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322
322. 너는 누구의 편인가(3)
상황이 불리하다는 것을 느끼고 몸을 뺀 마족들이 미리 정해 둔 약속 장소로 모여들고, 그들과 싸우던 군단장들은 그 뒤를 쫓는다.
약속 장소는 데온 하르트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 바로 근처. 데온 하르트를 적으로 규정한 이들도, 그를 따르는 이들도 모두 한 장소로 모여들고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쪽은 르웨체의 성을 맡은 이들이었다.
기껏 이곳까지 달려왔건만,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드벨라니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뒤쫓아 오는 놈들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 장소만 달라졌을 뿐 바뀐 것 없는 상황이라니.
가정했던 최악의 상황에 전투로 굳은 머리가 삐걱대며 돌아갔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데온 하르트가 있는 곳에 뛰어들어?’
끈질긴 거머리들을 매달고 데온 하르트의 전투에 난입해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홧김에 떠올린 생각이었으나, 생각보다 솔깃해 드벨라니아의 눈이 빛났다.
‘그래, 판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고 불리한 상황이라면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게 아예 난장판을 만들어 버리는 것도 괜찮겠지.’
운에 기대야 할 테지만 그 누구도 판을 가지고 놀 수 없게 되니 무엇보다 공평한 상황이 된다.
고민은 짧았다. 당장의 빌어먹을 상황과, 전투에 난입함으로써 벌어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 가져다주는 매력에 그녀가 망설임 없이 걸음을 뗀다. 목적지는 데온 하르트가 있는 곳.
그러나 걸음은 얼마 못 가 다시 멈춰야 했다.
“죄송합니다, 2군단장님. 데온 님께서 누구도 들이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아군도?”
“예, 방해된다고 하셨습니다.”
흐으음. 불만을 담고 가늘어진 시선이 앞을 가로막은 0군단원들을 훑었다.
곧 11군단과 3, 4군단이 도착할 것이다. 다시 전투가 시작될 테고, 이들은 제가 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
‘……그냥 방심하고 있을 때 죽일까.’
자연스럽게 늘어진 손끝이 보일 듯 말 듯 하게 까닥였다.
……하지만 전투를 치르며 시간이 지체되면 추격자들에게 금방 따라잡힐 것이다. 여기서는 0군단원의 협조가 필요했다.
조급함을 감추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상식적으로 아군이면 들여보내는 게 정상 아니야? 데온 님께서는 방해된다고 말씀하셨지만, 다른 어중이떠중이도 아닌 2군단이 방해될 리 없잖아.”
“…….”
“지금 데온 님 홀로 그 많은 영웅들과 전투를 치르고 계신 상황이야.”
“……혼자는 아닙니다.”
“그래, 일반 병사들을 데리고 들어가셨겠지. 하지만 그들은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간인 프리미로 기사단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라 결국 모든 영웅들은 데온 님 혼자 맡고 계실걸.”
물론 지금 내가 말한 정보는 직접 알아낸 거야.
정보 수집 담당인 2군단장의 말이 틀렸을 리 없다. 덧붙여진 발언에 0군단원들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데온 님의 명령입니다.”
“……답답하네. 데온 님을 위한 게 뭔지 모르는 건가? 기어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 후회를 해야만 속이 시원하겠어?”
신경질적인 음성에 놈들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드벨라니아는 거기서 표정을 살짝 풀고 조금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이를 달래는 듯한 음성이 날카로운 내용을 담고 흘러나왔다.
“만약 혼나는 게 걱정이라면 괜찮아. 데온 님은 너희에게 관심 없으셔서 다 끝나고 나면 잊어버리실걸.”
애초에 혼낼 인간이든 혼날 마족들이든 전부 죽어서 혼날 일도 없을 테지만. 뒷말은 비웃음과 함께 삼킨 채 대답을 요구하듯 놈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
데온 하르트는 0군단원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가 관심을 쏟아붓는 대상이라면 오로지 로프티 기사단뿐.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음에도 막상 눈앞에서 들먹이니 상처받은 듯 0군단원들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것도 잠시, 금방 마음을 추스른 녀석들이 다시 눈을 들어 상대를 본다. 놀라울 정도로 단단한 눈동자가 감히 군단장을 직시했다.
