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319
319. 2차전 시작이다, XX들아(8)
5군단장 데르니반은 산국의 성벽을 넘는 것에 성공했다.
쓸데없는 밑의 병력이나 다른 군단장들을 믿느니 직접 움직이기로 한 것이 통한 것이다.
갈고리가 달린 화살을 쏘아 걸어 성벽을 기어올랐다. 눈치챈 산국의 병사들이 어떻게든 이를 떨쳐내고자 별의별 수를 다 쓴 탓에 중간에 떨어지기도 했으나, 바닥에 닿기 전에 또 하나의 갈고리 화살을 쏘아 매달려 부상을 피했다.
늑대를 기반으로 한 육체는 힘이 좋고 날렵했기에 성벽을 오르는 데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앞선 경험을 바탕으로 아예 공격이 한쪽에 집중되기 전에 성벽을 박차 옆으로 몸을 날리며 또 다른 갈고리 화살을 걸어 자리를 옮겨 오르는 것을 반복하자, 이를 지켜보던 6군단장 벨리탄이 나직이 감탄을 뱉었다.
“쟨 무슨 거미 출신 마족이라도 되나.”
처음에 버벅거리고 추락하던 것도 한순간일 뿐, 얼마 못 가 빠르게 적응하더니 이내 성벽을 폭넓게 이동하며 평지처럼 종횡무진하는 것이 무슨 처음부터 여기에 특화된 마족 같다.
성벽 위의 인간들이 저놈 하나에게 우르르 끌려다니다 보니 동선이 엉키며 이쪽을 향한 견제가 눈에 띄게 약해져 확실히 이득이긴 하다만.
‘뭐, 덕분에 공격하기 수월해졌으니 된 건가.’
마침 쟤도 성벽을 넘었고.
데르니반이 성벽 위에 발을 디딘 것과 동시에, 한쪽에서 굉음이 울렸다.
“저긴 또 뭐…….”
소음을 좇아 움직인 눈동자가 놀라움을 담고 커진다.
9군단장 트로버가 성벽에 사람이 드나들 만한 크기의 구멍을 내는 데 성공했다. 맨손으로 이루어낸 성과였다.
“흐음…….”
주먹을 쥐었다 펴며 몸 상태를 확인한 트로버가 구멍 너머의 당황한 낯짝들을 향해 씨익 웃었다.
“빌어먹을 매복에 대한 복수다, 이 자식들아!”
그렇지 않아도 썩 좋지 않은 몸 상태였는데, 된통 당한 탓에 더 안 좋아졌다. 아직도 온몸이 시큰거리는 데다 데르니반의 눈초리는 또 어찌나 짜증나고 쪽팔리던지.
이를 악물고 휘하의 군단원들에게 명령했다.
“뭐하냐? 길이 생겼잖아. 들어가!”
“와아아아!!”
그간의 답답함을 쏟아내듯 시원스러운 돌격이 이어졌다.
뚫린 성벽 너머, 우왕좌왕하던 병사들 사이로 영웅이 모습을 드러낸다. 구멍을 틀어막듯이 마족들의 앞을 가로막고 일정 수준 이상 다가오는 녀석들을 가차 없이 베어 넘기는 모습에 진입하던 마족들의 움직임에 망설임이 서렸다.
그에 트로버가 나서려던 찰나,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음? ……우왁!”
쿠웅!
지지부진한 전투에 누구보다 답답해하던 군단장, 벨리탄이 트로버의 바로 앞에 떨어져 내리며 도끼로 영웅의 머리를 겨냥해 내리찍었다. 그렇지 않아도 덩치 크고 힘도 센 마족의 체중을 실은 공격에 가까스로 검을 들어 막은 영웅의 팔이 힘없이 뒤로 밀렸다.
“큭!”
이러다 제 검에 베일 판이다. 버티는 것을 포기한 영웅이 곧장 몸을 뒤로 뺐다. 흉흉한 도끼 끝이 아슬아슬하게 가슴 쪽 옷자락을 갈랐다.
뒤쪽에서 다른 군단장이 왁왁 소리치는 것이 보였다.
“벨리탄! 깔릴 뻔했잖냐!”
“설마 내가 착지점 하나 계산 못 하려고.”
군단장이 둘이나……. 지원은 언제 오는 거지? 영웅은 다급히 눈을 굴렸다.
성에 남아 있는 영웅 중 한 명은 성벽 위에서 5군단장을 상대하고 있을 테고 한 명은 국왕 전하의 곁을 지키고 있을 테니 그렇다 쳐도, 남은 한 명은 손이 남지 않나. 척 보기에도 이쪽이 더 위급하다는 걸 알 텐데.
