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315
315. 2차전 시작이다, XX들아(4)
제아무리 식량을 산처럼 쌓아 두고 화살을 잔뜩 구비해 두었다 해도 마법 억제 진이 없는 이상 전부 무용지물이다.
‘영웅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지.’
영웅들이 이곳에 뭉쳐 있지 않는 이상 달라질 것은 없다. 데온 님께서 주축의 위치를 어떻게 알아낸 건진 모르겠지만 그걸 이쪽에 들킨 이상 르웨체의 패배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충격적인 사태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병사들 대신 가장 앞에 나선 영웅의 공격을 팽팽하게 늘린 실로 막아낸 드벨라니아가 아예 상대의 무기를 휘감아 당기며 씩 웃었다.
“안녕-?”
“…….”
곧바로 무기를 포기하고 물러선 상대가 창과 같은 긴 무기는 불리하다고 판단했는지 근처에 나뒹굴던 검을 집어 든다.
드벨라니아는 그대로 휘둘러 오는 검의 경로 밖으로 훌쩍 빠지며 그사이에 설치한 실을 점검했다.
“왜 그렇게 적극적이야. 어차피 죽을 텐데.”
“…….”
“르웨체는 졌어. 알잖아?”
너희의 목숨 줄이 사라졌다. 심지어 이곳에는 마법에 특화된 11군단이 있다. 여기서 더 싸워 봤자 의미 없는 발버둥일 터.
순간 기운이 빠진 듯 상대의 손에 들린 검이 서서히 내려간다. 그것도 잠시, 놈의 눈빛에 의지가 서리고 무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다면 군단장의 목숨이라도 가져가야 덜 억울하겠지.”
“……기세는 좋네.”
이제야 제 상관의 위치를 파악한 듯 몇몇 군단원들이 이쪽으로 온다. 드벨라니아는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손안의 실을 가지고 놀며 명령했다.
“왕을 찾아. 귀찮게 굴 것 없이 머리만 가져오면 돼.”
허공에서 영웅과 시선이 진득하게 얽혔다.
“싸우는 데 방해되니까 멀리 떨어지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군단원이 사라진다. 그들을 막으려던 영웅의 움직임은 드벨라니아에 의해 제지되었다.
상대를 막아서는 동시에 또 하나의 실을 몰래 설치한 드벨라니아가 거미줄에 걸려든 먹잇감을 보듯이 눈을 잔인하게 빛내며 빙글빙글 웃었다.
“나를 앞에 두고 한눈을 팔다니, 자존심이 좀 상하는데.”
“…….”
“으음, 영웅들은 원래 이렇게 말수가 적은가? 그간 영웅들을 꽤 마주쳤다고 자부하는데, 매번 나만 떠드는 것 같더라고. 지금만 해도 그렇고.”
“……적과 말을 섞어 봤자 손해만 볼 테니 당연하겠지.”
느릿하게 말을 꺼낸 녀석이 주위를 바쁘게 훑는다. 실이 설치된 곳 근처를 위주로 살피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영웅답게 뭔가 위화감을 느낀 모양이지.
‘그렇게 살펴 봤자 어지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겠지만.’
어디 한번 놀아 볼까.
어차피 왕의 머리를 취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까지 시간이 좀 남는다. 가볍게 비웃은 드벨라니아가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
보일 듯 말 듯 한 격차가 후반에는 큰 차이를 보이듯이, 언뜻 팽팽해 보이던 전황은 시간이 조금 지나자 금세 한쪽으로 기울었다.
2군단장의 공격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위협에 뒤로 한 걸음 물러선 영웅이 흠칫- 급히 걸음을 멈춘다. 급박하게 멈춘 탓에 몸이 휘청였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뒤로 피하는 대신 고개를 숙여 위험을 피한 그가 시선을 내렸다. 언제 설치된 건지, 보이지 않는 실이 아킬레스건을 조금 파고들어 있었다.
이를 본 마족, 드벨라니아가 싱글 웃었다.
“조금 더 뒤로 갔으면 잘렸을 텐데, 아쉽네.”
“…….”
“역시 영웅은 귀찮단 말이야.”
감이 좋아.
뿐이랴. 한 번 위치를 파악한 실에는 두 번 걸려들지 않는다. ‘재능’의 영역에 두뇌 또한 포함되기 때문이겠지. 참으로 귀찮은 상대다.
‘어떡할까.’
좀 더 놀까, 여기서 끝낼까.
눈을 굴리며 생각하는데, 통신석에 반응이 왔다. 한 손으로 통신석을 꺼낸 드벨라니아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들어오는 공격을 늘어뜨린 실 끝을 밟고 쭉 당겨 막으며 통신을 연결했다.
