하르트의 안목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테지만….”
“……그건 최근 너와 거리를 둔 그의 태도로 어느 정도 무마가 가능하겠지.”
“맞습니다.”
“하…….”
이 녀석도 만만치 않게 제정신 아닌 놈이었군. ……하긴, 마계에 와서 멀쩡히 잘 살 정도의 인간이 제정신일 리가 없지. 마왕이 한숨 같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이걸로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으니 된 건가.’
잘됐네.
다만 한 가지, 단이 착각한 것이 있는 것 같지만……. 마왕은 입을 다무는 것을 택했다. 이쪽이 더 이득이니까.
그저 속으로 생각했다.
단은 잔꾀를 좀 쓸 줄 알아도,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미숙한 녀석이라고.
‘아마 이 녀석은 데온 하르트가 자신을 마음에 두지 않았으리라 판단하고 행동한 것이겠지.’
그게 아닐 텐데 말이야.
마왕은 3군단장과 4군단장의 관계 계산에 착오를 내고, 지금 이렇게 행동한 단의 태도에서 확신을 얻었다.
‘뭐,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흘러가고 있으니 됐지만.’
데온이나 이 인간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죄책감이나 미안한 기색 하나 없는 마왕의 얼굴에 여유가 서렸다. 한숨 돌렸다는 듯한 표정에, 이를 보던 단이 입을 열었다. ‘다만’.
“9군단장 좀 불러주실 수 있겠습니까?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서.”
“……뻔뻔하네.”
감히 군단 간 불화를 불러오려 한 죄인 따위가.
“하지만 들어주실 거잖습니까.”
“그건 그래.”
언제 목소리를 낮췄냐는 듯 마왕이 싱긋 웃었다.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괜히 거절했다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탄이 되게 하느니 들어주는 편이 낫지.
단도 이를 예상한 듯 담담한 태도였다.
‘마왕이 데온 하르트를 버린다면 모를까.’
그게 아닌 이상 들어줄 수밖에 없다.
마왕이 확답을 주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힐긋 계단에 시선을 던지고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서, 데온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면서 설명을 들은 듯, 뒤에 아실드와 이델리아를 대동한 그는 상당히 분노한 표정이었다.
‘아.’
그리고 단은 직감했다.
‘한 대 맞겠네.’
***
오늘은 방에서 좀 편히 쉬려 했건만, 군단장들이 찾아왔다.
전날보다 의심이 더 짙어진 눈으로 마왕님께서 부르신다며 앞장서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얼핏 그들의 눈빛에 경계마저 서려 있어 의아해하던 도중, 이델리아가 떠보듯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그저 의심하고 반응을 확인하기 위한 설명이었지만 전후 사정을 알기에는 충분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데온은 분노했다.
“멋대로 움직이다니…….”
시키지도 않은 짓을 잘도 하는군.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잇새로 새어 나왔다. 가만히 반응을 살피던 이델리아가 흠칫하고, 앞장서던 아실드가 흘긋 뒤를 돌아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이 가는 방향을 눈치챈 데온은 걷는 속도를 높여 지하로 향했다.
뒷모습에서도 느껴지는 흉흉한 기운에 멈칫거리던 두 군단장이 서로를 한번 마주 보고는 서둘러 그 뒤를 쫓았다.
그리하여 지금.
감정이 극에 달아 눈에 보이는 게 없어 보이는 데온의 상태를 확인한 마왕이 뒤따라 들어오는 군단장들을 확인하고 멈칫했다.
‘보아하니 사고 칠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다 물려야 하나?’
이러다 말실수하기라도 하면 큰일 난다.
서둘러 군단장들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할 때, 데온이 먼저 움직였다.
쩌억!
“……!”
단의 고개가 돌아갔다.
이렇게 행동할 줄은 몰랐던 듯 군단장들이 눈을 크게 뜨고, 제 걱정이 쓸모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마왕이 기가 찬 웃음을 뱉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냅다 단의 뺨을 후려친 데온은 주변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단만 노려보며 씹어뱉듯 말했다.
“미친 새끼.”
“…….”
단은 말없이 입안에 고인 피를 뱉었다.
살벌한 분위기가 흘렀다.
얼어붙은 채 눈만 굴리던 아실드가 흘긋 이델리아를 보았다. 그녀도 저와 같은 것을 느낀 듯 눈에 이채를 띠고 있었다.
‘……이건 확실히 진심이다.’
두 군단장은 확신했다. 한기를 담고 나직이 흘러나온 목소리는 분명 진심을 담고 있었다.
둘의 눈에서 경계가 사라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마왕이 나가라는 손짓을 보낸다. 확인할 것도 다 확인했겠다, 그들은 미련 갖지 않고 곧장 등을 돌렸다.
계단을 올라가며 슬쩍 돌아본 이델리아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또다시 손을 올리는 데온 하르트였다.
“…….”
단은 다시 손을 올린 데온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를 위해 움직이다 이렇게 된 건데, 당사자에게 맞아 입안은 터지고 뺨은 그새 부어올랐음에도 차마 그를 원망할 수 없었다.
그의 눈을 보았으니까. 데온 하르트는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너무 슬퍼서 분노하고 있었다.
‘나를 잃을까 봐.’
슬픔이, 구할 수 없는 상황을 읽은 절망이 분노로 승화했다.
계산 미스였다. 데온 하르트가 더 이상 큰 쓸모가 없을 단에게 아직도 정을 붙이고 있었을 줄이야.
가만히 보고만 있자니 올라간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이내 주먹을 꾹 쥐고 툭 떨어진다. 한풀 꺾인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