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318
318. 2차전 시작이다, XX들아(7)
“빈말이라도 좋은 상황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죠.”
엘피디우스가 태연히 답했다.
“일단 르웨체의 건을 듣고 진의 주축 쪽 방비를 단단히 해 두긴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이쪽 마족들은 정면 돌파를 할 요량인 듯합니다.”
몇 번 땅굴을 파다가 제대로 당하더니 아예 힘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술수를 쓰지 않는 순수한 무력에 의존한 공성전. 그렇기에 더욱 상대하기 까다로워 그는 지그시 주먹을 움켜쥐었다.
“조만간 성벽을 넘거나 뚫거나, 둘 중 하나는 할 것 같더군요. 언제 연락이 끊기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당황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본적으로 1군단이 너무 강하다. 어째서 그들이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달까.
게다가 그렇지 않아도 버거운 상황에서 대체 무슨 명령을 들은 건지, 얼핏 광기마저 비칠 정도로 눈을 형형히 빛낸 채 맨손으로 성벽을 기어오르는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악귀가 올라오는 듯해 막아야 할 병사들이 도리어 흠칫 물러설 정도였다. 기세에서 밀린 것이다.
– 1군단이 있으니… 확실히 힘드시겠군요.
“……1군단만 문제였다면 희망이라도 보였겠지요.”
7군단은 또 어떻던가. 단검을 든 놈들은 이전의 데온 하르트와 그의 기사단이 사용하던 전투 스타일을 사용해 이쪽의 사기를 낮추고 있다. 안 그래도 밀리는 상황에서 사기까지 급격히 죽어 가고 있으니 여간 곤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놈들을 떨쳐 내기 위해서는 상체를 내밀어 아래쪽으로 창을 찔러야 하는데, 간간이 날아오는 12군단의 투창이 이러한 행동을 견제하고 있으니……,
“에스페라네스가 도왔다면 형편이 조금 나았을까…….”
절로 한탄이 나왔다.
– 그들이 거절했으니 어쩔 수 없지요.
제국은, 아니 세 동맹국은 에스페라네스에서 용병을 지원받는 것에 실패했다. 에스페라네스는 거절하는 것을 넘어 본격적인 2차전이 터지기 전에 제국에 지원했던 용병들마저 회수해 갔고. 기간 연장에 대한 요청조차 거절했더랬다.
‘……패배가 확실한 전투이니 그럴 만도 하지.’
에스페라네스는 자국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여기니까.
머리로는 이해한다. 그래, 이해하지만…….
“우리가 무너지면 저들이라고 무사할까.”
냉소적인 비아냥이 나왔다.
각오했음에도 막상 절망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게 되니 어쩔 수 없는 원망이 피어오른다. 가해자는 따로 있는데, 보다 만만한 방관자를 원망하는 꼴이라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낀 엘피디우스는 더 말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화제를 돌리려는 듯, 통신기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그러고 보니 영웅들 측과 연결된 통신이 끊어졌는데, 그쪽은 괜찮습니까?
도르륵 굴러간 금안이 한쪽에 놓인 통신기를 향했다. 여전히 연결되어 있는 모습.
“……이쪽은 멀쩡합니다.”
– 그렇다면 통신기를 가지고 간 이쪽의 영웅만 죽은 모양이군요. 하필이면 그때 통신기도 부서진 모양이고……. 영웅들의 상황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여전히 상황은 팽팽하게 흘러가는 것 같더군요.”
– 그런가요……. 밀리거나 패배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해야겠군요.
“……네.”
문제는 그 팽팽한 상황의 선두에 알레테아가 서 있다는 것이지만.
삐끗하면 죽는 상황.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에 엘피디우스는 말없이 시선을 내렸다. 꽉 쥔 주먹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알레테아, 제발.’
입 밖에 내지 못한 애원이 심장을 옥죈다.
적당히 뒤에서 깔짝거리기만 해도 뭐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텐데. 아니, 이미 황족이 그 위험한 곳에 갔다는 것만으로도 차고 넘치게 칭송받을 텐데, 어째서 굳이 가장 앞서서 공격하는 건지.
상대는 용사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기적인 수준이었다.
‘충분히 할 만큼 했잖아.’
몇 번이고 통신기에 대고 속삭였다. 이쯤이면 충분하니 뒤로 물러서라고. 다른 이들에게 맡기라고.
못 들었을 리가 없는데, 알레테아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본인의 고집을 이어 갔다.