“어. 말해.”
– 국왕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뚝.
국왕을 찾았으니 일은 거의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더 들을 것도 없지.
공기를 가르듯 대각선 아래서부터 베어 올리는 검을 급히 피한 뒤, 끊은 통신석을 다시 품에 넣고 영웅을 보았다.
“이제 끝내야겠네.”
여기서부터 데온 하르트가 전투하는 곳까지 얼마나 걸리더라. 그리 멀진 않았던 것 같은데.
상황에 맞지 않는 태연한 생각을 하며 왼쪽 새끼손가락에 감고 있던 실을 당겼다. 사방에 깔려 있던 실이 일제히 존재감을 드러내며 영웅을 속박했다.
팔다리는 물론이고 뺨과 목까지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듯 붉은 실선이 새겨진다. 여기서 무리해 움직인다면 필시 신체 어딘가가 잘려 나갈 터.
“…….”
죽음을 직감한 듯, 검을 쥐고 있던 영웅의 손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금방이라도 놓칠 듯 말 듯 하면서 끝끝내 쥐고 있는 검이 의외라, 슬쩍 그를 본 드벨라니아는 이내 상대의 목 부분에 연결된 실을 고쳐 쥐었다.
“급하게 영웅들을 끌어모아서 그런가… 확실히 전에 비해 영웅들 질이 떨어지긴 하는데…….”
“…….”
“뭐, 그래도 재밌었어.”
정신력 하나는 인정해 주지.
실을 당겼다. 영웅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고, 주위가 크게 술렁였다.
“……!”
믿고 있던 영웅의 패배에 주춤하던 병사들이 저들끼리 시선을 교환하더니 덤벼든다.
정면으로 맞붙기는커녕 조금 전 영웅과 저의 전투에 휘말려 죽은 놈들도 있는 주제에, 승산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도망치는 대신 공격하다니. 르웨체의 군사력이 많이 커졌다 싶더니만, 확실히 이 정도의 정신력이면 전성기의 제국군에 비교해도 될 것 같다.
‘그보다…….’
드벨라니아는 아무렇지 않게 적들을 쓸어버리며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서 리리넬이 마법으로 적들을 골라 죽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 보자…….
‘각 성마다 존재하는 영웅은 넷. 개중 하나는 내가 죽였고.’
리리넬의 발치에 널브러져 있는 저 인간이 영웅인 것 같으니 남은 건 둘인가. 아, 저 멀리 이델리아가 막 영웅 하나 죽이는 것이 보인다. 이제 남은 건 하나.
통신석을 들었다.
“이델리아.”
– 바쁜데, 왜?
“남은 영웅 처리를 부탁해도 될까? 하나 남았는데-.”
– 네가 직접 가지 않고?
“난 할 일이 있어서.”
먼 거리를 넘어 이델리아와 시선이 마주쳤다.
의중을 파헤칠 듯 잠시 이쪽을 뚫어져라 보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돌린다. 달려드는 적을 처리하며 대충 답했다.
– 뭐… 그래.
“어디에 있는지는….”
– 궁이겠지, 뭐.
“역시 알고 있네.”
무려 영웅이라는 고급 인력이 왕의 곁을 비울 리 없지. 남은 한 명은 거기에 있으리라.
통신이 끊기고 이델리아가 즉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자리를 벗어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드벨라니아가 이내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눈동자만 굴려 위를 보았다.
실이 걸린 손가락이 까닥 움직이고, 리리넬이 급히 마법으로 방어막을 쳤다.
카각!
“……!”
방어막이 긁히는 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무슨…!”
순간 불길함을 느껴 방어막을 쳤건만, 화살이나 비수 따위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저를 해치려 했다. 즉, 인간 측의 공격이 아니라는 의미이기에. 잠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하니 방어막이 긁힌 자리를 보던 리리넬이 고개를 휙 돌려 드벨라니아를 보았다. 태연자약한 표정을 마주한 귀여운 얼굴이 매섭게 일그러졌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죠?”
“무슨 짓이긴.”
드벨라니아는 싱긋 웃으며 보란 듯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배신자의 앞잡이를 처단하는 짓이지.”
***
드벨라니아는 판단했다.
군단장들을 죽여 나가는 데온 하르트도, 이를 알면서도 방관하고 덮어버린 마왕에게도 죄가 있다. 하여 그녀는 고민 끝에 데온 하르트와 마왕 모두를 적으로 규정지었다.