‘어디서 농땡이를 피우고 있는…… 아.’
왔다.
성벽의 구멍을 막는 병사들의 수가 조금 전보다 더 늘어난 것이 느껴진다. 더해서 기습을 할 요량인지 아직도 투닥거리고 있는 두 군단장의 뒤쪽으로 다가가는 동료 영웅이 보였다.
소란과 긴장이 가득한 공간에서 군단장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보다 대화는 이쯤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일단은 전쟁 중이잖냐. 다 이겼다 해도 방심하는 건 곤란하지.”
“그건 그렇지? 뒤쪽의 쥐새끼도 상대해야 하고.”
“……!”
뒤쪽에서 접근하던 영웅이 급히 물러섰다. 무시무시한 주먹이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를 가르며 코끝을 스쳤다.
도대체 힘이 얼마나 강하면 풍압이 이 정도인 건지. 눈을 조금 키운 채 이쪽을 보는 영웅의 시선을 다르게 해석한 듯, 트로버가 씩 웃으며 으스댔다.
“놀랐냐? 이게 바로 기척 탐지 마법이다.”
“그놈의 마법 타령…….”
아무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벨리탄이 커다란 도끼를 고쳐 쥐었다.
트로버는 저쪽을 상대할 생각인 듯하니 난 이쪽을 상대하면 되겠지.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대를 향해 이 재미없는 공성전을 어서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을 듬뿍 담아 말했다.
“빨리 끝내자고.”
***
“후우… 됐다!”
장치를 작동시켜 성문을 연 7군단장 실루아가 두 팔을 번쩍 들며 경쾌하게 외쳤다. 발치에 널브러진 영웅의 시신과 그 주변을 가득 메운 인간 병사들의 시신을 배경으로 하기에는 썩 어울리지 않는 외침이었으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대신 움직일 때마다 발에 걸리는 영웅의 시신을 힐긋 내려다보고, 낮게 중얼거렸다.
“마지막 남은 영웅은 황제의 곁에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
뭐, 상관없나.
발로 시신을 지익 밀어낸 뒤, 품에서 통신석을 꺼내 들었다.
“여기는 7군단장. 방금 성문을 열었습니다. 영웅이 장치를 지키고 있어 상대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 여기는 1군단장. 지금 막 12군단장과 함께 영웅 둘을 처리했다.
“그럼 남은 영웅은…….”
– 없지. 하나는 그 전에 죽였으니까.
황제만 찾아 죽이면 끝나는 상황이다. 영웅도 없으니 그 정도는 휘하의 병사들에게 맡겨도 충분할 터.
끝났다! 인간계 정복이 곧이라는 것이 슬슬 와닿아 실루아는 가볍게 입꼬리를 올린 채 제 군단원들에게 황제를 찾으라는 명령을 내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다른 군단장들과 합류하기 위해서였으나…….
스텝이라도 밟듯 가볍게 움직이던 걸음은 이곳, 성 함락의 또 다른 주역들을 발견하고 우뚝 멈췄다.
“……?”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실루아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저기…….”
검과 창이 매섭게 공격을 주고받는다. 이 전투에 휘말린 이들은 인간 마족 할 것 없이 허무하게 죽어 나가고, 저릿한 살기가 공기를 잠식했다.
이건 대련이나 장난 따위가 아닌 진짜 전투다. 서로를 죽이기 위한 살기 넘치는 공격에 잠시 눈을 깜빡인 그녀가 조용히 물음을 던졌다.
“이건 또 무슨 상황입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영웅을 해치웠다던 두 군단장, 1군단장 제이카르와 12군단장 마이어스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
제국의 성문은 열렸고, 영웅은 죽었다. 군단장들이 딱히 더 나설 필요도 없는 상황.
산국 또한 마찬가지다. 성벽을 넘은 이상 군단장이 적극적으로 나서든 나서지 않든 끝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끝이 눈에 보이자 몇몇 군단장들의 눈이 조금 전까지 아군이었던, 타 군단장을 향했다. 그 시선 끝에 어렴풋이 살기가 묻어났다.
산국의 성벽 위에 올라 저를 막아서던 영웅의 미간에 화살을 꽂아 넣은 데르니반이 시선을 내렸다. 막 두 영웅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트로버와 벨리탄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렇게 되면 성 내에 남은 영웅은 하나뿐. 그 정도는 혼자서 처리할 수 있다.
