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334
334. 오늘이 지나기 전에(6)
곳곳에 늘어져 있던 실이 일제히 팽팽해지며 리리넬의 몸과 머리가 분리되었다.
드벨라니아는 바닥을 구르는 머리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법을 못 쓰는 11군단장은 인간계의 어린애나 다름없는 존재지.”
한없이 나약하고 무능하다. 살아도 이 괴물들의 전투에 손 하나 제대로 보태지 못할 터.
“그러니까 11군단장은 죽었어.”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손을 들어 입을 가리자, 뒤늦게 리리넬의 마법에 입었던 내상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줄곧 억누르고 있었던 것에 대한 반동이 있을 법도 하건만, 튀어나온 것은 짧디짧은 기침이었다.
“쿨럭.”
입 안에 고인 피를 뱉은 뒤,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아직도 데온 하르트 측 군단장들에게 발목이 붙잡혀 있는 것이 보인다. 한숨이 나왔다.
‘……결국 제이카르를 견제할 수 있는 군단장은 나밖에 없는 건가.’
조금 쉬고 싶지만 전장에서 그런 게 허락될 리 없다. 손가락을 까닥였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말뚝이 허공, 바닥 구분 없이 가장 효율적인 곳에 박히고, 제이카르를 중심에 두고 보이지 않는 실이 느슨하게 걸린다.
실은 소리 없는 공격을 하기에 아주 유용하다. 상대가 무언가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 다반사.
심지어 지금의 공격은 무려 2군단장의 기습이기에, 모든 군단을 정리하고 마무리 중이던 1군단장 제이카르 역시 불길함을 감지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됐다.”
“……!”
촤악!
……강함을 따지기 이전에 상성이라는 것이 있다. 대부분의 군단장들이 드벨라니아와 싸우는 것을 꺼리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1군단장의 팔마저 잘라 낼 수 있는 기습.
그래, 제이카르의 팔이 날아갔다.
‘……원래는 사지를 다 노렸는데.’
혹시 몰라 아주 잘게 여러 조각으로 내려 했건만, 그걸 다 피하고 팔 하나만 내주었다고?
항상 마왕성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몸이 좀 녹슬었나 했더니, 데온 하르트와 대련을 진행하고 실전을 겪으며 다시 풀린 모양이다. 짜증 나게. 드벨라니아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뭐, 그래도…….”
제이카르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그녀는 히죽 웃었다.
“눈 한 짝 없고 팔 하나 날아간 1군단장 정도라면, 정면으로 맞붙어도 해 볼 만하지 않겠어?”
“…….”
도발하듯 이죽거렸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눈 하나를 잃음으로써 거리 감각이 흐트러졌을 테고, 팔 하나를 잃으며 균형을 잃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적응했다면 모를까, 현 상황에서는 나름대로 사지 멀쩡한 군단장인 드벨라니아가 유리할 것이 당연했다.
“……싸움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닐 텐데.”
제이카르는 명백한 그녀의 도발에 반응하는 대신, 조용히 검을 고쳐 쥐었다.
한편, 아직도 6군단장과 치열하게 맞붙고 있는 9군단장 트로버는.
“젠장, 젠장! 일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두르며 욕을 내뱉고 있었다.
데온 님이, 아니 데온 하르트가 제 편인 마족들의 죽음까지 바라고 있다니.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그저 드벨라니아의 이간질이길 바랐건만, 심지어 다른 녀석들은 전부 알고 있었단다. 이는 거짓이 아니라는 의미이니.
“빌어먹을!”
콰앙!
혼란스러운 속을 증명하듯 도끼와 주먹이 맞붙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저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도 불쾌하고, 이걸 나만 몰랐다는 것도 불쾌하다. 짜증스럽게 주먹을 휘두르는데, 전투를 치르면서도 이쪽을 빤히 응시하던 벨리탄이 문득 입을 열었다.
“그렇게 화가 나면 차라리 이쪽에 붙지?”
“뭐?”
“이쪽에 붙으면 데온 하르트를 처리할 수 있지 않나.”
“그건 그 뭐냐, 드벨라니아 쪽도 마찬가지일 텐데?”
“뒷배 없이 용사를 죽이는 게 가능할 리가.”
피식, 가소롭다는 듯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찌 되었건 대화를 하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덩달아 공방이 조금 느슨해진다. 이참에 아예 설득하려는 듯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목소리가 이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마왕님께서 나서시겠지. 마왕으로서 적인 용사를 그냥 둘 수는 없으니까.”
“…….”
“우리 때문에 분노하지 않아도 움직이실 거라는 뜻이다. 그냥 이쪽에만 붙어 있으면 네 복수는 자연히 이루어진다는 거지.”
“…….”
“그러니까 어때, 우리 편이 되는 것은?”
트로버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나직이 욕을 읊조렸다.
