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316
316. 2차전 시작이다, XX들아(5)
그러니 다른 군단장들을 죽이고 이곳에 모이면 된다. 물론 데온 하르트와 마주칠 장소를 약속 장소로 잡는 건 말도 안 되고….
다들 알아서 눈치껏 잘 모일 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드벨라니아는 데온 하르트가 전투를 벌일 예정인 위치 바로 근처를 툭툭 두드렸다.
여기가 약속 장소라고 못 박는 행동에 자리에 모인 이들의 시선이 그녀의 손끝에 모였다.
“하지만 아무리 방심했다 해도 군단장은 군단장이니 전투가 길어질수록 역부족인 상황이 올 거야. 그때는 그냥 무시하고 약속 장소로 와. 성에서 군단장의 수를 줄인 것만으로도 선방한 거고, 그러지 못해도 괜찮으니까 무리할 필요 없어.”
“꼬리를 달고 와도 괜찮은 겁니까?”
“꼬리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좀 어색하지만… 그래. 먼저 처리하고 온 이가 있을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전투에서 밀려 이쪽으로 온 마족이 있다면 힘을 합쳐 상대할 수도 있으니까.”
후자의 경우라면 양쪽 다 적에게 밀려 도망 온 상황이다. 힘을 합친다 해도 적 또한 그만큼 불어날 터.
썩 미덥지 않은 듯 10군단의 대표가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그럼에도 드벨라니아는 당당했다.
전쟁이라는 것은 수학 공식대로 돌아가지 않으니까. 1+1이 2가 될 수도, 4가 될 수도, 혹은 0이나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전쟁이다.
“그러니 전투에서 서로 협업하는 걸 연습해 두도록 해. 시너지만 잘 맞으면 단순한 머릿수 이상의 힘을 낼 거야. 마음 같아서는 군단까지 동원해서 연습하고 싶지만 그건 너무 시선을 끄니 곤란하고,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끼리 힘을 합쳐 전투하는 걸 연습하면 되겠네.”
군단장인 마이어스는 말할 것도 없고, 나머지 둘도 각 군단의 대표이니 전투는 확실히 잘하겠지. 여기 모인 이들의 손발만 잘 맞아도 반은 먹고 들어갈 것이다.
“내가 적당한 장소를 알아볼게. 그냥 속 편하게 1군단장과 데온 하르트처럼 군단장 간의 가벼운 대련 정도로 포장하고 대놓고 하고 싶지만 우린 1대1 대련을 주로 하는 게 아니어서 말이야.”
1대1의 소소한 만남은 군단장들 사이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지만, 군단을 대표하는 이들이 셋 이상 모여 대련하는 경우는 드물다. 여러 의미에서 눈길을 끌 테지.
적당한 장소를 찾는 것도 일이고, 들키지 않게 빠져나와 모이는 것도 일이다. ……좀 귀찮겠네. 드벨라니아는 가볍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무작위로 팀을 나누어 2대2 대련을 진행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이후에 셋이서 손발을 맞춰 보기도 해야 하니 3대1 대련도 진행할 거야. 물론 나머지 한 명이 고생을 좀 해야겠지만.”
“넷이서 맞춰 보는 것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으음… 적당히 주 공격 루트 및 포지션 정도만 맞춰 보고, 셋이서 돌아가며 협공 연습하는 것에 기대 봐야지. 그리고…….”
슬쩍 눈을 굴리며 머릿속에 떠오른 정보를 훑었다.
2군단은 실을 이용한 함정 설치, 8군단은 방패, 10군단은 기마, 12군단은 창이 주력이었지.
“……맞춰 볼 게 더 있었네.”
“?”
적어도 2군단의 실에 다른 이들이 걸린다든가 하는 바보 같은 일은 없어야 한다. 아군끼리 엉켜서 자멸한다니, 쪽팔려서 편히 눈감지도 못할 터.
“각자 제 군단에 대한 정보는 잘 알고 있겠지? 전투 중 군단을 지휘하여 협공하는 것도 서로 충돌하는 일 없게 구두로나마 조율할 거야.”
“……그전에.”
묵묵히 듣고 있던 12군단장 마이어스가 입을 열었다.
부관을 잃은 이후 지나치게 무거워진 분위기를 두른 채,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드벨라니아를 똑바로 보며 느릿하게 말을 늘어놓는다.
“우리가 완전히 준비를 마치기 전에 먼저 데온 하르트와 조우할 가능성은 없나?”
그녀의 말대로 군단장들을 상대하기 역부족이어서 데온 하르트가 전투를 치르는 곳 근처에 모이게 된다면, 다른 군단장들을 모조리 정리하고 병력을 추스르기 전에 먼저 전투를 끝내고 나온 그와 마주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일이 엉망이 될 텐데.