판단이 내려지자 몸은 곧장 움직였다. 느릿하게 떨어진 걸음이 트로버를 향한다. 트로버 역시 이를 느낀 듯 아닌 척 은근히 주먹을 말아쥐며 바짝 긴장하고. 거리가 서서히 좁혀지는가 싶던 순간, 가까이에 있던 8군단의 공격이 데르니반을 겨냥해 쏟아졌다.
9군단도 아닌 8군단이다. 날렵하게 공격을 피한 데르니반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왜?”
제국의 성문을 넘은 제이카르는 끝을 직감하면서도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움직였다. ……움직이려 했다.
직접 황제를 잡으러 갈 생각이었는데.
12군단장, 마이어스가 공격을 감행해 왔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일제히 1군단을 공격하는 12군단과 10군단까지.
일이 끝난 후 다른 군단장을 죽일 계획이긴 했지만 그걸 저들이 알 길은 없다. 그렇다는 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인데…….
날카롭게 찔러 들어오는 창을 쳐 낸 제이카르가 그를 향해 의문을 뱉었다.
“왜?”
***
12라는 숫자를 부여받은 군단장 마이어스는 마왕에게 충성했다.
소심한 성격과 별개로 그는 언제나 마왕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으며, 이를 부관인 다하르가 떽떽거리면서도 최선을 다해 뒷받침해 주곤 했다.
그런데.
그 대가가 뒷받침하던 부관의 죽음이라면.
내가 마왕을 따라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군단장을 잃은 8군단과 10군단도 마찬가지였다.
충성의 보답으로 죽음이 돌아왔다. 우리의 충성은 배신당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2군단장의 속삭임에 기꺼이 찬동했다.
***
비는 미친 듯이 쏟아지고, 진의 압박은 여전하다. 현실인지 환각의 것인지 모를 핏물은 집요하게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 붙잡아 피로가 쌓이는 속도를 높였다.
데온 하르트는 시야를 가리는 물기를 닦아내고 이마에 들러붙은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깔끔하게 묶고 왔던 머리칼은 오랜 난투에 풀려 엉망으로 목덜미에 들러붙은 지 오래였다.
갑작스럽게 드러난 얼굴에 알레테아를 비롯한 영웅들이 멈칫한 사이,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생각했다.
‘생각과 실제 움직임의 간극에는 빠르게 적응하긴 했는데…….’
그래 봤자 어디까지나 적응일 뿐, 본래 속도를 낼 수 없어서 그런지 영 전투가 시원스럽지가 않다. 마치 온몸에 모래주머니를 매달고 싸우는 기분이랄까.
당장 최대한으로 움직임을 빨리해 봤자 평소 본인의 평균 공격 속도조차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 심히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전력이… 반 토막 정도 났으려나.’
다시 짓쳐들어오기 시작하는 공격을 피하고 쳐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가장 선두에서 핵심 전투원으로서 싸우는 알레테아 데세르트 하나 제대로 치우지 못하는 것만 봐도 제 전력이 얼마나 깎인 건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사실 알레테아 데세르트가 만만한 영웅이 아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래, 데세르트. 황족, 그것도 황태제라는 고귀한 존재가 지금 인간계를 통틀어 가장 위험한 곳에 있다니.
단순히 그뿐이었다면 그저 어리석은 이의 치기 어린 행동 정도로 비웃고 넘어갔겠지만, 지금의 그녀는 전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일 정도로 완전히 달라진 상태다.
어쩌면 달라진 게 아니라 그저 이런 모습을 숨기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고.
“……하.”
날카로운 검이 빠르게 제가 있던 자리를 베어 올린다. 마치 선황 에도아르도를 떠올리게 만드는 강렬한 기세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선 데온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
“전하께서는 충분히 할 만큼 하셨습니다.”
별 쓸데없는 질문을 다 한다는 듯, 알레테아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말했을 텐데요. 영웅이 되었다고요. 이것 말고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할까요?”
“그게 아니라, 황녀 전하라면 영웅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는 건 일도 아니잖습니까.”
“용사를 죽인다는 목적은 최선을 다해야 조금이나마 가능성을 엿볼 수 있죠. 전력 하나하나가 부족한 상황에서 영웅이 되었다는 것을 숨긴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일까요.”
“…….”
“그리고, 황녀가 아니라 황태제라 했을 텐데요.”
뒤에서 들어오는 다른 영웅의 공격을 몸을 틀어 피하던 데온이 어깨에 틀어박히는 화살에 잠시 멈칫했다. 알레테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심장을 노려 검을 내지르며 말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직접 온 덕분에 원수의 머리가 떨어지는 것을 두 눈으로 볼 가능성이 생겼잖아요?”
“……하, 젠장.”
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