더 말을 보탰다가 전투에 방해가 될까, 엘피디우스는 그저 침묵한 채 돌아가는 모든 상황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 어서 데온 하르트를 죽였다는 소식이 들어와야 할 텐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동생의 죽음을 발판 삼아 완성된 계획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선세대의 노력과 희생을 금방 잊어버린 채 현실을 낭비할 후세대 따위보다 당장 내 동생이 더 소중할진대.
이러한 속내를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아는 젊은 황제는 그저 제 동생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타국 군주의 말에 건조한 표정으로 긍정을 뱉었다.
***
마족들의 공세를 막느라 이를 악문 인간 측처럼, 마족들 또한 뚫릴 듯 뚫리지 않는 성에 독기를 품은 상태였다.
원거리 공격은 기본에 간간이 성문 사이로 튀어나와 아군 진영을 엉망으로 헤집어 놓고 돌아가는 영웅까지. 거기에 가끔 기발한 계책이 더해져 실행될 때마다 마족들은 한바탕 휘둘리곤 했다. 열받을 수밖에 없었다.
– 르웨체는 진을 깨부수고 마법으로 진입했다던데, 우리도 그러면 안 돼?
– 맞습니다! 우리도 그러면 안 되는 겁니까? 저쪽만 편하게 들어가는 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참다못한 6군단장과 7군단장이 통신석에 대고 외쳤다.
그간의 전투로 인한 짜증에 쉼 없이 내리는 눅눅한 진눈깨비까지 더해져 끝내 터진 모양이지. 이해 못 할 수준은 아니다. 총지휘관인 데온 하르트가 전투에 돌입한 지금, 그 역할을 임시로 넘겨받은 1군단장 제이카르가 담담히 통신석을 들었다.
“그건 운이 좋았던 거다.”
– 우리라고 운이 좋지 못할 거란 확신은…!
“우선, 성에 존재하는 마법 억제 진의 주축이 한 개가 아니라는 걸 짚고 시작하고 싶군. 그걸 모조리 알아내기 위해서는 주술사의 협조가 필요하지. 내부에서 들키지 않고 성을 전체적으로 돌아 줄 이 또한 필요하고.”
주술사는 당연히 인간이고, 들키지 않고 성을 돌아 줄 이 또한 인간이어야 한다.
“한창 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금 마계에 도움을 줄 인간은 없을뿐더러, 지금 우리가 넘고자 하는 성 측에서 르웨체의 소식을 듣지 못했을 리 없으니 성 자체의 경계 또한 최상으로 올라가 있겠지. 특히 주축과 관련된 부분은 더할 테니 쉽지 않을 거다. 용케 위치를 알아낸다 해도 잠입해서 모든 경계를 뚫고 그걸 부숴 줄 인재 또한 없는 상황이고.”
르웨체 쪽은 무려 ‘군단장’인 드벨라니아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녀석이 있었다면 진즉에 성문을 열었겠지.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무엇보다, 이제 와서 그걸 진행할 시간도 없다.”
통신을 위해 잠시 허리춤에 꽂아 두었던 검 손잡이를 쥐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할 시간에 공격이나 더 하도록.”
– 네에, 네.
– ……쯧.
불만스럽지만 납득은 한 듯 두 군단장이 툴툴거리면서도 물러난다. 제이카르는 곧장 통신석을 품에 넣고 튕기듯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카앙! 기습을 위해 나온 영웅과 무기가 맞부딪쳤다.
“……무슨 힘이…!”
영웅의 무기가 천천히 뒤로 밀리며 목소리 또한 떨린다. 잇새로 씹어뱉듯 나오는 말에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제이카르는 멀찍이서 불만스레 통신석이나 만지작거리고 있는 7군단장 실루아에게 명령했다.
“성문이 열렸다! 닫히기 전에 들어가!”
병력이 나와 이쪽의 진영을 헤집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성문을 열어야 한다. 저쪽도 이게 약점이라는 것을 아니 기습적으로 튀어나와 군단장을 피해 공격하고 들어가는 방법을 사용했겠지만, 역시 몇 번 겪으면 뭐든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영웅이 나오기 무섭게 몸소 달려 나가 상대의 발목을 묶어 둔 제이카르가 눈을 사납게 빛냈다.
“넌 나와 놀지.”
“……젠장, 문 닫아! 빨리!”