“젠장, 마음 같아서는 나도 그러고 싶지.”
“……그게 무슨 말이지?”
“난 안 돼. 계약으로 묶였거든.”
“뭐… 아니, 잠깐. 설마…….”
“실수했지.”
당시 계약 내용을 들었을 때, 이득이라는 생각에 혹여 단의 마음이 바뀔까 별다른 예외 조항도 걸지 않고 냉큼 계약해 버렸다. 그 탓에 ‘데온 하르트가 트로버를 죽이려 들 때는 예외로 한다.’와 같은 조항도 없고.
심지어 어겼을 때의 대가마저 구체적으로 정한 것이 없어 그저 초기의 소원권을 걸고 내기할 때 반드시 들어줄 것을 약속하며 걸었던 대가가 그대로 따라와 버린 상황이다.
‘모든 마력’을 걸고 약속했으니 계약을 어긴다면 육신을 이루는 마력까지 전부 잃게 될 터. 즉, 죽는다는 뜻이다.
“너… 멍청이냐?”
“……실수였다니까!”
“쓸데없이 입만 아팠군. 아니지, 오히려 이런 멍청이를 끌어들이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군이 되어 봤자 머리만 아플 테니.”
“죽고 싶냐?”
다시 공방이 격해졌다.
그럼에도 벨리탄의 얼굴에서 황당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천하의 멍청한 새끼를 보는 듯한 눈빛마저 그대로라 트로버는 부러 도끼의 한 부분만 노려 두들기며 으르렁거렸다.
“내가 다른 방안을 생각하더라도 일단 너부터 죽이고 나서 생각한다.”
“네 머리로는 안 될…!”
콰장창!
도끼가 부서졌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날카로운 파편 중 가장 큰 파편을 반사적으로 낚아챈 벨리탄이 제 목을 움켜쥐고 바닥에 내리꽂는 손길에 커흑- 신음을 토했다.
아예 목을 부러뜨리려고 작정한 듯 우악스러운 두 손이 목을 움켜쥐고 힘을 가한다. 어렴풋이 신경질적인 음성이 들렸다.
“나도 덩치가 큰 편인데, 넌 진짜 쓸데없이 무식하게 크네.”
“큭-”
“생김새도 그렇고, 너 정말 마물 아니냐?”
고작 목 하나를 내가 두 손으로 잡아야 할 정도면….
의미 없는 중얼거림에는 집중하지 않았다. 벨리탄은 냅다 손에 쥔 날붙이 파편을 휘둘렀다. 그것이 관자놀이에 박히기 직전, 트로버가 손목을 잡아챘으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상대를 밀어내듯 발로 걷어차 머리 위로 날렸다.
“허억, 콜록! 네놈은 대화가 통하는 마물이라도 봤나 보지? 그리고 그 발언… 마족 차별이다.”
마족이라면 생김새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공평하게 힘의 논리로 계급을 나누어야지.
손잡이 없는 날 선 파편을 꽉 쥔 탓에 제법 깊은 상처가 생긴 듯 손바닥이 아려온다. 하지만 그보다 목이 더 아픈 것 같아 벨리탄은 괜히 몇 번 더 숨을 고르고는 다시 트로버를 향해 달려들었다.
위협적인 파편은 트로버가 손목을 쳐 최우선으로 걷어 냈다. 그렇지 않아도 잡혔을 때의 악력에 손목이 상해 있었던 탓에 간단한 주먹질에도 벨리탄은 파편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금이 간 듯 욱신거리는 손목을 무시하고 주먹을 마주 날렸다.
쾅! 콰앙!!
주먹질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굉음이 울렸다. 힐긋 그들을 돌아본 군단장들이 생각했다.
‘힘과 힘의 싸움이군.’
‘힘과 힘의 싸움이네.’
특별한 기술이랄 것 없이 무식하게 한 대씩 주고받고 있는데도, 아니 오히려 그러고 있기에 더욱 등골이 오싹하다.
두 짐승들의 싸움에 눈을 둔 것도 잠시, 자신들이 전투 중이었다는 것을 자각한 그들은 다시 시선을 돌려 눈앞의 적에게 집중했다.
한편, 주먹을 주고받던 트로버는 상대의 주먹에서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 눈을 빛냈다. 본능이 말해 주고 있었다. 승기가 기울었다고.
‘당연하지.’
벨리탄은 무기에 의존하는 놈이고, 나는 순수 무투파니까!
여유를 되찾으니 입이 근질근질하다. 상대를 향해 씨익 웃었다.
“마법 하나 보여 줄까?”
“그건 또 무슨 개소리….”
“내가 승리하는 마법!”