하지만 혼자서 둘을 상대로 무얼하겠는가. 마족들에게 있어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인 마왕은 물론이고 데온 하르트조차 용사이기에 혼자서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마왕과 데온 하르트, 둘 모두에게 불만이 있을 법한 이들을 찾았다.
‘데온 하르트에게 군단장을 잃은 8군단과 10군단, 그리고… 부관을 잃은 12군단장.’
이들이라면 제 상관을, 부관을 죽인 데온 하르트에 대한 악감정은 당연할 테고 이를 그냥 덮어버린 마왕에게도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가 ‘마왕’이기에 참고 있는 것이겠지.
드벨라니아는 그러한 감정을 건드렸다. 반응을 끌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음은 정했어?] […….] [뭐, 여기 왔다는 것 자체가 마음을 정했다는 뜻이겠지. 여기까지 온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거 알고 있지?]그들은 생각이 있으면 창고로 찾아오라는 말에 시간 맞춰 도착했으며.
[그럼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설명할 테니, 잘 들어.]묵묵히 계획을 들었다.
목적은 아주 간결했다. ‘마왕과 용사를 죽이는 것.’
8군단을 대표해서 온 이가 못내 불안한 듯 물었다.
“죄송하지만 마왕을 죽이는 것이 정말 가능합니까? 우리에게 있어 마왕은….”
“신과 같은 존재지. 하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해.”
하여간 전 군단장을 닮아 가지고 부정적이긴.
이런 녀석에게 필요한 건 확답이다. 드벨라니아는 단호히 말했다.
“최근 들어 마왕이 마력을 감추기 시작한 건 알고 있지?”
“……그러고 보니…….”
“그래. 내가 기억하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는 이가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한다는 건 뭔가 이유가 있다는 거 아니겠어? 그 이유가 될 만한 것이야, 뻔하지.”
설마.
“……마력…부족…?”
“정답. 평소 마왕은 마력을 막 쓰는 경향이 있었는데, 데온 하르트를 살리며 가진 마력의 9할을 소모했음에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지. 슬슬 부족해질 만도 해.”
제아무리 마왕이라지만 마력이 무한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마왕이 숭배받는 이유 중 하나에는 마주하기만 해도 느껴지는 압도적인 마력량이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해 볼 만해.”
마력 없는 마왕은 인간계의 이빨 빠진 호랑이에 빗댈 수 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끝으로, 드벨라니아는 본론에 들어가겠다는 듯 모인 이들을 둘러보았다.
“마왕과 데온 하르트를 공격하는 데 가장 방해되는 이들은 바로 군단장이야. 그들은 마왕이나 데온 하르트에게 진심으로 충성하고 있거든.”
마왕은 그렇다 쳐도, 데온 하르트에게는 왜 충성하는 건지.
리리넬을 떠올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살짝 찌푸린 것도 잠시, 드벨라니아는 지도의 각 성을 손끝으로 가볍게 쓸었다.
“뭐… 그렇다 해도 일단은 인간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우선이니 성을 함락하는 것부터 해야겠지. 어렵진 않을 거야.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테고. 이건 이미 무너진 성에 확인 사살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걸 어떻게 확신하시는 겁니까?”
“영웅들이라도 잔뜩 주둔해 있다면 모를까, 대부분의 영웅은 ‘이곳’에서 데온 하르트가 상대할 예정이거든. 세 나라의 주된 전력이 성을 방비하는 데 쓰인 것이 아니라 데온 하르트를 죽이는 것에 주력했다고 하면 좀 더 잘 와닿으려나.”
이길 수밖에 없는 격차인데, 설마 그것조차 못한다고 징징거리지는 않겠지.
8군단의 대표와 10군단을 대표하여 온 녀석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이쪽을 보더니 조금 전 짚었던 자리에 시선을 둔다. 데온 하르트가 영웅들과 전투할 예정인 장소.
진즉부터 그곳에 시선을 둔 채 각 성과의 거리를 계산하던 12군단장 마이어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느 성과도 거리가 비슷한데….”
“맞아. 그러니 잘됐지. 우리가 어느 성에 배치될지 모르잖아? 이곳을 집합 장소로 잡는 거야.”
어차피 데온 하르트를 죽이려면 이쪽으로 와야 하니까.
“그럼… 성을 함락하고 바로 이곳으로 모이면 되는 건가? 데온 하르트와 맞붙기 전에 모여서 군단장들을 처리한다거나.”
“아니. 이동 전에 다른 군단장들부터 죽이도록 해. 성을 함락한 직후가 바로 그들이 가장 방심하고 있을 시점일 테니까. 모이는 건 그다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