이쪽이 나와 있는 동안 문을 막는 병력이 있다지만 이렇게 작정하고 달려들면 버티기 힘들다.
영웅이 급히 고개를 돌렸… 다가 급히 몸을 뒤로 뺐다. 피한다고 피했는데 그새 베인 듯 목에서 아린 통증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깊게 베인 모양인지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를 손으로 눌러 막는데, 비꼬는 듯한 음성이 던져졌다.
“한눈을 팔다니 간도 크군.”
“……그러게.”
1군단장을 상대로 시선을 떼다니, 나도 참 멍청하지.
그래도 성문 쪽 상황은 확인했다. 썩 희망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날랜 7군단을 선두로 마족들이 닫히고 있는 성문 틈에 몸을 비집어 넣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게 문을 막아선 다른 영웅과 그 영웅을 향해 달려드는 7군단장이었던가.
“…….”
상처를 누른 손이 피에 흠뻑 젖은 듯 축축하다.
영웅은 이 필사적인 전투가 처음부터 패배로 확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모든 건 그저 패배를 유예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 역시도.
알고 있었음에도 정작 그 순간이 가까워지니 씁쓸하다. 내가 여기서 목숨 바쳐 싸운다면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슬슬 피가 부족한 듯 어지러운 시야를 분간하기 위해 눈에 힘을 주며 슬며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마족이라 그런가, 확실히 상처가 아무는 게 더디군.”
“…….”
카앙!
“어딜 가는 거지? 난 여기에 있는데.”
7군단 측에 지원을 가려는 듯, 무시하고 지나치는 녀석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아무렇지 않게 검을 들어 막은 1군단장이 이쪽을 돌아본다. 영웅은 보란 듯이 무기를 까닥였다.
“여기서 피가 더 모자라지기 전에 어서 끝내자고.”
“……지금 상태의 너 따위는.”
언제 돌아보았냐는 듯, 다시 고개를 돌린 제이카르가 태연히 가던 길을 걷는다. 대놓고 하는 무시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달려드는 영웅의 등 뒤로 그림자가 졌다.
나직한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내 부관만으로도 충분하니.”
“……큭!”
“난 7군단이나 지원하러 가는 것이 옳겠지.”
아슬아슬하게 성문 틈새를 오가며 전투를 치르는 7군단장 실루아와 한 영웅이 보인다. 잘못 닫았다가 7군단장마저 안으로 들일까, 성문이 닫히는 속도가 더뎌진 상태. 거기에 또 하나의 영웅이 추가되는 것을 본 제이카르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무기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못 가 발뒤꿈치에 식지 않은 피가 튀었다. 누구의 것인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뻔했다.
‘……뭐가 그리도 필사적인지.’
나라를 위해, 인간계를 위해 싸웠으나 역사에도 기록되지 못하고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덧없는 죽음이다. 그저 모든 일이 끝난 후 전사자의 머릿수로 뭉뚱그려 숫자로만 기록되겠지.
영웅이라 해도 다를 것 없다. 지금은 수없이 많은 영웅들이 존재하고, 그만큼 우수수 죽어 나가는 시기니까.
땅을 박찼다. 막 실루아를 공격하려던 지원 영웅을 거칠게 쳐 내며 제이카르는 입매를 비틀었다.
“둘 다 이쪽에 맡기고, 넌 들어가서 성문을 열도록.”
“네에, 네. 알겠습니다.”
실루아가 성 내로 몸을 던졌다.
그 모습을 그냥 두고 볼 리 없는 영웅이 급히 뒤쫓으려 했으나, 제이카르가 뒤통수에 검을 휘둘러 멈춰 세웠다. 네놈들의 상대는 이쪽이라는 것을 못 박는 행동에 두 영웅 중 누군가 헛웃음을 흘렸다.
“혼자서 둘을 상대하겠다고?”
“불가능할 것 같진 않아서. 그리고, 누가 혼자랬지?”
“……?”
누군가의 움직임을 좇듯 제이카르의 눈동자가 위로 올라간다. 본능적으로 그게 제게 있어 위험이라는 것을 눈치챈 영웅이 급히 몸을 비틀고, 바로 옆으로 창이 내리꽂혔다.
“……12군단장.”
“후우.”
영웅의 기습에 흐트러진 전열을 정비하고 1군단장의 부관에게 인수인계하느라 한발 늦게 도착한 12군단장, 마이어스가 바닥에 박힌 창을 뽑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