“저희는 그저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데온 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해도. 그래서 지금의 명령을 잊어버렸다 해도.
그래도 우리는 맡은 임무를 다해야 한다. 0군단은 드벨라니아가 아닌 데온 하르트를 따르는 군단이니까. 그러니 그녀의 말보다는 데온 하르트의 명령이 우선이다.
“……데온 님은 인복이 아주 터지셨네.”
본인만 모르는 인복이라는 게 참으로 웃긴단 말이지.
눈빛에서 바뀌지 않을 단호함을 읽은 드벨라니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애초에 데온 님을 왜 그렇게 따르는 거야? 너희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인간인데.”
“…….”
“뭐… 그래. 보아하니 전투를 치러서라도 막을 생각인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지.”
그녀가 물러서는 기색을 보이자 바짝 날 서 있던 0군단원들의 긴장이 조금 느슨해진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드벨라니아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럼 죽어.”
날카로운 실이 그들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카각! 허공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런.”
벌써 도착했나.
공격을 막아 낸 투명한 방어막이 녹듯이 사라지고, 한발 늦게 죽을 뻔했다는 것을 깨달은 0군단원들이 충격 어린 얼굴을 하면서도 전투태세를 갖춘다. 힐긋 그들을 본 드벨라니아는 언제 죽이려 들었냐는 듯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는 어느새 도착한 11군단과 3, 4군단이 있었다.
조금 더 시선을 올리자 리리넬과 눈이 마주쳤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
“방금 그게… 무슨 짓이죠?”
“무슨 짓이긴. 눈이 있다면 모르지 않을 텐데.”
“드벨라니아…….”
슬픈 듯 분노한 듯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낮게 들끓는다.
무슨 감정인지 모를 흐린 표정을 짓던 리리넬은 이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드벨라니아를 노려보았다.
“데온 님의 부하들이에요. 함부로 손대게 두지 않을 거예요.”
도르륵 굴러간 단호한 눈동자가 근처의 이델리아를 담았다.
“그쪽도요.”
“귀여운 경고네.”
흥미로운 눈초리로 상황을 지켜보던 이델리아가 생긋 눈매를 휘었다. 촤르륵 펼쳐진 부채가 하관을 가렸다.
“그런데 혼자서 괜찮겠어?”
다른 녀석들이 더 오는 것 같은데.
대지가 울리고, 한쪽에서 마족들이 달려온다. 이어서 다른 방향에서도 마족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각 무리의 선두에 선 8군단과 12군단을 본 이델리아가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한쪽은 산국, 다른 한쪽은 제국에 갔던 놈들이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적아가 불분명한 건 저쪽도 마찬가지인 듯, 이곳까지 도달한 마족들이 다른 성에 갔던 이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멈칫하더니 기묘한 대치 상태를 이룬다.
10, 12군단을 쫓는 1군단을 쫓아 도착한 7군단장 실루아가 상황을 대충 훑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이거 뭡니까? 다른 쪽도 싸움이 난 겁니까? 누가 누구의 편인 겁니까?”
“……그러게. 누가 누구의 편인지.”
모두가 모인 지금 이 자리에서 확인해 볼까.
우선 가장 먼저 말을 꺼낸 7군단장부터. 접은 부채 끝으로 실루아를 가리켰다.
“너부터 알아보자. 실루아, 넌 누구의 편이지? 마왕님? 데온 하르트? 그도 아니면… 둘 다 적으로 규정한 쪽?”
“당연히 마왕님 아닙니까? 데온 님 편은 그렇다 쳐도, 마지막은 또 뭡니까?”
“여기 그 마지막에 속하는 녀석이 있어서.”
“…….”
이 자리의 모든 마족들은 이델리아가 2군단장 드벨라니아를 돌아보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노골적인 움직임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
각 군단장들의 상황 파악은 빨랐다.
‘지금 데온 님 편, 마왕님 편, 제3세력으로 나뉘어 있는 상황이고, 7군단은 마왕님 편, 2군단은 제3세력이구나.’