남은 힘을 끌어모아 냅다 턱주가리를 후려쳤다. 역시나 상당히 힘이 빠져 있었던 듯 제대로 방어하지도 못한 채 맞은 녀석이 휘청인다. 트로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다시 목을 졸랐다. 목을 꺾기에는 목이 너무 두꺼웠고, 주위에 마땅한 무기도 없었기에 이 방법밖에 없었다.
멀쩡한 척하지만 사실 이쪽의 체력도 아슬아슬한 상태에 이르렀다. 이번에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을지도 몰라. 이를 악물고 손에 힘을 주었다.
“제발, 좀! 죽어라…!!”
필사적인 것은 상대 역시 마찬가지라, 발버둥 치던 녀석이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두른다. 위협적으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주먹이 가까워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우두둑.
손아귀에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얼굴 바로 옆에서 주먹이 멈췄다.
침묵으로 점철된 억겁 같은 시간 속에서, 서서히 주먹에 힘이 빠지더니 이내 툭 떨어진다. 트로버는 그제야 상대의 목을 쥐고 있던 두 손을 놓고 자리에 주저앉을 수 있었다.
“하… 죽는 줄 알았네.”
주륵 흘러내린 식은땀을 대충 닦아 냈다.
녀석이 주먹을 날릴 때, 얼굴에 닿던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맞았다면 필시 나가떨어졌을 테고, 뒤는 장담하기 어려워졌겠지. 조금 전보다 더한 난투극이 시작되며 개판이 펼쳐졌으리라.
……어쨌든.
‘이제 남은 적이…….’
끝난 일에서 눈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4군단장과 잘 싸우고 있는 데르니반 녀석은 넘기고, 1군단장과 2군단장의 전투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
반사적으로 의문이 튀어나왔다.
“내가 싸우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무슨 일이 있었길래 1군단장의 상태가 저 모양 저 꼴이 되었단 말인가.
조금 과장해서 1군단장은 어디 가고 웬 누더기가 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눈은 왜 그 모양이고, 팔 하나는 어디에 팔아먹은 건지. 그런 주제에 2군단장과 팽팽하게 싸우고 있는 걸 보면 저쪽도 참 독하다 싶다.
‘아무튼… 1군단장은 일단 아군이었지.’
데온 하르트가 저희를 죽이려 드니 어쩌니 하지만, 일단 현 상황에서의 적들은 명백하다. 후에 아군이었던 이들과 다시 싸우든 말든 일단은 당장의 적부터 없애고 나서 생각해 봐야지.
2군단장 같이 얍삽하게 기습이나 하고 실을 다루는 녀석들은 저처럼 힘으로 몰아붙이는 놈들에게 취약하다.
‘나도 아슬아슬한 상태긴 하지만… 딱 봐도 저 눈이랑 팔 한 짝씩 잃은 마족보단 훨씬 괜찮으니까.’
괜히 기다리며 시간만 질질 끌다가 1군단장을 잃고 제가 나서는 것보다는 이쪽에서 먼저 나서서 2군단장을 상대하는 편이 낫다. 1군단장의 성격이라면 몸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되는 즉시 다시 전투에 돌입할 테니 굳이 이길 필요 없이 버티기만 해도 될 테니까. 심지어 교대하기 전이라 해도 위험할 때는 1군단장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트로버는 이 지긋지긋한 전투를 끝내기 위해 좋지 않은 몸을 이끌고 저들의 싸움에 난입했다.
“드벨라니아! 환자는 그냥 쉬게 두고 나와 싸우지 그래?”
반갑지 않은 존재의 등장에 드벨라니아가 굳은 얼굴을 애써 폈다.
“여기에 환자 아닌 마족이 있긴 한가? 너도 환자면서.”
“환자라고 다 같은 환자는 아니잖아. 네가 좀 얍삽한 건 알았지만 설마 중환자를 붙잡고 싸울 정도로 비겁할 줄이야.”
“처음부터 중환자는 아니었거든? 그리고 싸움에 비겁이 어딨어?”
“시끄럽고, 싸우자!”
“이 무식한 새끼가…!”
기어이 드벨라니아의 표정이 구겨졌다. 제이카르의 표정도 썩 좋진 않았다.
“내가 처리할 수 있다.”
“누가 뭐래? 댁 체력 회복할 때까지만 내가 싸울 거야. 나도 몸 상태가 썩 안 좋아서 오래는 못 싸워.”
“……맡기지.”
솔직히 한계였기에 제이카르는 더 고집부리지 않고 검을 허리춤의 검집에 밀어 넣은 뒤, 아직까지도 간간이 피가 떨어지는 어깨를 감싸고 대충 근처 바위에 기대어 섰다.
그런 제이카르와 트로버를 번갈아 보던 드벨라니아가 이를 부득 갈았다.
“하, 교대하며 싸우시겠다? 비겁하게…….”
“싸움에 비겁이 어딨어?”
어서 덤비기나 하시지.
트로버는 히죽 웃었다.