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320
320. 너는 누구의 편인가(1)
짜증 나네. 부러 검 끝에 화살을 맞은 어깨를 내어 준 데온이 상대를 걷어차듯 밀어내고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검이 빠져나간 자리에 화끈한 고통이 들어차는가 싶더니 삽시간에 흔적도 없이 아문다. 핏물을 닦아내듯 그 자리를 가볍게 쓸고 화살대를 잡았다.
“귀찮게…….”
용사를 잡겠다고 참 열심히도 준비해 왔다. 진뿐만 아니라 이렇게 화살 하나조차 평범하지 않으니.
일반적인 화살촉이라면 평범하게 뽑혀 나왔을 텐데, 힘주어 당기자 주변의 살점까지 함께 뜯겨 나간다. 이윽고 물고기 낚을 때나 사용하는 갈고리 형태의 흉악한 촉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이지.”
싱긋 웃으며 그것을 바닥에 내던졌다. 전투화를 신었음에도 밟는 게 꺼려지는 듯, 내딛던 걸음을 멈칫하는 영웅이 보였다.
“무서운 화살촉을 다 쓰십니다.”
“괴물 같은 회복력을 보이는 그쪽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네요.”
벌써 화살을 뽑은 자리가 다 아물었다. 너덜너덜한 옷 틈새로 말끔해진 피부를 확인한 알레테아가 작게 혀를 찼다.
“이런 자를 정말 같은 인간이라 할 수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예요.”
“그래서 역사에서도 제 소임을 다한 영웅을 죽이려는 움직임이 많았던 거겠죠.”
“…….”
역시 황족이라 모르진 않는 듯 침묵하는 그녀를 향해 데온은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는 공세가 약해진다. 전투 중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 이렇게 대화하는 시간밖에 없기에 그는 아무렇지 않게 화제를 바꿔 말을 툭 내뱉었다.
“잠잘 시간도 주지 않고 몰아붙이다니 지독하십니다.”
“……그걸 또 버티는 그쪽은 어떻고요.”
잠잘 시간은 무슨. 잠시 앉아서 쉴 시간조차 주지 않고 밤낮없이 몰아붙였다. 이쪽은 중간중간 미리 팀을 나누어 적당히 교대로 쉬어 가면서까지 전투를 이어 갔는데.
이 괴물은 대체 뭐란 말인가. 알레테아가 질린 얼굴을 가감 없이 내보였다. 데온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비가 와서.”
빗발이 거칠어지며 원거리 영웅들의 공격 적중률이 떨어졌다. 물론 계속해서 빗나가고 방향이 수정되기를 반복하고 있긴 하지만, 날이 맑았다면 애초에 경로가 틀어지는 일조차 없었겠지.
축축한 몸과 낮은 기온이 맘에 들지 않는 것과 별개로, 비가 와서 다행이다. 그 잠깐의 틈 덕분에 버티는 것이 수월했으니까.
‘이 빌어먹을 진부터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흘긋 시선을 내렸다. 곳곳에 널브러진 시신이 눈에 들어왔다.
저것들 품속을 뒤지면 부적이든 뭐든 이 빌어먹을 공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무언가가 나올 것 같다만…….
‘그걸 저들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리 없지.’
훌쩍 뛰어올라 공격을 피하고 검날을 밟아 한 번 더 뛰어오르며 날아오는 화살을 쳐 냈다. 공중에 높게 뜬 몸 바로 아래로 비수가 스쳐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틈을 놓치지 않고 꼬챙이로 만들 기세로 찔러 들어오는 창 역시도.
허리를 옆으로 비틀어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창대를 옆구리에 낀 뒤, 이를 회전축 삼아 빙글 돌며 상대를 걷어찼다.
머리를 정통으로 맞은 탓에 순간 무기를 놓친 상대가 비틀거리며 물러선다. 능숙하게 창을 고쳐 잡은 데온은 곧장 놈의 심장에 던지듯 꽂아 넣음으로써 친절하게 무기를 돌려주었다.
“이걸로 몇이나 줄었으려나…….”
빌어먹을 진 때문에 원거리 영웅들 쪽까지 무기가 제대로 닿지 않아 근접 영웅들 위주로 상대했다만, 그래도 제법 줄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길 바란다.
‘슬슬 지치는데.’