그리고 데온 님을 ‘데온 하르트’라 칭한 이델리아의 말에서 4군단 또한 마왕의 편으로 규정한 이들이 저마다 머릿속에서 적과 아군을 나누었다.
다소 생소한 ‘제3세력’인 제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이목이 몰렸음에도 드벨라니아는 그저 싱글 웃었다.
“굳이 누가 누구의 편인지 알아야 할까. 우리 편은 전부 알고 있어서 이대로 싸우는 편이 이득인데 말이야.”
“아니. 드벨라니아, 넌 협조해야 할 거야. 난 ‘제3세력’이 어느 군단인지 알고 있거든. 내가 여기서 제3세력만 짚어 말한다면 당연히 최우선 배제 대상이 되는 거 아니겠어?”
적인지 아군인지 불분명한 이들 속에 적인 게 확실한 놈들이 섞여 있다면 그들부터 공격하는 것이 당연하다.
“……누가 제3세력인지 어떻게 알고 확신하려고? 잘못 짚기라도 하면 상당히 곤란해질 텐데.”
이델리아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어디 한번 말해 볼까? 솔직히 굳이 말 안 해도 다들 알 것 같지만. 너와 마찬가지로 굳이 이곳까지 달려온 8군단과 10, 12군단이 한편이겠지.”
“…….”
“무언가 약속된 게 있으니 이곳에 모였을 게 뻔하잖아.”
우리 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말할 때 시선 처리는 잘했다만, 그전에 단서를 너무 많이 흘렸다.
“……글쎄.”
공공의 적이 된 상황이다. 불안할 법한데도 드벨라니아는 태연함을 유지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말한 군단 말고도 더 있을 수도 있지.”
“……윽!”
여유로운 발언으로 서로를 의심하게 만든 그녀가 더 말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이델리아에게 달려들었다.
뱀처럼 낮고 빠르게 다가오는 실을 피해 공중에 뛰어오른 이델리아는 부채에 숨겨진 암기를 뿌리며 생각했다.
‘마왕님의 편도, 데온 하르트의 편도, 제3세력도 모두 동맹의 여지조차 없는 완벽한 적이야.’
마왕님 편의 입장에서는 둘 모두 반역이며, 최근 데온 하르트의 행적을 토대로 생각해 보았을 때 그의 편에 선 이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마족 자체가 적일 것이다. 처음부터 마왕과 용사 모두 죽이는 게 목적인 제3세력은 말할 것도 없지.
즉, 완벽한 1대1대1의 상황이므로.
‘아군 파악이 우선이야.’
아군을 골라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일단 3군단은 당연히 마왕님의 편이니 우리 편은 3, 7군단이 된다. 내가 이끄는 4군단까지 포함하면 3, 4, 7군단이 되겠지.
그 외에도 대충 진영이 파악된 이들은 제쳐 두고, 가장 애매한 이들은…….
“……벨리탄, 트로버!”
아직도 어리둥절해 보이는 6군단장과 9군단장을 불렀다.
“너희는 누구의 편이지?!”
“그야 당연히 마왕님이지. 그게 정상 아냐?”
“트로버, 너는?”
“나도 당연히…….”
벨리탄에 이어 당연하다는 듯이 마왕님이라 답하려던 트로버가 멈칫했다.
하필 지금, 완전히 잊고 있었던 계약이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
“트로버?”
“나는…….”
[다름이 아니라, 그때 내기의 보상을 요구하고 싶어서 무례를 무릅쓰고 트로버 님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바라는 게 뭔데? 만약 빼내 달라는 부탁이면….] [데온 하르트의 편이 되어 주십시오.]과거 단과 나누었던 대화가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트로버는 이때 본인이 무슨 대답을 했는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좋아! 확실하게 데온 님의 편이 되어 드리도록 하지!]계약서가 약속을 이행하라고 신호를 보낸다. 과거에 맺은 경솔한 약속이 족쇄가 되어 금방이라도 육신을 이루는 마력을 앗아갈 듯, 심장을 쥐고 흔들었다.
……빌어먹을! 트로버는 이를 악물었다.
“……데온 님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