“글쎄.”
조금의 어긋남도 바라지 않는 단호한 시선이 부담스러울 법한데도, 드벨라니아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 많은 영웅들을 상대해야 하는 데온 하르트보단 우리가 먼저 성을 함락하고 그쪽으로 가는 게 더 빠를걸. 군단장들 간의 전투는 공성전과 다르게 쉬는 시간 없이 돌아갈 테니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테고. 아마 그가 나왔을 때는 모든 전투가 끝난 상태겠지.”
인간계도 ‘용사’를 상대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모양이던데, 그렇게 빠르게 끝날 리 없다. 그녀는 감히 확신했다.
“그러니 괜한 걱정 말고 우리의 목표에 집중하도록 해.”
목적에 방해가 되는 군단장들을 죽이고, 영웅들과의 전투로 힘이 빠졌을 데온 하르트를 죽이고, 그렇게 야금야금 아껴둔 힘으로 마왕을 죽인다.
우리는 이쪽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
그렇게 지금에 이르러, 리리넬을 처리해야 할 우선순위로 낙인찍고 공격한 드벨라니아는 가볍게 눈을 굴려 주위를 훑었다.
방해꾼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4군단장 이델리아는 제 부탁에 따라 혹시 모를 걸림돌인 영웅을 치우러 갔고, 지휘관이 없는 3군단과 4군단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완벽하게 2군단과 11군단의 충돌이 된 상황.
‘이대로 리리넬을 처리하고 이델리아를 처리하면 깔끔하겠네.’
드벨라니아의 손짓에 보이지 않는 실이 허공을 수놓는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리리넬이 마법으로 자리를 옮기고, 제 머리 위에서 공격 마법을 쓰는 그녀를 올려다본 드벨라니아가 재빨리 자리를 피하며 낮게 혀를 찼다.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사람 머리만 한 돌덩이가 내리꽂혔다.
‘마법 억제 진을 부순 게 오히려 손해였네.’
저 활개 치는 꼴 좀 보라지. 근접전을 피하기 위해 공중에 있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얄밉다.
‘공중전에 대한 방안이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저 또한 한곳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시야가 좁아졌던 모양이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닥였다. 실이 뻗어 나가고, 제 안의 마력이 동조했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투명한 말뚝이 허공에 꽂히고, 거기에 실이 휘감긴다. 보이진 않아도 직감적으로 쓸데없는 수작을 부린다는 것을 눈치챈 리리넬의 마법과 촉수가 견제하듯 매섭게 내리꽂혔으나, 드벨라니아는 이 모든 걸 피하고 막으며 차근차근 함정을 만들었다.
‘가장 방해되는 것은 마법을 이용한 이동이니까.’
어디로 이동하든 위험하게 만들면 그만이다. 그러다 유일하게 안전한 공간인 이쪽으로 오면 나야 상대하기 수월하니 좋고.
드벨라니아의 손가락이 움직일수록 리리넬의 움직임에 제약이 가해진다. 어느샌가 머리 위까지 점령한 실에 머리카락 일부가 잘린 리리넬이 안전한 공간을 찾아 눈을 굴렸다.
‘어디로 이동해야 할까.’
위로?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드벨라니아의 근처로?
위로 이동하는 편이 안전하겠지만 그 철저한 마족이 머리 위로 고작 한 겹의 실만 설치했을 리 없다. 이동한다면 아예 높게 이동하는 편이 낫겠지. 잘못 이동해서 신체 어딘가가 떨어지는 것은 사양이다.
문제는 아직 상공에 눈꽃스틱의 영향이 남아 있다는 것일까. 그 강력한 냉기에서 전투가 가능할 정도로 몸을 지킬 수 있을는지.
‘……내 상대는 드벨라니아뿐만이 아니야.’
강한 보온 마법을 걸면 해결되겠지만 마력을 여기서 낭비해서는 곤란하다. 이미 저는 그녀와의 전투에서 계산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마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결정했다. 리리넬은 드벨라니아를 노려보았다. 이내 공중에서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고, 드벨라니아로부터 한 걸음 떨어진 곳에 나타난 순간.
파바박!
바늘 같은 자잘한 날붙이가 둘을 향해 쏟아졌다.
“이건 또 뭐…!”
그냥 두기엔 위협적인 속도라 기다렸다는 듯이 실을 휘두르던 드벨라니아도,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이동하자마자 날카롭게 세운 촉수로 상대를 찌르려던 리리넬도, 급히 행동을 멈추고 자리를 피했다.
드벨라니아가 기껏 공들여 설치했던 실은 그 끝을 쥐고 있는 주인이 자리를 옮기며 느슨해진 지 오래였다.