몸은 괜찮은데 정신적 피로가 한계에 달한 느낌이라서.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전투에 집중력을 쏟아붓는 것도 한계가 있다.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에 인상을 쓴 데온은 앞에서 가로로 길게 베는 알레테아의 검로를 피해 뒤로 물러서…려다 뒤에서 다리 쪽을 낮게 베는 것을 발견하고는 상대의 어깨를 짚고 뛰어넘었다.
착지점에 다른 영웅이 기다렸다는 듯 발을 들이는 것이 보인다. 가볍게 비웃으며 단검을 쥐고 맞상대할 준비를 하는데, 너무 이쪽에 신경이 집중된 모양이다.
‘아.’
집중력 분배를 잘했어야 했는데.
화살이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영웅이 쏘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심상치 않은 속도로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그것을 한발 늦게 발견한 붉은 눈동자가 크게 확장된다.
‘……이건 좀 아프겠는데.’
촤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데온의 머리가 튕기듯 뒤로 젖혀지고, 공중에 뜬 몸이 크게 휘청였다.
빗속에 붉은 액체가 튀었다.
***
5군단과 8군단이 맞붙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왜?’
6군단장 벨리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굴렸다.
전쟁도 다 끝나가는 판국에 갑자기 왜지? 저들이 싸울 만한 이유가 있던가? 보통 군단 간의 다툼은 군단장으로부터 비롯되는데, 8군단은 군단장도 없잖아.
혹 트로버는 이유를 알까, 슬쩍 고개를 돌렸다. 저와 마찬가지로, 아니 저보다 더 눈을 크게 뜬 채 혼란으로 동공을 떨고 있는 9군단장이 보였다.
“……너도 저들이 왜 저러는지 모르는 모양이군.”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냐.”
아직 전시의 긴장이 다 풀리지 않아 퉁명스럽게 대답한 트로버가 얼굴을 찌푸린 채 한창 전투를 치르는 데르니반을 보았다.
마찬가지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미미하게 미간을 좁힌 상태로 8군단을 상대하는 모습. 영락없이 일에 휘말린 피해자의 꼴이지만 트로버는 안다.
‘……분명 나를 노리고 있었어.’
살기를 담은 눈으로 이쪽을 보던 데르니반을 기억한다. 이쪽을 향하던 걸음 역시도. 아마 8군단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필시 이쪽을 공격했겠지.
……어, 그럼 8군단에게 감사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에 빠지는데, 옆에서 벨리탄이 팔꿈치로 툭툭 건드렸다.
“저거… 말려야 할 것 같은데?”
“왜? 그냥 싸우다 죽으라지.”
절로 냉정한 말이 나왔다. 고민도 없이 즉각 나온 대답에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으나 트로버는 당당했다.
짧은 침묵 끝에 벨리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나라도 말려야지.”
나도 기분파인데, 제정신 아닌 기분파가 옆에 있으니 정상이 되는 기분이다.
산국 정리가 완전히 끝난 상태였으면 그냥 두고 보았을 텐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 걸음 내디뎠다. 전투로 예민해져 있던 데르니반과 임시 8군단장의 시선이 곧장 이쪽에 와닿았다.
살기에 젖어 흉흉한 시선을 마주한 벨리탄은 흠칫 도끼에 손을 얹었다.
“……이봐─”
우르르르.
“……?”
“허?”
트로버가 황당하다는 듯 헛숨을 뱉는 소리가 들린다. 삽시간에 멀어지는 8군단원들의 뒷모습에 벨리탄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러니까… 내가 말을 걸었고, 말을 채 다 꺼내기도 전에 내 얼굴과 도끼에 얹은 손을 번갈아 보던 임시 8군단장이 제 군단원들을 향해 손짓했지.
그리고 일제히 튀었다.
“……뭐야 저거?!”
황당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설마 나까지 끼어들어 공격할까 봐 도망친 건가? 아니겠지? 만약 맞다면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생각을 한 건지.
‘일단 본 목적대로 말리긴 했으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게 대체 뭔 일이람. 원래도 굳어 있던 머리가 더 굳어 통 돌아가질 않는다. 상황 파악을 위해 끙끙거리는데, 태연히 들고 있던 활을 등에 멘 데르니반이 입을 열었다.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모양입니다. 잡아서 물어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산국 정리가 완전히 안 끝났는데…….”
“그래서 더 심각한 사안인 겁니다. 이건 인간계 정복을 방해한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잖습니까. 어쩌면 인간계와 내통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가…….”
그의 말은 다소 비약이 섞이긴 했지만 일단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내분을 일으킨 것은 맞다. 곰곰이 생각하던 벨리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쫓아야지. 산국 뒷정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힐긋 트로버를 본 데르니반이 담담히 말했다.
약속은 마지막까지 철저히 지키는 편이 좋으니까.
로프티 기사단의 대장을 부탁하는 발언이 머릿속을 스치고, 이어서 ‘성을 함락한 후’ 트로버를 비롯한 군단장들을 죽이라는 데온 하르트의 발언이 떠오른다. 거기에 괜찮겠느냐는 벨리탄의 질문이 겹쳐지자 다시 현실로 돌아온 그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영웅을 죽이고, 왕의 머리를 챙기기만 하면 될 테니 문제없습니다.”
대화는 여기서 끝. 더 할 말은 없다. 돌아서서 군단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벨리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 그럼 난 8군단을 쫓지. 트로버 너는?”
“나도 쫓는 쪽.”
“……그래?”
그냥 싸우다 죽게 두라고 할 땐 언제고.
노골적인 의미를 담은 시선이 어이없다는 듯 트로버를 향한다. 트로버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여기에 5군단과 남았다간 둘 중 하나가 죽을지도 모르니까.’
보는 눈도 없겠다, 둘만 남으면 분명 데르니반은 망설이지 않고 움직이겠지. 내가 전투를 좋아하는 편에 속한다지만 몸 상태도 좋지 않은데 목숨을 건 추가 전투까지 치르는 건 사양이다.
따끔거리는 시선을 무시하고 돌아서서 군단원들에게 준비하라 명령했다. 그런 트로버의 뒤통수에 스치듯 데르니반의 시선이 닿았다.
…….
9군단과 6군단이 8군단을 쫓아 사라지고.
데르니반은 남은 군단원들에게 자잘한 것들은 알아서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린 뒤 궁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 듯, 왕이 있을 법한 곳으로 가면 갈수록 저항이 거세진다. 그러나 상대는 군단장이기에. 어떻게든 걸음을 막기 위한 일반 병사들의 필사적인 공격은 발목 하나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덧없이 스러졌다.
“……여긴가.”
귀찮은 공격을 피하고 쳐 내며 나아간 끝에, 데르니반은 어느 거대한 문 앞에 멈춰 섰다.
문을 열고 안에 발을 들이자 기다렸다는 듯 공격이 들어온다. 지금까지와는 질이 완전히 다른 심상치 않은 공격에 그는 곧장 등에 메고 있던 활대를 휘둘러 쳐 냈다.
아니나 다를까, 긴장으로 날카롭게 선 눈동자에 훌쩍 물러선 영웅이 비쳤다.
“역시 여기 있었나.”
“…….”
궁지에 몰린 이가 한 번만 공격하고 멈출 리 없다. 곧바로 이어질 후속 공격에 대비하는데, 녀석은 의외로 잠시 멈춰 서서 데르니반의 얼굴을 훑었다.
마치 정체를 확인하듯이 꼼꼼히. 그리고 말했다.
“……5군단을 제외한 다른 군단이 자리를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안이 난장판이라 통신 체계가 무너졌을 텐데, 소식이 빠르군.
데르니반은 대답 대신 조용히 주위를 훑었다. 이곳에 있는 인간은… 눈앞의 영웅과 도망치지 않고 한쪽에 앉아 있는 왕, 그리고 책사로 보이는 인간 여자가 전부인가.
왕까지는 그렇다 쳐도 책사가 남아 있는 것은 의외다. 전투 인력도 아니고 남아야 할 사명감 같은 것도 없을 텐데.
그때, 집중하라는 듯 검 끝이 이쪽을 겨눴다.
“이 성에 남은 유일한 군단장인 너를 죽인다면 전하께서는 잠시나마 안전해지시겠지.”
“…….”
이곳은 실내다. 넓고 천장이 높긴 하지만 야외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이곳에서 활과 화살은 그리 도움 되지 않는 무기일 터.
마지막 남은 영웅의 각오 따위는 한 귀로 흘려버린 채 활을 등에 메고 손을 변형시켰다. 날카롭게 선 손톱이 섬뜩한 위용을 자랑했다.
덩달아 팽팽해진 긴장감 속에서, 억겁 같던 대치 상황을 깨고 데르니반이 먼저 움직였다.
카앙!
번개처럼 손을 휘둘러 검을 쳐 낸 그가 곧바로 기습하듯 영웅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