“……쯧.”
실을 회수한 드벨라니아가 날붙이가 날아온 곳을 보았다.
“조금만 더 천천히 올 것이지.”
“그것참 미안하네. 뜻대로 움직여 줄 걸 그랬나 봐.”
산뜻한 목소리가 긴장감 가득한 공기를 가로질렀다.
두 군단장의 충돌로 우왕좌왕하던 3, 4군단이 기어이 본인들의 지휘관에게 연락을 취한 듯, 예상보다 빨리 도착한 이델리아가 생긋 웃는다. 그 재수 없는 꼴에 다소 날카로운 음성이 질문의 형태를 띠고 따지듯 던져졌다.
“영웅은 처리했어?”
“그래. 연락을 받고 좀 무리해서 죽였지.”
“왜 그랬어. 느긋하게 와도 됐는데.”
“누구 좋으라고?”
여유를 가장한 미소 아래, 날카로운 말들이 팽팽한 긴장을 담고 오간다.
생글거리는 이델리아를 보던 드벨라니아가 보란 듯이 눈꼬리를 휘었다.
“방해하지 마. 난 마왕님보다 데온 하르트를 우선시 여긴 배신자를 처단하는 것뿐이니까.”
“갑자기 왜 이러나 했더니…….”
이것 때문이었어? 듣고 있던 리리넬이 슬쩍 표정을 구겼다.
내가 데온 님을 따른다는 건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일이지만, 이러한 노골적인 공격이 가해졌다는 것과 그 이유로 ‘마왕님보다 데온 하르트를 우선시 여긴다’는 것을 내세웠다는 건 문제가 된다.
그간 심증이 넘쳤다 해도 확신 없이는 이렇게 대놓고 움직일 리 없으니까. 어디서 확증이라도 얻은 모양인데…….
‘……설마, 데온 님께서 내린 ‘그 명령’이 흘러 들어간 건가?’
군단장들을 죽이라는…….
리리넬의 표정이 심각해지려던 찰나, 다소 냉소적인 목소리가 말을 받아쳤다.
“핑계 한번 재치 있게 잘 대네. 하지만 포장을 예쁘게 한다고 해서 전부가 아니지.”
“거짓말 아닌데?”
“그래. 거짓말‘은’ 아니겠지.”
썩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이 리리넬에게 스치듯 닿았다.
그도 잠시, 다시 고개를 돌려 드벨라니아를 눈에 담은 이델리아가 조소했다.
“리리넬이 배신자라면, 넌 반역자잖아.”
“…….”
“내 언젠가 네가 일을 칠 줄 알았지.”
“……하.”
하하, 아하하하!!
어수선한 하늘에 웃음소리가 퍼졌다. 갑작스러운 웃음에 모두의 시선이 모인 가운데, 드벨라니아가 어깨까지 떨어가며 웃음을 흘리더니 이내 뚝 그치고 고개를 들었다. 싸늘하게 식은 눈동자가 이델리아를 노려보았다.
“이래서 정보를 다루는 녀석은 귀찮다니까.”
이런 곳에서까지 눈치가 빠를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
저 미친 새끼가 기어이 일을 쳤구나.
리리넬과 드벨라니아의 충돌 소식을 듣고도 긴가민가하며 달려온 이델리아가 상황을 직접 목격하기 무섭게 떠올린 생각이었다. 펼쳐진 부채가 감정적 동요를 감추듯 하관을 가렸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
이래 보여도 정보를 다루는 군단장이라 눈치가 빠른 편이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드벨라니아가 마왕에게 적대감을 가졌다는 것도, 무언가 일을 꾸미듯 바삐 돌아다녔다는 것도.
속셈이야 굳이 파헤치지 않아도 뻔했다. 데온 하르트와 마왕 모두에게 척을 질 생각이겠지.
‘멍청하긴.’
마왕에게 반기를 들고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델리아는 마왕에게 있어 마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마왕이 긴 시간을 살아오며 익힌 그 모든 것을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호랑이가 할 수 있는 공격에는 이로 물어뜯는 것만이 아닌 앞발을 이용한 공격 또한 포함된다. 발톱은 매섭고 휘두르는 앞발의 힘은 강하니, 어찌 이빨을 못 쓴다 하여 우습게 볼 수 있을까.
더해서, 마왕의 마력이 얼마나 줄어든 건지조차 확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마력을 감췄다’는 사실 하나에 기대 반기를 든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건지.
‘차라리 용사나 마왕, 둘 중 하나의 편을 드는 것이 나았어.’
둘 중 그나마 덜 싫은 이를 골라 그의 비호 아래에서 상대를 적대하는 편이 더 나았다.
그래서 이델리아가 마왕의 편이 되기로 결정한 것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